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얼티메이텀, The Bourne Ultimatum, 2007 Flims








<본 얼티메이텀>은 이상한 히어로 영화다.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이 영화가 다른 헐리우드의 전형적 히어로 영화들과 같은 선상에서 비교되고, 또 비슷한 호평 속에서, 그에 상응하는 흥행을 거둔 뒤, 결국 성공적인 시리즈의 완결판이 되었다는 것이다(제레미 레너의 본 시리즈는 그의 몫으로 남겨두자). 2002년 <본 아이텐티티>부터 04년 <본 슈프리머시>를 거쳐, 07년 <본 얼티메이텀>까지 이어지는 '제이슨 본'의 행보는 여타 다른 헐리우드 액션영웅의 활극과는 다르다. 특히 이 시리즈의 마지막 <본 얼티메이텀>은 제목에서부터 이미 제이슨 본의 여정을 확실히 마무리 짓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묻어나왔다. 그리고 본은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돌아왔다. 자신의 잃어버린 정체성을 찾기위한 그의 귀환이 너무나 비장한 나머지, 이 영화에서 맷 데이먼은 한번의 웃는 씬도 없다.







부패하거나 불의한 국가 조직과 시스템에 저항하는 주인공은 확실히 식상한 소재다. 거기에 자신이 속해있던 소속에 반기를 들고 자신의 잃어버린 것을 되찾기위해 투쟁하는 주인공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아이덴티티, 자신의 정체성이 그 잃어버림의 대상인 것 조차 진부하기 짝이없다. 불의에 대항하는 영웅들의 정당한 당위는, 사회를 구하거나 국가를 구하거나 나아가 지구를 구하는데에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은 꼭 정체성이라는 측면에서 약점을 가진다. 마블스의 히어로들이 그렇고, 슈퍼맨 배트맨 스파이더맨 등이 그렇다. 싸울 능력을 갖추었고, 싸워야할 악당도 있고, 지켜야할 시민들도 있는데 그들은 자기 정체성의 혼란이나 보장받지 못한 범인(凡人)의 삶이라는 점에서 문제를 안고 있다. 영화 <핸콕>에서는 아예 자기 정체성과 싸우는 히어로가 등장한다. 그렇다면 진부함으로 무장한 제이슨 본은 어디가 이상한 걸까. 국가기관을 향해 역공을 가하는 이 주인공에게 결여된 것은 그 지켜야할 대상이다.






혹자는 <미션 임파서블>시리즈와 이 본 시리즈를 자주 비교한다. 물론 두 영화 모두 뛰어난 대중 오락 영화고 관객들이 원하는 요소들로 잔뜩 차려놓은 먹음직스러운 흥행 작품이다. 하지만 국가의 지원을 전폭적으로 받는(다 하지만 늘 혼자 해결해야했던) 톰 크루즈, 에단 헌트 요원의 궁극적 목적은 늘 자신의 임무 수행뿐만 아니라 자신과 팀IMF의 존속이다. 국가가 그를 여러번 배신하지만 그는 묵묵하게 명령을 따르는 것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한다. 국가의 충성스러운 도구였던면에서 제이슨 본은 에단 헌트와 다르지 않지만 그는 죄책감과 불신으로 도주를 감행하고 국가가 그에게 선사한 능력의 칼 끝을 국가 조직에 돌린다. 같은 이유로, 007시리즈와의 비교도 무리가 있다. 제이슨 본이라는 이름은 필연적으로 제임스 본드라는 이름을 떠올리게 하지만, 이 서로 다른 JB는 컨셉 자체가 다르다. 제임스 본드야 말로 기관의 충실한 요원이자 그들의 지원을 받아 아낌없이 그 능력을 '과시'하고 다니는 반면에 제이슨 본은 국가의 감시망을 숨어들고 파고들며 움직인다. 토니 스콧 감독의 1998년 영화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가 차라리 <본 얼티메이텀>과 더 가깝다. 믿었던 국가 기관의 불법과 부정적 '감시망'에 공격을 받아 피해를 입은 '개인'의 권리 회복을 위해 주인공이 허점을 파고들어 역습을 꾀한다는 점에서 두 영화는 비슷하다. 하지만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의 윌 스미스는 훈련된 요원도 아니고 영웅도 아니다. 게다가 그와 맷 데이먼의 결정적인 차이는, 윌는 기억을 잃지 않았으므로 지켜야할 것이 아이덴티티가 아니라 그저 자신의 가족이라는 점이다. 여기서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는 <본 얼티메이텀>을 혼자 둔 채 앞선 문단에서 말했던 히어로 무비들의 공통점으로 회귀한다. 주인공이 지켜야할 그것이 바로 국가나 사회, 시민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압축시킨 가정이라는 것. 그런데 제이슨 본에게는 이 모든것의 최소 단위인 가정마저 없다.







