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리드, Buried, 2010 Flims









영화가 시작되면 오프닝 시퀀스는 직선과 사각형만을 이용하여 밑으로 밑으로 우리를 끊임없이 끌고내려간다. 얼마나 깊숙히 우리를 묻어둘 생각인지, 감독의 이름이 마지막으로 등장할 때까지 밑으로 끌고내려간 직후, 주인공 폴 콘로이(라이언 레이놀즈)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지포라이터를 켤때까지 1분30초가 넘는 시간동안 영화는 카메라를 꺼두기라도 한 듯 완전한 암흑이다. 1분 30초간 영화가 아무런 영상도 주지 않는 것은 관객들에게는 생각보다 굉장히 긴 시간이다. 마치 어두운 곳에 갑작스럽게 버려졌을때, 그 어둠에 우리의 시야를 익숙하게 만들 시간을 배려라도하는 것마냥, 이후 90여분간의 플레잉타임이 오직 폴의 조명에만 의지해서 우리가 영화를 봐야한다는 것을 미리 경고한다.






제한된 공간에서 외부와, 혹은 자기 자신과 벌이는 사투는 공포영화를 비롯한 많은 스릴러 장르에서 애용되어왔다. 흔히 밀실영화라고 통칭해도 될 정도로 공간의 제약이 주는 한계라는 설정은 감독과 관객들 모두에게 매력적이고 유혹적이다. 하지만 이런 설정은 역으로 영화의 발목을 잡기도 쉽다. 보여줄수 있는 이미지의 한계, 상황이 주는 신선함은 영화후반으로 갈수록 소진되고 영화가 의존해야할 것은 전개보다는 배우의 연기와 주인공의 변화과정에 국한되기 때문이다. 스페인의 젊은 감독 로드리고 코르테스의 2010년 영화 <베리드>는 밀실을 소재로 한 영화들 중 어쩌면 가장 적은 공간에 주인공을 밀어넣었다는 기록을 세웠을지도 모른다. 한 사람이 겨우 누워있어 자세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각고의 노력이 필요한 비좁은 관 한 개. 주인공 폴 콘로이가 갇혀있는 공간이자 우리도 함께 90여분간 갇혀있어야하는 곳이다. 한 사람만으로도 버거운 그 공간을 재현하기 위해, 카메라를 무시하고 정말 좁은 곳에 갇혀있는 것처럼 연기한 라이언 레이놀즈는 그 과장된 흥분 연기만 눈감아준다면 꽤 괜찮다.







호기로움에 호텔방 1408호에 갇힌 존 쿠삭도(영화 <1408>), 평소 행실이 못된 죄로 공중전화 부스에 갇힌 콜린 파렐도(영화 <폰 부스>) 이 남자 폴 콘로이에 비해선 덜 억울할 것이다. 적어도 폴은 자신이 왜 갇혔는지 모른다. 그는 밀실 희생에 적합한 조건을 갖춘 사람이 아니라 그저 돈이 궁한 누군가의 인질이자 재물로 끌려들어 왔다. <쏘우>, <큐브>, <페르마의 밀실>같은 영화들도 떠오르지만 <베리드>와 비교하기 힘든 것은, 이 영화는 상황극을 던져주고 풀어나가는 게임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감독은 폴이 '처한 상황에서 어떻게하면 빠져나갈 수 있는가'-를 궁금해할 관객들을 그의 핸드폰을 매개로 관 밖의 세상과 연결시켜준다. 하필 이라크에서, 하필 아랍권 테러리스트로 묘사되는 범인은 911에 대한 여지껏 끝나지 않는 미국민의 중동 혐오증을 건들이지만 폴이 미국인이라는 사실 이외에는 영화에 크게 관여하지 않는다. 폴이 미국인이든, 어느 국적의 사람이든, 이 스페인 감독이 말하고자하는 바는, 누군가에 의해 묻혀졌지만 그를 더욱 지하 깊숙히 밀어넣은 것은 바로 국가와 기업, 세상과 자본주의라는 거대 조직이지 돈이 궁한 한 아랍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생사가 위태로운 자신의 상황을 제대로 이해해주지 않고 자신들의 안위에만 신경쓰는 세상을 향해 폴은 지하에서 외친다. 당신들이 날 이곳에 집어넣었다고.






