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 다크 서티, Zero Dark Thirty, 2012 Flims





오늘 개봉한 영화에 대한 글을 쓰는데에 있어서 스포일러가 가능한 없도록 쓰는 것은 당연하지만, 사실 우리는 모두 이 영화의 결말을 알고 있다. 미국은 2011년 5월 1일과 2일로 넘어가는 자정 사이에 알카에다의 수장으로서 그토록 원했던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했다. 911테러 이후 정확히 10년만이었다. 그 10년 사이에,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을 공습하고, 이라크의 후세인을 끌어내렸다. 하지만 그들에게 오사마 빈 라덴은 없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테러리스트가 된 빈 라덴은 그가 자행했다고 '믿어지는' 테러행위들과 간간히 공개되는 좋지않은 화질의 성명 비디오 속에만 존재하는 듯했다. 산악지대 동굴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 그간의 일반적 통설이었다. 2011년 그날, 나는 TV뉴스로 빈 라덴이 사살되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허무했다. 전쟁의 빌미가 될 정도의 거물을 잡는데 아무 소식도 예고도 없이, 그것도 산악지대 동굴 속이 아닌 파키스탄의 어느 도시에서 즉결 사살했다는 것이었다. 조금은 뜬금없었다.


몇시간전, 00:30분에 나는 영화관에 앉아 <제로 다크 서티>를 보고 있었다. 영화 속에서 이 영화의 제목에 대한 암시는 순간 지나가는 작전 개시 시간, 00:30이라고 적힌 작전실안의 빨간 디지털 시계뿐이다. '제로 다크 서티'는 하루 중 가장 어두운 시간, 침투작전이 용이한 그 시각인 00:30을 칭하는 군사용어라고 한다. 스포일러를 최대한 자제하며 <제로 다크 서티>를 말하자면, 이 영화는 그날 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재현해 놓은 첩보 전쟁 영화가 아니다. 2시간 40여분이나 되는 상영시간의 하일라이트는 물론 후반 40여분의 '그 날 밤'이 맞지만, 사실 앞선 두 시간은 (줄리 델피가 많이 겹쳐보이는) 제시카 차스테인이 연기한 주인공, 마야가 수년의 시간을 오직 하나의 목표만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과정에선 빈 라덴의 이름보다 그의 최측근의 이름이 더 자주 거론되며, 이 당돌한 CIA 여장부는 홀로 세상과 맞선다. 그녀는 목숨의 위협을 받고, 동료들을 잃고, 의지를 시험받으면서도 꿋꿋하게 나아간다. <제로 다크 서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이런 점이다. 모두 빈 라덴이라는 같은 목적을 갖고 있는 CIA의 동료 남자들도 60%라며 꼬리를 내릴때, 혼자 당당히 100%라고 외칠 수 있는 신념과 자신감. 마야가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한 최초의 여성 감독이자 이 영화<제로 다크 서티>의 감독, 캐서린 비글로우의 페르소나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이 마야라는 캐릭터에겐, 작전과 임무 이외의 다른 정보가 없다. 여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가족 관계나 임무 밖의 삶, 심지어 그녀를 그토록 초인적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원동력마저 영화는 구체적으로 제시해주질 않는다. 그녀는 영화 시작과 동시에 임무를 부여받았고, 영화의 마지막 순간 임무를 완수한다. 하지만 이 영화의 진정한 마지막은 그녀가 빈 라덴의 시체를 확인하고 모든 짐을 내려놓은 듯한 표정을 짓는 지점이 아니라, 그 다음에 이어진다. 나는 그 마지막 단 몇분에서 앞선 150여분간 보여준 마야의 격앙되고 굳은 표정들을 모두 내려놓을 수 있었다. 영화를 보실 분들을 위해 여기까지. 마지막 장면은 꼭 영화관에서 확인하시면 좋겠다.


이 영화를 영화관에서 봐야할 이유는 사실 더 있다. <제로 다크 서티>는 작품상을 포함하여 아카데미 5개 부문에 올랐지만 정작 받을 수 있었던 상은 음향편집상 하나였다. 영화는 시작부터, 아무런 영상도 없이 '소리'가 영화에서 관객들에게 주는 영향을 제대로 이용하려는 듯하다. 그 익히 알려진 '비행기 WTC 충돌영상' 없이도 오직 소리만으로 인상적인 오프닝 시퀀스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후반 40여분의 작전은 가장 어두운 시간에 이루어지는 잠입작전이니만큼, 소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다. 이외에도 영화는 깜짝 놀래킬만한 사운드로 번번히 나를 긴장시켰다.


