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역사를 가져오는 두가지 방식 : <작전명 발키리>,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Flims








영화가 역사를 가져오는 두 가지 방식



1994년, 각각 레스타트와 루이스라는 이름의 뱀파이어였던 톰 크루즈와 브래드 피트. 50대가 된 지금도 여전히 헐리우드에서 막강한 존재감을 뿜어내는 이 한살 차이 스타들은 서로 일년의 간격을 두고 같은 목적을 가진 작전을 수행한 적이 있다. 톰 크루즈는 브라이언 싱어의 영화 <작전명 발키리>에서 마지막 히틀러 암살 작전이었던 '발키리 작전'를 시도한 독일군 장교였고, 1년 뒤 브래드 피트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 <바스터즈 : 거친녀석들>에서 히틀러를 비롯한 나치 간부들을 죽이기위한 '키노 작전'을 이끄는 미국군 장교역을 맡았다. 주연 배우들 말고도 이 두 영화의 흥미로운 점은 감독들에게도 있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92년 <저수지의 개들>로 선댄스 영화제를 통해 혜성처럼 등장했고, 1년뒤 93년 선댄스 영화제에는 <퍼블릭 억세스>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스물네살의 브라이언 싱어가 나타났다. 94년 <펄프 픽션>의 칸느 황금종려상 수상으로 자신의 이름을 세계에 알린 타란티노를 뒤따르듯, 또 1년뒤 브라이언 싱어는 95년 <유주얼 서스펙트>로 칸느에 갔다. 2000년대에 들어서 타란티노가 두 편의 '킬빌'을 찍는 동안, 브라이언 싱어는 두 편의 '엑스맨'을 선보이며 각자의 장기로 길을 달리하는듯 하지만, 두 감독 모두 뛰어난 감독이기 이전에 데뷔작에선 각본가도 겸하며 시작을 알린, 스토리텔링 능력에 있어서 최고 수준을 달리는 감독들이라는 점에 이견을 달기 힘들다.


브라이언 싱어의 영화 <작전명 발키리>는 2차대전 중 여러번 시도되었던 실제 역사속의 히틀러 암살작전들 중 그 마지막 시도인 '발키리 작전'을 소재로 삼았다. 이는 적군인 연합군들의 시도가 아닌, 독일군 내부에서 시작된 반나치 세력에 의한 시도였다는 점에서 당시 독일을 안에서부터 전복시킬 수 있었던 작전이었다.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작전 이후 전황이 불리해지고 히틀러는 힘을 잃어갔다. 그리고 7월 20일, 이들은 만약을 대비한 수도방위 계획이었던 '발키리'작전을 역이용해 히틀러 암살 상황을 만들고, 발키리를 선포, 예비군을 동원해 나치 주요 인사들을 잡아들이려는 작전을 펼쳤다. 클라우스 폰 슈타펜버그 대령(톰 크루즈)이 히틀러가 참석한 작전 회의 벙커에서 폭탄을 이용해 암살하려는 것이 그 시작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모두 알다시피 히틀러는 살아남았고 작전은 실패했다. 작전의 실패에는 영화속에서든, 실제에서든 여러가지 요인들이 있었다. 이를테면 지도력과 결단력이 부족한 명령권자의 자질, 모든 것을 걸지 않으려는 기회주의자들의 불확실성, 작전 당일 위치가 바뀐 회의실이나 하필 그때 자리가 바뀐 폭탄가방 등 실제 단 한번이었던 이 거대한 작전은 아주 작은 불순물들이 섞임으로서 오차를 낳았다. 영화 <작전명 발키리>가 택한 것은 이러한 사실로서의 역사다. 우리는 모두 이들의 작전이 실패할 것임을 알고도 영화를 보면서도 그들의 작전을 응원하고 동참하게 된다. 그래서 영화는 이들이 결국 실패했다는 결과보다 그 과정에 더 초점을 맞추었다. 바로 히틀러 암살 작전이라는, 국가와 세계, 그리고 역사의 흐름을 바꿀지도 모른 시도를 위해 뭉친 사람들의 다양한 군상들이다. 예비군 사령관인 프롬(톰 윌킨슨)이나 히틀러 암살 시도 직후 외부와의 통신을 차단해준 통신장교 펠기펠(에디 이자드) 등은 신념과 처세 사이에서의 확신이 없던 자들이다. 물론 한명은 최후의 순간에 가담하고 한명은 외면한다. 루드비히 벡(테렌스 스탬프)을 필두로 한 '정치인'들은 작전 현장에 미숙하고 무지하지만 결정권은 자신들에게 있기 바랬고, 프리드리히(빌 나이)의 부족한 결단력과 대범하지 못한 판단력은 이 작전 실패의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결국 직접 암살 시도를 수행한 슈타펜버그 대령의 용기와 의지는 그 누구보다 뛰어났지만, 그와 함께한 사람들의 개개인의 이유와 성향들로 인해 결국 이 작전은 인재人災가 되어 끝났다. <작전명 발키리>는 히틀러와 같은 역사의 전범을 성공적 암살이 아닌, 실패한 암살을 그림으로서 히틀러를 응징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 영화가 된다. 뜻있는 자들의 뜻있는 시도도 결국 어긋나고마는 예측불가한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기위해 역사에서 '실패한' 사실을 거꾸로 가져온 것이다. 그래서 나치 단죄와 히틀러 응징은 사실 이 영화가 하고싶은 말이 아니다. 영화 <작전명 발키리>는 그들이 실패했고 왜 실패했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한다. 영화는 철저히 사실을 따른다.


