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터 아일랜드, Shutter Island, 2010 Flims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이름으로부터, <타이타닉>과 <로미오+줄리엣>에서의 꽃미남 청년을 떠올리는게 자연스러웠던 것은 이제 옛 말이 되었다해도 좋지않을까. 연기력보다 외모로 더 주목받기를 원치 않았던 그는 2000년대 이후, 샤프한 미청년보다는 살을 찌우고 강인해보이는 턱선 등으로 내면에 숨어있던 남성성을 어필하는데 더 노력한 모양새다. 강렬했던 데뷔 당시의 이미지로부터 변신에 가장 성공한 배우라고 생각하는 디카프리오는, 이제 <갱스 오브 뉴욕>, <에비에이터>, <디파티드> 이상 3개의 작품을 마틴 스콜세지와 함께하며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연기가 무엇인지를 찾아갔다. 주목받았던 <타이타닉>보다, 사실 <길버트 그래이프>, <바스켓볼 다이어리>시절부터 숨겨놓았던 연기력이 성공적인 마초적 이미지 변신과 시너지를 이루며 <캐치 미 이프 유 캔>, <블러드 다이아몬드>, <인셉션>에 이르기까지 그가 이제 외모로만 어필하는 배우가 아닌, 심도있는 내면의 연기를 가능케하는 배우라는 확고한 인식을 관객들에게 심어주었다. 맷 데이먼이 비슷비슷한 영화 속 역할들을 반복하며 '잠재되거나 타의에 의해 억압된 능력과 가능성을 표출해가는 캐릭터'를 구축했듯이(<굿 윌 헌팅>,<오션스 일레븐>,<리플리>,<라운더스>,<본 아이덴티티>), 디카프리오에게도 자신이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반복된 캐릭터성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겉으로는 아닌척 애쓰지만 '사실은 유약한 내면을 지닌 이중적 인간상'이다.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신분을 감춘 <갱스 오브 뉴욕>에서의 암스테르담. 겉은 성공가도를 달리는 억만장자이지만 내면은 강박과 결벽증을 안고 있던 <에비에이터>의 하워드 휴즈. 갱으로 태어나 경찰이 되었지만 태생적 이유로 다시 갱에 잠입해 말 못할 사정을 안고 괴로워하던 <디파티드>의 빌리 코스티건. 겉으론 화려한 생활을 계속하지만 불운한 가정사와 불안정한 심리로 그 모든 것을 저질렀던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10대 소년 프랭크 애비그네일을 생각해보라. <인셉션>에서는 또 어떠한가. 코브는 추출사로서 팀을 이끌며 인셉션 작전을 주도하지만 누구에게 함부로 말 못할 전처 멜과의 아픈 트라우마를 품고 있는 남자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아예 이런 디카프리오에게 실존했던 FBI 초대 국장인 J.에드가 후버 역을 맡겨, 겉으로는 강력한 국가 조직의 수장으로서, 그러나 동성애나 콤플렉스 등을 내면에 가진 이중적 남자를 또 한번 연기시키며 <J 에드가>를 찍었다. 그러니 올해 국내 개봉 예정인 바즈 루어만의 <위대한 개츠비>에서 디카프리오보다 더 잘 '개츠비'에 적합한 배우가 과연 또 있었을까. 겉으로는 화려한 부자나 추대받는 전쟁 영웅, 그러나 의중은 비밀에 쌓여있던 남자 개츠비는 그가 아닌 다른 배우가 연기하는 것이 쉽사리 상상되지 않을 정도다. '데이지' 역에는 에바 그린, 나탈리 포트만, 스칼렛 요한슨, 앤 해서웨이, 레이첼 맥아담스, 아만다 사이프리드 등 많은 루머가 돌았고, '톰'의 캐스팅에도 밴 애플렉, 브래들리 쿠퍼 등이 물망에 올랐다는 식의 말들이 많았지만, 개츠비 역이 디카프리오 외에 다른 선택지가 있었다는 소문은 들어본 적이 없다.


