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시스, Tesis, 1996 Flims












감독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의 이름은 생소할 수 있지만 니콜 키드먼 주연의 영화 <디 아더스>나 톰 크루즈와 카메론 디아즈가 출연한 <바닐라 스카이>는 그렇지 않다. <떼시스>는, <바닐라 스카이>의 원작인 스페인 영화 <오픈 유어 아이즈>를 연출했고, 이후 헐리우드로 건너가 <디 아더스>를 찍은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의 데뷔작이다. <오픈 유어 아이즈>나 <디 아더스>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이 그는 심리스릴러에 능한 감독이라는 인상이며, 이는 역시 그의 첫 작품인 <떼시스>로부터 연원을 찾을 수 있다.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가 이 영화를 찍었을 당시 24살이었다. 다소 조악한 장면들이 몇몇보이지만, 이 영화는 공포와 스릴러를 능란하게 넘나드는 숨겨진 수작이다.






어린나이의 강렬한 데뷔 때문에 영원한 아역배우 이미지에 갇히고만 비운의 배우, 아나 토렌트가 연기한 주인공 안젤라는 자신의 대학 논문 주제로서 '영화 영상속의 폭력'을 선택한다. 하지만 지도교수의 우려대로 그녀는 폭력적인 영화, 시각적 폭력에 무지하고 무감각하다. 그녀가 기괴하고 이상한 영상들을 수집하는 괴짜 클래스메이트 체마(펠레 마르티네즈)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는 것도, 그녀가 가진 빈약한 정보와 자료의 부족함 때문이다. 그러나 안젤라에게 자료를 부탁받은 지도교수는 시네마테크에서 모종의 필름을 보다 앉은 자리에서 숨진채 발견된다. 우연히 최초 발견자가 된 안젤라는 두려움과 호기심이 동시에 느끼고 지도교수의 시신을 그대로 놔둔채 교수가 보던 비디오 테이프만을 꺼내 도망치듯 빠져나와 체마에게 털어놓는다. 비디오에 담겨있던 것은 과거에 실종된 여대생 바네사의 살해 영상이었고, 이제 안젤라와 체마는 진범에 의해 위협받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 이 영화의 전반부 줄거리다. 그러나 이후 후반부는, 통속적인 추리물의 형태를 띠고있어 오히려 전반부에 비해 긴장감은 더할지 몰라도 흥미는 다소 떨어진다. 이 영화에서 가장 아쉬운 점이다.






같은 스너프 필름이라는 소재를 다루지만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의 영화 <8 미리>와는 조금 다르다. <8 미리>가 추리소설에 가까웠다면 <떼시스>는 공포소설에 더 가까운 느낌이다. 하지만 소재의 한계탓인지 미디어와 대중의 형체없는 폭력성과 자극적인 영상에 대한 수요는 우리 자신들로부터 기인한다는, 진부한 교훈적 결말을 남기고만다. 마지막 시퀀스 탓에 이 영화 <떼시스>는 여대생을 살해하고 스너프 필름을 찍은 범인들을 지목하는 것이 아니라 입수된 자료화면을 여과없이 방영하는 미디어와 그것을 탐닉하는 우리들에게 화살의 방향을 급선회한다. 따라서 이 영화를 흥미 위주의 컨텐츠에 점점 더 높은 자극을 기대하고, 다수의 시청자로서 방관과 관음에 무감각해진 시대에 우리가 살고있음을 지적하는 필름으로 읽는 것은 당연스러운 일이다. 그렇지만 주인공 안젤라가 그 마지막까지 도달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주인공 역시 그런 대중의 일면을 그대로 갖고 있음을 간파해낼 수 있다. <8 미리>에서의 탐정, 니콜라스 케이지와 <떼시스>에서의 안젤라의 차이이기도 하다.







