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크 크레이지, Like Crazy, 2011 Flims










롱 디스턴스 Long Distance. 일명 롱디 연애, 롱디 커플이라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서로간 긴 물리적 거리로 인해 떨어진 채 지속하는 연애 혹은 연인을 칭한다. 비슷한 생활반경은 연인 사이에서 꽤 중요한 조건중 하나다. 자주 못보면 마음이 멀어진다는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아도, 연인 사이에 놓인 긴 거리가 관계에 미치는 악영향은 본인이 직접 체험하지 않아도 누구나 충분히 예상할 수 있을 정도다. 유학, 이민, 출장, 파견 등 여러 가지 사유로 우리는 불가피하게 떨어져야하는 연인들을 주변에서 쉬이 볼 수 있었다. 바다 건너 외국까지는 아니었지만 나도 거의 매일 같이 만나던 연인을 두고 군입대를 해본 경험이 있어서 서로간의 물리적 거리가 얼마나 암담한 것인지를 체험해본 적이 있다. 어떤 연인들은 슬기롭게 이를 극복하는 반면, 또 어떤 커플은 먼 거리로 인해 마음이 멀어짐을 직접 경험하고 위기를 맞기도 하며 결국 이별을 초래하기도 한다.








드레이크 도리머스 감독의 2011년 영화 <Like Crazy(이하 라이크 크레이지)>는 이렇게 서로간의 사이에 불가항력적 물리적 거리가 놓인 이후, 변화하는 한쌍 연인의 사랑 이야기이다. 그러나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불구하고 불타는 사랑으로, 영화 제목 그대로 '미칠듯한' 중독적 사랑으로 거리감을 극복해내는 최루성 멜로 드라마라고 생각하면 완전히 오산이다. 영화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멜로 드라마가 가져야할 가장 큰 요인중 하나인 관객들의 공감을, 이 영화는 그 어느 영화보다 잘 이끌어낼 수 있다. 왜냐하면 영화에 동적이고 우연적인 사건의 내러티브 대신 오직 시간의 흐름에 따른 두 남녀의 감정변화가 주체가 되기 때문이다. 이들 사이에 놓인 돌발적인 사건은, 미국인 제이콥(안톤 옐친)과 영국인 유학생 안나(펠리시티 존스)가, 안나의 불법적 학생비자 기록 때문에 다음 휴가를 함께 못보내게 된 것이 거의 전부이다. 둘은 아름다운 한때를 보내지만 안나가 영국으로 돌아간 이후 다시 미국입국이 허락되지 않으며 둘 사이에는 대서양만큼 먼 심적 거리감이 생긴다. 이후 이들이 겪는 심경의 변화는 연인과 한번이라도 멀리 떨어져본 사람이라면 너무나 공감할 수 있을만한 전개를 따른다. 시차 때문에 오래 할 수 없는 전화통화, 서로 다른 직업과 사회활동이 눈에 보이지 않는 연인보다 더 우선시되는 행동양식, 연인이 없는 새로운 환경에서 만날 수 있던 새로운 이성들. 그에 따르는 상실감이나 알 수 없는 배신감. 그리고 거리감. 휴가때만 영국으로 찾아올 수 있던 제이콥은 안나를 만나지만 이들은 과거 함께 있었던 시간처럼 그저 행복으로만 가득찬 시간을 보내진 못한다. 함께 온기를 느끼지 못하고, 서로의 눈앞에 있지 못했던 그 시간 동안 자연스럽게 이들은 멀어졌었다. 그리고 잠깐의 휴가 기간이 그 공백을 다 메우기란 힘들다.







안나의 비자에 문제가 있다는 행정 절차는 이 둘을 계속해서 갈라둔다. 미국에서 가구 디자이너로서 자리를 잡은 제이콥과, 또 영국에서 잡지사 에디터로서 승진을 하던 안나는 서로가 어느 누구에게 선뜻 하던 일을 그만두고 나에게 오라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다. 서로의 자리에 서로의 일과 생활이 있는 이 롱디커플은 거리감을 극복하고 계속 잠깐씩의 연인 관계를 지속함이 힘들다는 것을 인식한다. 제이콥은 샘(제니퍼 로렌스 :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으로 이번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그녀가 맞다)이라는 새로운 여자를, 안나도 사이먼(찰리 뷰리)이라는 새로운 남자를 곁에 두지만 문자메세지나 전화 통화만으로 연결되어 있는 이들에게 이런 외도 아닌 외도는 일견 당연한 수순이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있어서 운명의 상대이자 반려자임을 의심치않았던 과거 행복했던 시간들이 무색하게도, 이들은 둘 사이에 놓인 거리라는 강력한 장벽 앞에 무력하다. 사실 또 이런 점이 영화 <라이크 크레이지>에 현실성을 가득 더해준다. 영화를 보다보면 재이콥과 안나, 어느 누구에게도 손가락질 할 수만은 없다. 그토록 사랑했던 연인과 떨어졌다고해서 금새 새 연인을 찾는 것이 물론 권장할만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토록 현실적이다.







