청춘 스케치, Reality Bites, 1994 Flims






“난 지금 우리 나이가 되면, 우린 다들 뭐라도 되어있을 줄 알았어.” 이것은 영화 대사가 아니라, 지난 달 초, 10대 중반부터 함께 해온 친구 한명과 술을 마시다 나온 말이다. 내가 꺼낸 말이었는지, 아니면 내가 들은 말이었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확실한 것은 우리가 각자 가지고 있는 10년이 넘은 친구들의 소식들과 근황을 서로 짜맞추어보면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내린 결론이었다. 10대 때, 혹은 학생 시절에 가지고 있는 미래에 대한 환상은 결코 잘못이 아니다. 경제적인 면에 뿐만 아니라 더 이상 무언가를 흡수해야만 하는 것이 아닌, 결과물을 내놓고 사회 시스템의 일부로서의 내 자리를 찾아들어간다는 성취감이나 뿌듯함은 성인과 사회인에 대한 미성숙한 갈망을 부풀려 놓기에 충분하다. 그렇지만 현실은 절대적으로 녹록치 않다. 누구에게라도 마찬가지다. 씁쓸하게도 다들 어디서 한자리들 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10년 전의 예상에 그대로 보답한 친구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지만 그것이 온건히 우리의 잘못일까?



몇 개피의 담배, 두 잔의 커피, 약간의 대화. 너와 나, 그리고 5달러만 있으면 된다는 트로이(에단 호크)의 이 달콤하고 낭만적인 대사가 가장 기억에 남을 영화였지만, 사실 에단 호크의 이 명대사는 영화 후반 스스로 부정당한다. 그보다 릴레이나(위노라 라이더)에게 건네는 위로의 대사인 – “스물세 살이 될 때까지 되어 있어야 할 것은 너 자신이야.”라는 대사가 더 무게 있게 다가오는 영화인 <청춘 스케치>는 코미디 배우로 유명한 벤 스틸러가 감독한 (그리고 직접 조연도) 1994년 영화다. 위노나 라이더와 에단 호크라는 20대 배우들을 캐스팅했지만 이 영화가 평범한 하이틴 무비가 될 뻔 한 것을 막았던 것은 영화가 단순히 20대의 방황과 일탈을 그리고 있지는 않다는 점이다.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가혹하고, 이제 막 사회초년생들의 저항은 그에 반해 너무나 약할 뿐이라는 것이다. 위노나 라이더. 러시아와, 아르메니아와, 노르웨이와, 독일의 피가 다국적으로 흐르고 있는 태생적 배경은 그녀에게 매력적이고 신비로운 아름다움과 분위기를 동시에 부여했다. 그녀는 <가위손>등으로 10대 후반부터 스타가 될 자질을 보였으나 포드 코폴라의 <대부3>을 거절하고 팀 버튼의 영화들에 출연하기를 원하는 등, 그녀가 원하고 즐길만한 배역과 영화들을 고르는 독특한 행보로 컬트, 코미디 영화들을 가리지 않았다. 99년 <처음 만나는 자유>에서 그녀는 한번 방황의 아이콘을 연기했으나 안젤리나 졸리의 연기가 너무 뛰어났던 탓에 스포트라이트를 내주었다. (그녀의 이런 선택들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지만 더 높게 평가될 수 있는 배우가 과소평가된 듯한 느낌이 들어 아쉽다) 위노나 라이더는 이 영화를 찍을 무렵 20대 초반, 극중 릴레이나와 비슷한 나이였으며 실제로 그녀는 대학 수석 졸업생인 릴레이나처럼 고등학교 수석 졸업생이기도 했다. 한편 1989년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의 토드 앤더슨이 이제 대학을 졸업해 이 영화에 나타난 듯한 에단 호크의 트로이는 그야말로 사회의 현실으로부터 한발 떨어져 관조하고 내려다보는 듯한 청년이지만 그 역시 현실을 깨닫지 못한 미성숙한 반항아의 면모를 가진다.



