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터 앤드 커맨더, Master And Commander: The Far Side Of The World, 2003 Flims









요즘, 아니 최근 몇년 사이에 출판업계에선 소위 자기계발서들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인상적인 책 제목들이 순식간에 식상해질 정도로, 일시적일줄로만 알았던 자기계발서 열풍이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는다. 하지만 난 '시건방지게' 그런 부류의 책들을 경시하고 무시하는 버릇이 있는데, 사실 제대로 읽지도 않고 무시하는건 내 잘못이 맞다. 다만 난 아직 내가 세상에 못 읽어본 문학들이 너무 많은데 같은 시간을 들인다면 그 편이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서점에서 우후죽순처럼 쌓여있는 자기계발서의 제목들을 훑어 지나가다보면 몇가지 반복되는 키워드들이 있다. 그중 내가 지금 말하고 싶은 것은 꾸준히 그쪽 분야의 책들이 말해온 '리더십'이란 단어다. 리더십에는 여러가지 정의가 따르겠지만 대체적으로 집단과 그 집단의 구성원들을 '이끄는' 능력이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조직과 집단의 사회생활에서, 리더십이라는 덕목은 개인의 능력 중 꽤 중요한 요구사항이자 무기로 그 가치가 점점 더해지면 더해졌지 얕잡아 볼만한 능력이 아니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리더들을 보고, 또 그들의 리더십을 느껴본다. 훌륭한 리더십을 마주하기도하고 부족한 리더를 만나보기도 한다. 그리고 또 어느때는 스스로 리더십을 요구받기도 한다. 현대 사회에서 리더십이 갖는 위상은 무시할만한 것이 결코 아니다. 뛰어난 한명의 리더십은 단체와 조직의 운명을 바꾼다.










영화 <마스터 앤드 커맨더 : 위대한 정복자>(이하 <마스터 앤드 커맨더>) 는 해양 액션 어드밴처도 아니고 해양 전쟁 영화도 아니다. 다시말해서, 범선이 등장하고, 바다와, 폭풍과, 대포와, 럼주가 등장하지만 '캐리비안 해적'은 아니라는 말이다. 나는 이 영화의 성격을 알아보는 첫걸음을 감독에서부터 시작했으면 한다. 러셀 크로우가 주연으로 등장하지만 감독이 리들리 스콧이 아니라는 말은, 이 영화가 역사속 전투를 배경으로 한 서사극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자신이 만든 영화들의 명성에 비해서 이상하리만큼 이름이 널리 알려져있지 않은 피터 위어 감독은, 호주가 배출한 가장 성공한 감독 중 하나다. 70년대부터 영화를 만들어왔지만 그는 결코 다작하는 감독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인상적인 굵직한 몇 편을 남겼는데, 대표적으로 <죽은 시인의 사회>와 <트루먼 쇼>가 있다. 1998년 작품 <트루먼 쇼>의 차기작이 다름아닌 이 2003년 작 <마스터 앤드 커맨더>이다. 피터 워어 영화들의 성격을 돌아봤을때, 그가 나폴레옹 유럽 시대의 영국 군함을 배경으로 가졌다고해서 이것이 전쟁 영화로 바로 읽히진 않으리라는 짐작이 가능하다. 이것은 리더십에 대한 영화다. 