HDSLR인 캐논 7D로 촬영된 이 저예산(제작비 25만 달러) 인디영화는 27회 선댄스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고, 이후 대형 영화사인 파라마운트사가 사들이기까지 했다. 선댄스 영화제의 취향을 반영하기라도하듯, 영화의 영상은 대단히 아름답고, 특히 시간의 흐름을 표현한 방식들이 너무나 좋았다. 이를테면 영국 공항에서 6개월간 제이콥을 기다리는 안나의 망부석같은 편집 장면이라거나, 이 둘이 첫 여름을 침대위에서만 함께 보내는 듯한 빠른 전환의 장면들. 게다가 영화에 삽입된 폴 사이먼의 노래라든가, 안나의 커플 다이어리, 제이콥의 수제 의자 등 눈길을 사로잡는 아기자기한 요소들이 많다. 비록 국내에는 극장 개봉하지 못한채 바로 DVD시장으로 직행했지만, 나는 이 영화가 국내 상영관에서 정식 개봉하지 못한게 여전히 아쉽다. 최근 몇년 사이에 개봉한 <500일의 썸머>, <우리도 사랑일까>, <블루 발렌타인>등 비슷한 성격의 영화들이 소수 매니아층을 형성한 것으로 미루어 짐작컨데 이 영화 <라이크 크레이지>도 정식 개봉했더라면 더 많은 사람들이 보고, 감정선을 공유했으리라는 아쉬운 상상을 해본다.







영화의 마지막, 나는 감독이 두 가지의 결말을 관객들에게 열어주었다고 믿는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제이콥의 그 표정에서 마무리 된 덕에 나는 이 둘이 마침내 미국에서 함께 살게된 결말이 마냥 행복한 해피엔딩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영화는 결국 우리에게 두 가지수로 읽힐 수 있다. "그렇게나 사랑했던 둘이 장거리 연애의 상흔들을 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먼길을 돌아 결국 다시 함께 곁에서 사랑하게 되었다"는 극복의 해피엔딩설과, "그렇게나 미칠듯 사랑했지만 둘 사이의 물리적 거리가 그것을 무색하게도 허무하게 변질시켜 버렸고 이제와 다시 함께한다 한들 그들은 과거의 추억에 기대어 있을 뿐 지금의 그들은 과거의 연인들이 아니다."라는 배드엔딩설이다. 샤워부스안에서 각자 상상하는 과거의 행복했던 기억의 파편들이 과연 이 중 어느 쪽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후자에 조금 더 무게를 실어보지만, 이는 보는 사람에 따라, 공감되는 영화의 부분에 따라 충분히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확실히, 과거의 아름다웠던 추억에 의지해 현재를 버텨내보려는 연인의 결말은 어딘가 공허하고 안타깝다. 장거리 연인들에게 던지는 씁쓸하게도 현실적인 영화 <라이크 크레이지>다.











+ 사실은 tumblr. 돌아다니다가 발견한 이 움짤(?!) 덕분에 찾아보게 된 영화.

















덧글

  • 2013/03/11 16:3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3/11 19:18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3/03/12 10:14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3/03/12 18:26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서주 2013/03/11 17:07 # 답글

    어.. 이 글 좋아요.
    레비님 리뷰포스트야 늘 알차고 세련되고 막 읽기만 해도 똑똑해지는 것같은 지적 충족감까지 주셨지만ㅎㅎ
    이 글, 유난히 좋아요.
    너무 건방진 소리지만^^;; 정말 갈수록 더욱 잘 쓰시는 것 같아요. 갈고 닦다보면 역시 느나봐요.(는 난 왜 그래ㅋㅋㅋ)

    첨 나왔을 때, 요 포스터만 슬쩍 보고 발사되는 달달 눈빛에 지레 겁먹고ㅋㅋ 볼 생각 안 했던 영화였어요.
    선댄스가 걸려있었지만 사랑 얘긴 막 빨리 보고싶고, 챙겨봐야겠고.. 그렇게 되질 않아서.
    하지만 둘 사이에 놓인 거리만큼 마음도 멀어지는 연인의 이야기, '서로 운명의 상대라 믿었던, 행복한 과거의 시간이 무색하게' 서서히 멀어지는 현실적인 이야기라니 막막 보고싶어졌어요. 묘사하신 결말도 무지 궁금하구요. '특히 시간의 흐름을 표현한 방식들'은 읽기만 해도 머릿속에 영상이 그려져요. 이 느낌대로 구현됐든 아니든 감각적인 몽타주에 환장ㅋㅋ하는 취향이라 얼른 보고싶네요.

