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 오브 라이프, The Tree of Life, 2011 Flims










영화평론으로 퓰리처상까지 수상한 명실공히 세계 최고의 영화평론가인 로저 에버트가 지난달 4월 4일에 사망했다. 그는 세상을 뜨기 하루 전날에도 자신의 블로그에, 앞으로의 계획을 구상하는 등 마지막까지 영화를 보고 글로 남긴 평론가였다. 영국 영화협회(BFI)의 월간지 'Sight & Sound'는 1952년부터 무려 10년에 한번씩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화 10선'을 선정해왔다. 로저 에버트는 이에 응답하여 2002년, <시민 케인>과 <지옥의 묵시록>,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 <동경 이야기>등이 포함된 10편의 목록을 발표한 적이 있다. 10년 뒤, 'Sight & Sound'지가 2012년 다시 로저 에버트에게 물었을 때, 21세기가 시작한 이래 새로운 10년안에 과연 그가 생각하는 '역대'에 들어갈만한 영화가 하나라도 새로이 포함되었었을까 궁금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는 이미 2009년 말미, 2000년부터 2009년 사이 10년안에 발표된 영화들 중 10개의 리스트를 뽑은 적이 있었다. 그 목록에는 <허트 로커>, <주노>, <몬스터>등을 제치고 찰리 카프먼의 감독 데뷔작 <시네도키, 뉴욕>이 1위에 올라있었다. 그래서 그가 2012년 역대 영화 탑 10에 만약 새로운 21세기의 영화를 하나 더 추가한다면 그것은 당연히 <시네도키, 뉴욕>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2010년과 2012년 사이에 복병이 있었다. 테렌스 멜렉의 2011년 작 <트리 오브 라이프>와 <시네도키, 뉴욕>을 저울질하던 로저 에버트는 결국, 2002년 발표한 리스트에서 1988년 영화 <십계>를 빼고 그 자리에 <트리 오브 라이프>를 넣어 새로운 목록(*)을 발표했다. 이것이 그가 발표한 마지막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화 10선이 되었다. 나는 전지현씨 주연의 <블러드>에 별 4개 만점에 별 3개를 준, 로저 에버트의 모든 평가들을 절대적으로 신봉하진 않는다. 하지만 그 해 칸느 영화제 역시 최고상인 황금종려를 이 영화 <트리 오브 라이프>에 안겨주었다면 이 영화는 한번쯤 진지하게 생각해볼 가치가 있다.







두시간이 훌쩍 넘는 긴 상영시간은 '철학자' 테렌스 멜렉 감독에게 자신이 선호하는 방식, 느릿한 나레이션과 아름다운 영상들을 충분히 뿌려놓을 수 있는 시간이 되어주었다. 테렌스 멜렉에 대한 설명은 지난번 <씬 레드 라인>을 쓰면서도 충분히 길게 적어 놓았던것 같다. '아름다운 전쟁 영화' <씬 레드 라인>은 전쟁 속에서도 인간의 구원과 그들이 벌이는 행동의 가치를 끝없이 질문하는 영화였다. <트리 오브 라이프> 역시 같은 노선을 걷는다. 영화는 전쟁이라는 상황에 처해있지 않지만 가족 구성원을 잃은 한 가정은 어머니가, 아버지가, 그리고 중년이 된 형이 각자 끊임없이 질문한다. 주어가 불분명하고 모호하게 표현되어있지만 그것은 분명 신, 어떤 절대자를 찾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어디있는가? 왜 그랬는가? - 인간은 신을 끝없이 추궁한다. 아들을 잃은 어머니(제시카 차스테인)가 신을 원망하다 종국엔 그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물을 때, 테렌스 멜렉은 갑자기 우주의 시작으로 되돌아간다. 그리고 정말 우주의 역사를 무려 15분씩이나 할애해서 훑는다. 빅뱅, 태양, 지구, 생명, 심지어 공룡까지. 욥기로 시작한 영화가 진화론을 지지하는 듯 하는 모양새로 종교계의 비판을 받았다지만 내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바로 신이 어딨는지를 묻는, 아들을 잃고 원망하는 인간에게 그 대답으로서 우주가 걸어온 길을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우주의 역사속에 신은 코빼기도 보이지않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신비롭고 아름다운 영상을 보다보면 신이 어디에 있었는지, 어디에 머무르고 있었는지 느끼게 된다. 신이라는 존재는 구체적으로 형상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 영겁의 긴 시간속에서 단 한번도. 그런데 우주의 모습과 생명의 경이적인 모습들을 보고 있노라면(그것이 과학적이든 그렇지 않든간에, 테렌스 멜렉은 다큐멘터리가 아닌 아름다운 영상들을 보여준다.) 신을 믿고싶어지는 충동이 살짝 일기도 한다. 모든 것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있고 또 점점 그런 방향으로 우리가 나아가고 있으며, 일단 나 자신부터 종교를 갖고 있지 않지만 긴 시간과 우주적인 스케일 앞에 나는 고작 작은 미물이 되는 것을 느끼게된다. 나는 종교적인 의미의 '기적'을 믿진 않지만 마음 속 한구석으로는 '기적이라고 불러도 될 만한' 일들이 과연 이 세상에 없었을까 의문이다. 무생물인 우주의 물질들과 자연의 이치가 신이 개입한 기적들만으로 여기까지 왔다는 뉘앙스가 아니라, 여기까지 온 과정을 돌이켜보면 신이 있다한들 하등 이상하지 않겠다는 기분이 들고 마는 것이다. 한마리의 초식공룡이 나오는 장면에서, 강가에 힘없이 쓰려져있는 이 공룡에게 어느 육식공룡(으로 추정되는)이 접근한다. 당연히 살육의 장면이 이어질것이라고 짐작되는 그때 육식공룡은 초식공룡을 마치 '자비'롭게 살려둔채 다른 곳으로 떠난다. 이것은 우리의 상식적으로도 이해가 되지 않으며 자연의 이치에도 반하는 일일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일이 주변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순간 신의 존재를 어렴풋이 의심해보곤 한다. - 정말 신은 존재하는가? (혹은 없는가?) - 이상하게도 우린 신을 항상 느끼려고 하진 않는다. 우리의 일상이 온갖 기적과 놀라움으로 가득차 있지 않는한 신은 그렇게 잠깐잠깐 섬광처럼 우리의 마음을 흔든다.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기도가 우주의 역사로 치환되어 끝난 이후, 이들의 가족사를 보는 시선에는 세 아들들의 성장기와 엄격한 아버지(브래드 피트), 자애로운 어머니를 둔 한 집안의 모습에는 그대로 우주의 연장선이 보인다. 