<마스터 앤드 커맨더>는 바다 위에서 시작해서 마지막 장면까지 바다 위에서 끝난다. 시대적 배경은 나폴레옹의 프랑스가 유럽을 정복해가고 있을때. 영국 해군이 프랑스 해군과 맞서 싸우는 그 유명한 넬슨 제독의 시대이기도 하다. 하지만 영화는 지중해나 유럽이 아닌, 남미 브라질 동해를 배경으로 진행된다. 영화의 부제 그대로 Far side of the world에서 펼쳐지는 것이다. 영화의 부제인 'The Far Side Of The World'는 다름아닌 원작 소설의 제목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2000년 타계한 영국작가 패트릭 오브라이언의 일생의 역작, "The Aubrey–Maturin series(오브리-매튜린 시리즈)" 중 제 10부에 해당하는 92년 출간작이 바로 'The Far Side Of The World' 이다. 이 시리즈는 오브라이언 사후 발간된 마지막 'The Final Unfinished Voyage of Jack Aubrey(2004)' 까지 총 21부로 되어있지만, 황금가지에서 번역출판한 한국어판은 제3부까지만 나와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내가 군복무 중 부대 도서관에 비치되어있어 그중 1부를 읽어본 적이 있다. 영국 해군장교 잭 오브리 선장과 그의 친구이자 박물학자이자 선의(船醫)인 스티븐 매튜린가 주인공이기 때문에 '오브리-매튜린'시리즈라고 부른다. 원작이 된 텍스트의 제목이 그래서이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나는 이 Far Side of the World라는 부제가 이 영화의 배경을 미리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전쟁중인 유럽이지만 영화가 펼쳐지는 곳은 엉뚱한 남미의 바다다. 따라서 이 영화에는 국가간의 암투나 역사적 사실성 등 거시적인 설정은 배제되어 있다. 영화는 시대적 배경은 최소한만을 갖춘 채, 함장 잭 오브리(러셀 크로우)가 이끄는 영국 범선 '서프라이즈 호'와, 남미의 바다에서 만난 서로를 침몰시켜야하는 적수 프랑스 군함 '아케론 호', 단 두척의 배만을 앞세운다. 심지어 아케론 호의 시점으로 그려지는 컷은 전혀 없다. 영화는 오직 서프라이즈 호에서만 바라봐지기 때문에 자칫 상대적으로 가려진 '아케론 호'는 흡사 '나쁜 프랑스'으로 보이기 십상이었지만, 이 영화에서 국가적, 역사적 감정은 의도적으로 절제되어 있다. 영화는 늑장을 부리듯 조급해하지 않는다. 일부러 세상의 far side까지 와서 이 영화가 그리는 것은 역사적 전투가 아니라, 상대하기 힘든 적수를 만난 한 범선 안에서 펼쳐지는 조직과 규율과 시스템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시스템의 중심에는 함장 잭의 리더십이 있다. (하지만 국내 개봉에는 '위대한 정복자'라는, 영화의 내용과 세상의 끝만큼 거리가 먼 부제가 달리고 말았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존경받던 로마 장군 막시무스의 얼굴이 언뜻언뜻 겹쳐보이는 함장 잭은(그리고 이젠 <레미제라블>에서의 자베르의 모습도 함께 보이는), 구식의 작은 전함 '서프라이즈'호를 이끌고 있지만 어려서부터 그 배에서 경험을 쌓아온, 배와 신뢰로 묶여있는 노련한 함장이다. 그가 신뢰하고 있는 것에은 자신의 배 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선원들, 장교들도 포함되어 있다. 그는 말단의 선원들의 이름을 친근하게 부르기도 하고, 위험한 날엔 야간 보초를 직접 서기도 하며, 칭찬이 필요한 선원에겐 포상을, 규율을 어긴 자에겐 벌을 줄줄 아는 리더다. 사실 영화속 잭의 리더십은 거의 흠잡을데조차 없어 너무 완벽해 보이기까지 할 정도다. 요나의 저주라는, 뱃사람들 사이에서의 흔히 '왕따'를 당하고 선원들과 친해지지 못해 괴로워하는 어린 사관생도(midshipman) 홀롬(리 잉글리비)에게 잭은, 친해질 필요없다며 "그들이 기대하는 것은 리더십과 정신력이고 그것을 찾으면 존경받게 될 것"이라고 말해준다. 존경심이 없으면 규율도 없다는 말을 덧붙이며. 이 대사는 부하 선원들이 '행운의 잭 Lucky Jack'이라고까지 불르며 절대적 신뢰를 보내는 함장이 어떻게 그런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는지를 단적으로 설명해준다. 조직이 그저 자비롭고 친근한 리더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존경할만한 리더를 원한다는 것. 잭 오브리는 '아케론 호'에 비해 객관적으로 전력 열세인 자신의 배를 이끌고 끝까지 임무를 완수하고자 한다. 부하 장교나 참모들이 무모한 짓이라고 말리지만 그는 자신의 굳은 신념을 유머와 재치를 곁들여 설득하고 관철시킨다. 잭에게 선원들이 따르는 모습은, 지나친 고집이나 명령으로 쌓아올려진 권위가 아닌 그의 실력에 대한 믿음으로 보상받은 존경심이다. 자신들보다 월등하게 강한 적함을 '유령선'이라고 부르며 두려워하지만 전투의 순간, 매번 부하들은 잭의 명령에 반항 한번 없이 따르고, 배를 위해 바다에 빠진 선원을 버려야하는 상황에서 직접 도끼를 들고 그 일을 행하는 선장의 판단을 믿어주는 것이다.