영화 속 네 명의 친구들은 각자 학생 신분을 벗고 사회 초년생의 경계에 서있다. 이들의 졸업식 장면과 직후의 자축파티는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띤 핸드헬드 카메라로 찍혀있다. 찍는 이는 릴레이나다. 그녀는 그녀의 다큐멘터리로 언젠가 쓰게 될 영상이라고 하며 친구들의 모습을 담는다. 그녀가 갖고 있는 다큐멘터리 감독에 대한 꿈은 대학을 졸업한 직후에도 품고 있는 궁극적인 목표이자 꿈이다. 대학 수석 졸업생인 그녀는 방송국 인턴으로 입사하지만 현실은 그녀가 그리던 이상과 많이 다르다. 그녀의 목소리는 시스템 안에서 곧 묻혀버리고, 카메라 앞의 가식적인 방송 진행자이자 자신의 상사와의 몇 번의 마찰 이후 그녀는 통쾌한 복수 한 방을 끝으로 해고당한다. 이혼 부모 밑에서 자란 우수한 학생인 릴레이나의 방황은 그때부터 시작이다. 자신을 받아줄 두 번째 회사는 찾기 힘들고, 친구 니키와 함께 사는 마당에 경제적 자립은 점차 그녀를 무기력에 빠지게 한다. 양산된 고학력의 20대들이 취업난속에서도 자신들의 ‘눈’을 낮추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져 자괴감의 악순환에 빠지는 것은 지금의 우리나라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왜 나 같은 인재를 아무데서도 써주지 않는 거야? - 자주 듣는 독백이 아닌가. 절친한 친구인 니키(잔느 가로팰로)의 사정은 그나마 낫다. 의류회사 갭(GAP)의 매장 매니저로 승진한 그녀는 자신의 일에서 점차 보람을 찾아가는 중이다. 릴레이나만큼 뛰어난 학생은 아니었지만 니키는 자신의 자리에서 한 단계씩 밟아 올라가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에이즈에 대한 강박은 갑작스럽게 20대들에게 주어진 자유로움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 그것은 20대에게 주어진 어설픈 자유다. 이혼한 부모 세대가 물려준 결혼에 대한 회의감 역시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자세다. 동성애자 친구인 토미(스티브 잔)가 갖고 있는 성적 가치관은 이제 자기 스스로를 책임져야할 나이가 되었지만 기성세대에게 인정받기는 어려운, 결국 집으로 되돌아 갈 수 없게 된 등떠밀린 자립이다. 부모님에게 커밍아웃 할 것을 친구들 앞에서 미리 연습해보고 희망에 들뜨지만, 바로 이어지는 현실의 장면은 그들이 갖고 있는 환상과 현실의 엄청난 괴리감을, 커밍아웃하는 장면을 건너뛰고도 더욱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영화는 이렇게 20대가 겪을 수 있는 모든 시련들의 종합 선물 세트처럼 그들에게 엄습한다.



물론 이 영화를 로맨틱 무비로 바라본다면, 사회적으로 성공한 남자와 자신이 진정 원하지만 내색하지 못하던 영혼의 친구 사이에서 선택하는 여주인공의 이야기로 읽어도 크게 무리한 시도는 아닐 것이다. 20대 청춘들의 방황만큼, 그들이 가지는 사랑에 대한 가치의 혼동도 그중 일부가 될 수 있을테니까 말이다. 이런 구도는 조금 더 코믹한 요소를 더하고 무게를 줄여,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서 되풀이 된다. (그러고 보면 이 영화 <청춘 스케치>는 르네 젤위거의 데뷔작이었다. 대사 한마디 없는 단역으로 불과 몇 초 출연했을 뿐.) 릴레이나에게, 한량 같은 소꿉친구 트로이와 너무나 대조되는 남자 마이클(벤 스틸러)가 매력적으로 보인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릴레이나가 동경하는 분야에서 커리어를 쌓고 있는 번듯한 남자, 그리고 그런 남자가 힘든 시기에 나타나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다니 마음을 내줄 모든 조건은 갖추어졌을 것이다. 트로이의 어설픈 질투와 서툰 고백사이에서 갈등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기엔 시간이 더 필요했다. 트로이의 날카로운 독설과 지적은, 일을 하며 건실하게 살기보단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살기만하는 트로이의 모습이 스스로 깎아내린다. 트로이는 평생을 가족을 위해 일만하다 쓸쓸히 죽어가는 자신의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에겐 음악을 하고 노래를 부르고 클럽에서 꼬신 여자와 사랑 없는 섹스를 나누는 것이 더 자유로운 이상적인 삶이다. 마이클의 등장에 사랑하는 릴레이나를 빼앗길 위기감 앞에서 트로이는 조급해지지만, 그 역시 자신이 알고 있는 경구와 읽어온 수많은 책들로는 대체할 수 없는 미숙한 면을 갖고 있다.