이하 <셔터 아일랜드>에 관련된 포스팅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는 반전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여기 디카프리오의 경력에 빠뜨린 한 편의 영화가 있다. 그가 출연한 마틴 스콜세지의 네번째 작품 <셔터 아일랜드>다. 이 영화를 말하기 앞서 이렇게 장황하게 디카프리오의 필모그래피를 훑어본 이유는, <셔터 아일랜드>에서의 그의 모습으로 한정 짓기보다 이렇게 그가 평소에 연기해오던 캐릭터를 감안해서 본다면 더 흥미롭기 때문이다. 겉으론 강하지만 속은 나약한 남성을 연기해온 그의 캐릭터는 이 영화에선 그 정도가 가장 심하다고 볼 수 있다. 아예 이 이중적 성격을 말그대로 분리해 놓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보통 유약한 내면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주로 내세우는 방어기제가 부각된다. <셔터 아일랜드>의 테디 다니엘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연방보완관의 자격으로, 동료 척 아울(마크 러팔로)와 함께 수사를 빙자해 섬으로 고립되어 있는 셔터 아일랜드 정신병원으로 들어오지만, 사실 해결해야할 사건은 한편의 거대한 연극이며 환자는 자기 자신이었고, 동료라고 생각해온 척은 자신의 주치의였다. 물론 실험은 테디가 시작한것이 아니다. 비윤리적이고 비과학적 실험에 반대하는 코리박사(벤 킹슬리)의 주도하에 테디가 병을 이런 연극으로나마 극복하고 치유될 가능성을 찾기위한 실험이었던 것이다. 테디는 조울증을 앓던 아내 돌로리스(미쉘 윌리엄스)가 자녀들을 죽인 것에 충격을 받고 자신의 손으로 아내를 살해했지만, 그가 감당해야할 트라우마는 방어기제를 형성했다. 그가 만든 방어기제는 가상의 아내 살해범을 창조해낸 것. 그는 자신의 환상속에서 그 존재하지도 않을 범인을 찾아 그렇게 셔터 아일랜드를 헤맨다.







눈치가 빠른 사람들에게라면 조금 허망할 정도로 영화의 반전은 예측 가능한 범주내에 있다. 물론 끝가지 모르고본다면 대단히 충격적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 반전의 강도로 작품의 의도가 좌지우지 되길 바라는 영화는 아니다. 일부러 관객들을 깜짝 놀래키기위해 마지막까지 달려온 영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자신이 저질렀던 잘못에 대한 방어기제를 세우고 자신이 창조한 환상 속에 사는 남자. 어디선가 본적 있다는 느낌이 든다면, 그것은 아마 영화 <메멘토>일 수도 있다. 물론 <메멘토>의 레너드(가이 피어스)와 <셔터 아일랜드>의 테디가 겪는 정신병은 조금 다르다. 레너드는 원치않는 기억상실증으로 인해 환상을 세우지 않으면 정상적인 판단이 힘든 상황이지만, 테디는 기억상실이라기보다 고의적인 현실 망각가 왜곡에 더 가깝다. 정말로 기억을 잃은 레너드처럼, 자기 손으로 아내를 살해한 사실을 잊었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한다기보다, 테디는 인정하기 싫고 기억하기 싫어하는 것에 더 가깝다. 물론 레너드 역시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하고, 그렇기때문에 '진실'을 대체할 수 있는 '거짓'을 창조해낸다는 점은 같다. 






하지만 레너드의 방어기제를 설정 삼은 크리스토퍼 놀란에 비해, 마틴 스콜세지는 테디의 방어기제를 일종의 반전으로 사용했다. 마지막 척과의 대화는 테디가 모든 사실을 인정했지만 그것을 기억하는 괴물로 사는 것보다 차라리 기억 못하는 바보로 사는게 낫다는 식의 '선택'을 한다. 물론 이런 식의 선택은 <메멘토>와 비슷한 면이 있다. 하지만 자유의사로 테디가 이를 선택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이 모든 연극을 꾸민 코리 박사는 사실 환자의 뇌를 직접 수술해서 온순하게 만드는 방식에 반대하기 위한 증거로 테디를 통해 증명해보이려 했다. 하지만 테디는 코리 박사의 희망에 무심하게도 스스로 수술대를 향해 걸어들어간다. 사실을 알았지만 진실과 마주한 그에게 남겨진 것은 해방이나 자유가 아니라 오히려 더한 고통이었다. 어두운 밤 바다에 길을 비추는 등대는, 그곳에 '진실'이 있지만 테디의 방어기제가 가지 말라고 말렸던 곳이기도 했다. 테디의 환상속에서, 그는 연방보완관으로서 아내를 죽인 범인을 찾는 역할이었지만 사실을 알아버린 이상 그는 아내를 죽인 정신이상자일 뿐이다. 그것은 과연 행복한 삶일까?








