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디 에어, Up In The Air, 2009 Flims









영화 <인 디 에어>는 다소 뻔한 결론을 이끌어내기 위해, 전혀 뻔하지 않은 이야기를 가져와 그 위에 따듯한 감성을 써내려간다. 감독 제이슨 라이트만의 전작들 중, 앨런 페이지 주연의 <주노>가 있다는 것은 이런 영화의 스타일에 한층 더 신뢰를 실어준다. 청소년 임신이라는, 아주 무거워지거나 아니면 그저 코믹하기만 할 뻔한 두 가지의 식상한 노선을 모두 비껴가면서 뛰어난 각본과 잔잔한 대사들로 따듯한 영화를 만들어냈던 감독은 <인 디 에어>에서도 그런 그의 방식을 유지해나간다.









주인공 라이언 빙햄(조지 클루니)은 해고 전문가이다. 부하직원들을 그렇게나 잘 자른다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미국 전역을 돌며 전문적으로 회사의 직원 해고를 대신해주는 ‘해고 에이전시’ 소속의 베테랑 사원이다. 정말 실재하는지 나를 궁금하게 할 정도로 이 해고 전문회사는 조직적이다. 그 안에서도 라이언은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을 거리낌 없이, 그리고 능숙하고, 치밀하고 교묘하게 해고를 통보하고 그들이 받아들일 수 있게 유도하는 일을 하고 있다. 누군가의 책상을 치우게만드는 그는 아이러니하게 본인의 책상 역시 없다. 물론 오마하에 있는 본사에 본인의 자리가 있지만, 1년 중 300일 넘게 출장을 다녀야하는 그가 진정 ‘자기 자리’라고 생각하는 곳은 공항과 비행기 기내석이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정착하는 삶과 결혼과 가정을 갖는다는 것에 부정적인 가치관을 세워두게 되고, 그는 그저 미국에서 일곱 번째 천만 항공사 마일리지를 쌓는 것에 의미를 두는 중년 남자가 되었다. 미워할 수 없는,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를 언급하는데 심심찮게 등장해온 그 미소를 지으면서 동시에 자신의 말에 반대하는 사람들로부터 매번 능구렁이같이 빠져나가는 라이언의 연기는, 조지 클루니를 대신할 다른 배우가 쉬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다. 그래서 이 영화 속 조지 클루니는 공항을 집으로 삼고 있는 <터미널>의 톰 행크스보단, <어바웃 어 보이>의 휴 그랜트를 더 닮아있다.








주인공 라이언을 중심으로 영화엔 두 가지 얼개가 흐른다. 하나는 해고전문가라는 직업적으로 보여지는 라이언의 외면적 이야기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결혼은 기피하면서, 마치 늘 여행을 다니는 듯한 출장 생활로 낯선 곳에서 그만큼 쉽게 여자들을 만나고, 즐기고, 또 쉽게 헤어지는 라이언의 내면적 생활모습이다. 즉, 누군가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의 일자리를 박탈하는 것을 매일 반복하면서, 라이언은 자신의 일자리를 유지해나갈 뿐 더러 오히려 남부럽지 않은 삶까지 살고 있다. 미국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쌓은 마일리지나 혜택, 자신의 가치를 높여 줄 등급 등에 특히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출장이 일상인 자신의 일자리에 대한 여흥이자 즐거움이다. (<파이트 클럽>의 에드워드 노튼이 들으면 화낼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돌한 신입사원 나탈리(안나 켄드릭)가 출장을 다니지 않고도 인터넷으로 해고를 대신하는 시스템을 가져왔을 때 라이언은 위기를 느꼈다. 하지만 그런 나탈리에게 ‘진짜 실상’을 보여주겠다고 그의 출장길에 연수라는 명목으로 나탈리와 동행하게 되면서 사람을 얼굴을 맞대지 않고 해고하는 것이 갖는 비인간적 차이를 그녀에게 보여준다.









