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에 대하여, We Need to Talk About Kevin, 2011 Flims












나에게 미국 영화 속에서 '케빈'이라는 이름은 오랫동안 <나홀로 집에>의 개구장이 맥컬리 컬킨을 떠올리게 했지만, 이제 그 이미지의 주인은 영국 영화 속의 또 다른 케빈에게 넘겨줘야할 것 같다. 어렸을때 보았던 <나홀로 집에>이후 15년여만에 도착한 이 새로운 케빈에게선, 그러나 크리스마스용 가족영화가 아닌 공포영화 <오멘>에서의 악마의 현신, 데미안의 그림자가 아른거린다. <엑소시스트>에 비견될만한 오컬트 공포영화계의 고전이자 명작이 된 그레고리 팩 주연의 1976년 영화 <오멘>에서는, 죽은 신생아 대신 훔쳐 키워진 아이, 데미안이라는 이름의 아이는 말그대로의 악령과 다름 아니었다. 물론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피를 부르는, 악마 그 자체의 데미안과 영화 <케빈에 대하여> 속의 케빈(이즈라 밀러)을 비교하는 것은 다소 무리일순 있다. 하지만 원치 않는 타이밍에, 원치 않는 아이를 가진 에바(틸다 스윈튼)에게 사이코패스로 자라난 아들 케빈은 그녀의 삶에 파고든 새로운 악마였을지도 모른다.







영국 출신의 여성감독 린 램지의 연출과 편집은 단순해보이지만 영화를 볼수록 놀랍다. 영화는 에바의 불안과 심리를 명민하게 탐색하며 나아간다. 과거와 현재의 두 클라이막스를 영화 후반에 만나게 배치해둠으로서 이 모든것의 원인과, 그것의 원인이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뒤이어 대단원도 볼 수 있게 해두었다. 그래서 우리는 현재의 에바, 즉 마을에서 모든 사건의 책임을 뒤집어쓰고 집에 발라진 붉은 페인트를 떼어나가며, 아들의 면회를 가는 에바의 모습에선 "그래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가"에 대한 두려운 호기심을, 과거의 이야기와 서로 맞닿을 지점을 향해갈수록 키워나간다. 그리고 포옹으로 마무리되는 엔딩. 오히려 한 마디의 말이 더 듣고싶은 그 찰나에 영화는 끝이난다. 그 끝이 앞선 충격에 비해 너무 간결해서, 영화가 끝이 나고도 과연 정말 끝났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존 C.라일리가 연기한 무감한 가장, 프랭클린의 역할은 사실 이 영화가 오롯이 '어머니' 에바의 시선을 위한 배려처럼 보일 정도이다. 이 낙천적이고 걱정없이 사는듯한 가정의 아버지는 아들의 진짜 모습을 제대로 응시하지 못한다. 그는 아들에게 생일 선물로 활을 선물하고 그 활에 죽는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존 C.라일리가 연기한 이 프랭클린이라는 불쌍한 아버지의 모습들을, 이미 다른 영화들에서 봐왔기에 그가 이번에도 아무것도 모르고 당하기만하는 비운의 아버지를 연기할 것이라는걸 짐작 할 수 있었다. (영화 <시카고>와 <디 아워스>에서의 그를 생각해보라) 영화 <케빈에 대하여>에 아버지에게 할당된 자리는 거의 없다. 하지만 어머니 에바와 아들 케빈의 관계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보다 훨신 다층적이지만 역설적으로 그래서 더 솔직하다. 에바가 겪는 심리적 갈등은 케빈과의 거리에 있다. 아들에게 다가가는 어머니와 동시에 아들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타인처럼 느껴지는 마음사이의 충돌. 케빈의 심리를 알 수 없기에 우리는 이들의 과거를 보면서 스릴러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특히 케빈이 자위행위를 하다 에바에게 들켜도 오히려 더 도발적으로 그것을 계속하거나, 아버지 프랭클린보단 어머니 에바를 더 닮은 아들이라는 설정은, 마지막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살려둔 케빈에게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어렴풋이 느낄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의 시선이 케빈에게 맞춰져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영화를 가끔, 소시오패스 혹은 사이코패스의 탄생 원인이나 불행한 가족사가 낳은 케빈이라는 범죄자에 초점을 맞추는 글들을 읽은 적이 있다. 물론 영화를 읽는 방법에 정답이란 없겠다. 나도 에바가 어렸을때 자꾸 우는 케빈을 제대로 달래지 못하며 짜증을 내는 모습과 그와 비교되는 프랭클린의 모습을 보고 원치않는 출산과 양육이 빗어내는 엇나간 아들의 성장기인줄 알았다. 하지만 그 책임을 오직 에바에게만 돌리기엔 케빈의 성장과정은 마치 '그렇게하기로 되어있었'을 싶을 정도로 변화 과정이 없다. 그 아이는 영화에 처음 드러냈을때부터 그런 모습을 하고 있었다. 무엇이 케빈을 그렇게 만들었는가-에 대한 답을 구하려한다면 많이 어려워진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케빈과 에바, (혹은 무관심했던 아버지 프랭클린) 그 어느쪽에도 자꾸 책임을 묻지 않으려한다. 에바가 잘못키워서 케빈이 이렇게 되었는가, 혹은 케빈이 잘못 자라서 에바가 불행해졌는가. 이 두가지 질문은 달걀과 닭의 문제처럼 무의미하게 공전한다. 이 영화 <케빈에 대하여>는 위의 질문에 명쾌하게 답을 내리기 어렵도록 되어있다.