내겐 환상 속에 살고 있는 친구 한명이 있는데, 나는 그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남들을 속이고 자신을 속이면서까지 그가 원했던 것은 망각이었다. 자신이 거짓속에 살더라도 그것이 그에게 마약같은 안정감을 주는 것이다. 나는 그의 비정상적인 방어기제가 열등감이나 자격지심에서 왔다고 믿는다. 이상을 쫒아가지 못하는 현실의 괴리를 메꾸기 위해 그가 선택한 것은 이상적인 자신의 거짓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의 환상속에서나마 그는 정상인으로, 아니 정상인보다 훨신 더 나은 남자로서 살 수 있었다. 오래된 구직생활은 그에게 프리랜서와 같은 자유분방한 직업인의 모습을 갖추게 했고, 이십대 후반까지 없는 연애경험은 존재하지도 않는 여자친구와 가상의 크리스마스 데이트를 창조했다. 하지만 테디의 방어기제가 겪었던 허점들처럼 이 친구에게도 디테일한 면들에서 허점들이 드러났고 결국 등대에서처럼 자신의 세계가 무너진 순간 그는 스스로의 거짓말을 자신도 믿어버렸노라고 실토했다. 하지만 그때 그 친구가 불쌍해보였던 것은 단순한 측은지심이 아니었다. 자신이 믿었던 환상적이고 행복한 세계가 깨어졌을때, 다시 구질구질한 현실로 끌려내려와야한다는 슬픔. 그 모습은 내게, 테디가 스스로 뇌 수술을 선택한 <셔터 아일랜드>의 결말에 힘을 실어주는 하나의 예시가 되었다. 그가 그렇게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나는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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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細流 2013/03/30 23:28 # 답글

    아, 저도 이 영화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이 영화를 보기 전에 인셉션을 봤던 터라 인셉션이 자꾸 오버랩되기는 했지만요.^^; 저는 반전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굉장히 충격이었습니다; 그런데 말씀대로 메멘토가 생각나기도 하네요.
    영화는 작년인가 재작년에 봤고, 얼마 전에 원작을 읽었는데, 보통 원작 소설이 있는 경우에 항상 원작 텍스트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영화를 먼저 봐서인지 영화가 더 마음에 들더라구요.^^;
    언제 시간 나면 이 영화와 메멘토를 다시 봐야겠습니다.^^
  • 레비 2013/03/31 00:12 #

    이걸 보기전에 <인셉션>을 보셨군요 ㅎㅎ 그렇다면 <인셉션>에서의 코브 때문에 <셔터 아일랜드>의 반전을 눈치채지 못했을 수도 있어요. 멜이라는 전처의 트라우마를 안고 있는 코브역과 역시 마찬가지로 죽은 전처의 상처를 안고 있는 테디는 비슷한 면이 많으니까요 ㅎ 테디가 만든 가상의 방어기제에 빠지셨군요! ㅎㅎ
    아 맞아요 ! 원작이 있다는 말은 들었는데 전 읽지 못했어요. 괜찮던가요? 제목도 셔터아일랜드가 아니었다고 들었는데.. 저도 원작이 있는 영화는 원작과 비교해보는걸 재밌어하지만 요즘은 원작 소설이 있는 영화들이 하도 많다보니 대부분은 영화를 먼저 보게되네요 ㅠ ㅎ
  • 細流 2013/03/31 00:24 #

    원작은 황금가지의 밀리언셀러 클럽으로 나와 있습니다. 번호가 상당히 초반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원제는 셔터 아일랜드가 맞지만, 한국어판 제목은 '살인자들의 섬'으로 나왔습니다. 영화화가 굉장히 충실하게 된 편이어서 원작을 읽으면서는 영화의 내용을 따라가는 느낌이 많이 들었어요^^; 정말, 요즘은 원작 소설이 있는 영화들이 하도 많아서 원작을 미처 알기도 전에 영화를 보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 레비 2013/03/31 00:48 #

