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드 마운틴, Cold Mountain , 2003 Flims










故 안소니 밍겔라 감독의 영화 <콜드 마운틴>은 내게 두 가지로 기억되는 영화다. 하나는 밍겔라 감독의 대표작이라고 손꼽히는 <잉글리쉬 페이션트>보다 더 좋아하게된 나만의 밍겔라 감독 최고의 작품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남성 배우와 가장 좋아하는 여성 배우를 한 영화속에서 함께 볼 수 있는 단 3편 중 한 작품이라는 (순전히 개인적인 사심이 가득 깃든) 의미이다. 주드 로와 나탈리 포트만은 영화 <클로저>보다 1년 앞서 이 영화에 함께 출연했기 때문이다. (나머지 하나는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이다.) 







영화 <콜드 마운틴>은 개봉연도가 2003년이라는 것을 감안하고, 게다가 인디 영화 배급사로 유명한 '미라맥스'의 타이틀로 시작하는 영화라는 점을 상기시켜볼 때, 굉장히 쟁쟁한 캐스팅을 거느리고 있다. 두 남녀 주인공은 주드 로와 니콜 키드먼. 거기에 악명과 명성을 둘 다 가지고 있는 미라맥스사의 거물 제작자 하비 웨인스타인의 이름과, 그가 데려온 르네 젤위거(하비는 이후 르네 젤위거를 <시카고>에도 출연'시켰고', 르네는 결국 <콜드 마운틴>과 <시카고> 두 영화로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다.)가 조연으로 커다란 존재감을 뽐낸다. 르네 젤위거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필립 세이모어 호프먼, 나탈리 포트만, 지오바니 리비시, 도날드 서덜랜드 등 왠만한 영화의 주연급 배우들이 조연으로 잠깐씩 등장할 정도로 영화는 막강한 배우들을 포진시켰다. 심지어 킬리언 머피마저 이름도 없는 단역으로 잠깐 등장했다가 사라져 날 놀라게 했다. 영화를 보실 분들은 한번 찾아보시길. (이 영화의 감독 안소니 밍겔라와 제작자 시드니 폴락은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해인 2008년 각각 수술후 출혈과다와 암으로 사망했다.)








영화는 남북전쟁 당시 미국의 어느 시골마을 '콜드 마운틴'을 배경으로 갖지만 사실 영화에서 전쟁은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영화의 첫 장면 압도적인 폭파씬과, (대사에 인용되었듯이) '지옥 같은' 전투 풍경은 그때가 전부이다. 남북 전쟁이고 주인공 인만(주드 로)는 북군을 양키라 부르는 남군이지만 그가 어느 진영에 속해있는지는 사실 중요치 않다. 심지어 이 영화엔 흑인 노예조차 제대로 등장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영화는 전쟁 영화와는 거리가 한참 멀다. 하지만 영화를 내내 지배하는 것은 그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이다. 전쟁의 참상을 그린 영화라고하기엔 수식이 미약하지만 전쟁이 이 모든 것을 초래한 원인으로 받아들이면 적당할 것이다. 남군 병사 인만은 고향인 콜드 마운틴에 사랑하는 여인 아이다(니콜 키드먼)을 잊지 못하고 그리움을 견디지 못한다. 그는 목에 총상을 입고 죽을 위기를 넘기지만 소리치지 못하게 되고 결국 탈영을 감행, 고향으로 향하는 긴 여정에 오른다. 이후 영화는 전쟁의 참상보다는 전쟁이 갈라놓은 두 남녀의 거리를 좁히는 과정이 된다. 인만이 긴 고행의 길을 걸어오고 있을 때, 콜드 마운틴에 남은 아이다에게도 시련은 찾아온다. 전형적인 도시의 아가씨였던 그녀는 아버지 먼로 목사(도날드 서덜랜드)를 따라 시골 마을로 오게되었지만 아버지의 죽음과 전쟁은 그녀에게 변화를 강요했다. 의지할 곳 없어진 이 온실안의 화초는 이후 억척스러운 생존력과 행동력을 지닌 씩씩한 여자 루비(르네 젤위거)와의 만남을 계기로 생존을 위해 변해간다. 즉 전쟁에 나간 남자는 고향에 남겨둔 여자를 향해 긴 걸음을 하고 있는 동안, 고향에 남은 여자 역시 살기위해 변해간다.