그런데 이렇게 라이언의 재치와 언변에 끌려가며 영화를 보다보면, 우리들조차 라이언의 철학에 동화되어버릴 수 있다. 중간중간 삽입된 라이언의 강의 장면, ‘당신의 배낭에 무엇이 들어있습니까’라는 주제의 강연은 그런 라이언의 생각에 설득력을 더욱 부여해준다. 그 강의의 주제는 이렇다.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물질적인 것, 집안의 가구들을 비롯한 집 전체를 배낭에 넣으면 그것을 짊어지고 한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식으로 공항 캐리어 하나만 가볍게 들고 다니는 자기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변호한다. 그리고 두 번째 주제는, 배낭에 인간관계를 넣어보라는 것이다. 그것은 물질적인 것보다 더 무겁게 당신의 어깨를 짓누른다고 한다. 라이언은 이렇게 또한번 자신의 결혼기피 입장과 인간관계에 무게를 두지 않는 삶의 방식을 다시한번 우리에게 변호한다. 여기까지 들으면 라이언의 삶이 이해가 되어버린다. 누군가를 해고해가면서, 누군가의 삶을 빼앗는 그 잔인한 통보를 해가면서 자신은 삶을 이어가는 라이언이 물질적인 것(정착한 가정과 소유한 집)과 인간관계(진지한 연인관계나 결혼)로부터 해방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가 과연 옳을까.







영화 <인 디 에어>가 영리한 영화인 까닭은 이런 서로 무관해 보이는 주제 - 해고전문가라는 직업이 주는 비인간성이나 인간적 고뇌와, 파경 위기인 여동생의 결혼식을 본인의 설득으로 극복하면서 겪는 심경 변화를 - 라이언 스스로의 작은 변화로 점차적으로 서서히 엮어간다는 점이다. 라이언이 겪는 이 두 가지 변화에는 각각 두 여자가 촉매로 등장한다. 전자는 앞서 말한 나탈리, 후자는 라이언이 출장길에 만난 자신과 비슷한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여성 알렉스(베라 파미가)이다. 남자친구를 따라와 이 해고전문회사에 입사했다는 나탈리는 여러모로 라이언의 눈에는 자신을 절대 이해해줄 수 없는, 인터넷으로 사람을 해고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철없는 어린 아이였다. 하지만 이런 나탈리에게 실상을 직접 경험시키면서 라이언은 자신이 직업적으로만, 그저 하나의 비지니스라고만 생각한 이런 일이 누군가에겐 목숨이 달린 잔인한 일이었음을 자각한다. 그리고 여동생과의 결혼을 망설이는 예비신랑을 어쩔 수 없이 설득하는 이 결혼기피자의 말은 곧 라이언 자기 스스로를 향한 설득이 된다. 인생을 누군가와 함께 늙어가고 함께 하는 것에 대한 의미를 말함으로서, 라이언은 알렉스와의 관계를 진전시킬 생각을 한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강연, ‘가볍게 배낭을 비우고’ 다니라는 그 강연을 끝마치지 못하는 것이다.









영화는 마지막에, 라이언이 앞서 영화에서 해고한 자들의 후일담 같은 인터뷰를 삽입하면서 라이언이 각각 별개라고 생각했던 두 가지, ‘실직은 재출발의 기회’라는 것과 ‘가족과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직접적으로 묶는 시도를 한다. 그래서 라이언의 마지막 공항씬은 유난히 쓸쓸해 보이는 것이다.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천만 마일리지를 달성하고도 고향이 어디냐는 비행기 기장의 물음에 눈물 그렁그렁한 눈으로 “Here.”라고 답하는 그의 직업이나 생활 모습은 영화 처음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이미 바뀌어있다. 영화 <인 디 에어>는 코믹하고 재치 있는 입담으로 우리의 마음을 가볍게 유지시키면서도 캐릭터를 크게 바꾸지 않은 채 우리의 시선을 뒤집는 재주를 부린다. 배낭을 비우고 다니는 것이 가벼워서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세상의 모든 라이언들에게, 그 공허한 빈 배낭의 무게는 오히려 가득 찬 배낭보다 무겁다는 것을 영화는 역설하고 있다. 소중한 인간관계는 우리의 어깨에 얹은 짐일 뿐이 아니라는 것을.



















덧글

  • 닥슈나이더 2013/04/15 23:24 # 답글

    개봉했을때 보고 싶었는데 못본 영화군요..ㅠㅠ;;
  • 레비 2013/04/16 22:36 #

    이거 꽤 재미있는 영화였습니다 :) 여주인공도 매우 인상적이었구요 ㅎㅎ 잔잔하면서도 임팩트있는 영화였어요.
  • deepthroat 2013/04/16 00:44 # 답글

    극장 개봉 할때, 중앙극장 문닫기 마지막으로 본 영화인데... 참 좋았습니다. 씁쓸하고.. 조지클루니는 간지 폭발하고..
  • 레비 2013/04/16 22:37 #

