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헨, Munich, 2005 Flims











2006년 봄. 독일 월드컵이 열리기 몇 개월 앞서 스티븐 스필버그의 <뮌헨>이 전세계에 개봉했다. <우주 전쟁>을 내보인지 반년만이었고, <쉰들러 리스트> 이후 12년만이었다. <뮌헨>은 1972년 서독 올림픽에서 벌어진 '뮌헨 올림픽 참사'를 도화선으로, 그에 따른 이스라엘의 보복을 영화의 재료로 삼았다. 독일에서 열리는 월드컵이라는 국제제전을 앞두고 의미심장한 개봉이었다. (사실 스필버그는 이 영화를 2,3년 더 일찍 완성하고 싶어했지만 <우주 전쟁>때문에 지연되는 바람에 <뮌헨>은 6개월만에 급히 완성한 영화가 되었다. 따라서 독일 월드컵을 겨냥한 개봉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는것도 사실.) 1972년 9월 5일. 팔레스타인 해방기구 '검은 9월단'이 이스라엘 대표선수들을 납치했으나 어딘가 어긋나버린 구출 작전은 인질 전원 사망이라는 비극을 낳았다. 이스라엘은 정보기관 모사드를 동원하여 이와같은 테러의 배후와 후원자들을 암살하는 '신의 분노' 작전을 내린다. 주인공 에브너(에릭 바나)는 곧 출산을 앞둔 아내가 기다리고 있는 모사드 요원. 이스라엘 정부는 비밀리에, 그리고 정부가 이런 복수의 작전에 개입하지 않았다는 명목을 위해, 에브너를 포함한 팀은 마치 테러 조직처럼 움직여주길 바란다. 4명의 전문 요원들을 팀원으로 데리고, 에브너는 11명의 명단을 유럽 전역에서 암살해나간다. 영화는 암살작전이라는 스릴러적 요소를 가진채 긴장감을 유지하며 전개된다. 하지만 이 영화가 특수요원들의 액션 활극을 그린 그런 영화가 될 수 없는 까닭은 악의 응징이 아닌, 복수의 악순환과 그 고리에서 주인공의 번민과 고뇌가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길고도 긴 분쟁이 영화의 주된 뼈대를 이루고 있지만 여기에 유태인 스필버그가 깔아놓은 더 큰 밑그림은, 제목인 '뮌헨'과 '뮌헨 참사'가 우리에게 심어주는 독일이라는 존재이다. 1972년 서독 올림픽은, 종전 이후 전범국 독일의 이미지를 쇄신할 좋은 기회였다. 유태인 학살이라는 오명을 극복하려는 하필 그런 독일 땅에서, 팔레스타인의 '검은 9월단'이 이번엔 이스라엘 대표팀 선수단을 납치한다. 게다가 협상보단 강경책을 택한 독일의 구출 작전은 범인 몇명과 함께 인질 9명이 전원 사망하게 되는 '실패한 작전'이 되어버린다. 영화 <뮌헨>에서 사실 뮌헨이라는 땅은 처음 발단이 된 사건을 제외하면 에브너 일행이 활약하는 주된 배경도 아니오, 독일과 유태인의 보이지않는 갈등은 <뮌헨>에서 다루는 주제가 아니다. 따라서 독일은 이 영화에서 복수의 대상도, 그 동기도 아니다. 그저 비극의 무대가 되었을 뿐. 하지만 영화가 이로부터 고개를 돌린 척 하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보이지 않는 피의 복수와 반복되는 보복 테러 속에서 우리는 그보다 몇십년 앞서 벌어졌던 독일과 유태인의 지우기 힘든 상처의 관계를 필연적으로 되새길 수 밖에 없게 된다. 이스라엘의 복수의 시발점이 된, 뮌헨 테러라는 이 사건을 모든 것의 발단으로서 가져온 표면적 이유 이외에도, 나는 의도적으로 독일과 유태인의 관계를 상기시키려했다고 생각한다. 즉, 지난 세계대전에서 상처를 입은 피해자였던 이스라엘 민족이, 이제는 나라를 갖지 못해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에 저항하는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마치 가해자처럼 변신한 것이다. 물론 나치가 행했던 비인도적 학살과,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가하는 압력을 동일선상에 놓는 것은 무리가 있다. 하지만 스필버그는 영화를 만들었고, 실제로 유태인들은 이 영화가 팔레스타인을 옹호한다고 비난했으며, 복수와 용서에 대한 스필버그의 중립적 태도는 논란에 올랐다. 유태인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팔레스타인의 목소리 역시 들어보고자하는 시도로 읽히기 쉬운 영화 <뮌헨>은 과거 독일과 유태인, 그리고 다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으로 옮겨온 갈등과 복수라는 순환 고리의 중재를 종용한다. 하지만 직접 겪고 당한 분노와 미움을 이성적으로는 가능할지 몰라도 가슴으로 받아들이기란 정말 힘든 일이다. 지구 반대편에 살고있는 우리는 이 영화를 보면서 이스라엘도, 팔레스타인도 그 어느쪽에 치우치지않은 제3자의 입장으로서 다소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스필버그는 20여년전, <태양의 제국>이라는 영화로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의 제국주의조차 이해해보고 용서해보려는 시도를 가졌었다. 마찬가지로 그런 경우, 한민족인 우리가 그 영화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기란 정말 어렵다.)








