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고, Fargo, 1996 Flims











헐리우드에서 유명한 형제 감독들을 떠올릴 때 토니 스콧과 리들리 스콧이 먼저 떠오르는 분도 있을 수 있고 지금은 남매가 된 워쇼스키들이 떠오를 수도 있을 것이다. 조엘 코엔과 에단 코엔, 코엔 형제의 관계는 앞서 언급한 형제들보다 오히려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과 각본가 조나단 놀란 형제에 가깝다. 연출과 각본에서 각자의 장기를 발휘하는 이들 형제의 시너지는 그간 그들만의 ‘코엔 형제 스타일’을 구축해왔다. 감독 베리 소넨필드를 자신들의 촬영감독으로 영화계에 입문시킨 것도 그들이었다. 그들의 출세작 <바톤 핑크>나 이 영화 <파고>, 그리고 비교적 최근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 이르기까지, 코엔 형제의 범죄 영화들은 대부분 인간의 추악한 탐욕과 욕망이 빗어낸 비극의 블랙코미디들이다. 그래서 나는 매번 그들의 영화를 보다보면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난처한 상황에 심심찮게 직면한다. 그리고 그것이 코엔 형제의 영화가 주는 가장 큰 매력이기도 하다.









미네소타 부근, 미국 노스다코다주에 있는 파고라는 새하얀 마을에서 펼쳐지는 이 이야기를, 코엔 형제는 능청스럽게 실화라고 우리를 속이며 영화를 시작한다. 영화 <파고>에서 배경이 되는 마을 파고는 낮은 인구 밀도, 드넓은 지평선, 끝없는 도로들의 이미지로 채워져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새하얗다. 마치 북유럽의 어느 도시처럼 눈에 덮혀있는 이 마을 파고는 코엔 형제가 자신들의 영화속에서 배경이 되는 지역을 고르는데 신중하다는 면의 또 하나의 근거다. <아리조나 유괴사건>에서의 아리조나, 그리고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텍사스와 궤를 같이하는 파고라는 지역은, 사람들이 빽빽하게 모여사는 도시라기보다는 범죄를 저지르고도 얼마든지 숨거나 달아날 수 있는 자연적 조건이 갖춰진 영화적 배경이다. 영화에는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장면이나 먼 지평선을 원경으로 바라보는 카메라가 자주 등장하는데, 그럴때마다 한폭의 동양화처럼 세상은 새하얀 눈에 덮혀있다. 어디든 숨을 수 있을 곳처럼 보이지만 눈이라는 곧 녹아내릴 존재가 잠시동안만 세상을 가려놓은, 소위 '눈 가리고 아웅'식의 풍경인 것이다. 바로 그런 곳에서 눈처럼 곧 녹아내릴 범죄가 시작된다.







제리(윌리엄 메이시)는 돈이 많지만 인색한 장인에게서 돈을 뜯어내기위해 자신의 아내를 청부 납치할 계획을 세운다. 자동차 판매를 하는 직장에서 그는 동료로부터 소개받은 두명의 범죄자, 칼(스티브 부세미)과 게이어(피터 스토메어)를 만나 아내를 납치해줄 것을 요구하고 차를 댓가로 준다. 이상한 콤비는 차와 돈을 얻고, 제리는 아내 몸값으로 장인에게 돈을 받아낼 생각을 하지만 이들이 아내를 납치해 달아나다 경찰을 포함한 무고한 3명을 도로위에서 살해하며 소동은 이제 누구도 손 쓸 틈없는 저멀리 far-go로 떠나게 된다. 일이 커진 칼은 제리에게 더 많은 돈을 요구하고, 감당할 수 없게된 제리는 궁지에 몰리며 설상가상으로 직접 돈을 들고 칼을 만나러간 장인의 돌발행동으로 칼은 제리의 장인마저 죽이고 거액의 돈을 눈앞에 두게된다. 이 영화에서 정상적인 등장인물을 찾는건 아주 어렵다. 아내를 사주 납치하려는 어리숙한 회사원 제리, 장인의 돈 가방에 욕심을 부리고 혼자 눈밭에 돈을 묻고 게이어에게 돌아가는 칼, 비이성적이고 충동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살인마 게이어, 사위의 아이디어를 훔쳐 자신의 사업으로 삼으려하는 인색한 장인까지. 영화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탐욕적이고 이기적이며 그에 눈 먼 광기마저 엿보일 정도다. 턱에 총을 맞고 피를 흘리면서도 돈가방을 혼자 독차지하기위해 눈밭에 파묻는 칼의 이미지는 탐욕의 절정이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고 사방이 모두 똑같은 눈덮힌 세상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에 당혹스러워한다. (비록 두번 다시 찾아오지 못하게 되지만.) 각자 자신들의 욕심으로 기인한 속사정을 안은채 서로 엇갈린 톱니바퀴들이 사건을 점점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끌고간다.







