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그놀리아, Magnolia, 1999 Flims










마약을 하다 신고받고 찾아온 경찰에게 사랑을 느꼈지만 자신의 모습과 처지에 후회하는 여자. 그렇게 빠져든 사랑과 마주친 그 날 저녁 총을 잃어버리고 비웃음거리가 된 경찰. 암선고를 받고 그제서야 인생을 돌아보며 젊은 날의 실수를 후회한채 아내에게마저 버림받은 퀴즈쇼 진행자. 왕년의 퀴즈쇼 스타 소년이었지만 현재는 똑똑하긴커녕 동성에 대한 사랑을 제대로 표현조차하지 못하는 무력한 남자. 아내와 어린 아들을 저버린 과거를 후회하는 죽기 직전의 노인. 그의 마지막 소원을 이루어주고 싶은 간병인. 사랑하지도 않은 채 유산만을 바랬던 어리석은 자신의 결혼 생활을 후회하고 있는 그의 아내. 그리고 어릴적 자신과 엄마를 저버린 아버지에 대한 증오를 후회하는 젊은 아들. 누구도 화장실에 보내주지않아 퀴즈쇼 생방송 중 오줌을 싸버리고만 천재 소년.



이들에게 일어난 이 모든 일들은, 불과 하루안의 이야기이다. 가장 힘들었던 그날 하루, 하루종일 내리던 그 비가 개이기 직전 이들 아홉명이 함께 부르는 에이미 만의 노래, Wise Up의 마지막 가사. So just give up은 이 모든 것들로부터 포기하라고 말한다. 이 가사는 불행으로 점철된 인생을 포기하라는 것이 아닌, 불행을 이제그만 내려놓으라는 것이다. 에이미 만의 음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것만으로 그치지않고, 이야기가 나아가게하는 동력이 된다. 실제로 감독 폴 토마스 앤더슨은 에이미 만의 음악으로부터 영화의 영감을 얻었고, 그녀의 음악들은 하나하나 이 영화 속의 다양한 에피소드들에게 모티브가 되어주었다.








불과 스물 아홉 나이의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은 1999년 영화 <매그놀리아>를 세상에 내놓으면서 이것이 자신 인생의 최고의 작품이 될 것같다는 말을 첨부했다. 당시 서른조차 안 된 젊은 감독이 불과 20대에 완성한 한 작품을 두고 '앞으로 나올 자신의 다른 영화적 가능성을 스스로 모두 부정'하면서까지 자평한 것에는 단순히 자신감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경외감마저 깃들어있다. 188분의 긴 상영시간을 가진 영화 <매그놀리아>는, 그러나 거의 지루할 틈이 없다. 무려 두세개의 큰 얼개와 아홉여명의 주인공들, 거기에 극의 진행을 돕는 몇몇 조연들까지 더해진 이 거대하고 과감한 이야기는 '매그놀리아'라는 거리를 중심으로한 비슷한 공간적 구획 안에서, 불과 하루정도의 시간안에 벌어지는 이야기들이다.








오프닝 시퀀스보다 먼저 삽입된 인상적인 프롤로그의 세가지 에피소드들이 암시하듯, 영화는 우리의 삶에 가득찬 우연과 불행들을 작정하고 보여주려는듯 하다. 영화 <매그놀리아>의 시간은 단 하루지만, 그들이 겪고있는 불행의 연원은 비단 하루에 갑작스레 찾아온 일이 아니다. 노년인 얼(제이슨 로바즈)과 지미(필립 베이커 홀)는 각자 젊은 날의 외도와 딸에 대한 성추행이라는 과거가 죽음을 앞둔 순간 후회로서 밀려온다. 각각 그들의 아들과 딸인 프랭크(톰 크루즈)와 클라우디아(멜로라 월터스) 역시 평생 용서하지 못하던 자기 아버지들에 대한 증오의 감정을 후회로 되새긴다. 프랭크는 얼의 죽음 직전 눈물로 참회하고, 클라우디아는 '불가능한 일이 실제로 벌어진' 그날 밤 남편의 고백을 듣고 눈물로 달려온 어머니(멜린다 딜론)와 포옹한다. 후회와 용서의 키워드는 다른 이들에게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얼의 젊은 아내, 그를 사랑하지 않았지만 죽어가는 그를 사랑하게된 린다(줄리안 무어) 역시 자신이 한 결혼에 후회하는 것이 아닌, 곧 떠날 남편을 사랑하지 않았던 자기 자신에 대한 후회를 한다. 그녀는 자신에게 재산이 상속되지 못하게 유언장을 바꾸려고 시도하며, 죄책감에 자살기도를 하기까지 한다. 지금까지 살아온 그들의 과거가 현재를 엄습하는 것이다. 영화 <매그놀리아>에서 매번 다른 사람의 입에서 세 번이나 반복되는 대사인, 우리는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지만, 과거는 우리를 기억한다. (We may be through with the past, but the past ain't through with us.)는 그 후회의 무게를 단적으로, 그리고 직접적으로 말해준다.