그래서 난 이 영화가 케빈을 이해하거나 혹은 사이코패스의 탄생에 대한 가족적, 태생적 책임을 추궁하거나 분석해보려는 시도가 아니라고 믿는다. 그래서 이 영화는 결코 <볼링 포 콜럼바인>이 될 수 없다. 영화는 제목에서부터 우리로하여금 케빈에 대하여 이야기 해볼 것을 권하지만 사실 케빈에 대하여 함께 이야기를 나눌 사람은 그의 어머니 에바다. 나는 이 영화가 어머니의 시선으로 읽혀야한다고 생각한다. 케빈의 잔악무도함은 총기 난사 사건이 영화가 아닌 현실이 되는 이 세상에서 완전히 비현실적인 행위는 아니지만, 오히려 집안에서 케빈이 보여주는 작고 소름끼치는 행동들은 마치 인간 이상의 영역에서 치밀하게 계획된 것처럼 보이기에 어느 순간 케빈이 비현실적인 아들로 보인다. 마치 에바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 태어난 작은 악마. 죽는 것보다 살아남는 것이 더 고통이 되리라는 듯이, 케빈은 에바만을 남기고 아버지와 동생을 죽인다. 초현실적인 구석이 있는 영화는 많은 상징과 은유들을 사용했다. 케빈의 활과 그의 눈동자에 아로새겨지는 과녁. 하필 에바가 밤에 읽어주던 책 <로빈 훗>은 하나의 연결고리다. 동생의 한쪽 눈을 멀게하고도 태연자약하게 씹어먹는 (평소 싫어하던) 과즙 열매와, 이어지는 '싫어하던 것도 계속하다보니 익숙해진다'는 식의 대사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암묵적인 인정과도 같다.









하지만 영화에서 가장 강렬한 이미지는 역시 붉은 색이다. 스페인 토마토 축제, '라 토마티나'로 시작하는 이 영화의 오프닝은, 그 속에서 행복해하는 에바의 표정과 군중들의 모습을 슬로우모션으로 오랫동안 공들여 보여준다. 하지만 계속보다보면 마치 피칠갑을 한 양 징그러워보일 정도다. 그리고 현재의 에바는 (케빈이 벌인 짓에 대해) 분노한 마을의 누군가로부터 받은 테러로 집벽의 (마치 피 처럼 보이는) 붉은 페인트를 하루하루 씻어내려고 한다. 그 붉은 페인트는 영화의 시작과 그녀의 '토마토 축제' 꿈과 함께 칠해지지만 그녀가 영화내내 떼고 벗기려는 대상이다. 나는 그래서, 이 영화에서의 붉은 색이 상반된 두 가지를 모두 수용한다고 느꼈다. 오프닝에 등장한 그 붉은 토마토들은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는 자유로운 여행, 해방감으로서의 축복이지만, 그녀의 집에 낙인처럼 발라져있는 붉은 페인트는 그녀가 케빈의 댓가로 치루고 감내하며 살아가야할 죄의 무게이다. 즉, 케빈이 없는 그녀의 삶, 자유로운 여행자로서의 행복과, 동시에 케빈이 있음으로서 발생한 모든 불행은 이 하나의 색을 갖고 있다. 결정적인 장면 하나. 마트에서 장을 보던 케빈이 마을의 또 다른 피해자 여성과 만나자 카트를 두고 돌아서 숨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에서 그녀 뒤에 잔뜩 놓여져있는 것은 토마토 통조림들이다. (그 토마토 통조림에는 "Ma Ramsay's Tomato Soup" 라고 쓰여있다. 이 영화의 감독의 성은 Ramsay 이다.) 영화의 오프닝 꿈 속에서 그녀에게 행복을 주었던 토마토들이 현실에서는 통조림에 잔뜩 밀봉되어, 억압되어있지만 금방이라도 그녀를 향해 쓰러져 덥치리라도 할 듯 화면을 가득 메운다. 나는 이 불안한 장면이 마치 하나의 공포 영화의 장면처럼 보였다. 즉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자신의 아들이 저지른 죄 때문에 겪는 불행과 불안한 삶속에서 피해 숨어들어간 장소에 그녀가 꿈꾸던 행복과 이상향이 잔뜩 통조림 속에 구속되어 그곳에 있던 것이다. 나는 영화가 긍극적으로 말하고자하는 것이 이 지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에바가 원했던 자유로움과, 케빈을 낳음으로서 자신이 '빼앗겼다고' 믿는 행복과 찾아온 불행이 사실은 하나의 색을 가진 대상이라는 것.