    +
    마지막 스틸컷, 흔한 스푼자세가 없어서 더 좋음(?)ㅋㅋㅋ
  • 레비 2013/03/11 19:26 #

    헛헛 과찬 감사합니다 :D 작년 한해동안 일반 포스팅 빼고 이 카테고리에만 딱 95편 리뷰를 썻더라고요. 대충 3일에 한편씩 쓴 것 같은데 지금 추세로 보면 올해는 더 많이 쓸것 같아서 걱정이에요 -_-;; 그런데 많이 쓰다보니 느껴지는 건데요 ..ㅋㅋ 갈 수록 잘써지는게 아니라 그냥 잘 써질만한 영화가 따로 있고, 잘 안써지는 영화가 따로 있는것 같아요 ㅋㅋ 어떤건 보고도 한달 넘게 한문단도 못쓰고 임시저장 되있는가하면, 어떤건 딱 보고나서 할말이 너무너무 많아 술술 써서 30분만에 다 쓰기도 하고요. 이 영화는 후자였어요 ㅋㅋ 그래서 제 글이 영화마다 퀄리티가 다르다고 전 느낍니다 ㅋㅋ 겨우겨우 쓴 글은 다시읽어도 마음에 안들더라고요. 후딱 쓴 글이 대체적으로 더 마음에 들어요 ㅎㅎ

    전 포스터에서 두 배우의 눈빛보단 후광(?!)이 마음에 들어서 호기심을 더 자극했어요. 물론 맨 밑에 첨부한 저 짤방으로 처음 알게된 영화였구요 :) 보고나니 지극히 선댄스스러운(!) 영화더라고요. 저예산 인디 영화인데다가, 음악과 영상에 한껏 신경을 쓴..ㅎㅎ 영상면에서는 서주님 취향에도 충분히 만족하시리라 믿습니다. 전 영화 내용도 딱 제 취향이었어요 ! 전개부터 결말까지 ㅎㅎ
  •  R    2013/03/14 12:29 # 답글

    벨리타고 왔습니다. 리뷰 읽고 영화를 보고 싶어지는건 참 오래간만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 레비 2013/03/14 16:03 #

    예전엔 스포일러도 신경 안쓰고 영화리뷰를 막 썻는데, 이렇게 많은 분들이 보지 못했을 법한 영화를 쓰는데에는 가능한 내용은 적절히 숨기고 읽는 분들이 기대할만하게끔 추천하는 식으로 쓰게되네요 :) 감사합니다. ㅎㅎ
  • 지호 2013/03/14 17:40 # 답글

    이 영화... 첨엔 달달한 기분이었다가 나중엔 점점 너무 슬퍼져서 [?]...엉엉울면서 봤던 영화네요 ㅜㅠ 하...........
    갑자기 멜로가 엄청 땡길때 볼려고 아껴놨다가 Take This Waltz 하고 One day 하고 like crazy를 3일 연속으로 한편씩 봤는데 폭풍의 감정의 소용돌이를 헤쳐나가느라 힘들어져 버렸던 적이 있습니다 u_u*
  • 레비 2013/03/14 20:06 #

    저도 사실 처음엔 그냥 달달한 영화인줄로만 알고 봤어요. 그런데 가면 갈수록 전혀 아니더라고요 ㅎㅎ 그래서 더 몰입해서 볼 수 있었고 또 더 공감되기도 했어요.
    허허 골라보신 것들이 굉장히 감성적인 영화들이네요 ㅎㅎ 함부로 몰아볼 생각이 들지 않는 영화들이에요 ㅋㅋ
  • 2013/03/18 09:4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3/20 21:09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3/03/21 22:5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3/22 22:59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3/04/13 13:40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4/13 20:39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ㅇㅎ 2013/04/20 21:50 # 삭제 답글

    와우 리뷰 잘읽었어요 저랑 비슷한 엔딩을 생각하셨군요 저도 배드엔딩일거 같았거든요 ㅋ
  • 레비 2013/04/20 23:17 #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글루스가 비로그인 덧글달기 귀찮으셨을텐데 남겨주셔서 또 감사해요 :) ㅎㅎ 둘의 표정과 서로 반대쪽을 바라보고 회상하는 구도에서 앞으로 순탄치않는 결혼생활이 될거라며 끝나는것 같아요.
  • 랄라 2013/04/30 03:50 # 삭제 답글

    리뷰 잘읽었습니다. 공감하는 바가 많아서 댓글남깁니다. ㅎㅎ
    간만에 좋은영화 봐서 여운이 오래가는 밤이네요. ㅜㅜ
  • 레비 2013/04/30 04:00 #

    이 시간에 이 영화를 보셨다니 여운을 오래 느끼시겠는걸요 :) 저도 아주 좋아하는, 그리고 아끼는 소품같은 영화입니다 !
    네이버 블로그 쓰시면 여기에 덧글 달기 조금 불편하셨을텐데 감사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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