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 계, Lust Caution, 2007 Flims









<색, 계>라는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 '계략' 할 때 쓰이는 계'計' 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제목의 색계는 욕망을 이용한 계, 나아가 '색'이라는 단어와 탕웨이의 캐스팅을 감안해보자면 역시 '미인계'를 의미한다고 지레 짐작했었다. 하지만 이게 왠걸. 영어제목은 Lust, Caution이었다. 그렇다면 그 계는 計가 아니라 '경계'함의 그 계'戒'였다. 그러나 내가 정작 영화의 제목에서 놓쳤던 것은 '색'도 아니고 '계'도 아니었다. 바로 이 두 단어 사이에 놓여있는 쉼표 하나. 영화는 '색계'가 아니라 '색과 계'였다. 이안 감독의 영화 <색, 계>는 욕망과 경계가 그렇게 동등하게 놓여있는 영화다.







액자식이라고 말해도 좋을 만큼 영화는 현재(1942년)에서 시작하여, 과거(1938년)로 회상해 들어갔다가 다시 현재로 돌아와 끝까지 진행된다. 40대 초 현재는 상하이, 30년대 말 과거는 홍콩이 배경이 된다. 2차대전의 전란에 중국이 일본의 통치하에 있던 시기, 중국 학생들의 항일운동이 이루어지던 시기다. 대학 연극부 활동으로 자신의 '연기' 재능과 동시에 연극으로 대중의 마음을 흔드는 것에 깊은 인상을 받은 여학생 왕치아즈(탕웨이)는 연극부로 위장하고 있는 급진적 항일학생단체에 들어가게되고, 친일파 간부 '이(양조위)'를 암살할 작전에 참여하게된다. 막부인으로 신분을 위장한채 이의 부인(조안첸)에게 접근, 최종적으로 이의 신뢰를 얻어 암살 기회와 정보를 캐내는 막중한 임무를 받은 왕치아즈는, 그러나 지나치게 신중하고 경계심많은 이에게 접근하기가 쉽지않다. 연극부의 리더이자 자신이 사랑한다고 믿었던 선배 광위민(왕리홍)을 바라보며 버티고 버티던 나날. 자신에게 욕정을 품은 이에게 더 쉽게 다가가기위해 순결을 바치는 것도 서슴치 않지만 작전은 이가 상하이로 떠나면서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채 무산되고 만다. 그리고 3년뒤 다시 막부인이 되어 장관이 된 이의 암살작전에 참여해달라는 광위민의 청을 거절하지 못한 왕치아즈는 이와 재회한다.







영화 <색, 계>의 매력은 이상하리만큼 빨려드는 몰입도에 있다. 그것은 긴장감을 놓을 수 없는 위험한 밀애, 목숨을 건 작전의 일부로서 그들의 사랑이 펼쳐진다는 점에서 찾을 수도 있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두 주인공, 이와 막부인의 본심이 영화 종반부까지 명확한 답을 드러내주지 않기 때문이다. 주인공들의 심리를 보는 우리들마저 제대로 파악이 힘들기에 우리는 둘의 본심을 읽어내기 위해 영화에 빨려들기 쉽다. 나라를 위한 애국과 선배와의 사랑을 뒤로하고 작전이라는 이름하에 거짓신분으로도 이와 불륜, 아니 사랑을 나누는 왕치아즈의 모습은 어디까지가 연기였고 어디서부터 이 여자의 마음이 바뀌었는지 명확하게 선이 그어져있지않다. 방향은 정해져있지만, 그녀의 혼란스러운 마음은 아주 서서히 물들어가듯, 어느 기점을 두고 말하기 힘들만큼 미묘하게 바뀌어가는 감정선을 가진다. 우리들은 마작판 위에서 오가는 눈빛 교환에서, 거칠었던 첫 섹스에서, 밀애후 연극부의 아지트로 이를 유혹할지 말지 망설이는 순간에서, 광위민에게 혼란스러운 마음을 털어놓는 극장 뒤의 그녀에게서, 어디에서든 그녀의 혼란스러운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영화의 클라이막스, 반지를 선물받은 그녀가 이에게 달아나라고 속삭이는 그 마지막 순간에 와서야 사실상 그녀는 '처음으로' 그녀의 속마음을 결정했다. 영화는 내내 이렇게 어느쪽도 결정하지 못한 그녀의 마음이 그녀를 지배하고 있다.







