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정전, 阿飛正傳 , Days Of Being Wild, 1990 Flims










정확히 10년전 오늘 2003년 4월 1일, 만우절 거짓말처럼 장국영은 홍콩의 어느 호텔에서 뛰어내렸다. 그와 동시에, 왕가위 감독의 흥행 참패작이자 이후 그의 영화들의 모든 시작점이 된 영화 <아비정전>은 영원히 미완으로 남게되었다. <아비정전> 마지막 장면에서의 양조위는 흥행 실패에 이은 투자 부족으로 <아비정전 2>를 찍지 못하게 되었고 그 이야기는 봉해졌다. 누군가는 그것이 <화양연화>라고도 한다. 장만옥이 또 다른 '수리 첸'으로 등장하는. (하지만 지금껏 왕가위의 인터뷰들을 잘 읽어보면 '아비정전 2'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뉘앙스다.) 내가 생각하는 <아비정전>은 왕가위 감독의 필모그래피 안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는 영화다. 이 얽히고섥힌 5각 관계의 복잡한 스토리 라인은, 사실 아비(장국영) 한명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그의 '정전正傳'일뿐이다. 아비라는 이름의 이 '발없는 새'는 오직 죽는 순간에만 땅에 내려온다는 자유로움을 표방하지만 이 영화는 온통 과거와 기억에 대한 침잠의 연속이다. 이 영화는 이후 왕가위의 영화들, 이를테면 <타락천사>, <중경삼림>, <화양연화>, <2046>에서 계속되는 기억에 대한 왕가위의 모티브이다.


<아비정전>을 왕가위 최고의 작품으로 치는 사람들에게 양조위는 더 이상 왕가위의 페르소나가 아닐지도 모른다. 물론 장국영의 발견을 왕가위보단 오우삼의 공으로 돌릴 수도 있을 것이다. 맞는 말이다. 오우삼의 <영웅 본색>과 <영웅본색 2>에 등장한 곱상하게 생긴 '동생' 경찰 역이었던 장국영은 그러나 이 홍콩 액션느와르의 거친 남성미들 속의 오히려 연약한 이미지였다. 주윤발의 부축을 받으며 공중전화 부스에서 죽어가는 <영웅본색 2>에서의 장면은 분명 인상적이지만, 장국영은 이후 찍은 <천녀유혼>에서도 그런 '예쁜' 남자로 등장했었다. 따라서 장국영에게 <아비정전>에서의 주인공 아비 역할은 충분히 놀랄만한 변신이었다. 왕가위는 장국영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우려되었던 방탕한 귀공자 역할을 맡겼다. 어머니의 내연남을 망치로 때려놓고 돌아나오자마자 거울을 보며 머리카락 한 올까지 단정하게 빗어넘기는 아비의 모습은 그야말로 장국영의 새로운 얼굴이었다.