영화는 창작 예술이다. 뛰어난 문학이나 연극등을 2차로 가공하여 영화화 되는 경우도 많지만 그렇게 생각한다면 현실에서 정말 벌어졌던 역사적 사실을 각본으로 바꾸고 그것을 다시 스크린에 연출하는 방식 역시 하나의 각색이 될 것이다. 영화는 늘 이 순간 선택을 해야한다. 실제했던 역사를 극적으로 얼마나 바꾸고 또 얼마나 따를 것인지를. 역사의 재현을 통해 현대의 관객들은 그것을 시각적으로 한 번 더 간접 경험하고, 영화가 제시해놓은 방향성을 가진 연출 의도에 정신을 맡긴채 메세지를 전달받는다. 그리하여 모든 영화가 그렇지만 역사를 가져온 영화 역시 객관적일 수는 없다. 그런 사실이 있었다는 것은 단 하나의 fact 이지만 그것을 얼마나 사실적으로 재현한다한들 영화는 연출자와 각본가의 의도가 섞여들어간 fiction일 수 밖에 없다. 그것에 따르거나 지지하거나 저항하거나 반발하거나하는 것은 관객과 평단의 몫이다. 그런면에서 <작전명 발키리>는 건조한 시선을 가진 영화다. 우리로 하여금 희망 섞인 반전을 기대하게 만들지만 우리들의 바람과는 달리 작전은 역사 그대로 실패하고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다. 관객들을 역사의 한 장면의 관찰자로 방치해둠으로서 영화는 자신이 하고싶은 말을 대신하는 방법을 택했다.


하지만 영화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는 허구적 역사를 마음대로 써내려간다. 타란티노가 시대극을 맡았다고해서 그가 역사적 사실을 따를것이라고 기대한 사람들을 완벽하게 외면하듯이 그는 영화의 시작 1부 부터 자신이 하고싶은대로 하기로 마음먹은 모양이다. 'Once upon a time in Nazi-occupied France' 이라는 1부의 제목은, 사용된 음악과 함께 1968년 영화 <옛날 옛적 서부에서(Once upon a time in the west)>의 감독 세르지오 레오네에 대한 오마주로 쓰였다. 지리적으로 유럽의 중심부에 있는 국가, 오스트리아 출신의 배우 크리스토프 왈츠는 이 오프닝에서 독일어와 프랑스어를 능숙하게 오간다. 실제로 그는 영어와 이탈리아어까지 구사 가능한, 타란티노가 언어적 유희와 오해를 주된 모티브로 삼은 이 영화에 반드시 필요한 배우였다. (한스 린다 역에 원래 디카프리오가 낙점되었다가 크리스토프 왈츠로 바뀐 가장 큰 이유다. 디카프리오와 브래드 피트의 만남도 흥미로웠겠지만 크리스토프 왈츠의 한스 린다를 과연 디카프리오가 할 수 있었을까.) 이후 2부부터 등장하는 '바스터즈' 팀. 브래드 피트가 연기한 왈도 중위를 비롯, 배우보단 호러 영화 감독으로 더 유명한 일라이 로스가 맡은 도니 병장 등의 그들은 나치 치하의 프랑스에서 독일군들을 사살하고 포로를 남기지 않는 일종의 게릴라들이다. 그리고 3부, 실제 유태인 조부를 둔 프랑스 배우 멜라니 로랑이, 한스 린다에 의해 가족을 잃고 성장한 극장 주인 쇼산나 역으로 등장한다. 그녀에게 푹 빠진 독일군 영웅 프레드릭 졸러(다니엘 브륄)의 간청으로 쇼산나(멜라니 로랑)의 극장에서 독일영화 상영회가 열리고 이에 히틀러를 비롯한 나치 수뇌부들이 모두 모이는 '기회'가 마련된다. 쇼산나는 극장을 불태워 이들을 척결할 계획을 세우고, 동시에 연합군은 스파이인 독일 유명 여배우 하머스마크(다이앤 크루거)의 인도와 바스터즈들의 협동으로 '키노 작전'을 세워 역시 히틀러 암살 계획을 세운다. 몇번의 우발적 실수와 사고가 있었지만 쇼산나의 계획은 절반의 성공을, 그리고 키노 작전 역시 절반의 성공을 거두고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바뀐다.


