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멀 피어, Primal Fear, 1996 Flims








좋아하는 배우의 데뷔를 다시금 지켜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이미 노련하거나 혹은 뛰어난 배우가 되었지만 그 배우의 첫 인상은 어땠을까 하는 호기심. 일반적인 경우 대부분은 극단에서, 혹은 무명의 조연 시절들을 보냈기에 그들의 데뷔작을 찾아본다한들 실망하기 쉽지만 가끔은 어렸을 때부터 떡잎을 자랑했던 재능이었을 수도 있다. 그런 경우 그들의 데뷔작을 다시 보는 것은 어떤 특별한 느낌을 준다. 그 스타가 나탈리 포트만이라면 <레옹>의 마틸다를, 제이미 벨이라면 <빌리 엘리어트>가 되겠다. 하지만 제이미 벨은 9살, 나탈리 포트만이 13세의 데뷔였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27세의 나이는 다소 늦깍이 데뷔라 불릴만할지도 모른다.


27살의 예일대학교 역사학과 졸업생이었던 그의 이름은 에드워드 노튼이다. 비록 연기 경력은 어느 극단의 배우로서 쌓아가고 있었지만 그의 이 스크린 데뷔는 주연이었던 명배우 리차드 기어의 존재감에 못지 않으며, 이 데뷔작 한번으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에 노미네이트되는 기염까지 보인다. 영화 <프라이멀 피어>는 에드워드 노튼의 그런 '시작'을 보는 즐거움이 베어있는 영화다. 2000여명의 오디션 경쟁을 통과한 그는(그 2000명 중에는 맷 데이먼도 있었다고 한다) <프라이멀 피어>에서 말더듬이 연기를 보이며 인상적으로 데뷔했다. 이 영화에서 그가 보여준 '순하게 생긴 나약한 소년이지만 재능과 명석한 두뇌를 숨기고 있는' 캐릭터는 이후 그의 영화들에도 종종 모습을 보였다. 연기였는지, 그의 실제 말투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때문에 나는 이후 에드워드 노튼의 영화들을 보면 그가 유난히 말을 '웅얼거린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다. <프라이멀 피어>에서 보여준 반사회적 이중인격자는 아마도 <파이트 클럽>의 그의 모습으로 계승된 것이 아닐까. 데이빗 핀처 감독은 <파이트 클럽>에서 노튼을 캐스팅하며 <프라이멀 피어>를 의식하지 않았을리 없다고 난 믿는다.



영화는 결말부 반전을 포함하고 있고, 해당 포스팅은 이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실 예정이시라면 이 글을 더 읽지 않으시기를 권합니다.










2002년 롭 마샬의 뮤지컬 영화 <시카고>를 기억하는 분들이라면 이 영화에서의 리차드 기어는 마치 데자뷰와도 같을 것이다. 아카데미 작품상까지 받은 그 영화에서 리차드 기어는 시카고의 유능한, 그러나 명성에 눈이 먼 변호사 빌리를 연기했었다. 그런데 그는 그보다 6년 앞서 이 영화 <프라이멀 피어>에서도 똑같은 역할을 연기했다. 심지어 이 영화의 배경도 '시카고'다. 변호사 마틴 베일(리차드 기어)는 악질적 범죄자라하더라도 자신의 뛰어난 능력와 변호로 명성을 얻기를 더 즐기는 도시 최고의 변호사다. 죄를 받아 마땅한 범인들의 유무죄 여부보다는, 자신의 능력을 내세워 검찰과의 대결을 더 흥미로워하는 이 패기로운 변호사는 그 자체로 시연방 검사측의 눈엣가시다. 시카고의 존경받는 주교가 잔인하게 살해당하면서 영화는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용의자로 체포된 소년은 19살의 애론 스템플러(에드워드 노튼). 고아로 자란 이 소년은 주교가 거두어 기른 아이들 중 하나였다. 증거는 명백하고 알리바이도 빈약한 소년의 무력한 항명을 지켜본 베일은 그의 감방으로 찾아가 무보수로 변호를 자청한다. 그리고 검찰측에서는 반드시 소년에게 죄를 묻기위해 실력있는 여검사 베너블(로라 린니)을 검사로 선임한다. 동료시절 안좋은 기억을 갖고 있는 베일과 베너블의 신경전 속에서, 한명은 자신의 변호사로서의 실력을 또 한번 입증하기위한 이슈로 사건을 바라보고 다른 한명은 정의 실현이라는 점에서 이 사건을 반드시 유죄 입증시키려 한다. 증거들은 검찰측에 유리하게 전개되고 베일을 점점 더 머리를 싸매지만 애론의 정신 이상적 발작이 드러나면서 사건은 전환을 맞이한다.









상대와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며, 말을 더듬는 어리숙한 소년 애론은 자신에게 무죄 판결을 받아주기 위해 노력하는 베일을 앞에두고도 답답한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일관하는 그의 정신 감정을 하던 도중 그에게 숨겨진 또 다른 인격이 있었고, 결국 그 또 다른 인격이 주교를 살해한 것으로 베일은 변호하려 계획을 세운다. 베너블이 몰아붙이는 명백한 증거들 때문에 정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베일은 애론을 자극하면 튀어나오는 이중인격을 유발하기 위해 베너블이 직접 애론을 법정에서 자극하도록 유도시키고 결국 애론은 폭발하고 만다. 그렇게해서 애론은 정신이상 증세 덕분에 감형을 받는데 성공한다. 베일은 또 한번 자신의 변호인을 구했다. 그러나 영화에 남겨진 반전은 애론에게 있었다.







