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볼, Moneyball, 2011 Flims










영화 <머니볼>은 감독 베넷 밀러보다 각본가 아론 소킨의 이름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영화다. <어 퓨 굿맨>의 각본으로 화려하게 데뷔, 드라마 <웨스트 윙>으로 4년간 에미상을 비롯, TV 드라마 제작자로서 받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상을 거머쥐며 아론 소킨은 젊은 나이에 헐리우드 최고의 극작가 반열에 올랐다. 2010년 데이빗 핀처의 영화 <소셜 네트워크>의 각본으로 미국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 크리틱스 초이스를 포함한 그 해 각본/각색상들을 다시 쓸어모은 그는, 다음해 이 영화 <머니볼>의 각본을 맡으며 실제 있었던 일을 대중이 좋아하는 드라마로 둔갑시키는데능한 실력을 또 한번 선보였다. 그는 2013년 현재 시즌2를 준비 중인 드라마 <뉴스 룸>의 연출과 각본을 맡고 있다. <머니볼>은 <제리 맥과이어>도 아니지만 그렇다고해서 <슈팅 라이크 베컴>은 더더욱 아니다. 야구, 그것도 메이저리그 야구판을 무대로 삼았지만 스포츠에 중심축이 서 있지는 않다. 모티브가 된 실화가 실제 메이저리그 야구팀, 오클랜드 애슬래틱스와 선수 출신 단장 빌리 빈의 자전적 스토리에 기반하고 있고 그 팀의 놀라운 기록과 당시의 독특한 구단 운영이 중심이 되긴했지만 야구라는 스포츠가 주제가 되는 영화는 아니란 말이다. 이 영화는 기존의 주류에 역행하고 거슬러 올라가는, 또 그래야만했던 한 남자의 드라마다. 아카데미와 유난히 인연이 없는 브래드 피트가 오스카 남우주연상에 가장 가까이 근접했었던 영화 <머니볼>이다.







영화 <머니볼>에는 두가지 축이 있다. 하나는 오클랜드 애슬래틱스 팀에 찾아온 재정적, 인적 위기와 그 다음 시즌에 필연적으로 따라올 성적 부진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이다. 또 다른 하나는 오클랜드 팀의 단장이자 이 영화의 주인공 빌리(브래드 피트)의 자신의 과거사로 인해 안고있는 트라우마의 극복이다. 영화 전반적으로 전자가 주는 임팩트가 강해서 후자를 놓치거나 잊어버리기 쉽지만, 이 두가지 축은 모두 빌리를 중심으로 하나는 외적 과제, 다른 하나는 내적 과제로서 그를 기다리고 있다. 낮은 성적과 재정적 문제, 상대적으로 '부자 팀'에게 에이스 선수들을 빼앗기는 등 오클랜드의 암울한 다음 시즌을 예고하며 영화는 시작한다. 빌리는 아래로는 여전히 보수적인 스카우트 방식을 고수하려는 '늙은' 스카우트진과, 위로는 구단주의 성적부진에 대한 압력을 극복해야한다. 그 사이에서 다음 시즌을 준비하는 그에게는 아주 유효한 사이드 킥이 있다. 바로 피터(조나 힐)다. 선수를 사지 말고 승리를 사라는 그의 철학은, 에이스 선수 한명이 팀에게 제공하던 시즌 평균 출루율을, 그저그런 선수들 3명의 평균 출루율로 매꾸는 방식으로 단점을 최소화하고 가장 효율적으로 팀의 돈을 활용하는 법을 빌리에게 가르켜준다. 도루해서 아웃당하느니 1루를 지키고, 스트라이크 당하느니 볼넷을 유도하는등, 출루율에 기반해 철저히 이길수 있는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힐 수 있는 전략을 팀은 추구한다. 나이 많은 선수에게 팀 리더를 부탁하고, 1루 수비가 어려운 포수 출신 선수에게 믿음을 심어주고 용기를 줌으로서 그것을 가능케한다. 예일대 출신의 뚱뚱한 파트너와 함께 빌리는 스카우트진과 감독 아트(필립 세이모어 호프먼)의 불만을 잠재우고 팀을 재정비해 새 시즌을 준비한다.