아비는 수리 첸(장만옥)과 연인관계가 되지만 결혼이라는 구속이 싫은 이 자유로운 남자는 수리 첸을 저버리고 새로운 연인인 루루(류자링)를 만난다. 하지만 아비는 루루 역시 수리 첸과 같은 이유로 차버린다. 아비는 마치 한 여자와의 안정적인 사랑이나 생활에 염증이 있는 남자와 같다. 그가 흥미있게 바라보는 것은 오직 자신의 과거(필리핀에 있다는 생모)의 존재다. 이후 아비와의 과거에 사무칠 정도로 괴로워하는 수리 첸은 어느 경찰(유덕화)에게 위로받고, 버림받고 헤매는 루루 역시 아비의 친구(장학우)의 접근을 받는다. 결국 아비는 두 여자를 순서대로 저버리고, 새로운 두 남자는 아비라는 과거에 상처받은 두 여자를 위로한다. 물론 방법은 다르고 여자 둘의 각자 반응도 다르다. 하지만 이 기묘한 5각 관계의 정점에 있는 '발없는 새' 아비는 끝까지 지상에 내려올줄을 모른다. 그는 홍콩을 떠나 필리핀으로 간다. 마침내 그토록 찾고싶었던 생모의 집 앞까지 찾아가지만 문전박대 당한다. 그런데 그는 마치 그것으로 되었다는 듯이 훌쩍 돌아서서 나온다. 이 장면에서 그는 (홍콩의 분위기와는 완전히 다른) 울창한 열대우림 야자수들 사잇 길을 씩씩하게 걸어나오며 심지어 이 장면은 슬로우 모션으로까지 처리되어있다. 그리고 흐르는 느긋한 배경 음악은 이 영화의 첫 오프닝 타이틀 시퀀스에서 사용된 음악과 같다. 그러고보니 타이틀 장면에 쓰인 배경은 홍콩이라기보다 필리핀의 모습으로 짐작된다. 아비에게 필리핀과 그곳에 살고있다는 생모의 존재는 과거다. 홍콩에서의 그는 살아도 살아 있는 것이 아닌, 그저 죽지 못해 살고있는 과거를 잃은 탕아이다. 그는 자신의 이유를 찾기위해 모든 것을 홍콩에 버려두고 과거로 날아갔지만 얻은 것은 없었다. 그의 대사와 걸음걸이는 "그래 이것으로 됬다!"라고 호언장담하는 듯하지만 사실은 그의 뒷모습은 쓸쓸한 슬로우 모션이다.


그런데 이 영화 <아비정전>에서 과거에 집착하는 인물은 아비뿐만이 아니다. 아비가 생모의 존재를 찾아 계모와 말싸움을 하고 있는 동안 수리 첸은 아비가 정의해놓은 그 1분이라는 시간 때문에 그녀의 삶은 송두리째 흔들리는 경험을 해야했다. 루루는 아비가 죽고 없는 필리핀에 뒤늦게 도착해 과거의 그를 찾을 것이고, 아비의 친구는 아비의 차까지 물려받아 루루에게 마음을 전해보려하지만 그 자신은 아비가 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차를 팔아 루루를 필리핀으로 보내주었다. 경찰을 또 어떠한가. 그는 빗 속의 수리 첸을 보살펴주면서 우연히 아비를 본 적이 있었지만, 정작 아비와 재회했을 때 모른척 했다. 하지만 총에 맞아 죽어가는 아비에게 1년전 그날 수리 첸과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뒤늦게 묻는다. 이 영화속 모든 캐릭터들은 모두 과거 때문에 현재를 살기 힘겨워하거나 혹은 그 영향이 현재에 미치고 있다.


경찰의 마지막 질문을 들은 그 때 아비는 그녀를 기억하지만 이젠 다 잊었다고 말한다. 그것이 아비의 마지막 대사이다. 하지만 그 질문을 듣기전 아비는 독백으로 "이제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 것 같다"고 말한다. 그것은 그날 1분을 낙인처럼 수리 첸에게 새겨놓고 떠난 자신에 대한 반성일까 아니면 과거를 헤매느라 현재를 살지 못한 자신에 대한 회한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그녀가 자신처럼 이제 그만 잊기를 바라는 이기적인 희망일까. 그런데 마치 그 희망이 전달되기라도 하듯이 영화엔 그 이후의 시퀀스가 있다. 수리 첸이, 경찰이 평소에 순찰하는 구역이라서 전화하라던 그곳에 전화를 거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선원이 된 그가 전화를 받을 수 있을리 만무하다. 이후 뜬금없이 등장하는 양조위. 그렇게 <아비정전>은 과거를 헤매는 이들의 유령이 영원히 반복될 것임을, 마치 저주를 걸 듯이 끝난다. 그리고 정말로 그렇게 왕가위 감독은 <아비정전>을 계속 반복하고 있다.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 : http://pequod.egloos.com/2841349








덧글

  • pimms 2013/04/01 07:02 # 답글

    아... 그 장면 기억나요.
    힘들게 찾아낸 어머니가 모르는 '척'하자 자기도 등 돌리고 일부러 돌아보지 않죠.....

