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팽글리쉬, Spanglish, 2004 Flims












감독 제임스 L.브룩스는 우리에겐 TV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으로 더 유명한 제작자이자 감독이다. 미국을 대표할만한 애니메이션 중 하나인 이 심슨 가족사가 미국 이민 세대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상기해본다면, 영화 <스팽글리쉬>의 연출자로서 제임스 브룩스의 이름이 그다지 어색하진 않다. 나는 아담 샌들러가 출연하는 영화에 일종의 편견을 갖고 있었다. 아담 샌들러식 코미디를 좋아하지 않을뿐더러, 무엇보다 코미디 영화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spanish와 english의 합성어를 제목으로 갖고 있는 영화 <스팽글리쉬>는 결론적으로 말해서 유치한 슬랩스틱 코미디도 아니고, 웃음이 목적의 대부분인 영화도 아니었다.








영화의 화자는 크리스티나(셀비 브루스)지만 주인공은 그녀의 어머니, 플로르 모레노(파즈 베가)다. 플로르는 남편 없이 혼자 어린 딸을 키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멕시코 여자다. 그녀는 어린 딸과 함께 미국에 불법 입국, 여타 다른 영화들 속에서처럼 라틴아메리카계 불법 이민자들이 미국내에서 하는 여러 가지 일들을 하며 생활비를 번다. 하지만 어린 딸, 크리스티나가 최우선 순위인 이 어머니는 돈도 벌고 동시에 딸을 돌볼 수 있는 환경을 찾기 위해 이내 L.A의 어느 저택 가정부로 들어간다. 전형적인 부유한 백인 부부의 모습인 클래스키 부부. 데보라 클래스키(테이어 레오니)와 존 클래스키(아담 샌들러)는 약간 엉뚱한 장모와 어린 딸과 아들과 함께 살며 휴가때는 바다가 보이는 고급 휴양지로 떠나 있을 수 있는 남부러울것 없는 백인 부부다. 하지만 주어진 일에 성실한 플로르와 그녀를 친절하게 대해주려고 애쓰는 존과 데보라 사이엔 언어의 장벽이라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영화는 일차적으론, 가장 겉으로 드러나는 언어의 차이를 제시하며 전개된다. 이민자와 본토인의 언어 차이는 피할 수 없는, 그리고 가장 처음 맞닥뜨리는 장애물일 것이다. 서로의 눈앞에서 대화하면서도 지금 이 사람이 내 말을 못 알아 듣는구나–싶은 독백 같은 대화. 하지만 겨우 뜻이 통했다 싶어도 그것이 잘못 이해되었다는 것을 실감했을 때나, 표현하고 싶은 바를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답답함이 이들에게 닥친다. 플로르가 처음 영어를 배우고 싶게끔 만든 계기는 이 미국인 가정 안에 좀 더 다가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부부의 어린 딸을 위해서였다.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가장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물론 언어이다. 하지만 플로르가 딸 크리스티나와는 달리 처음엔 절대 영어를 배울 생각이 없었다는 것을 상기하자면, 플로르가 미국에 와서도 마음을, 그러니까 멕시칸으로서의 그녀의 정체성이나 갖고 있는 신념을 절대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녀는 부모로부터 이해받지 못하고 훌쩍이는 어린 (그리고 뚱뚱한) 미국인 딸을 위해 영어를 처음 배운다. 그리고 그녀가 ‘우려했던 대로’ 영어를 배움으로서 플로르는 존과 데보라 부부, 그리고 그 미국인 가정에 더 스며들 수밖에 없게 된다. 따라서 언어의 장벽은 이 영화에서 그리 큰 문제로 다루어지진 않는다.







말이 잘 안 통하는 문제는 영화 내내 간헐적으로 지속되지만 영화가 다루는 주된 갈등은 의사소통의 문제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문화적 차이, 특히 미국이라는 타국에 들어와 살게 된 타문화권의 사람이 겪는 혼란이나 번민이다. 타문화권의 사람이란 물론 플로르와 그녀의 딸 크리스티나다. 아직 어린 크리스티나는 자신을 자식 마냥 대해주는 존과 데보라 부부의 호의와, 미국인 자녀들과 동등한 교육의 기회 등을 받은 것에 마냥 즐겁지만, 플로르의 눈에 딸의 그런 변화는 달가운 것이 아니었다. 사실 영화를 보다보면 플로르가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아무리 살기위해, 돈을 벌기위해 미국에 온 이민자이지만 그렇게까지 타문화에 경계하고 스스로 선을 그어야했는가. 물론 선을 긋는 것이 다른 여러 가지 초래될 문제들을 미연에 방지해주는 효과가 있긴했다. 존의 장난스러운 내기를 오해한 딸 크리스티나가 존에게 많은 용돈을 받았을 때에도, 진짜 딸이 질투할뻔할 정도로 크리스티나를 좋아라하는 데보라로부터 그리하지 못하게 만든 것도, 플로르의 뚜렷하고 확고한 주관 덕택이었다. 그렇게 서로 부딪히기도, 이해하기도 하면서 플로르와 미국인 부부는 거리를 좁힐 듯 말 듯, 한 지붕아래 있지만 여전히 타인이라는 것을 계속 상기하며 지낸다.







