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로니카의 이중생활, La Double Vie De Veronique, 1991 Flims







세상이 얼마나 넓거나 좁은지, 세상에 얼마큼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 모르던 어렸을 때, 막연히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만 생각한 나는 지구 반대편 어딘가에 나와 같은 시간에 똑같은 행동을 끊임없이 하고 있을 누군가가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내가 지금 방문을 열면 같은 시간에 똑같이 방문을 열고있을 누군가의 가능성을 상상했다. 그리하여 데칼코마니 같은 삶을 함께 계속하다가 언젠가 서로의 물리적 중간 지점쯤에서 만나는 것이다, 거울처럼 각자의 반대를 그리던 두 그래프가 대칭축에서는 만날 수 밖에 없듯이 말이다. 훗날, ‘도플갱어’에 대하여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내가 어렸을 때 상상하던 것과는 조금 차이가 있지만 미지의 또 다른 자기 자신에 대한 신화가 다른 세계에도 있었다는 것에 반가워했다. 서로 알아보면 죽게 된다는 것이 가지는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진 못했지만, 세상 어딘가에 숨겨진 거울 밖 또 다른 나에 대한 존재는 흥미로웠다.







폴란드인 베로니카는 프랑스인 베로니크를 알아본다. 하지만 프랑스인 베로니크는 폴란드인 베로니카를 알아보지 못한다. 둘은 같은 1966년 태어나 닮은(이렌느 야곱의 1인2역) 외모를 가지고, 여러모로 비슷한 성장환경을 가진 채 자라왔지만 둘의 접점은 오직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프랑스인 베로니크가 폴란드로 여행을 왔을 때, 광장에 있던 베로니카는 심지어 자신과 똑같은 옷차림을 하고 열심히 사진을 찍으며 버스에 오르던 베로니크를 멀리서 포착한다. 그러나 베로니크는 베로니카를 알아보지 못한다. 혼란스럽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그 접점의 순간에 베로니크의 카메라는 베로니카를 담았지만 어쨌든 베로니크는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프랑스에서 온 또 다른 자신을 알아본 베로니크는 곧 죽지만 베로니카는 죽지 않는다.







'이중 생활'이라는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제목 때문에 90년대 국내 소개 당시 3류 에로영화로 오인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은적 있다. '이중 생활'이라기보다 '두 개의 삶' 정도가 더 적절한 번역이었지 않았을까. 이십대 중반의 이렌느 야곱은 자신의 첫 주연작인 이 영화에서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감각적인 빛과 색 안에 마치 필름의 일부처럼 녹아들어간다. (줄리엣 비노쉬를 대신한, 그래서 어딘가 더 닮아보이는) 이 아름다운 배우의, 그리고 이후로도 이토록 아름다운 모습은 보이지 못해 더 아쉬운 그녀의 1인 2역이 두 주인공 베로니카와 베로니크를 연기하지만 이런 이야기임에도 교차편집등의 방법을 택하지 않은 것은 오히려 신선하다. 한명이 저러고 있을 때, 또 다른 한명은 이러고 있다는 식의 서사는 없다. 영화의 전반부는 폴란드인 베로니카로 시작하고, 그녀가 죽고 난 뒤, 영화는 프랑스인 베로니크에게로 옮겨간다. 둘이 평행이론 같은 삶을 살아왔다는 정보만이 있을 뿐, 영화가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둘의 공통된 시간은 거의 없다. 그렇다면 굳이 한명이 무대에서 내려간 뒤 또 다른 한명의 이야기를 그제야 시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둘의 만남보다 한명의 죽음으로 관계는 재시작된다.






베로니카는 또 다른 자기 자신의 존재를 감지하고 그 때문에 외로워하지 않는다. 그녀는 남자 친구와의 섹스 도중 벽에 걸려있는 자기 자신의 초상화를 본다. 그것은 곧 베로니크의 초상화이기도 할 것이다. 만난 적은 없지만 어딘가에 있을 또 다른 자아를 느끼는 베로니카는 그래서 걱정하지 않고 외롭지도 않다. 그런 그녀이기에 베로니크를 만났을 때,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듯 떠나는 버스에 아쉬운 시선을 떼질 못한다. 베로니카의 이야기는 노래로 시작해서 노래로 끝난다. 오프닝 시퀀스 이후, 합창을 하던 그녀는 갑자기 쏟아지는 비에서도 홀로 남아 노래를 끝마친다. 합창으로 시작한 그녀의 이야기는 솔리스트, 독창의 기회가 주어지면서 끝난다. (이렌느 야곱의 목소리는 아니라지만) 그녀의 청아한 고음의 목소리는 합창이라는 무리에서 이내 인정받고, 그곳에서 벗어나와 튀어나간 채 솔로로서 무대에 선다. 솔리스트 오디션 도중 그녀가 팽팽하게 잡아당기다 이내 끊어져버리고만 노끈은 그녀가 향하는 새로운 위치에서의 죽음을 예감한다. 그리고 마침내 솔로로 무대에 섰을 때, 합창 속에 있었던 그녀의 세상은 어그러지고 죽음을 맞이한다. 하지만 흥미로운건 이 직후의 장면이다. 베로니카의 죽음 직전 그녀 1인칭의 시점으로 보이던 청중과 지휘자와 옆자리의 가수, 오케스트라의 모습은 어지럽게 무너지지만 그녀가 쓰러진 이후 카메라는 원경으로 콘서트홀과 무대를 비춘다. 무대에서 즉사한 그녀의 죽음 판정과 함께 카메라는 청중들의 머리 위를 날아간다. 더불어 관에 들어간 베로니카의 시점. 관을 내려다보는 장례식 하객들과 쏟아지는 흙들. 이것은 두 말할 것 없이 베로니카의 육체의 죽음과 동시에 풀려난 그녀의 영혼이다. 쌍둥이 같은 두 명의 베로니카와 베로니크의 이야기에서, 이 제대로 된 만남조차 없던 둘의 이야기에 연결고리가 되어주는 것은 다른 한명의 죽음과 그로인해 남겨진 베로니카의 영혼일 것이다.







