씬 레드 라인, The Thin Red Line, 1998 Flims












단 한편의 영화로 세상의 주목을 끌어모으거나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경우는 영화사에서 그리 드문일은 아니다. 배우든, 감독이든, 혹은 각본가이든 누구든간에 하나의 걸작이 다수의 범작보다 효과적인 사례는 많다. 하지만 감독 테렌스 멜렉만큼 기이한 경우는 흔치 않을 것이다. 하버드와 옥스퍼드에서 공부하고 MIT 철학 교수이기도한 이 1942년생 미국 감독은 단 두편의 영화로 거장의 칭호를 획득했다. <황무지>와 <천국의 나날들>. 각각 73년과 78년 이 두편의 데뷔작과 차기작으로 그는 비록 관객으로부터는 외면받았지만 영화계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여기엔 몇가지 자신만의 특유의 인장들을 새겨놓았다. 예를들면 시종일관 흐르는 나레이션이나 인간과 늘 병치되어 있는 자연의 아름다운 풍광들. 그러나 이후 그는 사라졌다. 대중기피증을 겪고 있다는 말도 있었다. 테렌스 멜릭은 그렇게 20년을 은둔했다. 단 두편의 영화로 깊은 인상을 남긴 뒤 홀연히 사라진 감독. 데뷔 이후 차기작을 내놓기에도 5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던 그가 무려 20년만에 세번째 영화를 들고 돌아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영화 <씬 레드 라인>은 헐리우드를 긴장시켰다.







나는 이 영화를 15년전, 중학교 1학년 때 즈음 비디오로 보았다. 같은 시기에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있었고, 그전에 <플래툰>과 <지옥의 묵시록>으로 전쟁 영화가 무엇인지를 배워가고 있을때 였다. 그런 내게 이 '사색하는 전쟁 영화'는 전쟁 영화가 아니었다. 캐릭터들은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았고 내러티브는 캐릭터 수 만큼이나 뚝뚝 끊겼다. 세시간에 달하는 플레잉 시간만큼 영화는 14살이던 내게 지루하게 다가왔다. 내가 <씬 레드 라인>을 다시 만난건 이후 10년여가 지나서, 테렌스 멜렉의 2011년 작 <트리 오브 라이프>를 보고 난 직후였다. 그제서야 내가 너무 어린 나이에 이르게도 이 영화를 만났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1998년, 헐리우드에는 2차 세계대전을 무대로 삼은 두 편의 전쟁 영화가 도착했다. 하나는 유럽의 노르망디에서 시작하고 또 한 편은 지구 반대편, 남태평양의 과달카날 섬이다. 전자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고 후자는 테렌스 멜렉의 <씬 레드 라인>이다. 이미 TV 시리즈 '밴드 오브 브라더스'로 2차 대전을 소재로 극을 꾸려온 유태인 출신의 감독 스필버그는, 전쟁의 직접적인 일면, 전쟁이라는 조직적 폭력의 첫인상부터 마지막까지를 사실적으로 담았다. 그래서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우리로하여금 전쟁을 똑바로 바라보게 만들고 그러할 것을 자꾸만 종용하는 영화다. 하지만 <씬 레드 라인>은 마치 의도하기라도 한 듯 반대의 입장을 취한다. 톰 행크스가 이끄는 미국군은 궤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으며 전장에 당도하지만, <씬 레드 라인>에서의 미국군은 일본군의 그림자도 구경하지 못한채 섬의 모래사장에 조용히 발을 내딛는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전쟁의 비인간성과 참상으로부터 우리가 눈을 돌리는 것을 가능한 허락하지 않으려했던 영화라면, <씬 레드 라인>은 전쟁으로부터 애써 우리가 눈을 돌렸을 때, 그 순간 우리의 시선이 닿아있는 그 지점을 그린 영화다. 그 지옥의 풍경에서 우리가 겨우겨우 눈을 돌렸을 때 우리가 무엇을 볼 수 있는지를.