하지만 영화 <제로 다크 서티>를 향한 아쉬움도 물론 있다. 영화는 현재도 논란이 되고 있을 정도로 상세한 르포와 재현으로 911 이후 가장 '적나라한' 영화 중 하나가 되었다. 911 테러 이후, 헐리우드에선 마치 신드롬처럼 대테러 공포증과 미국의 불안 심리를 영화들 속에 반영해놓곤 했지만 오사마 빈 라덴이 이토록 직접적으로 거론되고, (오바마 정부의 최대 업적이라 불리는) 빈 라덴 사살과 관련된 작전 기밀들, 그리고 포로 고문 논란들을 거침없이 다룬 영화는 내 기억에 없었다. 물론 영화는 그만큼의 사실성과 긴장감을 주는데 성공했다. 후반부 작전 도중, 야간 투시경으로 보여지는 시선들은 마치 실제 자료화면과 같은 느낌마저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이렇게 거대하고 도전적인 영화의 소재가 오히려 제시카 차스테인이 열연한 마야라는 개성적인 주인공이 영화를 통해 보여주려는 메세지를 희석시켜 버리거나 혹은 우리의 시선을 그녀로부터 잡아 끌어가버린다. 음 글쎄. 나는 빈 라덴 암살 작전이라는 것보단 오히려 마야라는 캐릭터에게 더 흥미를 받았기 때문에 이 점을 아쉬워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빈 라덴 암살 작전이라는 것은, 게다가 캐서린 비글로우의 전작이 <허트 로커>였다는 점을 기억한다면, 유사한 장르영화의 팬들에게 이는 분명 매혹적인 이끌림이다. 하지만 <제로 다크 서티>에는 빈 라덴 암살작전의 비하인드 스토리, 그 스토리를 자신의 이야기로 만들어낸, 남성적인 세계 안에서 홀홀단신으로 자신을 믿고 의지를 불태우는 한 여성의 도전과 회환도 있다. 이 두 가지 버무림의 비율이 적절했던 것인지에 대해선 나는 여전히 회의적이지만, 확실한 것은 영화 <제로 다크 서티>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전쟁과 국가의 비화를 가져오고도, 개인의 깊이있는 심리 스릴러 같은 느낌을 우려내는데에 동시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정말 볼 만한 영화다.




* 영화를 보고나니 같은 빈 라덴 암살 영화를 주제로 다룬 <코드네임 제로니모>와 이 영화 <제로 다크 서티>가 앞으로 자주 비교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나는 국제적으로도 논란중인 <아르고>와 이 영화를 비교하는 편이 더 재밌을 것만 같다. 두 편 모두 911 이후 무슬림 공포증에 시달리는 미국의 시선이 짙게 반영되어 있는 영화가 아닐런지. 이제 막 국내개봉한 영화이니 만큼, 앞으로 누군가 써주시길 바란다.







+

이쯤에서 다시 듣고싶은 에이미 포엘러의 2013 골든글로브 시상식 때의 오프닝 조크.












덧글

  • 2013/03/08 06:0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3/08 06:29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에릭지 2013/03/08 08:12 # 삭제 답글

    제로니모는 그냥 삼류 액션영화수준입니다
    그냥 무시하셔도 괜찮아요
  • 레비 2013/03/09 00:53 #

    그렇군요 ㅎㅎ 사실 제게 흥미있는 장르도 아니고 평도 좋지 않아서 아예 보질 않았는데, 비교 자체가 힘들정도로 망작인가보네요 ^^;
  • 킨키 2013/03/08 08:44 # 답글

    제로니모는 태생부터 NGC다큐멘터리예요
  • 레비 2013/03/09 00:54 #

    아 그렇군요 :) 영화를 보다가 갑자기 '제로니모'를 잡았다는 대사가 나와서, 어디서 들었더라? 싶었어요 ㅋㅋ
  • deepthroat 2013/03/08 09:29 # 답글

    뭐랄까.. 영화 찍는데 빈라덴이 잡혀 버려서-ㅅ-...그랬다고 하더군요.

    저도 밀덕후;;;의 입장으로 마지막 빈라덴 사냥; 장면을 기대 했는데, 역시 비글로우 누님의 한수는 그게 아니었더군요..
  • 레비 2013/03/09 00:55 #

    2시간 40분여분의 상영시간의 마지막 그 40분은 정말 괜찮았어요. 특히 밀덕(..)분들께서 좋아하실만한 요소들도 많았잖아요? ㅎㅎ 전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들을 즐겨보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딱 봐도 이건 잘만들었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앞선 두시간에 따라서 지루해하는 관객분들도 많으셨을듯..;
  • 2013/03/08 11:2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3/09 00:58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킨키 2013/03/09 01:02 # 답글

    첨언하자면 이 영화는 아는만큼 더 재밌게 즐길 수 있지 않나 싶어요
    미국의 영화들은 특히 그런면이 두드러지는듯...
    대략 망하는 영화도 그런점을 파고들면서 보면 꽤 재밌는게 많죠
  • 레비 2013/03/10 19:46 #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들일수록 더욱 그런것 같아요 ! :) 아르고도 그랬고 이 영화도 미리 보기전에 좀 사전정보를 알고봤는데, 역시 아는 만큼 득을 보는 것 같습니다 ㅎ
  • 2013/03/24 23:22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3/25 03:07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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