    중앙극장 마지막 영화로 보셨다니 더 기억에 남으시겠네요 ..! 저도 참 좋아하는 스타일의 영화였습니다. 따듯함 속에 왠지 마냥 웃을수만은 없는 씁쓸함도 있고... 조지 클루니가 나온 영화들을 많이 챙겨보는 편은 아니지만 어쩌다 보게되더라도 늘 멋지더군요 ㅎㅎ
  • 날다람 2013/04/16 15:13 # 답글

    영화로 찾아 본게 아니라 'up in the air'란 숙어를 찾다가 알게 된 영화였어요. 이런식으로 찾아본 영화는 처음이라 기억나네요. ㅋㅋ 근데 조지클루니가 나와... 'ㅂ'

    제목이랑 연관지어 대체 뭘가 생각하다보니 정말 제목처럼 아직까지 뭘 말하고 싶었는지 모호하게 남아있는 영화였어요.
    직역하면 일년의 대부분을 air에서 있는 라이언을 나타내주기도 하고
    의역의미(uncertain; not yet decided)으로 끼워맞추다 보면 마지막에 한 방 얻어맞는 라이언, 엔딩 크레딧에 나오는 직접 노래를 만들었다는 해고당한 실직자의 상태, 마지막에 가선 정착할 곳을 잃은 라이언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구요.

    제일 적절한건 영화보고나서 제 머릿속 상태인거 같네요. 하여간 보고나서 이래저래 복잡한 생각이 뒤엉켜버린 영화였어요. 한 참 뒤에 다시 본다면 그땐 이 영화가 무슨 얘길 하려는지 알거 같기도 하네요.
  • 레비 2013/04/16 22:40 #

    한글제목은 '인디에어' 였는데 원제는 명확히 'Up in the Air' 더라고요 ㅎㅎ 조지 클루니는 이 영화에서 옷에 잘 맞는 수트를 입은 것처럼 아주 잘 어울립니다. 감독이 처음부터 조지 클루니가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으로 기획하기 시작했다고하네요.

    말그대로 허공에 붕 뜬. 라이언이 해고시킨 수많은 실직자들을 연상시키기도하지만 정작 마지막에 붕 뜬건 라이언이었죠. 그래서 마지막에 허망한 표정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천만 마일리지를 달성하고도, 결국 air 에 자리하고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한 회의감도 있었겠구요.

    여러가지 층위가 조금 섞여있어서, 언제쯤 이것들이 하나로 엮여질지 고민하면서 보게되었어요. 다행히 감독이 이런 방면으로 연출해본 전적이 있어서그런지 영화가 중구난방이 되진 않았습니다 :)
  • chokey 2013/04/17 00:17 # 답글

    고향이 Here라고 대답할때의 라이언을 볼때의 감정. 그것이 이 영화의 감정인 것 같아요. 영화자체에 대한 기대보다 OST가 좋아서 보게 된 영화인데 크게 한방 먹었었죠!!
  • 레비 2013/04/17 01:47 #

    영화 OST는 미처 관심있게 듣질 못했는데 chokey님 덧글을 읽고다니 다시 들어보고싶어졌어요 ! 저도 기장의 질문에 눈물 그렁그렁한 눈으로 here.라고 답할때의 라이언의 모습이 가장 큰 변화기점이자 잔잔한 클라이막스였다고 생각합니다 :)
  • eun 2013/04/17 19:07 # 삭제 답글

    (영화리뷰와 관계없을지도 모르지만) 포스터가 예쁘네요! 세련된 깔끔함이 빛나요. 저는 우리나라 배급사들이 엉뚱한데 포인트 맞춰 포스터 못생기게 바꿔놓는게 그렇게 싫더라구요.. ㅎㅎ
  • 레비 2013/04/17 23:07 #

    간만이에요 eun님 :) 그런데 저것도 북미버전이고요 ㅠ 국내 버전은 살짝 다르답니다. 찾아보시면 아시겠지만 조금 깔끔함이 사라졌어요 ㅠ 실루엣처럼 그림자로만 보이는 저 세 등장인물들의 포즈? 가 나름 의미가 있는데, 한국판에선 그걸 무시해놨죠 ㅠ
  • a 2014/08/17 16:28 # 삭제 답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여러모로 생각 많이 하게하는 영화네요.저도 이 영화를 보기 전 까지는 라이언과 같은 삶을 꿈꿧는데 요즘은 좀 생각이 복잡해지네요ㅎㅎ; 리뷰가 좋습니다!
  • 레비 2014/08/17 23:06 #

    칭찬 감사합니다 :) 라이언의 삶이 화려해보이고 좀 더 유혹적이긴하지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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