베레모를 쓴 에릭 바나가 주인공 모사드 요원 에브너로 등장한다. 하지만 평소 에릭 바나라는 배우의 남성미 물씬 풍기는 마초스타일은 오히려 동행하는 다혈질 요원 다니엘 크레이그에 의해 희석된 분위기다. (다니엘 크레이그는 영화 <뮌헨> 이듬 해, <007: 카지노 로얄>로 제6대 007이 되었다.) 원작 소설인 조지 요나스의 'Vengeance'을 바탕으로 <포레스트 검프>의 각본가인 에릭 로스가 시나리오를 썼다. 이미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주인공 에브너에 에릭 바나를 염두한 채 쓰여졌다고 하니, 그가 <뮌헨>에서 잘 맞는 옷을 입은 듯한 느낌은 괜한 느낌이 아니다. 나는 <트로이>의 헥토르보다 몇년 앞선 <블랙 호크 다운>에서의 멋진 군인으로 그를 더 기억하지만, 가장 강렬한 인상을 받았던 것은 정작 2008년. 개봉하자마자 영화관에서 보았던 <천일의 스캔들>은, 내게 나탈리 포트만과 스칼렛 요한슨을 보러 갔다가 에릭 바나를 기억하게 된 영화였다. 그 영화속 에릭 바나의 연기는, 헨리 8세라는 역사적 인물이 갖는 이미지의 섬세한 재현이었다. 또한 이 영화를 통해 이스라엘의 국민 여배우 아예렛 주러가 헐리우드에 입성했다. 에브너의 아내 역할이었던 그녀는 몇년뒤 <천사와 악마>에서 톰 행크스의 히로인 역을 맡았다.








에브너와 동료들이 피의 복수를 실천해나갈 때마다, 팔레스타인과 검은 9월단의 보복 테러 역시 마찬가지로 자행된다. 첫 암살을 마치고 카페에서 자축하던 그들에겐 애국심과 사명감이 그들의 행동에 대한 당위성을 부여해주었으나, 반복되는 암살 임무와 자신들의 목숨을 내걸어야하는 위험부담은 주인공 에브너에게 임무에 대한 회의를 안긴다. 몇분뒤 폭사할 대상과 호텔 발코니에서 인사를 나누고, 암살 대상의 어린 딸이 대신 죽게될지도 모를 위기를 넘기는등 에브너는 나라를 위한 자신의 행동이 정당한지 의문을 품게된다. 그에겐 결정적으로 돌아가야할 집과 가족이 있다. 처음 임무를 받으며 집을 떠나는 그는, 아내에게 임무를 완수하면 돌아갈 수 있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즉, 타인에 대한 복수를 완수하면 자신의 집을 지키고 귀환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작전이 길어지고 자신의 목숨에 이어 주변 인물들도 위험해지자 그는 아내에게 어린딸과 함께 뉴욕으로 거처를 옮기게 한다. 조국을 위해 임무를 수행하는 에브너는 다르게 말해, 자신의 집을 위해 싸우는 것과 다르지않는 남자다. 그러나 그에게 지켜야할 집은 반복되고 길어진 복수로 거처를 잃어버린다. 이 영화 <뮌헨>에서 집이라는 키워드는 여러번 반복된다. 요리에 취미가 있는 특수요원은 태어난 어린 딸과 아내를 두고 온 집을 그리워할뿐만 아니라, 그 그리움의 이미지로서 밤에 불이 환하게 밝혀진 가구점, 특히 부엌 가구들을 쇼윈도로 감상한다. 이 영화에서 집이라는 단어는 곧 조국이자 국가다. 팔레스타인 해방기구 PLO 요원들과 은신처에서 마주쳤지만, 자신들을 ETA라고 속이며 위기를 모면한 그날 밤, 에브너는 팔레스타인 리더 알리와 대화한다. 자신들의 적인 팔레스타인 PLO는, 타분쟁지역의 혁명에는 관심이 없으며 우리들은 단지 자신들의 나라가 필요할 뿐이라고 말한다. "Home is everything."