하지만 이 영화를 감동적으로 만드는 것은 전쟁이 갈라놓은 두 남녀를 다시 만나게 하는 긴 행로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시골 청년 인만과 아이다가 추억하는 기억은 잠깐의 마주침과 한번의 입맞춤이 불과 전부였다. 그것이 전쟁이 갈라놓은 이 한쌍에게 남겨진 모든 것이다. 헤어지기전 나눠가진 한 장의 빛바랜 서로의 사진에 의지하여 둘은 3년의 시간을 버티고 견뎠다. 영화가 갖고 있는 감동의 원천은 서로 떨어져 더 이상 교감할 수 없게 된 남녀가 각각 외부적 요인으로 변해가는 스스로들의 모습에 당황해하면서도 처음 가졌던 진실된 사랑과 그리움과 기억을 잊지 않는 것이다. 인만은 목숨을 건 탈영의 길 위에서 탈영병들을 잡으려는 추적자들, 그리고 북군들, 농민 밀고자들과 싸우고 살아남으면서 많은 사람들을 죽여야했다. 그는 아이다에게 돌아가는 길을 택했으면서도 변화한 자신을 아이다가 들여다볼까봐 걱정한다. 그가 탈영하기전, 남군의 어느 한 장님이 10분간 눈을 뜰 수 있느니 차라리 안뜨는게 낫다고 말한다. 그 이유를 헛된 희망에 의한 괴로움이 더 크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인만은 부정한다. 그의 이 부정이 이 영화를 관통하는 메세지이다. 잠깐의 눈 뜸이라도 그 희망을 잃지 않고 그것을 향해 나아가겠다는 의지. 아이다와의 추억은 극히 일부이자 짧은 시간인 단편적 기억이었고 심지어 그와 그녀는 서로를 잘 알지도 못한다. 하지만 인만은 단지 그 몇가지 짧은 기억과 사진 한장에 의지해 그녀를 향해 힘든 발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인만의 탈영길에 만나는 사람들, 이를테면 남편을 전쟁에서 잃고 혼자 아이를 키우는 사라(나탈리 포트만), 패잔병들이나 탈영병들에게 딸들을 매춘시켜 조직적으로 밀고하고 보수를 챙기는 어느 농가나 부상당한 인만을 돌봐주는 할머니 등은 전쟁이 바꾸어놓은 비극에 견디고 살아가야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다름아니다. 인만과 아이다만이 이 전쟁의 피해자가 아니라 그들 모두가 희생자다.








콜드 마운틴에 남겨져 루비와 함께 생존하기 위해 안간힘쓰고 있는 아이다 역시 사진 한장에 의지해 인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전쟁을 계기로 남자들이 떠난 마을의 실권을 잡으려는 캡틴 티그(레이 윈스턴) 패거리의 횡포와 어려운 생활 형편이 그녀에게 예전의 안락했던 삶을 빼앗아갔지만 루비의 도움으로 아이다는 점차 적응해나간다. 언젠가 인만이 오리라는 희망을 품고, 우물에서 본 그의 실루엣을 계시로 여기면서 그녀는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그런데 마침내 그 순간이 왔을 때, 영화는 비극적 장난을 부린다. 닭을 잡으러 총을 들고나간 아이다와 터덜터덜 걸어오는 인만이 눈길 위에서 만났을 때, 아이다는 멀리서 총을 겨누고 소리친다. 목을 다친 인만은 맞서 소리치지 못한다. 인만은 아이다를 순간 알아보았지만 일순간 그는 체념하듯 돌아선다. 나는 어떤 의미에서 이 짧은 돌아섬이 영화의 클라이막스라고 생각한다. 이후 인만은 아이다에게 당신이 내 변질된 내면을 들여다볼까봐 겁났다고 털어놓는다. 그가 그토록 그리던 아이다를 눈앞에서 알아보았을 때, 한편으로 그는 부끄러움과 두려움에 돌아섰던 것이다. 뒤이어 아이다가 인만을 알아보았지만 이 짧은 머뭇거림과 엇갈림은 이후 영화의 비극적 결말에서 비슷하게 재현된다. 아이다는 우물에서 보았던 까마귀와 함께 쓰러지는 인만을 결국 다시금 봐야했다.








영화 <콜드 마운틴>은, 단 몇번의 만남과 추억과 기억을 간직하고 헤어진 두 남녀의 기나긴 재회기이다. 전쟁이라는 비극적 상황이 갈라놓았다 하더라도 그 속에서 서로를 향한 믿음과 희망을 잃지 않고 간직하다 만나는 장면은 어리석어 보일 정도로 지순하다. 회광반조와도 같은 재회의 하룻밤을 보낸 이들에게 다시 찾아온 것은 3년이 아닌 영원한 이별이었지만, 결국 살아있는 모든 것에 희망을 뿌리고 죽은 자를 추억하며 나아간다는 위로 섞인 결말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인간이 한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과 변질되고 변화한 현재의 모습과의 딜레마 사이에서 그래도 영화는 사랑의 힘을 믿어준다. 잘 알지도 못하는 상대방에게 운명처럼 마음을 확인받은 이들의 행로는 그토록 길고 외롭고 처절하며 무모할 정도로 작은 희망이지만 그 작은 희망이라고 해서 결코 나약하지는 않음을, 150여분의 긴 시간 동안 공들여 영화 <콜드 마운틴>은 보여주고 있다. 

 


 













덧글

  • 2013/04/04 22:16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4/05 16:53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3/04/05 11:10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4/05 16:56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3/04/05 19:3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4/06 19:54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제로드 2016/01/30 09:58 # 삭제 답글

    아침에 영화채널에 나오길래 찾아보게 되었네요. 캐스팅이 화려하고 작품성도 인정받은 영화네요.. ㅎ
  • 레비 2016/01/30 21:39 #

    가진것보다 덜 알려져서 늘 안타까운 영화입니다 ㅠ 기회가 있으시면 꼭 보시길 바라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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