생각에 조금 더 유연함을 부여해보자. 이 케빈이라는 존재를, 실체적인 아들로서가 아니라 에바의 무의식속 자녀와 양육에 대한 공포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해석하려면 영화 속 사건 전체를 부정해야하기 때문에 케빈이 완전한 허구임을 주장하기란 힘들다. 하지만 케빈이라는 아들의 의미를, '하필 낳아놓고보니 이런 아들이었다' - 라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에바가 가지고 키워온 불안감이라고 상정한다면 어떨까. 영화엔 이런 장면도 있다. 세수를 하듯 물에 얼굴을 담그는 에바의 얼굴과 케빈의 얼굴은 몇몇 장면에서 혼동될만큼 같아진다. (혹은 실제로 교차된다.) 케빈은 에바가 낳은 아들이기 이전에, 그녀가 그녀의 안에서 키우던 존재였다. 그래서 케빈을 에바가 낳은(키운), 에바가 가지고 있던 잠재적 불안으로 생각한다면 이 영화는 출산과 양육에 대해 부담을 느끼고 부정적이었던 여성이 모성애를 찾아가는 험난한 여정으로 읽힐수도 있지 않을까. 그토록 싫어하고 두려워했던 아들과의 간극을 좁히지 못한 어머니는, 결국 아들을 끌어안는다. 이런 악마같은 아들을 어떻게 끌어안을 수 있는지는, 앞서 붉은 색의 이미지를 이용하여 말했다. 영화는 두번, 12:00에 알람을 울린다. 12:00와 12:01로 넘어가는 그 지점. (세상에, 자정에 알람을 울리게 해놓은 가정집이 어딨을까. 하지만 영화에선 울린다.) 하루의 1440분은 다 같은 1분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지난 하루를 닫고, 새로운 하루를 여는 시각이기도 하다. 12:00에서 12:01로 변화하는 이 두번의 순간은 에바가 케빈을 임신하는 날, 그리고 케빈이 '그 사건'을 일으키기로 마음먹은 날, 이 두 하루의 시작을 알린다. 이 두번의 하루는 에바의 삶을 각각 바꾸어놓는다. 그 시간은 하루와 하루의 경계, 쉽게 넘기 어려운 선이지만 우리는 시간을 거꾸로 되돌릴 수 없고 한번 넘어온 시간은 그대로 앞으로만 흐른다. 영화는 에바의 삶을 돌려주지 않는다. 그녀는 여전히, 앞으로도, 지금껏 그러하듯이 케빈의 어머니로 살아갈 것이다.





















덧글

  • 2013/03/21 09:4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3/22 22:49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mh 2013/03/21 20:12 # 답글

    제가 아기때의 기억이 없지만,
    누군가의 주장에 의하면
    애기들은 다~안다고. ㅋㅋㅋ
    어리다고 모를거같냐~ (..)