시종일관 법정 스릴러처럼 흐르던 영화가 품고있던 마지막 반전은 이중인격이라고 모두를 믿게 만든 애론의 또 다른 모습이 사실 처음부터 애론이 만든 거짓된 연기였다는 것이다. 어리숙한 애론이 연기된 모습이었고 주교를 살해한 공격적인 인격이 진짜 그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의뢰인들을 그저 자신의 명성을 위한 도구로 생각해온 자신감 가득했던 베일에게, 애론은 마지막 한방을 먹인 셈이었다. 그것도 베일의 능력에 기대어 무죄를 받아낸 뒤에 말이다. 이 영화는 이렇게 제법 괜찮은, 예상치못한 반전을 품고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하필 바로 1년전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유주얼 서스펙트>가 세상에 공개되었던 우연 때문에 이 영화의 반전을 예상 가능하게 만들어버렸다. 반전 영화의 클래식으로 손꼽히는 영화의 뒤를 이어 나온 반전 영화라니 참 운도 없었다. <프라이멀 피어>에서의 반전은 다소 <유주얼 서스펙트>와 닮아있어서 더욱 그랬다.









하지만 이 영화가 단순히 관객의 뒤통수만을 치기 위해 달려온 영화라면 나는 실망하고 말았을 것이다. 영화를 보고나서 생각하게 만드는 점은 베일이 마지막에 애론에게 얻어맞은 그 한방에 있다. 제목 <프라이멀 피어>를 의역하자면 '원초적 공포'가 어울리지 않을까. 여기에서 말하는 fear는 horror라기보단 panic에 더 가깝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보여준 리차드 기어의 표정을 떠올려보자면 말이다. 자신은 성선설을 믿는다는 변호사 베일에게 애론이 보여준 마지막 반전은 자신의 믿음을 뿌리째 흔들리게 만들만한 충격이었을 것이다. 자신이 이 바닥 최고라는, 그래서 처음부터 애론은 무력하고 억울하게 잡혀온 의뢰인이고 자신이 멋지게 이를 해결해야한다는 착각에 빠진 이 변호사는 '뛰는 놈위의 나는 놈'을 만난 꼴이다. 그리하여 자신의 능력과 변호로 정작 진범(애론)을 풀어주게 되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변호사 베일이나 검사 베너블, 그리고 정신 감정을 맡았던 애링턴 박사(프란시스 맥도맨드)등 애론 주변의 모든 사람들, 그리고 관객인 우리들마저 그의 어리숙함과 초라함에 현혹되어 그가 진범인지 아닌지보단 증거와 법정 정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더 관심을 가졌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애론을 둘러싼 법정 공방에서 정작 애론의 목소리는 가장 작거나 무시당한다. 변호사는 자신의 명성을 위해, 그리고 판결을 유리하게 이끌기위해 불법을 감행하면서까지 증거를 모으고(주교의 포르노 비디오 입수 등) 검사 역시 정황상 애론을 범인이라고 단정지은채 베일을 누르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을 뿐, 사건의 핵심인 애론의 본모습에 대해선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애론의 존재감은 약해지고, 그를 중심으로 벌어진 사건이지만 소년 주위의 사람들은 다들 자신들의 목적만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움직였다. 주교의 비리가 드러나고, 정치 권력과의 관계들도 드러나면서 점점 더 이 소년은 중심에서 밀려났다. 용의자 애론을 일종의 도구로 생각하여 무보수로 자진해서 변호에 임해 결국 자신만의 승리를 만끽하게된 베일이, 진실을 알아버리고 마지막에 짓는 허망한 표정에 동정심까지 일어날 정도다. 그래서 애론의 마지막 반전은 정작 보아야할 것들을 잃어버린 모든 이들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한 일격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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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細流 2013/04/05 21:05 # 답글

    아, 저도 이 영화 정말 재밌게 봤었어요. 에드워드 노튼의 연기도 아주 인상적이었구요. 살인 장면에 흐르던 라크리모사와 리처드 기어가 찾아갔던 바에서 나오던 둘체 폰테스의 노래도 참 기억에 남아요. 오랜만에 다시 보고 싶어지네요.^^
  • 레비 2013/04/06 20:01 #

    추천받아서 본 영화인데 저도 만족스러웠어요 ! 노튼의 데뷔작이라는 말에 냉큼 봤죠 ㅎㅎ 역시 연기는 그때부터 대단했더라고요. 이중인격자 연기가 아무래도 조금 '잘해보일' 여지가 있긴하지만 그래도 경력과 나이를 감안하면 굉장한거죠 :) 전 오히려 로라 린니의 캐릭터가 조금 겉도는 것 같아서 아쉬웠어요 ㅎ
  • 닥슈나이더 2013/04/08 12:07 # 답글

    이게 에드워드 노튼의 데뷰작이었군요...

    그건건 모르고 봤.....

    이게 개봉했을때는 현역으로 열심히 영화를 보던때인데도...

    이건 왠지 비디오로 봤.......
    (물론 비디오 였어봐야.. 96년 아니면 97년 이겠지만...)

    그러나 유즈얼 서스펙트는 95년도에 명동 코리아 극장에서 봤었는데 말이죠.....
  • 레비 2013/04/08 14:11 #

    ㅎㅎ 저도 사실 영화 제목만 알아두고 볼 생각은 안하고 있다가 에드워드 노튼의 데뷔작이라는 소리를 듣고 바로 찾아보았죠 :) 보통 유명 배우들의 데뷔작은 단역/거의 비중없는 조연인데다가 임팩트도 없는데, 이건 꽤 괜찮은 데뷔작이 아닌가 싶어요.

    와 유주얼 서스펙트를 영화관에서 보셨다니..! 부러운데요? ㅠ 95년도면 제가 영화관이라는데를 아직 태어나서 한번도 안가봤을 나이였네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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