그러나 빌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오클랜드 팀의 호성적만이 아니다. 그는 대학과 메이저리그의 사이에서 스카우터들의 말에 넘어가 메이저리거가 된 고졸 선수다. 그러나 어렸던 그에게 대학을 포기하면서까지 향했던 메이저리그는 기대 이하의 성적과 상처만을 남겼다. 더 시간을 들여 대학에서 실력을 검증받지 못하고 '고전적인 방법'인 고교출신 드래프트가 낳은 실수의 산 증인이 바로 빌리 본인이었던 것이다. 영화 <머니볼>에서 그가 기존의 패러다임에 역행하는 것, 직관을 통한 스카웃보다 철저히 집계되어온 통계와 수치를 바탕으로 선수를 기용하는 방식을 선뜻 받아들이고 반대하는 사람들에게도 밀어붙일 수 있었던 것은 본인의 트라우마와 피해의식이 어느정도 반영되었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물론 빌리에게 부자 팀들에게 대항할 방식으로 새로운 활로가 필요했던 것도 큰 이유였겠지만, 기존의 방식에 대한 반발심 역시 그의 고집을 가능케했던 동력이 되었으리라.







빌리는 안과 밖에서 모두 외로운 남자다. 그는 직접 전술을 이행해야하는 감독과도 의견 충돌을 빚는 단장이며, 심지어 선수들의 락커룸을 직접 들어가 세세한 경기 지시를 내리기도 한다. 선수들은 자신의 뜻대로 쉽사리 움직이지 않으며, 구단주는 저조한 성적을 걱정한다. 문제는 그의 안에도 있다. 그는 어린 딸 케이시(캐리스 도시)의 양육에 일정 책임이 있는 이혼남이다. 그의 전처 샤론(로빈 라이트)은 이미 새 남자와 함께 가정을 꾸렸고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간간히 케이시를 만나러 가는 것 뿐이지만, 오클랜드의 시즌 부진은 이 어린 딸에게 마저 아빠의 상황을 걱정시키게 만든다. 하지만 이 모든 내외적 압박보다 강한 것은 실패와 패배에 대한 빌리의 근본적 두려움이다. 그는 자신이 경기를 참관하면 팀이 진다는 웃지못할 징크스마저 갖고 있다. 누구보다 팀의 승리를 위해 애쓰는 그가 팀이 승리하는 모습은 늘 혼자 TV로 바라봐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래도 팀이 이길 수만 있다면 그러고도 충분한 남자다. 20연승의 대기록을 앞두고도 용기내어 경기장을 찾은 자신 때문에 팀이 동점위기까지 내몰렸다고 생각한 그는 혼자 구단으로 돌아와 소리도 나지 않는 TV를 본다. 마침내 승리의 순간, 그에게 하이파이브를 청하는 사람은 곁에 아무도 없지만 그래도 그는 기쁨에 차오르는 주먹을 움켜쥐는 것으로 자축을 대신한다. 야구 팀의 단장이 승리를 갈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의 유별난 패배 공포증은 그가 남들이 '성공'이라고 추켜세우는 성과를 내고도 단지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지 못했기 때문에 앞선 성과들을 모두 부정하고 위축되게 만든다. 자신이 친 공이 홈런인지도 모르고 늘 하던대로 1루에서 버둥거리는 것이다.






이 영화 <머니볼>이 얼마나 현실과 차이가 있고 영화가 왜곡한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조목조목 지적한 글을 과거에 읽은 적이 있다. 기록을 중요시하는 야구라는 스포츠를 사랑하는 그 작성자분의 마음이 읽는 이에게까지 전달되는 글이었지만 영화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실제 빌리 빈이 오클랜드를 어떻게 운영하고, 그의 방식이 어떤 면에서 메이저리그에 파장을 던졌는지를 영화가 과장했다고해서 이 영화가 큰 잘못을 저질렀다고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클랜드 애슬래틱스 팀의 성공기를 그린 영화가 아니니까. 감독이 자신의 뜻을 거스르자 빌리는 무리한 트레이드를 감행하며 감독이 자신의 뜻을 따를 수 밖에 없게끔 만들고자 한다. 그 순간만큼은 피터도 흔들리며 그를 만류하지만, 빌리는 그에게 확신이 있다면 남들에게 설명하려하지 말라며 밀어붙인다. 헤게모니에 역행하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첫 걸음은 본인 스스로를 확신시키는데부터 시작한다. 살다보면 물러서고 싶은 순간이 오기도 하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오기도하며 무엇보다 내가 지금 서 있는 길이 옳은지 회의감에 휩싸이는 순간이 오기도 한다. 그런 순간 나 자신을 잡아줄 수 있는 것은 옆에 있는 사람들이 아닌 나 자신이다. 자신을 가로막는 수많은 장애물 앞에서 빌리가 이 모든 것을 성취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믿고자 하는 것에 대한 믿음 하나만으로 버텨낸 덕이다. 그는 독단적이고 불친절한 독재자 스타일의 리더였을지도 모르고, 최소의 자본으로 최고의 효율을 내고자하는 이론을 영화가 그리고 있다지만 그와 그의 팀이 이뤄내는 드라마는 이런 '뚝심'을 지지하고 있다.