베로니크에게로 카메라와 베로니크의 영혼이 날아간 이후 영화의 후반부는 이제 베로니카의 죽음을 예감한 베로니크가 그녀의 존재를 더듬어가는 과정이다. 베로니크가 사랑에 빠지는 인형술사 알렉상드르(필립 볼터)의 인형극은 죽은 가수가 고치 속 나비가 되어 새롭게 태어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베로니크는 사랑에 빠진다. 베로니카의 남자친구는 비록 그녀의 죽음 이후 등장하지 않지만, 그녀의 이루지 못한 사랑이, 나비가 되어 새로 태어나는 인형극의 순간과 동시에 베로니크가 바통을 이어받는다고 생각한다면 억측일까. 베로니크는 베로니카의 못 다이룬 사랑을 이어간다. 베로니크의 존재를 감지하던 베로니카는 외로워하지 않을 수 있었지만, 베로니카를 모르던 베로니크는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을 느끼고 그녀가 죽던 날 본능적으로 슬픔을 느낀다. 나는 이 영화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을, 베로니크라는 또 다른 자신으로 옮겨간 베로니카의 부활이자 환생으로 믿는다. 둘의 연결고리는 앞서 언급한 것 외에도 많지만 그보다 영화에서 암시하는 재탄생과 부활의 메시지는 보다 더 강렬하다. (베로니크가 알렉상드르를 찾아가는 파리 기차역의 이름은 마네의 그림으로도 남아있는 생 나자르 St.Lazare 역이다. 예수가 행한 나자로의 부활.)






이제는 고인이 된 동구의 거장, 크지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필모그래피는 길지는 않지만 선이 굵다. TV시리즈 <십계>시리즈 중 두 편을 영화화하면서 폴란드 내부에서 영화를 만들던 그는, 소위 프랑스 시리즈 - ‘세가지 색’ 3부작으로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마무리했다. 이 영화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은 그의 이런 이동, 폴란드 내부에서 외부로 이동하는 바로 그 지점에 있는 영화다. 그래서 유독 많은 평들이 이 영화를 90년대의 동유럽(폴란드)과 서유럽(프랑스)의 화합과 연결로 해석하는 것 같다. 영화의 첫부분 베로니카가 빗속에서 합창을 마치고 거리를 뛰어갈 때 트럭에 실려 지나가는 동상(레닌인지 마르크스인지)이나, 베로니카와 베로니크의 각 아버지들의 직업 등, 영화엔 동서유럽에 대한 은유가 많이 등장한다. 그래서 폴란드의 베로니카가 죽고난 뒤의 그녀의 영혼과 느낌은 프랑스의 베로니크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국제정치적 메시지를 모두 떠나서 내가 이 영화에게 받은 가장 큰 느낌은 명멸하는 찰나의 아름다운 스러짐이었다. 이 영화에서 특히 도드라지는, 이렌느 야곱이라는 아름다운 배우와 그녀의 관능미가 한 몫한 덕도 있지만 그녀가 연기한 베로니카의 급작스러운, 그리고 최고의 순간에 맞이한 죽음은 그렇게 안타깝게 져버린 미美의 부활과 환생으로 베로니크에 의해 재현되는 것이 아닐까. 베로니카는 새로운 기회를 얻어 합창단원이 아닌 솔리스트로서 무대에 섰다가 급작스럽게 죽었지만 베로니크는 오히려 바이올린 레슨을 그만둬버린다. 하지만 그녀는 베로니카의 미완의 사랑을 이어 찾았고 그는 그녀와 베로니카의 이야기를 인형극으로 재규명한다. 베로니크가 느끼는 슬픔과 죽음에 대한 암시는 또 다른 자신의 죽음에 바치는 눈물이 되어 떨어진다. 뒤늦게 필름 속에서야 베로니크가 발견한 베로니카. 이미 죽고 없는 필름 속 베로니카의 영혼은 베로니크에게 죽음이 아닌 지속된 계승과 이야기의 유지를 남겨준 것이 아닐런지.









덧글

  • 2013/06/12 00:4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6/12 15:58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3/06/12 21:48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3/06/15 20:18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나나 2014/02/07 20:47 # 삭제 답글

    이 영화 찾다가 우연히 들렀는데, 좋은 글 읽고 갑니다.
  • 레비 2014/02/09 12:17 #

    감사합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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