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 The Godfather, 1972 Flims







나는 알 파치노라는 이름을 들을 때마다, 혹은 읽을 때마다 어떤 환영이 아른거림을 느낀다. 그것은 <여인의 향기>에서 탱고를 추던 퇴역장교도 아니고, <히트>에서 로버트 드 니로를 쫒던 냉철한 경찰도, <데블스 에드버킷>의 키아누 리브스 앞에서 춤을 추던 악마도 아니다. 그의 환영은 마이클 코르네오네다. 알 파치노라는 이름은 마이클 코르네오네라는 이름을 거의 동시에 떠올리게끔 한다. 대부 3부작, 코르네오네 패밀리의 수장. 미국 이민 가족사, 아메리칸 드림, 마피아, 검은 조직, 그리고 살인과 복수로 점철된 이 갱스터 느와르에서 알 파치노는 '배우' 말론 브란도라는 이름의 성공적 계승자가 되었다. <대부 1>은 비토 코르네오네의 씰룩거리는 입술과 위엄으로부터 출발하지만 결국 '마이클 비긴즈'로 끝나는 영화다.


이 영화의 원작자인 마리오 푸조, 감독인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그리고 주연배우인 알 파치노. 이 세명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모두 이탈리아계 미국 이민자 2세라는 점. 이것은 영화 속 말론 브란도가 연기한 대부 비토 코르네오네 역시 다르지 않다. 이처럼 이미 벌써 대부 3부작은 태생적으로 미국 이민 가문의 3대에 걸친 일대기가 중심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대부시리즈 1편과 2편, 그리고 3편을 하나의 연대기이자 시간순서대로 A-B-C-D 라고 놓으면, <대부 1>은 시간적으로 B쯤에 위치해 있다. <대부 2>은 A와 C, 즉 <대부 1>의 이전과 이후를 교차편집으로 보여주며, 속편격인 1990년작 <대부 3>은 가장 후대인 D를 배경으로 갖는다. 따라서 <대부 2>에서는 좀 더 이민자 가족의 미국 생활에 주목하여 존경과 경외와 두려움을 동시에 갖는 대부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이 그려져 있다면, <대부 1>에서 다루는 중요한 키워드는 대물림과 계승이다. 영화 전반부는 이미 미국 사회에 굳건히 자리를 잡은 말년의 비토 코르네오네(말론 브란도)의 철학과 대부로서의 캐릭터성을 과시하지만, 앙심을 품은 다른 패밀리에게 불의의 총격을 당하고 일선에서 물러선 이후의 후반부의 이야기는, 비토가 가능한 가장 자신의 뒤를 잇질 않길 바랬던 셋째아들 마이클 코르네오네(알 파치노)의 변화과정이다. 이 영화에서 입체적인 캐릭터는 그래서 아버지인 비토가 아니라 아들 마이클이다. 비토라는 이름은 이탈리아의 분위기를 풍기지만, 그의 후계자 마이클이라는 이름은 지극히 미국적이다. 비토가 이민자 그 본인이라면 마이클은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미국인이다.








두 시간이 넘는 이 긴 영화의 시작 몇 분 만에 코르네오네 가문의 딸 코니의 결혼식 시퀀스로, 등장하는 다양한 사람들, 비토와 그의 아들딸들을 비롯한 패밀리 일원들을 몇몇 대사와 제스처만으로 그들 개개인에게 빠짐없이 캐릭터 성을 부여하는 것이 가능했던 것은 시나리오의 공이 크다. 비토 코르네오네가 자신을 대부라고 칭송하고 따르는 자들에게 대하는 자세와 대사들은 어느 조직의 수장으로서의 처세 그 자체가 아닐지. 위협과 회유를 동시에 구사하면서 거만하진 않지만 충분히 위협적인 비토 코르네오네의 느릿느릿한 말투는 우리 편과 상대편을 극명하게 선을 긋겠다는 의도가 묻어난다. 이처럼 영화 <대부 1>에서 보여주는 '대부' 비토와 그의 패밀리는 미국식 자본주의를 이탈리아계 마피아의 생리를 통해 은유한다. 즉, 우리 식구에겐 따듯하지만 조금이라도 패밀리의 경계선 밖에 있다면 적일 수 있고 철저한 이해관계로 대한다는 것. 그리고 같은 울타리 안의 사람이라도 배신을 하거나 거스르는 조짐이 보이면 가차 없이 쳐낸다는 점이다. 원작 푸조의 소설이 베스트셀러에서 내려가기 전에 급하게 제작했다는 이 영화는, 감독 코폴라가 소설를 각색하여, 이탈리아 이민자 가족 마피아라는 소재를 건들면서 역으로 그 미국 땅의 자본주의를 풍자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고 이는 주위의 우려 가득한 시선에도 보란 듯이 성공했다. 비토 코르네오네의 모습은 냉혈한 조직의 우두머리라기보단 인자하고 자비로운 대부의 모습이다. 자신과 연을 맺은, 자신을 대부라고 부르며 따르는 자들의 문제를 해결해주면서 동시에 마약거래라는 눈앞의 이익보다는, 보다 한차원 높은 도덕적 가치관을 가지고 그 제안을 거부하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결국 비토는 그 거절이 화근이 되어 총격을 당하고 사경을 헤매지만, 이때부터 셋째 아들 마이클이 복수에 직접 나서면서 괴물을 키우는 계기가 된다. 목숨은 건졌지만 총상으로 힘을 잃고 간신히 복귀한 비토의 모습은 여전히, 아니 오히려 과거보다 더 상대 패밀리에겐 공포의 대상이다. 그러나 비토는 자신의 아들들과 패밀리를 더 이상 피 흘리게 할 수 없다며 아들을 죽인 그들을 용서하고 먼저 화해의 손길을 건네기까지 한다. 그리고 그는 일선에서 물러난다. 이제 이야기의 바톤을 물려받는 것은 마이클 코르네오네다. 그는 아버지 비토처럼 자기 패밀리에 따듯하고 상대에게 관용과 위협을 구사하는 대부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역사적인 속편, <대부 2>의 빛에 가려진 전작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감독 코폴라가 즐기는 교차편집을 마음대로 구사하며 비토의 상승곡선과 마이클의 하강곡선을 교묘하게 짜맞춘 속편보다 난 보다 깔끔한 느낌의 <대부 1>을 더 좋아한다. 앞서 말했듯이 이 영화는 미국 자본주의에 대한 풍자를 코르네오네 패밀리의 모습에 은유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하지만 내가 더 흥미로워했던 것은 사실 영화의 후반부를 이루는, 마이클의 변화 과정이다. 제작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알 파치노라는 배우를 발굴해낸 것은 감독 코폴라의 업적이겠지만 마이클을, 사회가 원하는 건설적인 청년에서 결국 가족을 와해시키는 인물로 전락시킨 마이클의 두 얼굴을 연기해낸 것은 알 파치노의 능력이다. 키 작고, 카리스마도 부족해보이는 젊은 날의 알 파치노는 사랑스러운 애인을 둔 건실한 군인 청년이자, 패밀리에서 유일하게 "나는 우리 가족과 달라."라고 잘라 말할 수 있던 깨끗한 아들이었지만 아버지가 당한 암살미수를 계기로 냉혹하게 변해간다. 그가 영화 시작, 코니의 결혼식 파티에 혼자 군복을 입고 참석한 것에 대한 이유는 <대부 2>를 보아야 알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가족들과 다른 옷을 입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이클이 자신의 애인에게 누차 강조하는 - 나는 우리 가족처럼 잔인하거나 폭력적이지 않다는 주장을 의식적으로 감지할 수 있다. 하지만 비토 코르네오네는 정작 자신과 함께 패밀리 사업을 하는 아들들보다 마이클을 신경쓰는 모습을 보인다.