    영상이 아름다웠어요.
    스크린을 꽉 채우는 토마토의 붉은 빛..
    틸다스윈튼의 얼굴..
    저는 깨진 달걀로 한 오믈렛이 기억에 남네요.
  • 레비 2013/03/22 22:53 #

    ㅎㅎ 어릴때부터 반항아의 기질이 보인 (사실 영화를 보다보면 케빈은 '천성적으로' 악한 느낌이에요;) 케빈의 모습에서 혹시 에바가 '원치 않았던 아이'라는 인식이 무의식적으로 케빈에게 전달된것이 아닐까 싶었어요. 케빈이 갖고 있는 어머니에대한 근원을 알수없는 분노나 미움이 제대로 설명이 안된 느낌이었거든요.

    영상도 그랬고 편집도 아주 마음에 들었어요.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전개에 조금 혼란스러울 수도 있지만 두개의 클라이막스를 향해 동시에 다가가는 기술이 인상적이었고요. 틸다 스윈튼의 연기는 놀라웠습니다. 아 그 깨진 달걀 오믈렛 기억나네요. 섬찟한 미장센들이 많았어요. 민하님이 예전에 이 영화를 포스팅해두신걸 보고 제가 궁금하다고 덧글 남겼던것 같은데 그걸 뒤늦게야 보고 쓰네요 ㅎㅎ
  • 누누슴 2013/03/23 14:00 # 삭제 답글

    드디어 읽고싶었던 영화의 리뷰네요 ~
    잘 읽었습니다 . ^^
  • 레비 2013/03/25 02:31 #

    오랫만이에요 누누슴님 :) 이 영화 보셨었군요 ! 감사합니다 :D
  • 2013/03/24 13:16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3/25 02:36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3/03/24 21:5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3/25 02:39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목짧은기린 2013/03/31 02:58 # 답글

    저도 이와 비슷한 관점으로 영화를 봤었어요.. 에바의 잘못된 양육으로 인한 사이코패스의 탄생.. 으로 이 영화를 보는 것은 약간 핀치가 엇나간게 아닌가, 하는 부분에서 많이 공감..!
  • 레비 2013/04/01 03:10 #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D
    사이코패스의 탄생을 그리고 있다기에는, 사실 에바는 잘못한게 없거든요. 물론 그녀의 양육법이 100% 옳은건 아니었지만 사실 캐빈은 영화속에서 '태어날 때부터' 악인이었던 것처럼 묘사되죠. 그냥 아무 이유 없이. 그래서 캐빈 자체가 에바의 근원적 공포가 아닐까 싶었어요 :)
  • 목짧은기린 2013/04/15 10:07 #

    소설도 한 번 읽어보고 싶더라구요 ㅎ.ㅎ
  • 레비 2013/04/15 20:03 #

    오 소설도 있었군요..! 몰랐어요 ! 그럼 그 소설이 원작이겠죠? :) 궁금하네요 ㅎㅎ
  • alice 2013/06/02 01:16 # 답글

    제목만큼이나 보고나서 이야기가 필요한 영화인데 좋은 글을 읽게 되어 기뻐요^-^ 하하.장면 하나하나까지도 얘기할 게 많고... 직장동료도. 계란껍질도. 휠체어의 피해자도... 커튼의 실루엣 ...
  • 레비 2013/06/02 23:29 #

    좋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_^ 여러가지 이미지들이 많이있는 영화라 주의깊에 여러번 봐도 좋을 영화였어요. 전 이렇게 심볼들이 범람하는 영화를 그리 좋아하진않지만 ㅠ 그래도 의외로 괜찮은 영화였어요 :)

    아무튼 반갑습니다 ! 앨리스님 :)
  • alice 2013/06/03 00:03 #

    반갑습니다 레비님;-)
    최근까지 본 영화들 중 하나하나 따질 것 이아기할 것이 넘치는 영화인 것 같아요. 그래서 계속 리플레이 해서 보다가... 동네에서 남자애들을 봐도 잠깐 흠칫 ㅎㅎ 하게 되는 후유증이 있어 리뷰들을 더 읽고 있어요.
    제목을 참 잘 지은 영화. 라고 느꼈어요 하하 * We need to talk about. Indeed. ;-)
  • 레비 2013/06/04 09:48 #

    제목에서부터 케빈을 단순 싸이코패스로 치부하려는 시선을 경계하는듯해서 참 마음에 들어요 :) 저도 두번정도 본것 같아요. ㅎㅎ 무서운 10대들 ㅠ 요즘 동네에서 제일 무서운 애들이 교복입은 남자애들입니다 ㅠ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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