내가 흥미로웠던 것은 영화 후반부였다. 나는 마지막 감독의 선택을 굉장히 흥미진진하게 기다렸다. 영화는 줄곧 타문화간의 이해차이를 보여주었지만 이들을 결국 융합시킬 것인지, 어리석고 철없는 아내 데보라에게 받은 상처를 플로르를 통해 위로받는 불쌍한 남편 존이 결국 말이 안 통하는 멕시칸 여인을 품에 안을지 궁금했다. 또한 존의 변화만큼이나 플로르도 영화 후반부까지 오면서 변했다. 남편을 잃고 홀로 딸을 키우는 보수적인 이 멕시칸 여인은 존과 데보라 부부와 함께하면서 그들을 이해하려했고 그녀도 그녀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다. 영화는 갈수록 존과 플로르를 문화 차이의 극복이라는 미명하에 교감하게끔 하는 분위기로 보였다. 문화차이를(특히 미국과 소수 타문화) 그린 많은 미국 영화가 그렇듯이 결말은 대통합이나 화해로 마무리 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플로르는 소파에서 일어났고, 존은 깔끔하게 인정했다. 둘은 아내로부터 배신당한 남자와 남편으로부터 버림받은 여자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로르는 처음부터 고수해오던 가치관을 지켰다. 결국 그녀는 이 미국인 부부의 삶과 가정에 개입하지 않았다. 처음에 나는 이 결말이 조금 의아해했다. 결국 다른 문화는 서로 섞이지 못한다는 것일까 아니면 그런 것을 권장하고 있는 것인가. 처음부터 타인은 끝까지 타인이라는 매정한 뜻이었을까.








존과 플로르를 끝내 갈라서게 만들었다면 영화가 문화와 언어의 장벽을 초월한 교감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눈치챘어야했다. 그렇다면 플로르가 아닌 존의 입장에선 어떨까. 이민자인 플로르와는 정반대로, 잘나가는 요리사로서 사회적으로 성공한 남자다. 게다가 플로르와 크리스티나, 이 모녀의 눈에 이들 미국인 가정은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행복해보인다. 그러나 살짝만 들여다보면 화목해보이는 웃음안에 어딘가 문제 투성이라는 점을 우리는 플로르와 함께 발견해나간다. 서로 관심의 포인트가 다른 데보라와 존의 관계는 물론, 딸과 아들들에게 진정한 소통을 하지 못하는 이들 부부와 이 가정은 언제 터질지 모를 문제를 안고 있었다. 플로르와 크리스티나가, 이들 백인 가정의 어딘가 빠진 나사의 연결고리가 되어주거나 혹은 진통제가 되어줄 수도 있었지만 플로르는 존에게 마지막 순간 그들 모녀가 존의 가정에 도움을 줄 수 없음을 주지시킨다. 그덕에 존은 (일순간에 해결되진 못하더라도) 적어도 자신 가족의 문제로부터 도망치진 않을 수 있었고, 플로르 역시 처음 미국에 왔었을때와 마찬가지로 그녀와 그녀의 딸로서 계속 남게 되었다. 그렇게 둘은 서로의 가정으로 처음처럼 돌아간다.







이 영화가 실은 전부 크리스티나의 프린스턴 대학 지원 원서의 내용이라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크리스티나의 나래이션이 전개에 도움을 줄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며, 동시에 우리는 이 영화의 첫 대사중 하나에서, '가장 영향을 받은 사람'에 자신의 엄마를 당당히 써넣은 크리스티나를 알 수 있다. ("Most influential person, my Mother, No Contest !") 결국 최종적으로 이 소녀에게 자신의 엄마가 어떤 존재로 남게 되었는지를 생각한다면 이런 결말에 수긍하기란 어렵지 않다. 이야기의 마지막, 크리스티나는 미국인 부부를 떠난 플로르 때문에 대학교육의 기회를 놓쳤다며 원망했지만 사실 그녀가 지금은 프린스턴 대학에 원서를 쓰고 있다는 것 또한 알 수 있다. 처음 크리스티나처럼 플로르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로마에선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을 온몸으로 부정하려는 듯 한 플로르의 행동들은 고지식하고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영화 <스팽글리쉬>는 타문화와의 융합보다 그보다 이전에 우선시 되어야할 것이 근본을 잃지 않는 것임을 말한다. 이런 결론은 내겐 다소 의외로 다가왔고 이내 신선했다. 나는 외국생활이라고 말할만한 타문화권에서의 생활을 오래 경험해본 적이 없지만, 만약 내게 그런 기회가 온다면 언어는 물론이오, 섞이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무조건 권장되어야할 옳은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플로르의 행동들이 처음엔 부정적으로 보였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나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방심하고 있는 허점을 파고들어 일깨워준다. 자신과 다른 어떤 것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임보다 자기 자신을 확고히 하고 지키는 것이 우선시 되어야하는 점을.





* 지난 2월, 호주에 계신 퐁퐁포롱님께서 추천해주신 영화입니다. 감사합니다 ! XD













덧글

  • 진나이 2013/03/14 22:14 # 답글

    자기자 자신을 확고히 지켜야 한다는 말에 무한 감동 받았어요..!
  • 레비 2013/03/15 19:15 #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만 하는게 무조건 바람직하지만은 않음을 말해주는 영화였어요 :)
  • 2013/03/15 20:5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3/16 19:44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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