하지만 전날부터 줄곧 내리던 비는 결국 그친다. 7900개의 가짜를 만들어 찍었다는, 개구리가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충격적인) 장면을 기점으로 영화는 희망을 심어놓는다. 세상에서 일어날 수 없을 우연이 실제가 된 이후, 이제 어떠한 일도 가능성을 가지게된다. 그것이 곧 희망이다. 그런 일조차 벌어지는 세상에서 대체 그 무엇이 불가능하단 말인가. 돈 버는 도구로만 취급되던 천재소년 스탠리(제레미 블랙맨)는 이제 아버지에게 의미심장하게 경고하고, 과거의 퀴즈왕 도니 스미스(윌리엄 머시)는 자신의 우발적 범죄를 뉘우치고 반성한다. 치아교정으로 사랑하는 남자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거라고 믿은 어리석은 그는 하늘에서 떨어진 개구리에 얼굴을 맞고 쓰려져 교정할 이를 부러뜨리고 만다. 그래서 올곧고 우직한, 그러나 어리숙한 경찰 짐(존 C 라일리)과 클라우디아의 사랑은 영화의 대미을 장식하기 부족함이 없다. 마약과 문란한 생활로 지나온 과거에 스스로를 방치해둔 클라우디아가 한마디 욕설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올곧은 경찰 짐과 과연 사랑할 수 있을지, 자신없어하고 물러섰을 때 짐은 그녀를 찾아가 희망을 이야기한다. <매그놀리아>가 클라우디아라는 캐릭터로부터 모든 구상이 시작된 영화라는 점을 감안해보면, 그녀가 지나오는 후회와 반성과 용서와 희망은 그대로 이 영화의 테마이자 메세지의 흐름이 된다.








특별한 주인공 없이 다수의 캐릭터들이 서로 별 연관성 없어보이는 이야기들을 풀어나가는 이 3시간짜리 장편 영화는 그래서 초반의 지루함을 견디기 힘들지도 모른다. 3700만 달러를 들여 만들었으나 본전도 뽑지못한 저조한 북미 흥행성적을 남겼고 아카데미는  이 영화에 아무런 상도 주지 않았지만, 같은 해 베를린은 이 영화에게 최고상인 황금곰상을 안겼다. 조금 많다고 느껴지는 다수의 이야기들은 그것을 매끄럽게 이어가는 빼어난 카메라 워크로 촘촘히 재단되어있다. 영화를 보다보면 한 이야기에서 또 다른 이야기로 전환되는 장면 사이사이에 사용된 놀라운 편집과 마주칠 수 있다. 영화의 많은 이야기들은 같은 전개를 가지면서 다 함께 긴장에 올랐다가 다 함께 내려온다. 그것이 이 영화에서 많은 이야기를 동시에 보고 있어도 잠시도 흥미를 잃을 수 없는 이유다. 폴 토마스 앤더슨과 여러 영화를 함께 찍은 노장 필립 베이커 홀의 연기, 그리고 한껏 젊은 날의 필립 세이모어 호프먼과 줄리안 무어의 연기도 눈을 사로잡지만 백미는 역시 톰 크루즈다. 1999년 영화인 <매그놀리아>는 <미션 임파서블>과 <미션 임파서블 2> 사이에 있는 영화이자, 그가 과거의 액션 배우의 이미지와는 다른 더 깊이 있는 연기를 선보인 영화다. 같은 해 공개된 <아이즈 와이드 셧>에서의 연기보다 나는 <매그놀리아>에서의 톰 크루즈가 훨씬 뛰어났다고 생각한다. 존 C.라일리, 윌리엄 머시 등, 다수의 인물들이 필요한 이 영화에서 조연들의 활약은 반갑다.







 

개구리 비가 무슨 의미일지, 왜 하필 개구리였을지, 그것에 정말 종교적 의미가 있었는지 (또 그래서 영화에 82라는 숫자가 그리도 많이 숨겨져있었는지) 나는 잘 알지 못한다. 이미지 예술이기도 한 영화에서 상징은 언제나 수수깨끼같은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를 볼 때마다 (아직 세네번 정도 밖에 못봤지만) 호기심보다는 위로받고 격려받는다. 그리고 그들이 Wise up을 부르는 그 순간 가슴 한구석이 처연해지고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처음봤을 때, 개구리 비는 물론 충격적이었지만 그 후의 그들의 결말이 내게 준 위로가 너무나도 컷기에 나는 개구리를 잊기로 했다. 코끼리면 또 어떻단 말인가. 영화의 프롤로그에서 나래이터가 말하듯, 그것은 우연일 수 있고, 세상에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 그렇게 일어날 수 있다. 그런 놀라운 순간이 우리의 삶에 삽입되고, 우리는 기적같이 용서하고 화해하고 희망을 보면서 그렇게 또 살아가는 것이다. 과거가 우리를 기억할지는 몰라도, 우리는 과거를 용서하며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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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all me Ishmael. : 리노의 도박사, Hard Eight, 1996 2018-01-21 04:49:43 #

    ... 히 영화들 속에서 서사 해 온 구원의 테마도 벌써 이 영화에서 엿보인다.) 그는 가족 관계에서도 특히 부자(父子) 관계에 대해서 집중한다. 이제는 그의 대표작이 된 &lt;매그놀리아&gt;, &lt;데어 윌 비 블러드&gt;, 그리고 &lt;마스터&gt;에 이르기까지 그의 모든 영화에 등장하는 아버지와 아들들은, 혹은 유사 아버지와 아들은 비슷한 상황들 ... more

덧글

  • 2013/06/08 12:43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6/11 18:5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6/11 01:30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3/06/11 20:24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ㅂㄷㅇ 2013/07/25 08:03 # 삭제 답글

    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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