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발렌타인, Blue Valentine, 2010 Flims









하루하루 사랑한다는건, 하루하루 헤어지는거야. 수년이 지난 연애에 권태로워하던 그녀에게 체념하듯 내가 말했고, 내가 그 말을 한 이후 100여일쯤 뒤에 우린 정말로 헤어졌다. 하지만 난 그 말에 후회하진 않는다.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던 우리에게 헤어짐은 필연적인 수순이었고, 그당시엔 말그대로 헤어질 날을 위해서 하루하루 걸어가는 것만 같았다. 디데이가 다가올수록 무력해지고 포기만 늘게 되었고, 헤어지고 난 뒤에서야 후련함마저 느껴졌다. 그렇지만 지금이라도 돌이켜보면 우린 많이 사랑했던 때가 있었더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참 많이 좋아했었고 분명 사랑하던 순간이 있었는데, 아무튼 지금은 아니야. 이 문장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은 이후 내 연애관을 비롯한 많은 부분에 큰 영향을 남겼다.



데릭 시엔프렌스의 영화 <블루 발렌타인>에는 비슷한 사이즈(제작비 백만달러 전후)의 저예산 영화들과 비교해봤을 때 아주 공들여 찍은 흔적이 잔뜩 묻어있다. 회상이 아닌 교차로 편집되어있는 과거와 현재의 이음새는 섬세하며 애써 과한 힘을 들이지 않고도 긴장의 이완에 어색함이 없다. 선댄스를 시작으로 칸느, 토론토, 비엔나등 2010년 세계 유수의 영화제들을 순회하고 2011년 본격적으로 전세게에 개봉된 이 영화에서 미셸 윌리엄스와 라이언 고슬링은 사랑에 빠지는 연인과 헤어지는 부부를 함께 연기했다. (그들의 어린 딸 역인 프랭키는 미셸 윌리엄스와 故히스 레저의 딸인 마틸다 레저가 맡을 뻔 했었다.) 싱어송라이터 톰 웨이츠의 1996년 앨범명에서 따온 <블루 발렌타인>의 제목은 내용과 아주 잘 어울린다.









딘(라이언 고슬링)과 신디(미셸 윌리엄스)의 다툼은 단순히 성격 차이라고 부르기엔 부족한 감이 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단순한 남녀간의 차이로 확대해석 할 여지도 영화에선 그리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성급하고 섣부른 결혼이 부른 파경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의대로의 진학과 공부를 포기하고, 원치않은 때에 찾아온 임신 때문에 결혼을 결정한 신디가 어리석다고 손가락질 할 수만은 없다. 우리는 이 영화가 너무나도 암담한 결혼 후의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기에 그들의 결혼이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오판하기 쉽다. 그러나 이 영화의 나머지 절반은, 이들이 사랑했고 그리고 결혼전까지의 행복하던 모습임을 기억해야한다. 사랑에 빠진 것이 실수였다고 말하기엔 그들의 과거는 너무 찬란하다. 편부모 가정에서 자라고 고등교육을 받지 않은 딘은 결혼에 대해 부정적이고 진정한 사랑을 믿지않았지만 신디를 만남으로서 자신의 가치관을 바꾸게 된다. 신디 역시 자유로운 연애를 즐기고 미래에 대한 설계도 있었으나 딘을 만난 뒤로 '함께' 한다는 것에 새로운 감정을 갖는다. 그러나 원치않은 타이밍에 찾아온 임신은 이들의 관계를 아직 준비되지 않은 단계로 떠민다. 영화는 신디의 임신이 딘이 아닌 다른 남자로부터 인한것이라는 암시를 주며 딘은 이때 자신의 기존 가치관에 반하는 결혼을 결심하게 된다. 그렇게 시작된 결혼은 행복하게 시작하지만 결국 현재에 이르러 가장 중요한 문제에 봉착한다. 하루하루를 노동자로 살던 딘에게 결혼이라는 환상은 그대로 삶의 목표가 되었고, 그것을 이룬 딘에게 결혼 이외의 삶은 부차적인 것이 되었다. 가정과 딸과 아내와의 행복이, 애초에 그것이 계획에 없던 남자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미래가 결혼으로 인해 바뀐 신디에게 결혼은 삶의 종착점이 될 수 없었고, 그녀는 뒤바뀐 인생에 자신의 삶을 맞추어 적응하고 살아나가려 노력했다. 새로운 시작이던 신디와 이미 목적을 달성한 딘의 차이는, 영화 <블루 발렌타인>이 지적하는 모든 것의 문제의 근원이다. 물론 단순히 사랑의 유통기한, 행복과 권태의 병렬적 비교를 켜켜이 늘어놓은 영화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저 시간만이 이 파경의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난 믿고싶진 않다. 결혼에 대한 가치관의 차이는, 곧 인생에 대한 가치관의 차이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놀라움을 느끼게되는 점은,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 과정과 헤어지는 과정이 많이 닮아있다는 것을 눈치채게되는 순간이다. 사랑에 빠지던 때는 사소한 것에 매력을 느끼고 나와 다른 상대의 모습에 이끌리지만, 다른 순간 사소한 것들은 짜증의 대상이 되고 나와 다른 모습은 견딜 수 없는 암초가 된다. 결정타를 위해서, 영화는 마지막 시퀀스에서 결혼식 직후의 포옹과 헤어지는 마지막 포옹을 아예 함께 이어놓았다. 세월이 지난 이 두 사람이 처음과 다른 사람이라고 결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막 연애를 시작한, 얼마되지 않았던 시절의 '뭘 해도 행복한' 시간도 물론 좋아하지만, 그보다 사실 더 좋아하는 때는 정작 사귀기 직전의 그 미묘한 긴장감과 설레임이 공존하는 시간이다. 반대로 내가 헤어진 직후의 후폭풍보다 더 싫어하는 시기는 헤어짐이 점차 엄습해오는 그 길고 지루하고 불편한 멀어짐의 시간이다. 헤어진 직후의 슬픔보다 멀어져가는 기간의 거리감에서 느끼는 슬픔이 난 더 크다. 이 영화 <블루 발렌타인>에는 방금 언급한 두가지 시간이 모두 등장한다. 사랑의 결실을 맺기 직전까지의 가까워지는 시간과, 완전히 헤어지기 직전까지의 멀어짐의 시간이. 바뀐 외모와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은 달라졌지만 두 시간속에서 그들의 유사함을 발견할때마다 우리는 똑같은 이유로 사랑과 헤어짐을 반복한다는 말이 떠오른다. 정녕 사랑은 이별의 또 다른 형태일까. 우리는 모두 영원한 사랑을 꿈꾸면서도, 해피엔딩이 아닌 사랑 영화들을 보며 씁쓸한 친숙함을 느낀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새에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끝끝내 헤어지고마는 이 영화들을 '현실적'이라며 벌써 은근히 옹호해주고 있지는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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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혼자먹는점심 2013/06/01 03:59 # 답글

    꼭 봐야겠네요ㅎ 좋은 글 감사합니다.
  • 레비 2013/06/01 13:41 #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 2013/06/01 19:5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6/01 21:28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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