하지만 여기 영화에서 유일하게 정상적인 인물이 등장한다. 첫 영화를 함께 찍고 조엘 코엔과 결혼한 프랜시스 맥도맨드가 영화 <파고>에서도 출연했다. 그녀는 도로에서 칼과 게이어에 의해 희생된 3명의 살인사건을 맡은 경관 마지(프랜시스 맥도맨드)다. 소박하고 평범한, 그러나 사랑해마지않는 남편을 두고, 뱃속에 아기를 가진 임신 중의 그녀는 특유의 천진난만함으로 사건에 접근한다. 여러사람의 광기와 탐욕이 얽혀 빗어낸 이 사건과 대비될만큼 마지는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바르게 다가간다. 탐문수사를 하고, 용의자들을 만나고, 속이 타들어가는 제리 앞에서도 그녀는 기본적인 질문과 의심을 보인다.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새생명을 몸안에 품은 임산부가 인간들의 추악하고 지저분한 최종 결과물과도 같은 이 사건을 쫒는 것이다. 코엔 형제의 많은 엔딩들은 어딘가 해피엔딩같지 않은 석연찮은 부분들을 남긴다. 칼의 시체를 분쇄기에 갈아넣던 게이어에게 총을 겨누면서 마지는 인간의 비정상적인 한구석과 마주한다. 그리고 체포한 게이어와 차를 타고 오면서 이해할 수 없다는 말만을 반복한다. 세상에 돈보다 소중한것들이 있다고. 이런 좋은 날 사람을 죽여야했냐면서. 그녀가 하는 말들이 응당 당연하고 게이어를 비롯한 여러 인물들의 모습들이 오히려 비정상적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면서도, 이 영화를 지배하고 있는 '비정상'에 오래 노출 된 나머지 우리에겐 마지가 순수하고 맑은 영혼을 가진 특별한 인간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마지는 이런 충격적이다 못해 어처구니없기까지한 사건의 전말을 경험하고도, 집에 돌아와 남편의 품에 안겨 태어날 아이가 몇개월 남았는지를 이야기한다. 탐욕으로 얼마든지 변질될 수 있는 세상의 이런 단면을 막 목도하고 집에 온 그녀는 그래도 몇달뒤 또 하나의 순수한 새생명을 세상에 내놓아야하는 것이다. 우리가 쓴웃음으로 이 영화를 마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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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아루아루 2013/05/27 16:10 # 답글

    파고!
    저도 그나마 마지 경관 (정상적인 인간) 덕분에 봤습니당.
  • 레비 2013/05/27 16:24 #

    ㅋㅋ 전 처음봤을땐 마지도 그다지 정상적이라곤 생각을 못했습니당 ㅎㅎ 비정상속에 정상인이 하나 있으니 이질적으로 보이더라고요 :)
  • 소소 2013/05/27 20:51 # 답글

    마지 연기가 되게 좋아서 기억에 남았는데 감독의 부인이군요? 몰랐어요. 전형적인 중서부 특유의 얼뜨기스러움과 과도한 친절이 정말 잘 배어 나와서 보는 사람이 짜증날 정도로.. 그 지방의 억양 연기가 특히 탁월해서 보면서 아 왜 저렇게 말하는거야 진짜 짜증난다 실제로 저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때려주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ㅋㅋ많은 사람에게 비웃음거리가 되고 심지어 혐오받는 중서부의 과도한 가짜 친절함이 그 몇 년만에 만난 거짓말하는 이상한 친구를 만날 때 잘 드러나죠. 그 친구를 보러 밥까지 먹으러 가고, 헛소리도 다 들어주고..

    아마 영화 전체가 다 거짓은 아니고 각자 따로 일어난 납치강도사건과 시체를 갈아버린 사건;;은 실제로 있었던 일인걸로 알고
    있어요(정확하지는 않아요.. 그런데 일부분은 사실인건 확실)

