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인, Nine, 2009 Flims









니콜 키드먼, 마리온 꼬띠아르, 페넬로페 크루즈, 주디 덴치, 케이트 허드슨, 소피아 로렌. 그리고 다니엘 데이 루이스. 이런 꿈의 캐스팅이 현실이 된 영화 <나인>은 <시카고>라는 뮤지컬 영화로 아카데미를 석권한 롭 마샬의 '차기' 뮤지컬 영화라는 점에서 도통 실패할 여지를 찾기가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시카고>의 명성, 그 이상의 업적에 그만 발을 헛디딘 것일까. 롭 마샬의 이 새로운 쇼는 규모는 배로 늘렸지만 재미는 배로 감소시켰다. 화려한 여배우들의 캐스팅이 쇼를 더 멋지게 만드는 것은 아니었다. 살짝 화도 났다. 이 정도 여배우들을 한 영화에 모아놓고도, 결국 너무 몸집이 거대해진 쇼는 제대로된 한번의 무대가 아닌, 개개인 따로따로 솔로곡들의 나열일 뿐이 되었다. 여덟명 여배우 각자의 개성을 강조한 무대들은, <시카고>에서 보여준 캐서린 제타 존스와 르네 젤위거 한번의 앙상블 무대조차 이기지 못했다. 다만 다니엘 데이 루이스만이 리차드 기어 못지 않게 선전했을 뿐. (하지만 그마저도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연기는 귀도라는 주인공 캐릭터와 영화 분위기에 발맞추려는듯 오히려 '그답지 않게' 힘을 뺀 모습이었다) <나인>은 <시카고>의 성과에 가려지다못해 최소한의 기대마저도 미치지 못하고 말았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게 없다는 말이 잘 어울리는 영화다.






하지만 못해도 영화는 절반은 간다. 감독, 배우들의 이름 값들은 영화를 가만히 놔두어도 절반은 굴러가게 만들었다. 데뷔작이나 다름없던 <시카고>로 뮤지컬 영화의 새로운 역사를 썼던 롭 마샬은 전작보다 더 화려해진 명배우들의 지원을 등에 업었고, 배우 개개인들 역시 배우보단 싱어로서 카메라 앞에 섰다. 페넬로페 크루즈나 퍼기의 섹시한 무대와 니콜 키드먼, 마리온 꼬띠아르의 발라드. 주디 덴치와 케이트 허드슨의 경쾌한 넘버는 영화를 따라가다가도 매 무대마다 자세를 고쳐잡고 기대하게 만든다. 사실 이렇게되면 뮤지컬 영화라는 한계를 일찍이 인정하고 우리는 스토리를 어느 정도 포기해야한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라는 청일점이 극을 이끌고 있다는 점은 이 영화가 버티고 서있는 최후의 보루가 된다. 성공한 영화감독 마에스트로 콘티니, '귀도'를 연기한 그는 단순히 바람둥이 캐릭터가 아니라, 영감이 떠오르지 않아 고뇌하고 그러면서도 허영과 욕구를 포기하지 못하는, 방황하는 공인의 어두운 내면을 화려한 여배우들 사이에서 홀로 표현한다. 영화는 이 귀도(다니엘 데이 루이스)라는 남자 주인공들과 많은 히로인들을 마치 여자관계 복잡한 남자의 반성과 후회의 드라마일 것 처럼 시작하지만 사실 예술을 만드는 자가 겪는 창작의 고통과 뮤즈에 대한 추상적 갈망이기도 하다. 그에게 뮤즈란 과거 오디션 자리에서 첫눈에 반해 정말 그녀를 뮤즈로 삼아 대 성공한 영화를 만들 수 있게 해주었던 자신의 아내 루이자(마리온 꼬띠아르)다. 그러나 아내에 대한 애정이 식은 그에게 영감은 더이상 찾아오지 않고,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찍어야할 차기작은 제자리 걸음을 걷는다.