부정한 국가권력에 대항하는 영화들은 꼭 그 반대지점에 아무것도 모르지만 선한 시민사회를 두었다. 그리고 주인공은 그 사이에서 싸운다. 시민들을 지키고 국가에 대항한다. 그런데 제이슨 본은 시민들을 지키지 않는다. 그가 가진 목적이란 자신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 그리고 왜 나는 살인병기가 되었는가에 대한 이유가 전부다. <본 얼티메이텀>에서 나의 이 어딘가 이상한 느낌은 거의 마지막 부분, 제이슨이 CIA의 비밀연구소가 있는 빌딩 입구에서 만난 랜디(조안 알랜)에게 그가 노아(데이빗 스트라탄)의 금고에서 꺼내온 블랙브라이어 작전의 전모를 아무 미련없이 그대로 넘겨주는 장면에서 확실시 할 수 있었다. 세상을 위해 자신과 함께 진실을 공개하자는 그녀의 말에, 제이슨 본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들어가는 것이 더 우선이다. 그리하여 결국 그가 원했던 장소에서 원했던 대답을 듣지만 영화가 끝나도 그 몇몇 물음에 대한 답들은 여전히 미지수다. 본은 왜 선택을 하였고 정말 그가 원했던 것인지, 그렇다면 그를 그렇게 만든 계기는 무엇이었는지, 그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여전히 끝나지 않은것 같은데 영화는 끝나버린다. 그리고 그는 또 다시 어디론가 사라진다. 그는 정말 원하던 답을 얻은 걸까. 블랙브라이어 작전이 폭로되고 작전 책임자들이 벌을 받음으로서 영화는 권선징악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듯하지만, 그것은 그저 제이슨 본이 궁극적으로 원하던 목적이 아니라 그가 그저 자신의 목표대로 행동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부차적인 수확인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본 얼티메이텀>의 초반부, 블랙브라이어 작전을 제이슨보다 먼저 듣는 기자 사이먼 로스(패디 콘시딘)가 등장할 때만 해도 나는 '그럼 그렇지' 싶었다. 국가와 사회의 대결구조에서 사회측의 주된 공격 카드는 기자들이었다. 헐리우드 영화속의 기자들은 늘 주인공들보다 한발 빠르다. (그리고 한발 먼저 죽는다) 그래서 제이슨과 이 사이먼이 워털루 역에서 만났을 때만 해도 제이슨은 앞으로 이 기자를 보호하며 함께 비밀을 파헤쳐 나가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영화는 손쉽게 기자를 죽여버린다. 유일한 시민 사회의 대표자로서 주인공 히어로와 시민 사회를 연결해 줄 기자라는 존재가 그렇게 나타나 결정적인 단서만 주인공에게 쥐어준 채 죽어버린다. 결국 제이슨 본은 앞선 전작들에서의 모습대로 시민사회를 대표해 국가의 부정을 폭로하겠다는 대의를 갖지 않는다. 중간에 제이슨에게 협조하는 CIA 요원 니키 파슨스(줄리아 스타일즈)도 마지막까지 그의 곁을 지켜줄 히로인이 되진 않는다. 결국 그는 혼자다. 그가 그렇게 손쉽게 혼자일 수 있었는 이유는 지켜야할 대의가 없고 홀홀단신 자신의 정체성만이 목표가 되었기 때문이다. 본 시리즈의 제이슨 본을 보며 우리가 희열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영웅주의의 개인화가 아니었을까. 이젠 우리가 그리는 영웅들도 이 사회를 구하기위해 한 몸 기꺼이 내던지는 비현실성 대신에, 공동체보단 개인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서 영웅들조차 개인적인 이유로 움직이는 편이 더 와닿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독특하고 이상하며 무책임한, 그러나 새로운 히어로였다.





















