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버 렛 미 고, Never Let Me Go, 2010 Flims












<네버 렛 미 고>는 일본계 영국작가인 가즈오 이시구로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다. 국내엔 <나를 보내지마>라는 제목으로 출간된적 있다. 이 독특한 이야기에는 SF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소재, 복제인간들을 양산해내어 인류의 생명연장에 활용하고 의학적 도구의 재료로 사용되는 클론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런 '미래적'이야기가 오히려 과거를 배경으로 갖는다는 점이 이 소설과 영화의 첫번째 독특함이다. 70년대의 어린시절, 80년대의 성장기, 90년대의 20대. 영화를 굳이 3부로 나눈다면 이렇게 시간적으로 구분할 수 있다. 영화속의 90년대는 이미 이런 공상과학소설 같은 이야기가 현실화되고 보편화되어있는 세상이다. 하지만 복제인간들이 주인공이라해서 이 영화가 과학 발전의 비인간성에 대한 경고나 디스토피아적 미래의 풍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런 공상과학의 산물들이 주인공이지만 영화는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을 역설하고 있다. 일반 평범한 '인간' 남녀 주인공들을 데려와 말하지 않고 이런 특수한 상황에 놓인 비현실적인 20대 남녀들을 내세워 (영화엔 오히려 비중있게 등장하는 '정상인'들이 드물다) 말했다는 점이 영화의 두번째 독특함이다.










영화의 전반부, 헤일섬에서의 어린 시절은 복고풍의 의상과 소품들 덕에 더욱 괴기하고 심령스릴러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캐시(케리 멀리건)와 루스(키이라 나이틀리), 그리고 토미(앤드류 가필드)는 소꿉친구처럼 함께 자라고 성장한다. 왕따 소년 토미에게 먼저 손내민 것은 캐시. 이 둘의 풋풋한 첫사랑은 그러나 루스가 토미를 차지하면서 기억 뒤편으로 사라진다. 이들은 성장하고 헤일섬을 떠나 세상으로 나아가면서 자신들의 '임무'에 대해 받아들이고 배워간다. 그들은 세상 누군가의 복제로 태어난 의학적 재료이자 장기기증을 위해 '생산'된 클론들이라는 것. 그리고 적당한 나이, 20대가 되면 장기 적출을 시작하며 보통 세차례의 기증 끝에 목숨까지 내놓는다는 것이다. 그런 운명을 타고난 클론들인 캐시와 루스와 토미. 루스와 토미가 아슬아슬한 사랑을 계속하는 동안 그 두 친구의 뒷편에 서있는 캐시는 같은 기증자들의 마지막을 돌보는 간병인이 되기로 한다. 하지만 자신과 토미의 사랑이 진실된 것이 아니었음을 솔직하게 인정하게된 루스는 캐시에게 토미와 함께 조금이라도 생을 함께 할 기회가 될지도 모를, '장기 기증 유예'라는 희망을 심어주고 마지막 수술을 받는다.