이 장관 역시 속내를 우리에게 드러내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다. <대부>의 말론 브란도를 연기의 모티브로 참고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양조위는 왕가위의 영화들에서 보여준 모습에 비해, 이안의 영화에서는 또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화양연화>때 보여주었던 장면을 겹쳐보이게 만들만한 몇몇씬들이 있긴하지만 그는 이번엔 엄연한 '악역'이다. 친일파 고위간부로서의 그는 감정을 숨기고 자기안위에 철저하면서도 동시에 음흉하거나 비열해보이진 않아야했다. 왜냐하면 그도 역시 왕치아즈와 마찬가지로 감정의 흔들림을 겪고 그것을 드러낼듯 말듯 표현해야했기 때문이다. 주변의 모든 이들을 의심하는 이 위험인물은 접근해오는 왕치아즈, 아니 막부인의 육체를 탐하면서도 경계를 풀지 않는다. 그러나 차츰 아내를 대신한 외도에 그의 경계심과 호위망은 느슨해져간다. 하지만 문제는 왕치아스의 증오심이나 본연의 목적조차 해이해져 간다는 것. 사랑해서는 안될 두 사람이, 오히려 서로를 죽여야하는 두 사람이 '색'에 빠져 '계'를 잊었다. 아니, 어쩌면 이 순간부터 '계'는 '색'이 되어버리고 말았던 걸까. 








이 영화 <색, 계>는 카마수트라를 연상시킬만큼 장황하고 적나라한 그 섹스씬으로 화제와 구설수에 오르내렸던 영화다. 영화의 성애묘사가 지나치게 길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색'의 부족한 면을 채우기위해 그렇게 긴 쇼트를 정사씬에 할애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장관과 막부인의 섹스장면은 처음부터, 그리고 갈수록 격정적이고 격렬하다. 서로에게 아무런 솔직한 말도 털어놓을 수 없는 둘의 심적관계를 변화시킨 원인에 마치 육체적 욕망이 자리잡고 있기라도 한다는 듯. 영화의 섹스신은 마치 '일부러' 격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달콤한 말이나 사랑스러운 시선으로 애틋함을 키워나가는 것이 허용되지 않은 그들의 유일한 표현방법은 오직 그뿐이 아니었을까. 영화의 거칠고 적나라한 성애장면들을 변호하자면 그렇다.

왕치아즈가 마지막에 동료들을 포함한 자기 스스로를 죽임으로서 이장관을 구해줄때 흐르는 눈물은, 자기네들이 풀어놓은 덫에 오히려 사랑을 느껴버리고만 자신의 굴복에 대한 비애도 일부분 스며들어있었지 않았을까. 진정 원하는 사랑으로부터는 버림받은 느낌의 왕치아즈에게, 정작 증오해야할 이장관은 사랑이라는 이름의 굴복을 하기에 너무나 쉬워서 위험한 남자였다. 한 사람을 사랑하면서 동시에 그 사람을 증오한다는 것은 어떤것일까. 아니, 반대로 말했다. 증오해야 마땅한 사람에게 사랑을 느껴간다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일까. 감히 짐작조차 어렵다. 나라를 위한 대의와 사적인 감정의 차이라며 칼 가르듯 자를 수 있다면 말이야 쉽겠지만, 이것을 애증이라는 단어로 치부하기엔 너무나도 약하다. 둘중 한명은 목숨을 내놓아야하는 마지막이 기다리고 있는 사랑. 이루어질 수도 없고, 이루어진다는 선택지가 아예 처음부터 제외되어버린 채 시작한 관계가 사랑을 품어버림으로서 비극이 되었다.





























덧글

  • 옥탑방연구소장 2013/02/27 16:10 # 답글

    탕웨이의 연기가 참,,,,, 대단했죠....
  • 레비 2013/02/28 04:46 #

    양조위도 대단했지만 역시 이 영화는 탕웨이인것같습니다 :)
  • 2013/02/27 18:42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2/28 04:47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까만별 2013/02/28 01:58 # 답글

    왜 이런 영화가 노출수위로 유명해졌는지 모르겠어요. 정말 괜찮은 영환데.
  • 레비 2013/02/28 04:47 #

    단지 노출수위만으로 유명세를 탈 영화가 아니었는데 ㅠ 아쉬워요 ㅎ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이 이글루를 링크한 사람 (화이트)

375

통계 위젯 (화이트)

1719
126
917993

웹폰트 (나눔고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