호기심과 두려움. 두 가지는 이 영화 <떼시스>를 전반적으로 지배하는 딜레마이다. 안젤라는 바네사가 살해당하는 그 문제의 비디오를 체마에게 보여주기 전, 집에서 혼자 영상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아 소리만 들어본다. 이후 체마가 태연하게 비디오를 보며 놀라워하고 있을 때에도 안젤라는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며 차마 못볼것을 본듯한 괴로운 표정을 짓는다. 그러나 자신의 얼굴을 감싸쥔 손가락 사이로 보이는 그녀의 눈동자는 두려움만한 호기심을 함께 어린채 영상을 향해있다. (영화 포스터를 보라) 영상의 범인을 찾기위해 카메라에 주목하던 중 학교에서 보스코(에두아르도 노리에가)에게 의심을 품고 그에게 접근하는 것 역시 이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 그녀는 보스코를 살인자라고 잠정 결론 짓고 자신을 미행하는 그를 두려워하지만, 그러면서도 태연하고 섬뜩하게 그녀의 가정에까지 파고드는 보스코에게 알 수 없는 감정을 동시에 느낀다. 안젤라가 스너프 필름과 살인 용의자에게 느끼는 이런 패턴은 동일하다. 그녀는 두려워하고 달아나고 싶어하지만 동시에 매혹적 호기심을 느껴 발이 묶이는 것이다. 두려워하면서 동시에 호기심을 느끼는 것은 위험하지만 확실히 포기하기 어려운 유혹이다.








공포 영화나 유혈낭자한 소위 슬래셔 무비가 끝없이 제작되는 이유도 이와 멀지않다. 두려움과 잔인함. 그리고 상식적으로 혐오하고 거부감 느끼는 대상들을, "보는" 행위로서 쾌감을 느끼거나 스릴을 경험한다. 그러나 그것은 "보기만 하는" 행위일 때만 가능하다. 그 누구도 공포 영화속의 일이 현실에서 벌어지면 쾌감이나 스릴만을 느끼고 있진 못할 것이다. 우리와 영상 사이에 스크린이라는 안전장치가 있기 때문에, 다시말해서 비현실과 우리의 현실이라는 경계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안심하고 그것들을 '즐긴다'. 비현실은 비현실 속에 머무를 때에만 우리의 흥미를 자극할 수 있는 것이다. B급 추리영화같은 영화의 후반부를 지날때, 그래도 우리는 이 영화에서 인상적인 몇 장면들을 발견할 수 있다. 진범이 누구인지는 결정적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므로 이 글에서 범인 이야기는 하지않겠다. 진범이 누구인지에 대한 궁금함을, 영화는 흥미를 충분히 이끌어내고 능숙하게 다룬다. 영상 속의 폭력에 흥미를 갖고 자신의 논문 주제로까지 고른 안젤라는 정작 그 비현실적 스너프 필름의 진실을 현실로 꺼내기위해 한발한발 내딛을 때마다 호기심이 두려움으로 바뀌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정전된 지하 통로에서 체마가 안젤라를 안심시켜주기 위해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 대사 그대로 <디 아더스>에서의 어린 남매가 반복하기도 한다) 그런데 현실로 끌고나왔다고 생각한 비현실(스너프 필름)의 진실을 마주하는 순간, 안젤라는 바네사가 있었던 장소에서 바네사를 촬영한 그 카메라에 찍히고 있는 자기 자신과 만난다. 그리고 그녀가 마지막 진범을 응징했을 때 그 장면을 여전히 찍고 있던 카메라에 의해, 관객인 우리들 역시 스너프 필름과 다를 바 없는 살해 장면을 카메라를 통해 목격하고만다. 우리는 그렇게 누구든 영상 폭력의 소비자가, 행위자가 될 수 있다. 필름 속 폭력의 진실을 폭로하기 위한 추적의 마지막에서 안젤라는 처음 그 필름을 보았던 시청자에서 출연자로 위치를 바꾸고, 스너프 필름 속으로 들어가 주인공이 되었던 것이다.





* 대중의 폭력적 관음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 - 영드 블랙미러 시즌1 ep.1  (http://pequod.egloos.com/2836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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