영화를 보다보면 마치 에브너의 회상과도 같이 '뮌헨 참사'가 플래시백으로 점차 재생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당연히 에브너의 직접적인 회상은 아니다. 하지만 영화 처음, 세상 밖의 시선으로 '뮌헨 참사'의 소식을 들은 관객들은 중간중간에 삽입된 '뮌헨 참사'의 실제를 리얼하게 확인해가면서, 영화가 흘러갈수록 '검은 9월단'과 크게 다를게 없어지는 모사드 요원들과 에브너를 동시에 보게된다. 자신이 암살한 방법에 똑같이 자신의 목숨이 위험할까봐, 한밤중의 방 안을 전부 헤집어 확인하고 스스로 지쳐버리는 에브너는 이 영화의 소리없는 클라이막스다. 마침내 그가 귀환하고 집으로 돌아왔을때, 임무를 받고 떠나기전 만삭의 아내와의 사랑스러웠던 섹스를 대신하고 있는 것은, '뮌헨 참사'의 마지막 비극의 장면과 겹쳐지는 괴물로 변해버린 자기 자신의 모습이다. 결국 검은 9월단 그들도 인질들과 다를 바 없는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고, 그들의 마지막 잔인한 학살 장면을 한번 더 재현함으로서 영화 내내 보여준 모사드 요원들의 행보를 간접적으로 깎아내린다. 니체식으로 말하자면, 에브너와 그의 요원들 그리고 이런 복수의 작전을 내린 이스라엘 수뇌부는 심연과 괴물을 들여다보다 스스로 괴물이 되었다. 후대에 이어지는 흉물스러운 유산인 이 복수라는 것을, 아기를 안고 길을 걷다 창을 내린 자동차만봐도 긴장하는 스스로의 모습으로 그는 확인한다. 독일이 히틀러와 공범 의식을 갖고있기 때문에 이스라엘에 관대하다는 다소 자극적인 대사까지 동원하며, 스필버그는 나라없는 팔레스타인의 입장을 이해해보고 이 비생산적인 피의 복수에 경멸을 던진다.







에브너의 어머니는 암살작전에 참여한 자식을 더없이 자랑스러워하며, 에브너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루이(마티유 아맬릭)와 파파(미쉘 롱스달)는 어떠한 정치적 이념에도 관여하지 않는다는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는 등, 영화에선 각자 자신들 나름의 위치에서 신념을 세우고 있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중 영화의 목소리를 직접적으로 내고 있는 인물은 에브너와 함께 작전에 참여했다가 중도에 그만두는 로버트(마티유 카소비츠)가 아닐까. 적이 악하다고 우리도 똑같이 악해야하냐는 항변에 에브너는 더이상 관대해선 안된다고 밀어붙이지만("We can't afford to be that decent anymore.") 로버트는 그랬던 적이 과연 있었냐고 되묻는다.("I don't know if we were ever that decent.") 사실 돌이켜보면 이스라엘과 유태민족의 비극의 역사만큼이나 그들은 투쟁하고 쟁취하지 않았던지. 그는 정의(righteous)를 두고 "That's Jewish." 라고까지 말하며 작전에서 빠진뒤 훗날 자살한다. 우리는 우리가 누군가를 미워하고 배척할 수록, 그 대상과 비슷한 방식과 모습을 닮아있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라던 적이 있지않은가. 영화는 에브너의 화해의 제스쳐를, 자신의 상관인 에프레임(제프리 러쉬)이 거절하는 것으로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이 아직 현재진행형임을 씁쓸하게 암시하며 끝난다. 복수에 과연 정당한 당위란 존재할 수 있을까. 한쪽 뺨을 맞으면 상대의 턱을 부수는 것이 정의라고 말하는 세상에 아직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인가.













덧글

  • 2013/06/19 17:0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6/20 01:06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3/06/19 23:3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6/20 01:12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3/06/20 12:23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이 이글루를 링크한 사람 (화이트)

375

통계 위젯 (화이트)

218
123
916990

웹폰트 (나눔고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