영화 <씬 레드 라인>에는 테렌스 멜렉의 스타일과 인장들이 여전히 계속된다.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속삭이는 듯한 나레이션과, 전쟁이라는 인간군의 폭력과 대비되는 아름다운 자연 풍경들. 그리고 미칠듯한 정적과 혼란의 극심한 대비, 어떠한 상황도 관조하는 듯한 마치 신과 같은 제3자로서의 시선같은 것들 말이다. 존 트라볼타, 조지 클루니와 같은 네임벨류 배우들을 조연보다 더 비중이 적은 까메오 수준으로만 등장시키고, 테렌스 멜렉은 숀 펜, 닉 놀테, 존 쿠삭 같은 명배우들과 애드리언 브로디, 제임스 카비젤, 벤 채플린 같은 신인수준의 무명배우들을 적절히 섞어놓았다. 원래 6시간짜리 필름이었던 영화를 절반을 뚝 잘라 3시간짜리로 줄였지만 여전히 영화속 캐릭터들은 다양한 층위를 서로 형성하며 여러 충돌을 낳는다. 고지점령과 전공에 눈이 멀어 무리한 명령을 하달하기 바쁜 톨 중령(닉 놀테)과 자신의 병사들을 사지死地로 내몰기싫어 명령 거부하는 스타로스 대위(일라이어스 코티스)사이의 갈등은 전체를 위한 희생과 개인의 인간성의 충돌이다. 또한 전쟁이라는 상황에서도 고향에 두고온 아내를 일편단심 그리워하는 벤 일병(벤 채플린)이나, 이론만 갖고있는 잘못된 판단으로 부대원들을 위기에 빠뜨리는 가프 대위(존 쿠삭)등 영화에는 많은 갈등의 핀들이 뒤섞여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내가 생각하는 가장 큰 대조이자 핵심적으로 극을 이끌어가는 내러티브는 웰시 하사(숀 팬)와 위트 일병(짐 카비젤) 사이에 있다.







2008년, 신문지면 광고에 눈길이 가 구입한 이래 적어도 세번 이상 반복해서 읽은 책이 있다. 빌헬름 바이셰덜의 <철학의 에스프레소>라는 책이 그것이다. 서양철학사에서 유명한 철학자들의 일대기를 중심으로 그들의 사상들을 아주 핵심적으로, 그리고 입문서 수준으로 쉽게 풀어놓은, 가격이 아깝지않은 유익한 책이었다. 그 책의 첫머리에는 철학자에 대한 저자의 간결한 정의가 있었는데, 철학자란 발밑의 우물은 비록 보지못하고 빠지지만 그 안에서 우주를 올려다보고 질문하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영화 <씬 레드 라인>에서 위트 일병은 이 책이 말해준 철학자의 정의를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전장의 한가운데에 있지만 전쟁안에서 남태평양의 원주민들과 교감하려하고 아름다운 대자연을 느끼며 전쟁의 본질을 생각한다. 스필버그의 톰 행크스가 전쟁 속에서 동료애와 휴머니즘을 재발견하는 역할이었다면 테렌스 멜렉의 짐 카비젤은 그보다 한발 더 뒤로 물러서, 보다 거시적인 시각으로 전쟁이라는 동종간의 폭력을 관망한다. 여기엔 앞서 언급한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들이 힘을 실어준다. 영화는 중간중간 폭격직후 촘촘히 구멍뚫린 나뭇잎이나, 전장의 한복판에서 유탄을 맞고 죽어가는 아기 새, 긴장된 순간 고개를 드는 올빼미나, 총탄에 맞은 병사위 나뭇가지에 일렬로 매달려있는 박쥐떼 등 인간의 행위와 자연의 무심한 시선을 병치시킨다. 미군이 일본군으로부터 점령하려는 고지는 영화의 절반 너머까지 계속 그 배경이 되는데, 그 고지의 풍경은 마치 윈도우 기본 바탕화면에서 본 풍경처럼 고요하고 평화롭다. 산들바람은 잔디들을 훑고 지나가고 햇빝은 그들의 전장을 어루만져 떨어진다. 몇번의 전투씬이 오가도 자연의 평화로운 풍경은 바뀔 생각을 않는다. 첫 척후병 두명이 벙커의 위치를 향해 전진하다 총알 두 방에 쓰러지면, 그들의 시체는 마치 처음부터 그들이 그곳에 없었다는 듯이 키 높은 풀속으로 삼켜진다. 오직 그 위에서 피를 흘리는 인간들만을 어리석게 만들 정도로 자연은 인간들의 전쟁을 무심하게 그리고 한심하게 바라볼 뿐이다. 위트 일병은 인간은 모두 하나에서 시작한것이 아니었을까. 미군과 일본군 모두 서로가 서로를 정의라고 믿는 하나가 아니었을까로 출발해서 결국 자연의 품안에 있는 우리가 왜 싸우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으로까지 나아간다. 그는 생각하지만 현실의 전쟁은 뒤바뀌지 않는다. 이런 위트 일병이 이상주의자라면 숀팬이 연기한 웰시 하사는 현실주의자다. 그는 대의를 위한 자기 희생도, 명령에 복종하는 기계적 병사도 아닌, 오직 이 지옥에서 최대한 살아나가려는 원칙에 따라 움직인다. 그에게는 동료애나 희생정신보다는, 주어진 상황에서 가장 최선의 판단을 내리고 행동하는 사람이다. 목숨을 걸것을 강요하는 상부의 명령이나 부하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부조리는 그에겐 선택사항이 아니다. 그런 그가 위트 일병과 신의 존재를 두고 나누는 후반부 대화는 이 영화의 소리 없는 또 하나의 전투씬이다.