복제인간들의 사랑이야기라는 이 낯선 이야기는 의외로 굉장히 잔잔하게 흐른다. SF적 분위기를 완전히 제거한, 수채화같이 따듯한 색감의 카메라는 이 10대 그리고 20대 남녀의 멜로 드라마를 더 따스하게 만든다. 캐리 멀리건과 키이라 나이틀리, <오만과 편견>에서도 함께 출연한적 있는 이 85년생 동갑내기 영국 여배우 둘은 상반된 개성으로 우정과 사랑의 기묘한 삼각관계를 형성했다. 오히려 이 둘의 연기에 앤드류 가필드가 묻히는 느낌마저. 특히 캐리 멀리건이 연기한 주인공 캐시는, 두 친구의 우정뒤에 사랑하던 소년에 대한 마음을 체념하고 물러선 뒤, 수년이 지나 우연히 재회한 루스가 자신을 용서해달라는 말을 듣게되는 그야말로 슬픈 사랑을 하게되는 주인공이다. 질투심에 캐시로부터 토미를 빼앗아간 루스. 그리고 그런 루스를 원망하지 않고 외로이 친구들의 뒤편에 서 있던 캐시. 이들의 '짧은 한정된 삶'에서 사랑은 그토록이나 짧다. 비로소 캐시가 토미를 곁에 두게 되었을때, 이미 토미는 마지막 수술만을 앞두고 있는 상태. 이들에게 남겨진것은 다가오는 짧은 생의 예정된 마지막과 기증유예라는 소문에 의지한 희망뿐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정상인들의 사랑도 아닌, 현실에 존재하지도 않는 복제인간들의 사랑 이야기일까. 이들 셋의 이야기는 그냥 평범한 인간들의 이야기로 말해도 크게 무리가 없어 보일 정도로, 영화에서 SF적 요소는 찾기 힘들다. 첨단 미래 의학이나 유전공학 기술등도 영화에선 보여주지 않는다(오히려 몇몇씬에서 볼 수 있는 것은 그냥 우리가 알고있는 90년대의 의학수준 그대로이다). 그렇다면 복제인간은 말그대로의 의미가 아니라는 결론이 가능하다. 영화 <네버 렛 미 고>를 이해하는 가장 빠르고 중요한 열쇠는 '왜 하필' 주인공 세명을 비롯한 영화속 세상을 그런 클론들이 존재하는 세계로 상정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영화가 제시하는 복제인간에 대한 설정을 되짚어보자. 특수한 목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생이 '남들에 비해' 제한적으로 짧다. 게다가 그들은 자신들의 죽음을 미리 예고받는다. 그런데 가장 이상한 점은, 이들은 수술대 위에 오르는 것에 도망치지도 저항하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사회적으로 통제 시스템이 잘 되어있어서 이들을 가축 키우듯이 키우는 것도 아닌데, 어느 누구도 태생적 운명으로부터 저항하거나 하다못해 불평이나 탓하는 대사조차 하지도 않는다. 마치 이들이 이렇게 태어난 것이 자연의 섭리인 것인양 이들은 바꾸려하기보다 주어진 삶 안에서 최선의 방법을 찾으려한다. 그리고 모두가 예상했듯이 기증유예 같은 혜택은 없다. 그렇다면 복제인간들의 삶은 우리네의 삶을 보다 더 짧게 줄여놓은 축소판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들은 천수를 누릴 수 있는 일반인들과 함께 살지만 그들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나 부러움조차 없다. 그렇다면 이들의 짧은 생과 그 속에서의 안타까운 몸부림, 토비의 절규 등은 모두, "우리의 짧은 삶에서 후회하고 사랑하는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것이 아닐까.





인생을 길게 잡아도, 우리가 인생에서 진정 불같은 사랑을 할 수 있는 시기는 언제일까. 10대? 80대? 아니면 평생? 물론 평생이라는 로맨틱한 대답도 있을 수 있겠지만 사랑에 눈뜨고 인생을 함께 할 사람을 찾는 시기는 보통 20대에 시작된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모두 그 20대의 끝자락에 삶이 마감되기로 '결정'되어있는 청춘들이다. 이들에게 사랑이 허용된 시간은 정해져있다. 감독은, 아니 이 이야기의 작가는 '우리보다도 더 짧은 생을 가진' 클론들을 대신 내세워 우리의 삶이 사랑에 솔직하고 적극적으로 살기만하기에도 터무니 없이 짧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런지. 캐시와 토미가 멀리 빙 돌아 다시 만났다해도 이미 모든 것은 너무 늦었을 때였다. 일말의 희망을 갖고 찾아간 헤일섬때의 마담에게서도 '유예'같은건 없다는 대답만을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이들의 운명이 그대로 '짧은 인생'을 상징한다면 이들의 모든것에 순종적이고 불만은 갖지만 저항하지 못함을 설명할 수 있다.





또 한가지 중요한 키워드는 영혼 soul이다. 헤일섬 시절의 어릴때부터 이들 복제인간들은 그림을 그리는 등의 창의력을 요구받았다. 그리고 그들의 그림은 사회밖 '갤러리'라고 부르는 곳으로 가 모아진다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 그림을 못그려 자신의 그림들을 갤러리로 보내지 못했던 토비는 그것이 '사랑을 증명하고 죽음을 유예받을 수단'이라고 생각해 성인이 된 뒤늦게나마 캐시와 다시 함께 하기 위해 그림을 대량으로 그리지만 갤러리를 찾아갔을때, 그것이 그림을 그리는 수단이 아닌, '복제인간도 영혼을 갖고 있음의 증거'로서 사용되었을 뿐임을 알았다. 창의력이 영혼의 증거가 되었고 어린시절 토비가 그것이 부족했음을 기억한다면, 그리고 성인이 된 이후 그림을 잘 그리게 되었다는 설정은, 어린 시절의 토비가 사랑에 눈을 뜨지 못해 눈앞의 캐시를 저버리고 루스와 미성숙한 연애를 시작했다는 것에 대한 설명이 될 수 있다. 성인이 되어, 다시 캐시를 만날 때까지 열심히 그림을 그렸지만 그림이 그들의 여생을 연장하는 수단이 되어주지 못하고 말았다는 것 역시, 앞 문단에서 설명했던 대로 짧은 인생에서 사랑에 대한 뒤늦은 후회는 무용하다는 것과 상통한다.