    아 맞아요 ㅋ 살인자들의 섬 ㅎㅎ 처음 듣고 굉장히 직설적인-_- 제목이구나 싶었어요 ㅎㅎ
    각색이 거의 안되었나보군요. 영화를 보고 원작을 읽으면 정말 영화 장면들이 다시 떠오르면서 이해하는데 더 쉬울것 같아요 :)
  • kyuwoo 2013/03/31 02:29 # 답글

    음.. 역시 영화와 원작의 관계는 먼 나라 이웃나라 인가봐요. 원작의 팬이었던 저로서는 영화가 너무 심심하고.. 엔딩의 반전이 디카프리오를 위한 지나친 사족같아서 참 별로였는데... ㅎㅎㅎ

    하긴.. 영화 해리 포터 시리즈만 해도 원작을 먼저 보고 나서 영화를 본 경우에는 그닥 재미가 없었던 기억이 나네요. ^.^
  • 레비 2013/04/01 01:02 #

    원작을 아직 읽어보지 않아서 전 뭐라 말씀드리기가 조심스럽네요 ㅎㅎ 원작에는 반전이 어떻게 표현되었는지 (혹은 있는지 없는지)도 궁금하네요. 어떤 영화는 원작보다 더 뛰어난 평, 훌륭한 각색이라는 소리를 듣기도하지만 많은 경우는 원작이 워낙 완성도가 높을때 영화가 그것을 따라가기도 벅찬것 같아요. 그래서 각색이 잘 된 영화는 원작의 완성도를 넘어서는 수작이 되는지도요 :)
  • FlakGear 2013/03/31 09:13 # 답글

    꽃미남이미지를 덮기위해 마초이미지로 변했다고 생각해보면 디카프리오 자체가 유약한 이미지가 싫었던 것... 어쩌면 디카프리오도 보이고 바라는 바와 속내의 실제모습이 달라서 고민하는 게 많기에, 그런 이중적 캐릭터에서 쉽게 공감하고 연기력이 크게 발휘되는 것은 아닐지...
  • 레비 2013/04/01 01:03 #

    디카프리오의 실제 모습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ㅎ 이중적 캐릭터에 이렇게 좋은 연기력을 보여준다면 정말 디카프리오 본인이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다는 추측도 가능하겠네요 :)
  • 구슬 2013/03/31 11:26 # 답글

    개봉 당시 영화관에서 재미있게 보았던 영화예요! 끝에 가서 테디가 스스로 선택하는 그 장면에서는 멍해지기도 했고.. 반전을 예상하지 못했던지라 꽤 충격이었고 인상적이기도 했었네요. 이 영화를 보고 다시금 새삼스럽게 디카프리오! 를 외치게 되었던 기억이 나네요ㅎㅎ
  • 레비 2013/04/01 01:04 #

    반전을 예상치 못했으면 꽤 충격적이었을 것 같아요. 전 중반쯤부터 눈치를 채는 바람에..ㅠ (물론 최종적인 반전은 몰랐지만요) 디카프리오가 가장 잘 해낼수 있는 연기를, 가장 잘 보여준 영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
  • 마이 2013/06/30 20:39 # 답글

    누군가 추천을 했지만 아직 보진 않았어요. 레비님 글 보니까 꼭 봐야겠네요. ...그런데 예전에 레비님이랑 했던 매트릭스의 대화처럼, 전 이 영화에서의 마지막 선택도 이해가 되고 뭐랄까, 저 역시 그럴지도-? 하는 생각이 ㅎㅎ
  • 레비 2013/06/30 23:50 #

    ㅎㅎ 중요한 스포일러가 있었는데 보시기전부터 읽어버리셨군요 ㅎㅎ 그래도 사실 보다보면 뻔한 반전이라.. 짐작 가능하지만요 :) 매트릭스에서 파란약을 선택할 수 있다면 이 영화에서의 디카프리오의 선택도 일견 이해가 되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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