물론 그가 완벽무결한 캐릭터처럼 보인다해서 그에게 고충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선원들이 '요나'의 저주를 말할 때, 함장인 그는 그것이 비과학적이라고 한심해하는 친구인 학자 스티븐 매튜린(폴 베타니)의 말을 따르기보다 같은 뱃사람으로서 그것을 이해한다. 갈라파고스 섬에 배가 도착하여 모두 배의 좌현에 서서 섬의 신기한 동물들을 구경하고 있을때 카메라는 혼자 우현에 서서 반대쪽 바다를 주시하고 있는 잭을 연속적으로 비춘다. 휴식과 재충전의 이유로 섬에 당도했지만 그들과 함께 쉴 수 없는 것이 또한 리더다. 배의 장교들과의 저녁 만찬자리에서 넬슨 장군과의 에피소드로 농담을 던지기도 하고, 자신을 수행하느라 서있는 일등항해사에게 술을 권하기도하며, 전투후 부상당한 선원들, 배의 침수를 막느라 배의 가장 아랫층에서 분전한 선원 하나하나를 이름을 불러가며 격려하고 치하한다. 배라는 이 공간은 그대로 하나의 조직 시스템이 되고, 그 시스템의 정점에 서있는 함장이라는 이름의 리더는 보이지않는 막강한 적을 상대하는 긴장감 속에서 조직을 이끌어나간다. 그가 뛰어난 항해술로 늘 쫒기던 '아케론'의 꼬리를 되려 잡았을 때, 선원들이 Lucky Jack을 부르며 만세삼창하는 장면은 짜릿하기까지 하다.










'서프라이즈 호'의 의사이자 잭의 친구인 매튜린과의 충돌이 그의 리더로서의 결단에 몇안되는 걸림돌이 될뻔했지만 그런 학자인 친구가 이해하지 못하는 군인으로서의 사명감과 의무를, 잭은 친구 사이의 우정과 배려와 잘 균형을 맞추는 센스있는 모습마저 보여준다. 친구의 총상이, 명령의 수행에 지나치게 따르던 자신 내면의 변화를 가져오긴했지만 영화의 마지막 작은 반전을 통해 '아무리그래도 잭은 결국 군인'이라는 작은 실소까지 나오게 만든다. 뛰어나고 위험한 적수를 만나긴했지만 위대한 리더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조직을 통솔하고 컨트롤이 가능하다. 그리고 그런 리더에게 신뢰를 보내고 믿어주며 따르는 조직은 승리를 획득하게되는 것이다. 피해가 곧 목숨과 직결되는 군대이기 때문에 명령과 규율이 응당 필수적이지만, 또 그런 상황이기 때문에 리더의 자질은 그곳에서 더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전쟁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뛰어난 리더가 꼭 전생시에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바다 위 배라는 제한된 영화 속 공간이, 그 속에서의 위계질서나 관계도를 조밀하게 그려주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바다 한가운데의 서프라이즈 호'보다 훨씬 넓은 사회이다. 게다가 살아가면서 잭 오브리 같은 리더를 꼭 만나야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들 자신에게도 잭 오브리 같은 리더십이 필요한 순간들이 있을 수 있다. 리더십은, 꼭 다수 구성원으로 된 조직을 특정 목표에 도달시켜야 하는 상황에서만 필요한 능력이 아니다. 넓게보자면, 그것은 복잡한 인간관계의 그물 속을 매일 헤치며 살아가야하는 우리들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요구되는 능력이기도 하다. 영화 <마스터 앤드 커맨더>는 위대한 리더와 그런 자질이 어떻게해서 가능해지고 어떤 메커니즘으로 실현되는지를 보여주는 영화다. 이런 영화가, 제대로 된 전투씬이 겨우 하나 나오는 지루하고 루즈한 두 시간짜리 전쟁 영화라고 이리저리 혹평받는 것이 안타까워서 이 글을 쓴다.












덧글

  • deepthroat 2013/04/09 09:08 # 답글

    정말 재밌게 본 영화고, 극장에서 꼭 보고 싶었는데, 프로도와 친구들 때문에 포풍 내려가서 휴가 나와서 눈물을 흘렸더랬죠...
  • 레비 2013/04/09 18:16 #

    저도 참 재미있게 보았어요. 이후로 몇번 더 볼 기회가 있었는데.. 영화관에선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반지의 제왕>이 개봉했었군요?; 허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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