+

하지만 난 루스와 캐시의 사랑에 대한 상반된 태도를 보면서 이런 생각도 들었다. 세 주인공을 모두 실체가, 아닌 감정의 의인화로 보는 것이다. 제한되어 소진되는 감정을 이들의 남은 생명으로 본다면, 이들에게 닥쳐온 차례차례의 기증은 자신의 신체 일부를 떼어낼 만큼의 치명적인 소모이다. 토비와의 연애에서 가장 감정 소모가 심할 수 밖에 없게 묘사되고 또 가장 신경질적이고 감정 기복이 큰 루스가 몇차례의 수술에 상태가 금방 악화되고 셋 중 가장 먼저 죽음을 당하는 쪽 역시 루스였다. 그리고 사랑에 둔감했던 토비는 한두 차례의 수술 뒤에도 몸 상태가 아주 좋다고 한다(하지만 캐시와 진정한 사랑에 빠지고 그들의 희망인 기증유예가 실패하자 밤 도로에서 감정을 소진한 뒤 마지막 수술대에 오른다). 루스와 토비의 사랑 뒤에 물러서 사랑에 대한 감정을 억제하고 간병인으로서의 생활을 한 캐시는 셋이 모두 떠난 뒤, 가장 마지막으로 첫 수술을 받는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방식으로 이 영화 <네버 렛 미 고>를 받아들인다면 사랑이 곧 생명을 단축시키는 감정의 소모라는 말이 되어, 짧은 생애에 충실하게 사랑하라는 앞선 메세지와 충돌할까봐 소심하게 여기 이렇게 덧붙여둔다.

















덧글

  • tropos 2013/03/09 21:51 # 답글

    적어놓으신 대로 논리적으로 따라가기엔 줄거리가 치밀하지는 않았지만;ㅁ; 흐린 파스텔톤 풍경을 조용하고 차분하게 담은 영상이 여운을 남기는 영화였어요ㅎㅎ
  • 레비 2013/03/09 22:02 #

    그 때문에, 애초에 논리적으로 받아들이기를 원했던 영화 같지 않다는 느낌마저 받았어요 ㅎㅎ 영화에서 나오는 각종 공상과학적 설정들이 있는그대로가 아니라 어떤 상징과 은유로서 있는 느낌이라 이해와 설명을 요구하기엔 무리가 있는 영화같더라고요 :) 그런데 제가 저런 영상들을 좋아해서 그런지, 참 기억에 오래 남는 영화였어요. 전반부 헤일섬에서의 어린시절 파트는 영국고전극을 보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어요 ㅎㅎ
  • tropos 2013/03/10 23:12 #

    아, 받아들이기를 원치 않았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다른 영화는 잘 모르겠지만 2011년 영화 제인에어에서 묘사된 기숙사 장면과 헤일섬 장면이 비슷한 느낌이에요ㅎㅎ
  • 레비 2013/03/11 02:07 #

    영화가 논리적 설명을 일부러 외면하거나 회피하려들면, 전 우리도 그 영화에게 굳이 설명을 요구하지않는 것이 일종의 예의(?!)라고 생각하거든요 ㅋㅋ 그래서 가끔 '말이 안되는 영화 = 이상한 영화' 로 치부하는 사람들이 이해가 안되기도하고...

    키이라 나이틀리가 영국시대극에 자주 출연해서 그런지 더 그런 느낌이 강했어요 :) 키이라 나이틀리의 아역도 키이라를 은근히 닮아서 신기했구요 ㅎㅎ
  • 루이 2013/03/09 23:32 # 답글

    작가는 일본작가가 아니라 일본계 영국작가지요.
  • 레비 2013/03/09 23:34 #

    오 그랬군요. 사실 제가 소설을 읽어본게 아니라서.. ㅎㅎ 수정하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
  • 2013/03/11 20:4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3/12 18:48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3/03/12 02:1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3/12 18:49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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