고지가 점령되고, 일본군의 진지로 파죽지세로 진격한 미국군의 점령과정에서 영화는 총성을 없애고 한스 짐머의 장엄하고 경건한 음악을 넣었다. 그리하여 고지점령의 피해측 미군의 얼굴뿐만 아니라 이제는 자신들이 포로가된 일본군들의 표정도 나란히 잡는다. 영화가 시작된지 한시간이 넘도록 제대로 얼굴 한번 보이지 않던 벙커속의 일본군들의 표정은 미군들의 표정과 다를바 아니다. 과달카날 전투에 실제 참전했던 제임스 존스의 소설을 각본삼아 만들어진 이 영화는 일본군을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의 독일군마냥 그저 얼굴없는 적군으로 치부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영화가 말하는 전쟁이란 인간이라는 자연의 특수종이 벌이는 부조리한 괴현상이기 때문이다. 가늘고 붉은 선이란 결국 정상과 비정상, 인간됨과 비인간성을 가르는 그 얇은 경계가 된다.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속에서 다양한 모습의 인간 군상들은 고작 그 얇은 선 하나 넘나듬의 차이를 갖고 있을 뿐이다. 영화 <씬 레드 라인>은 1999년 제49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곰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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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HAVETO 2013/05/02 20:37 # 답글

    5년 전인가 봤었는데 잘은 모르지만 상당히 인상깊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아름다운 자연과 추악한 전쟁 사이의 대비효과가 컸던 것 같네요.
  • 레비 2013/05/03 18:53 #

    전투장면 도중 뜬금없이 끼워져있는 자연의 모습들이 있기때문에 "우리가 지금 뭘하는거지"라는 자문을 가능케했던것 같습니다 :) 저도 처음봤을땐 극을 느리게만하는 나래이션 때문에 혼란스럽기만했어요 ㅎ
  • e21 2013/05/02 20:45 # 삭제 답글

    대학교때 봤던 씬 레드라인.

    최고의 영화였죠. 다시 다운 받아 봐야겠네요
  • 레비 2013/05/03 18:53 #

    대학생때 보셨군요 :) 전 대학생이되고나서 다시 보니 제가 너무 어렸을때 이 영화를 보았구나 싶었습니다 ㅎ
  • ㅇㅇ 2013/05/02 21:37 # 삭제 답글

    조지 클루니가 단역으로 나오는 영화
    출연진은 진짜 빠방했는데
  • 레비 2013/05/03 18:55 #

    조지 클루니의 이름도 저렇게 포스터에 있지만 정말 한두마디의 대사밖에없는 단역이었죠..!
  • 지나가는 저격수 2013/05/02 21:38 # 답글

    씬 레드라인

    격언에서 비롯된 제목이라죠.

    정상과 광기의 사이에는 가느다란 붉은선만이 존재한다.

    진짜 전쟁군상의 묘사가 살떨리는 작품입니다.
  • 레비 2013/05/03 18:57 #

    격언에서 나온 말이었군요.. 그건 몰랐네요 ㅎ 정말 정상과 비정상이 종이 한장 차이라고 말하고 있는 영화같아요. 전쟁에서 한발 물러서서 멀찍이 조망하고있는것 같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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