<작전명 발키리>가 이미 다 알고있는 실패의 이야기를 한번 더 써내려감으로서 '결과'보다 '과정'의 이야기를 알려주고자 한다면,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는 소위 '대놓고' 역사 비껴간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를 가상적 대체역사에 대한 영화라기보단 '영화와 문화'에 대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가장 어이없었던 것은 '키노 작전'을 이끌기위해 파견된 영국군 장교 아치 히콕스(마이클 패스벤더)다. (작전 이름부터 '키노'다!) 그가 작전에 차출된 이유는 전쟁 전, 독일 영화 평론가라는 직업을 갖고 해당 분야에 전문적 지식을 갖고 있어서였다. 나는 이것이 이 영화를 통틀어 가장 재밌는 유머 코드였다고 생각한다. 타란티노 감독이 소위 배운 '평론가'들에게 어떤 감정을 갖고있는지는 내막을 모르지만 독일군 영화 상영회를 급습하기 위한 작전의 책임자로 군인으로서의 역량이 아닌, 독일 영화 평론가를 고용하는 것은 분명한 개그다. 심지어 그를 파견하기전에 그가 갖고있는 독일영화적 지식을 인터뷰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독일에서 내통하는 스파이는 독일 최고의 여배우이다. 이 '잘 나가는' 여배우는 영화 평론가에게 붙어 그를 자국의 '영화관'으로 안내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런데 이 평론가는 '사소한 문화적 차이' 인해 정체가 탄로나고, 작전은 난관에 봉착하며, 이 '영화 평론가'는 극장 문에도 도달하기 전에 죽는다. 정리하자면, 영국인 독일영화 평론가가 독일 유명 여배우와 내통하며 독일 영화 상영관까지 도달하려하지만 숫자를 세는 손가락 모양이라는 엉뚱한, 그러나 분명한 습관적 문화 차이 때문에 저지당하고 영화관에 들어서지도 못한채 죽고마는 것이다. 타란티노 감독이 자신의 취향과 독특한 컬러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매도하는 평론가들에게 보내는 메세지가 아닐까. 잘 알다시피 타란티노는 전문 코스를 밟아 감독으로 성공한 케이스가 아니다. 하지만 영화 속 아치 히콕스는 번듯한 제복을 입고 나타나 스카치를 마시고, 독일군 병사들의 짖궃은 게임에도 억지로 웃어보이며 참여하는 척하며 자신의 이상한 억양이 지적당하자 도리어 당황하고 결국 마지막엔 총을 빼드는 캐릭터이다. 그래서 실패할뻔한 키노 작전을 성공시키는 것은 빼입은 영화평론가가 아니라 전형적인 타란티노식 캐릭터인 왈도 중위와 그의 '바스터즈'들이다. 내 생각에, 이 영화에서 나치 응징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히틀러는 어차피 그렇게 죽지않았고, 나치를 (마치 가스실의 유태인 학살과 같은 모양새로) 한번 더 학살하면서 어떤 대리만족이나 희열을 관객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달려온 영화도 아니라는 것이다. 타란티노가 태생적으로 만들고 싶은대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면, 시시콜콜한 역사적 사실보단 그는 자신이 하고싶은 말을 보란듯이 평단과 관객들에게 행하였을 것이다. 마치 극중 쇼산나가 절정의 순간, 스크린에 커다랗게 등장해 나치에게 선포했듯이 말이다.











덧글

  • 행강 2015/02/11 00:55 # 삭제 답글

    개인적으로 두 편의 영화를 보고 나서 비슷한 시점의 사건들을 서로 다르게 전개시키는 방식에 대해 흥미롭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시시콜콜하게 비교하면서 써주시니까 더 보기가 좋네요.

    영화를 보고 메모장에 리뷰를 적어서 컴퓨터에 모아두는데, 친구한테 이제 리뷰가 300개 되어 간다고 자랑을 하니까 친구가 저처럼 공대 출신에 영화 리뷰 쓰는 분 블로그가 있다고 해서 와보게 됐어요. 리뷰들 읽어보는데 글들을 너무 잘 쓰셔서 그간 제 리뷰들에 조금 반성이 드네요ㅋㅋㅋ 앞으로도 자주 와서 구경하고 갈게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레비 2015/02/14 03:11 #

    반갑습니다 :) 공대 출신에 영화리뷰 쓰는 블로거라니 ㅋㅋ 신선한 소개네요 :) 친구분께서 이미 절 잘 알고계신가봅니다 ㅎㅎㅎ

    리뷰가 300개나 되다니 꾸준히 영화를 보시고, 쓰시는 분이신가보네요 :) ㅎ 저도 행강님의 글을 읽어보고싶어요. 칭찬 감사합니다 :) 자주 놀러오세요 !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이 이글루를 링크한 사람 (화이트)

375

통계 위젯 (화이트)

1723
181
916927

웹폰트 (나눔고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