어른이 된 잭(숀 팬)에겐 죽은 동생에 대한 기억보다 자신의 유년기의 기억의 무게가 더 커보인다. 성공하지 못했지만 자식들에게 지나치게 엄격하고 권위적이었던 아버지에게 반항하고 저항하던 기억들,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동경이 섞여있다. 아버지를 혐오하고 심지어 살인충동마저 느끼고, 동시에 어머니의 사랑을 받고 지키고자하는 잭의 어린 시절은 오이디푸스를 연상케한다. 동생이 살아있었을때, 이들 가족이 안고있는 문제는 아버지와 잭의 반목이었다. 이 반목은 아버지와 어머니로, 그리고 아버지와 가족 전체로 번져간다. 장교 출신의 아버지는 지나치게 엄격한 규율을 아들들에게 기대했지만 그는 성공을 하지 못한 콤플렉스를 아들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는 강박에 쌓인 불쌍한 가장이기도 하다. 결국 실직한 그로 인해 온가족이 함께 집을 떠나야할때, 이미 어린 잭은 많은 사건들을 경험하고 보고 느끼면서 닫힌 마음을 가진 어른이 되어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제서야 잭은 아버지와 포옹한다.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기도가 위안을 얻는 곳(영상)이 우주의 장구한 역사였다면, 이제 성장하고 성공한 아들 잭이 과거로부터 위안을 얻는 곳은 초현실적인-마치 천국이나 이상향을 떠올리게하는 아름다운 사막과 해변-공간으로 표현되어있다. 그 속에서 잭은 아버지와 어머니와 재회하고 어린 시절의 자기 자신, 그리고 이미 죽은 동생과도 조우한다. 비로소 그는 위안을 얻고 안도한다. 신이 우주를 건너와 언제나 우리의 곁에 있었다면, 현실의 잭이 그런 신을 찾을 수 있던 순간은 용서와 화해 그리고 가족애로 발현되었다. 테렌스 멜렉은 자연의 아름다운 정경을 인간 삶의 모습과 대비시키기를 즐겼지만 이 영화에서 잭이 일하는 공간인 건축설계 회사는 철저한 도시의 마천루이다. 그럼에도 테렌스 멜렉은 그 유리로 된 고층 인공물들을 아름답게 카메라에 담았다. 어릴적 삼형제들이 뛰놀던 정원과 나무와 들판의 녹색과 비교되는 도시의 색채는 중년이 된 잭의 변화한 모습 그대로이다.







영화가 지루하고 정신없다는 비난조의 평을 들은 이유는, 테렌스 멜렉이 구사하는 개별적 영상들은 아름다울지언정 그것들이 너무 산발적으로 흩뿌려져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영화는 어른이 된 잭의 회상과 반성,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기도, 사랑하는 자식들에 대한 애정의 잘못된 표현과 갈등하는 아버지의 모습등, 가지고 있는 층위들이 지나치게 중첩되어있다. 그래서 비교적 한가지 질문을 던지던 <씬 레드 라인>에 비해서 중구난방스럽다. 둘째 아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이나 부모가 겪는 그 극복의 과정 등이 생략되어있고, 아무리 영화가 회상과 점프샷을 넘나든다지만 편집되고 잘려진 부분에 의문을 갖게 할 만큼 내용이 부족해서는 잘 만들어진 영화라고 보기 어렵다. 나는 이 영화를 좋아하지만 이 영화가 비난받아온 부분에 대해서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물론 다양한 시선과 관점을 담고있기에 그만큼 다양한 해석을 즐길 수 있는 영화로서 가치가 있다면 이런 복합적인 서사나 불친절한 설명을 인정하고 넘어갈 수야 있겠지만, 이왕 사색하는 영화를 만들어온 테렌스 멜렉이라면 불필요한 질문의 숫자만을 늘리는 것보다 하나의 의미있는 질문을 심도있게 파고 들어가주는 영화를 기대하는 건 욕심일까.






* http://www.rogerebert.com/rogers-journal/the-greatest-films-of-all-time













덧글

  • 2013/05/20 12:46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5/20 20:10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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