    제게는 이 영화가 단순히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영화라기보다는 미국의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계급사회에 대한 비판으로 보여요.돈을 갖고 싶고 상류층이 되고 싶은 제리의 욕망이 마지가 수사하러 왔을 때 낙서장에 I love golf를 그리고 있는 장면에서 잘 드러나죠. 단순히 돈이 목적이라기보다는, 돈을 통한 계급상승과 상류층에 갈망이 제리를 움직이는 동인이예요. 이 영화는 평면적이고 단순한 개인간의 선악 갈등구조를 넘어서 더 큰 시스템에 대한 비판을 해요. 선을 추구하는 경찰관 마지와 물질에 눈이 멀어서 인륜을 저버리는 마지 외의 다른 인물들의 대비나 갈등구도를 넘어서 미국 자본주의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하는 것이죠. 마지는 아이를 임신했고 태교를 해야하는 상황에서도 폭력을 써야하고 잔인한 것을 볼 수밖에 없는 경찰관일을 계속하며 남편과 몸에는 안 좋지만 겂싼 햄버거를 먹죠. 그런 마지는 이 영화에 있는 다른 인물들보다도 훨씬 행복해보여요. 그렇지만그녀가 영화속 다른 인물들처럼 극단적으로 돈을 추구하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이 결국 그녀도 돈때문에 어느정도의 인륜을 포기하죠. 어찌보면 평범해 보이는 이 여타 미국인들의 일상과 다를 바가 없는 마지의 모습이 미국인들의 모습을 대표하죠.

    영화속에 제리, 그리고 두 일당이 뼛속부터 악인이고 마지는 선한 천사인 것은 아니라고 나와요. 제리와 두 일당 중 아무도 사람을 죽이려고 하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상황은 노스 다코타 파고에서 끊임없이 내리는 눈처럼, 흡사 그 눈덩이가 굴러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 것처럼 최악으로 치닫았죠. 그런 제리에게 마지는 너무나 옳아서, 그렇기 때문에 씨알도 먹히지 않을 훈계질을 해요. 그런데 세상이 그렇게 옳은 소리처럼만은 돌아가지 않죠. 그런 마지에게 개소리하고 있네, 라고 해주고 싶은 충동이 마구마구 들어요. 걔네가 상황이 안 좋아서 그렇게 극단적으로 치닫았지만, 너도 딱히 다르지는 않잖아? 너도 그들과 같은 햄버거를 먹는 미국인이지. 본 지 몇 달 되서 정확히는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아마 마지와 두 납치범이 하는 행동이 연속적으로 연결해서 보여주는 장면이 있었어요. 마지가 햄버거를 먹는 장면에서 그들도 햄버거를 넘어가는 장면으로 넘어간다던지, 티비를 보는 것에서 넘어간다던지..

    아마 코엔형제가 영화를 만들 때 염두에 둔 것이 미국의 상황이었을거라고 생각하기에 편의상 미국인이라고 위에 썼지만 단순히 미국인들만이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서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에 자유로운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남의 블로그와서 댓글로 이렇게 장황하게 씨부렸네요. 으아 비교적 최근에 본 영화라 갑자기 그때 생각했던 게 마구 기억나서><;;;
  • 레비 2013/05/28 14:04 #

    ㅋㅋ 다행히 제가 미국생활을 하진 않아서 중서부 특유의 얼뜨기스러움과 억양은 거슬리진 않을수 있었네요 ㅎㅎ 코엔형제의 영화들에 등장하는 코믹+심각 캐릭터의 대표격인것 같아요. 주인공 제리도 그렇고, 스티븐 부세미의 칼도 그렇고.. 어딘가 다들 어설프고 나사빠진듯한 연기들이었죠 ㅎㅎ

    음 맞아요. 이 영화자체가 그대로 실제 사건은 아니지만 각 개별적 사건들은 모티브가 된 실제 사건들이 있다고 들었네요 ! 물론 몸값사기를 위한 아내 납치나 연쇄살인 등등은 확실히 실제 있을법한 일들이긴해요..ㅎ

    마지가 돈과 물질에서 한발 떨어져있어서 행복해보이는 점도 그러네요 ! 말씀해주신 그 장면도 기억나요. 결국 같은 인간인데 상황이 사람을 만든다는 뜻이었을까요 :) 마지가 마지막에 돈이 그렇게 중요하냐고 살인까지해야할 정도였나며 공허한 훈계를 하지만 그것도 사실 크게 와닿지는 않죠..ㅎㅎ 정성어린 피드백 감사합니다 ! +_+
  • 시키시마 2013/05/28 04:40 # 답글

    뼈를 분쇄기에 부와아앙 갈면서 하얀 설원을 붉게 물들이던 범인의 모습은 정말...

    어릴적에 우연히 봤는데 너무 임팩트가 커서 기억에 오래 남더군요.
  • 레비 2013/05/28 14:05 #

    어릴적에 보셨더라면 충격적이었겠는걸요 ㅎㅎ
    살인하는 장면이 직접적이진않아도 꽤 적나라하게 표현되어있어서 움찔하는 장면들이 더러있었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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