릴레이나는 결국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상업적으로 마이클에 의해 마모되고 훼손된 자신의 다큐멘터리 비디오를 보는 것으로 대신 깨닫는다. (영화가 참 괜찮았던 부분은, 그녀를 마지막으로 되돌리기 위한 마이클의 항변조차 꽤 설득력있게 다가왔다는 점이다.) 마이클의 변명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트로이에게 되돌아가지만 이번엔 트로이가 당황한다. 한 번도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해본 적 없는 트로이는 비로소 자신에게 돌아온 릴레이나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한다. 진정한 사랑을 줘본 적 없는 남자는 되돌아온 여자를 상처 입힌다. 그렇게 헤어진 트로이와 릴레이나에게 자숙의 시간이 주어지고, 영화는 조금 뜸을 들인 뒤 둘을 성숙시킨다. 세상에서 가장 효과적인 반성의 방법은 그저 시간뿐일지니, 둘은 드라마처럼 재회하고 서로 사과하고 용서한다.



조금 아쉬운 점은 영화가 ‘아프니까 청춘이다’ 식이라는 것. 한참을 괴롭혀놓고 탈출구보단 적응하고 배우며 깨달으면 그래도 너희의 20대는 살만한 타협점을 찾을 수 있다는 지점에서 끝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희망적인 면은 릴레이나와 트로이는 서로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사랑을 확인하고 이제 그 거칠고 힘겨운 사회에 함께 적응해나가기 위해 나아간다는 것이다. 영화의 오프닝시퀀스에서 릴레이나의 졸업 연사에서 했던 ‘BMW에 대한 독설’과는 상반되게도, 우리는 영화 내내 수많은 간접광고와 기업들의 상표에게 노출된다. GAP, 세븐일레븐, 프링글스, 도미노 피자, 에비앙, 스니커즈, 맥도날드, 포드, 미닛메이드, MTV 등등 (한국에 살아온 내가 발견한 상표만 이정도일뿐, 사실 훨씬 더 많은 유명 기업들이 이 영화 곳곳에 스며들어있다.) <청춘 스케치>가 결코 20대의 자유로움과 꿈에 힘만을 실어주려는 영화가 아니라는 점을 이리도 충분히 상업적인 이미지들로 가득 채워놓은 분위기가 대변하고 있다. 첫 직장에서 해고된 뒤 릴레이나가 이곳저곳 구직하던 중 정의를 질문 받고 대답하지 못해 당황하던 낱말은 ‘역설(irony)’이었다. 풀죽은 릴레이나는 돌아와 트로이에게 같은 질문을 던지자 트로이는 ‘실제적인 뜻이 문자그대로의 뜻과 정반대인 것’ (“It's when the actual meaning is the complete opposite from the literal meaning.”) 이라고 대답한다. 물론 트로이의 대답이 아이러니라는 뜻에 대한 정확한 정답은 아닐 수 있다. 그렇지만 그가 설명하고 릴레이나가 동의한 이 문장이야말로 ‘청춘’의 또 다른 정의가 아닐까. 덧붙이자면 이 영화의 한국어 제목인 <청춘 스케치>와는 판연히 달리, 영화는 ‘Reality Bites’라는 더 노골적인 제목을 갖고 있었다.









덧글

  • 2013/06/23 20:12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6/25 20:44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alice 2013/06/23 23:25 # 답글

    아 영화제목이 Reality bites였군요 제목 좋다 ㅎㅎㅎ 이거 내용은 잊고 있었고 좋다고 느꼈던 느낌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
  • 레비 2013/06/25 20:45 #

    제목이 굉장히 핵심적인 영화인데, 우리나라로 들어왔을땐 좀 더 밝은 '청춘 스케치'로 개봉했나봐요 :) 뉘앙스가 전혀 다르죠? ㅎㅎ
  • 2013/06/24 01:1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6/25 20:59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3/06/26 01:52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3/06/27 16:35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young 2016/08/10 15:26 # 삭제 답글

    Reality bites 감상후 구글 검색으로 흘러들어와 이 글을 보게되었어요.
    타고난 글쟁이마냥 글을 잘쓰시네요..
    당연히 전문 평론가일거라고 생각하고 프로필을 봤는데 아닌것에 깜짝 놀랍니다.
    어떨땐 영화를 보고도 "내가 이 영화로 부터 뭘 깨달아야 하는걸까. " 라고 고민할때가 있어요..
    님 글을 보고 제 생각의 모호함이 확실함으로 바뀌니 통쾌한 감정까지 드네요^^
    팬이 될것같아요~ 다른 영화에 대한 글도 정독해보려구요.
    살짝 훓어보니 리스트가 많고 현재 진행형이네요. 아주 좋아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 레비 2016/08/16 23:38 #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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