나는 야구를 잘 하는 편은 아니며 그저 할 줄 아는 정도다. 매년 관심있게 응원하는 프로야구 팀이 있고 야구를 충분히 재미있는 스포츠라고 생각한다. 브래트 피트는 이 영화에서 이렇게 말한다. 어떻게 야구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 "How can you not get romantic about baseball?" 딸이 불러준 Lenka 의 곡 'The Show'가 그 가사로 빌리의 트라우마를 씻어줄 때, 우리는 이 남자의 인생을, 이 영화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



늘 느끼는 것이지만, 이런 연출은 스포츠를 소재로 삼은 영화들만이 오직 누릴 수 있는 고유의 특권이 아닐런지.














덧글

  • 에이프릴 2013/05/13 18:20 # 답글

    머니볼은 저의 베스트 영화 중 하나에요. 야구라는 스포츠가 워낙 매력적이잖아요. 머니볼은 야구만을 말하는 영화를 아니지만, 야구의 매력적인 부분들을 가장 잘 보여준 영화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주변에서 다 좋다고 해도 이해 못했던 배우. 브래드피트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된 영화네요.
    극장에서 유튜브의 저 장면을 봤을때, 그 기분을 잊을 수가 없네요. 말씀하신 것처럼 스포츠 영화 아니라면 불가능한 장면이겠죠.
    하필 제가 넥센 팬이라 빌리빈 단장이 지금까지도 너무 강렬하네요. ㅎㅎ
    어찌나 글을 이리도 훌륭히 잘쓰시는지... 부럽습니다. 매번 리뷰 너무 잘 보고 있어요.
  • 레비 2013/05/14 17:20 #

    제 주위에도 <머니볼>을 자신의 베스트 영화로 꼽는 사람들이 제법 있더군요 :) 야구가 매력적일 수 있는 부분을, 그것도 야구 경기 그 자체에 두지 않고 한 팀이 한 시즌을 보내는 과정을 통해서 느낄 수 있게해준 것이 독특했어요. 보통의 스포츠 영화들은 경기 그 자체에서 오는 박진감이나 긴장감에 의존하기 쉬운데, <머니볼>은 구단의 운영과 팀이 밟아가는 과정으로도 충분히 그 재미를 보여준것 같아요. 저도 좋아하는 배우를 말할때 어디서 브래드 피트는 말해본 적이 없는데, 이상하게 그가 나오는 영화들은 실망한 적이 없어요. 브래드 피트가 영화 고르는 안목이 있는건지 ㅎㅎ 딱히 미운 구석 없는 배우랄까요 ㅎ 전 톰 크루즈는 왠지 호감이 안가는데 브래드 피트는 굉장히 좋아하는 배우라고 어디서 말은 못해도 스크린에 나오면 참 익숙하고 편해요 ㅎ

    넥센팬이시군요..!! 전 두산.. (..)이긴한데 확실히 빌리빈 단장하면 넥센이 떠오르긴하네요 ㅎㅎ 졸필임에도 칭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D
  • 2013/05/13 13:20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5/14 17:24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날다람 2013/05/13 14:44 # 답글

    봐도봐도 소름돋는 장면 *_*...!!! 올 봄에 저에게 위로와 용기를 준 영화에요. 잘 읽구 갑니다.
  • 레비 2013/05/14 17:25 #

    그러고보니 지난번에 만났을때 <머니볼> 얘기를 잠깐 했었죠 ㅎㅎ !! 스포츠 영화라서 가능한 전율인것 같아요 :)
  • YHJ 2013/11/19 03:25 # 삭제 답글

    정말 잘봤어요
    방금 머니볼 영화를 보고
    검색해서 이글을 보게 됐는데ㅡ
    전문가인줄 알았어요
    스포츠거나(야구) , 영화평론이거나 ^^

  • 레비 2013/11/20 17:42 #

    과찬입니다 :) 감사합니다 !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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