그런데 아무리 좋게봐줘도 극의 연결고리가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다. 그것은 창작자의 고뇌와 영감의 부재를 곧 사랑의 부도덕함이나 개인의 무절제함과 직결시켰다는 점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각본을 가져다 쓴 영화, 게다가 그 각본이 영화 개봉 1년전 안타깝게 사망한 영국 감독 안소니 밍겔라의 손에 의해 만져져 유작의 분위기가 난다는 점이 나를 더 실망케했다. 그는 필모그래피는 짧지만 그 안에는 <잉글리쉬 페이션트>, <콜드 마운틴>, <리플리>같은 내가 좋아하는 유효타들이 많은 감독이었기 때문이다. 아내의 진정한 사랑을 깨닫지못하고 밖으로 떠도는, 욕망의 절제를 모르는 남자가 벌을 받기라도 하듯 자신의 잘못을 뉘우칠 때까지 창작자으로서의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능력을 봉인받는다는 설정은 아무리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한 영화라지만 그러려니하고 넘어가기 힘들다. 차라리 주변 인물들을 줄이고, 좀 더 영화 감독으로서의 귀도가 자신의 뮤즈인 아내 루이자의 소중함을 망각하고 다시 깨우쳐가는 과정에 집중했더라면 고뇌와 고통을 표현하는데 더 수월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이 롭 마샬이 영화 <나인>에서 악수만 둔 것은 아니다. 그가 이 영화를 가장 그답게 만든 부분은, 불필요할 정도로 많은 인물(특히 여자들)이 등장했다 사라져야하는 영화에서 분량의 배분과 주어진 솔로곡들이 매번 자기 소개처럼 되는 것을, 아예 많은 부분 귀도의 판타지로 대신한 것이었다. 즉 상황 전개의 중간중간에 주요한 메세지 부분을 노래로 변주한 뮤지컬 영화들을 그대로 답습하기보단, 귀도가 앞에 있는 여성을 두고 상상하는 모습을 실제 그 배우들이 노래와 퍼포먼스로 대신 하고 귀도는 그녀들의 무대를 지켜보는 것이다. 많은 캐릭터들이 하나씩 나와 자기중심의 이야기를 하는것이 아니라, 등장인물이 많아 노래를 부를 사람들도 많을 수 밖에 없는 영화를 차라리 주인공 귀도 한명의 시선과 생각으로만 처리한 것이다. 그래서 여성들이 부르는 노래는 대부분 귀도의 속마음이거나 아니면 귀도에게 직접적으로 전하는 그녀들의 메세지다. 다행스럽게도, 영화는 이런 점 덕분에 많은 캐릭터들의 시간과 분량을 낭비하지 않을 수 있었다.






이탈리아를 무대로 하고 있는 이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국가 대항전이라도 하듯 굉장히 다국적이라서 더 재미있다. 루이자 역의 마리온 꼬띠아르는 프랑스, 페넬로페 크루즈는 스페인, 주디 덴치는 영국, 소피아 로렌은 이탈리아, 케이트 허드슨은 미국. 게다가 이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모습으로 등장하는 니콜 키드먼은 호주 출신이다. 영화 배우라고 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는, 랩힙합 그룹 블랙아이드피스(The Black Eyed Peas)의 보컬, 퍼기의 무대는 역시 본업에 충실하게도 가장 인상적이었다. 이외에도 엔딩 시퀀스에 또 한번 삽입될만큼 신나는 곡은 케이트 허드슨의 몫. 마리온 꼬띠아르의 두번째 넘버에선 언뜻 에디뜨 피아프가 보이기도 했다(<라 비 앙 로즈>). 이 여배우들 사이에서 어린편에 속하는 페넬로페 크루즈는 귀엽고 투정부리는 철없는 정부 역할로 등장, 가장 섹시한 무대를 연출한다. 하지만 이 많은 스타들이 한 무대에 서는 것은 오직 오프닝 시퀀스 이외엔 없다는 점이 역시 제일 아쉬운 부분이다. 꿈의 캐스팅 라인업을 구현하고, 개개인 배우들에게 마음껏 노래 부를 무대를 마련해주었지만 이것들이 한 영화로서 묶여졌을 때, 바로 그 영화라는 점이 오히려 제 살을 깎았다. 영화라는 것을 잠시 잊고, 한 편의 쇼로서, 그녀들의 무대를 지켜보는 관중으로서만 만족해야했던 영화 <나인>이었다.




















덧글

  • 옥탑방연구소장 2013/02/21 15:38 # 답글

    블루레이로 나온다는 소문이 있던데, 일단은 구매해서 봐야겠네요....스토리는 역시나 무시해야되는 작품인가보군요 ^^ 그래도 보통이상은 하겠죠 ^^
  • 레비 2013/02/22 13:42 #

    브로드웨이 원작 뮤지컬이 있다곤하는데 전 사실 영화로 처음 알았어요. 그런데 영화를 보고나니까 원작 스토리라인을 좀 보고 비교해보고싶기도하네요 ㅎ 배우빨(?!)로 보기에도 충분한 영화입니다 ㅋㅋ
  • 이담 2013/02/21 15:52 # 답글

    여배우가 많이 나와서 눈이 행복했던 영화로 기억나네요. 니콜키드먼이 여신이었던... 보고나서는 두시간짜리 뮤직비디오인가 했지만요. 예쁜 여자들이 계속 나와 즐겁게 봤네요.
  • 레비 2013/02/22 13:43 #

    아 예쁜 아이돌 좋아하시는 이담님! ㅋㅋ 정말 화려한 여배우들이 많이 나와서 눈이 즐거운 영화였죠 ㅎㅎ 남자인 저 역시 그건 부정할수 없..*-_-* 저야 마리온 꼬띠아르 빠돌이인지라.. 허헛. 근데 니콜 키드먼 정말 너무너무 예쁘게 나왔어요 :)
  • 잠본이 2013/02/21 20:31 # 답글

    영감이 안 떠올라 계속 도망다니며 스케줄 엉망으로 만드는 귀도를 보며 시밤바 저런 상사 밑에서 일하면 진짜 죽을맛이겠다 라는 엉뚱한 생각만 떠올랐죠(...)
  • 레비 2013/02/22 13:44 #

    허허 귀도 밑에 따르는 제작사에서 나온 사람도 그렇고, 디자이너역의 주디 덴치도 그렇고 참 모두 인내심이 대단하더라고요. 심지어 귀도가 휴양도시로 도망나오자 영화 제작자 전체가 그가 도망친 곳으로 따라오는 건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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