아버지는 왜 이 아들이 자신을 닮아가는 것을 경계하는 것일까. 비토가 특별히 마이클을 아꼈을지는 몰라도 적어도 비토는 아들 마이클만큼은 마피아와 검은 조직에 물들지 않기를 바랐다. 마이클이 유독 다른 아들들과 다른 모습을 하고 등장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형제들 역시 그가 복수를 맡겠다했을 때, 마이클을 잔뜩 걱정해준다. 그리고 깨어난 비토가, 손에 피를 묻힌 아들이 마이클이라는 것을 전해들었을 때의 말없는 침묵은 실망이자 상실감과 다름 아니다. 비토는 마이클을 철저히 보호하고 싶었을 것이다. 자신의 뒤를 잇지 않을, 자신과는 다른 아들로 성장해주기를. 하지만 그의 소망은 깨어지고, 운명의 장난처럼 자신의 자리를 계승하는 것은 그러지 않길 바랬던 하필 그 마이클이다. 비토는 죽기 얼마전 마이클이 조직을 물려받고 있는 시기에 이런 속마음을 그에게 터놓는다. 하지만 마이클은 이미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말해, 마이클 코르네오네는 비토 코르네오네가 되지 못했다. 아버지 같은 카리스마 있는 조직의 수장이 되길 바라지만 문제는 시대가 변했음에 있다. 마이클은 역설적으로 패밀리의 유지를 위해 패밀리를 와해시킨다. 조직의 존속을 위해 조직을 잔인하게 몰아부친다. 형제를 살해하고 배신자들을 척결하는데 있어 망설임이 없고, 이는 다시 남아있는 사람들의 실망을 부른다. 시칠리아에서 돌아온 마이클이 재회한 옛 연인의 시선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과거 그녀가 기억하는 마이클의 모습은 안에서부터 변해가고 있었고, 결국 '나는 내 아버지와 다르다'라고 말한 그의 말은 허언이 되었다. 그는 아버지의 모습 그대로, 아니 그보다 더 잔인하고 삐뚤어진 가족과 조직의 수장이 되었다. 그가 영화 말미 조카의 '대부'가 되어주기로 수락하고 본인도 세례를 받으며 더 이상 악한 행동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장면과, 그의 체제로 재편된 조직원들이 그들의 적들을 하나씩 살해하고 암살하는 장면들이 교차되는 부분은 마이클이라는 새로운 조직 우두머리의 탄생을 보여주는 가장 적나라한 씬들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과업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때론 그것으로 하여금 자신의 신념과 충돌을 일으킬 수 도 있다. 마이클이 변화하는 과정을 나는 비토의 이야기보다 더 흥미있어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마이클은 자신이 자신의 가족들과 다르다고 당당히 연인에게 말할 수 있는 신념이 있는 남자였지만, 아버지의 피격 사건과 공격당하는 자신의 가족들을 지켜만 볼 순 없었다. 어쩌면 마이클에게 떠맡겨진 위치와 역할과 뒤바뀐 운명은 그가 원해서였기보단 주변의 정황들, 어쩌면 코르네오네 패밀리를 적대시하고 공격한 다른 조직들이 키운 괴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대부 2> 마지막 장면, 마이클의 표정은 그의 일대기가 결코 행복하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우리에게 귀띔해준다. 그는 과업을 저버리고 처음의 신념을 지켰어야했던 것일까 아니면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철저히 대부 마이클로의 변신을 충실히 이행한 것이 그를 그 자리에 올려놓을 수 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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