    흥행에는 실패했을지 몰라도 기억에 남는 장면이 많은 영화에요.
    발 없는 새~ 이야기도 여기저기서 많이 봤고, 수리 첸에게 1분 동안 우리는 같이 있었고 너는 이 시간을 잊지 못할 것이다 드립, 그 다음날 내 꿈 꿨지? 안 꿨는데요? 당연하지 한숨도 못 잤을테니까 드립은 작업의 정석으로 인터넷을 떠돌아 다니더군요. ㅎㅎ

    장국영 기일에 올라온 글, 참 반갑네요. ^^,
  • 레비 2013/04/03 14:18 #

    아비의 권태로운 캐릭터가 유일하게 집착?하는 것이었는데 그것마저도 일부러 돌아보지 않으려 애쓰는듯해서 오히려 더 쓸쓸했던 장면이었어요 :)
    발없는 새도 그렇고 그 '1분'도 그렇지만 역시 최고는 꿈이야기죠 ㅋㅋ http://pequod.egloos.com/2865181 이거 말씀하시는거죠? :) 하지만 그것도 장국영해야 멋있다는거... 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 pimms 2013/04/04 03:45 #

    네, 맞아요~
    근데 페북에 떠돌 때도 그 말은 항상 나왔어요.
    장국영이 해서 멋있다 ㅎㅎㅎ
  • 레비 2013/04/04 13:11 #

    장국영이 아니라 그냥 저같은 흔남이 하면 왠 정신나간 놈으로 보일거에요... ㅠㅠ ㅋㅋㅋㅋ 밑도 끝도없는 자신감이 필수적인 대사! ㅋㅋ
  • 2013/04/01 20:01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4/03 14:28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3/04/05 18:4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4/06 19:52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3/04/07 10:31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3/04/08 19:27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진나이 2013/04/07 04:34 # 답글

    당시 영화관에서 장국영 VS 유덕화 팬들이 난리를 치는 와중에 가장 화난 건, 양조위 팬이었다는..ㅋㅋ 잠시였지만 가장 임펙트 있었던 배우가 양조위다~! 라는 말을 아직도 하네요. ㅋㅋ 근데 장학우 나온 건 언급도 없고.. 전 생각보다 아비정전에서 유덕화의 입지가 너무 찬밥이라 아쉬워요. 개인적으로는 무조건 유덕화승! 이라. ㅋㅋㅋ
  • 레비 2013/04/08 14:09 #

    저도 장국영/유덕화/양조위 중 한명을 고르라면 양조위의 편이지만 ㅋㅋ 영화에서 마치 속편을 예고하는 등장을 하고선 아비정전2가 나오지 않아서 안타깝게 되었죠 ㅠ 아비의 동생이었다는 설정이라는데.. 양조위의 탕아 연기도 정말 볼만했을텐데요 ㅠ 2046에서 비슷하게 나와서 대충 그것으로 대리만족 하고있습니다 ㅎㅎ

    아비정전은 분명 장국영과 유덕화의 비중에 거의 반반이라고 봐도 무방한데 영화의 초점이 '아비'에 더 맞춰있다보니 유덕화의 무게감이 많이 축도된 감이 있어요 ㅠ 물론 장국영의 캐릭터가 인상적이었지만 그래도 그런 아비와 대조되는 역할인데 ㅎㅎ 그나저나 진나이님 블로그 글들이 없어졌어요 ㅠ?!
  • 나그네 2013/04/11 15:24 # 삭제 답글

    마지막 2분 양조위가 인상적이였죠
  • 잇다 2013/08/20 23:18 # 삭제 답글

    오늘 왕가위 특별전에서 힘들게(?) 아비정전을 보고 집으로가는 길에 검색을 하다 이 글을 읽게 되었어요.
    알듯말듯, 오글거리고, 어지러움 속에서 느껴 지는 감정이 쏴~악 퍼지는 게 잊지못할 영화예요.
    시간이 지나서 봐도 참 좋고 장국영이라는 배우가 세상에 없다는 게 아쉽네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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