덧글

  • 잠본이 2013/02/21 20:51 # 답글

    그야말로 '나는 누구인가? 아 몰라몰라 골치아프니 일단 도망이나 가자'로 요약가능한(너무 줄였어!)
  • 레비 2013/02/22 14:04 #

    ㅎㅎ 트랙백도 잘 읽었습니다 ! 감사합니다 ㅋ
  • 서주 2013/02/21 22:31 # 답글

    사랑하는 데이먼, 본 시리즈.
    오래 전에 D2를 선물받았었는데, 이걸 아시는 분이 본 1, 2편을 넣어서 주셨더랬어요. 당시만해도 인코딩이니 뭐니 아는 바가 전혀 없던 저는-.-;; 몇 년 동안 줄창 두 편만 봤었답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기도 했지만, 언제 봐도 재밌었어요.ㅎㅎ)

    근데 문제는.. 얼티메이텀!!
    개봉했을 때 딱 한 번 보고 말았더니 전 아직도 슈프리머시까지만 기억이 나요.ㅜㅜ
    꼭 다시 봐야지, 봐야지 하면서도 DVD 사면 그때..하면서 미루고 있었는데, 레비님 포스트 보니 반가워라!
    역시 안 본 영화 리뷰 읽는 기분으로 어, 그랬나? 아.. 그랬구나 하며 읽었습니다ㅎㅎ
    특히 기자가 그렇게 빨리 죽었었는지는.. 아직도-.-;;

    영화의 완성도를 위해서는 말씀하셨듯 사회를 이루는 최소 단위인 가정이 없게 설정했던 것이 매우 유효했던 것 같아요. 원작에선 마리와의 사이에 아이도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2편서 수중키스ㅜㅜ로 마리를 보내던 장면이 생생하네요. 줄리아 스타일스의 역할이 확장되지 않고 (어떤 면에서는 어정쩡하게) 매조지 됐던 것도 개인적으론 만족스러워요. 뚜렷한 목표를 외에 모든 관계가 공생, 적대 등의 확신없이 가변의 가능성을 둔 채 진행됐기에 긴장감도 더 있었고 무시로 과거의 기억으로 뒤척이는 본의 내면도 더 와닿고.. 그랬던 것 같아요.


    (그나저나 얼마 전에 죄와벌 얘기 한 뒤로 사진 보면서 자꾸 겹쳐요ㅎㅎㅎㅎ그때 덧글로 묘사하신 롤이 딱.)
  • 레비 2013/02/22 14:13 #

    헐 몇년동안 ㅋㅋㅋ 그런데 아이덴티티부터 이 얼티메이텀까지 제이슨 본 삼부작은 정말 재밌긴해요. 최고 수준의 오락영화죠 정말. ㅎㅎ 그래도 마침 기억 가물가물한 영화셨군요 ! 그런데 이번 포스팅엔 영화스토리에 대한 이야기는 좀 적네요 -_ㅠ ㅋ 기자는 거의 오프닝 시퀀스 직후부터 나타나서 비밀을 캐내죠 ㅋㅋ 그리고 CIA와 제이슨본이 거의 동시에 도달하고, 워털루 역에서 기자를 보호해주는 제이슨 본이 전화만으로 지시를 내리며 CIA의 포위망을 뚫는 장면이 나와요 ㅋ 하지만 겁먹은 기자의 실수로 결국엔 사살당하고 말지만요. 그 워털루 추격신은 이 영화의 백미에요. 정말 굉장한 시퀀스인데, 김혜리 기자의 표현을 그대로 쓰면, "사람의 추격전을 자동차 추격전처럼 찍은" 씬이에요 ㅋㅋ 그 씬만 따로 떼어봐도 정말 잘 만들었다는 느낌이 들어요 ㅎㅎ (오히려 그때문에 후반부 다른 긴박한 씬들이 빛을 바랠 정도로..)

    제가 1,2편은 너무 오래전에봐서 잘 기억이 안나는데, 제이슨 본이 유일하게 대안가족의 형태를 보인 그 마리라는 여성도 사실 가족개념이 뚜렷하지 않는 여인아니었던가요 ? ㅎ 아마 그점도 제이슨처럼 사회나 가정에 딱히 속해있지 않는 여자라는 설정이었다고 생각했어요 ㅎ 본이 사회를 구한다거나하는 대의가 없이 본인의 목적만으로 움직인다는 면에서 신선한 캐릭터였죠 ㅋ

    죄와벌 주인공으로 정말 딱일것 같지않나요 ㅎㅎ 이 본시리즈는 물론이고, <오션스일레븐><굿 윌 헌팅><리플리><라운더스><디파티드>... 신기하게도 맷 데이먼이 90년대 말부터 00년대까지 연기한 많은 캐릭터들이 모두 '아이덴티티'라는 공통화제를 가지고 있어요. 가진 능력에 비해 그 능력을 발휘할 자의식이 부족하거나 그걸 찾기위해 애쓰는 캐릭터들이었죠 ㅋㅋ 그때문에 벤 애플렉에 비해 맷 데이먼은 지금봐도 조금 어린애 느낌이 나는듯해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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