범인이 어떤 대단한 목적을 가지고 이 불쌍한 미국인을 매장했던 것이 아니라 그에겐 정말 돈이 필요했을 뿐이라는 것은 폴을 구해주려고 애를 쓰는 댄 브레너와의 통화내용에서 뿐에서만 드러나는게 아니다. 500만 달러라는 몸값이 너무 높다는 폴의 항변에 범인은 손쉽게도 100만 달러로 액수를 낮춰준다. 사실 정해둔 시간이 되어도 그를 꺼내주지 않는한 범인이 그를 즉시 죽일 방법은 없다. 꺼내주지 않으면 방치되어 죽을 뿐, 범인이 정말 돈을 받으면 폴을 꺼내줄지 그렇지않을지는 모르겠지만 범인은 그로하여금 셀프 비디오를 찍어 받아 유튜브에 올려 폴에게서 직접 돈을 받기보단 국제적 이목을 끌려고 애쓴다. 하지만 그런 그를 더 가혹하게 몰아붙이는 것은 폴이 강조하고 또 강조한 '나는 미국 시민이오!'라는 말을 듣는 미국 정부다. 미국 현지에 있는 국방성을 비롯한 FBI들은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이유로 서로 전화와 책임을 돌리고 돌리며 폴에게 귀중한 시간과 산소와 휴대폰 밧데리를 빼앗아간다. 그저 '미국의 입장'은 테러리스트와 몸값 협상을 하지 않는것 - 이라는 말을 이 죄없은 트럭 기사가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결국 연결된 이라크 현지의 인질사건 책임자인 벤 브레너는 휴대폰 추적도, 중요하지 않은 질문들로 시간을 소모하지만 결국 폴이 알려준 정보로 미공군이 폭격을 가해 테러리스트들을 응징하는 것을, 그를 구하는 것보다 우선시했다. 결국 미국이 가한 폭격의 여파에 폴의 관은 금이 가고, 밀려든 모래에 그는 가뜩이나 얼마 남지도 않은 목숨을 더 빠르게 위협받는다. 폴이 정신적으로나마 위안을 얻고자한 벤의 '성공사례' - 마크 화이트씨의 일화마저도 거짓말이 아니었던지. 폴는 살기위해 범인의 요구에 응하지만 돌아오는 벤의 질타는 왜 동영상을 찍어 유튜브에서 수만의 조회수를 기록하게 하느냐는 것이었다. 







국가만이 그를 실망시키는 것이 아니다. 제일 처음 그가 전화를 건 것은 그의 아내. 하지만 그녀는 영화 후반부까지 전화를 받지 못한다. 기껏 전화번호를 알아내어 그가 전화한 이웃은, 죽음의 공포에 휩쌓인 폴의 말투가 불쾌하다는 이유로 짜증을 내며 전화를 끊어 버리기까지 한다. 그가 속해있는 이라크 파견 회사 CRT는 폴 이외에도 다른 직원이 또 위험에 빠지자,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그와의 통화에서 조목조목 폴을 해고한다. 폴이 관 속에 매장되기 전 이미 우리는 당신을 해고했으니 이제 당신은 우리 책임이 아니라는 것이다. 직원과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횡포를 넘어, 지나치기까지 하지만 인사담당자가 녹음을 시작하겠다고 말하며 그에게 해고 인터뷰를 기록하는 장면을 나는 이 영화의 클라이막스라고 본다. 그리곤 녹음이 종료되었다는 말과 함께 미안하다고 말하는 기업. 국가와 기업, 그리고 인간관계 등 자신이 속해있던 모두에게 허망하게 버림받은 남자가 그쯤되면 죽음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하는 편이 자연스럽게 보일 정도였다.








폴은 그의 아내와 아들에게 유언을 녹음하며, '아빠가 유명한 야구선수나 양복을 입고 일하는 사람이었더라면...' 이라며 실없이 웃는다. 정부와 통화를 할때에도, 그는 자신이 더 높은 사람, 더 중요한 사람이었다면 이런 대접을 받지도 않았을 거라며 분통을 터트린다. 국제적 상황을 위해 폴의 안위를 걱정해주기보단 범인의 비디오 촬영요구를 절대 들어주지 말라는 정부나, 자신들의 책임면제를 위해 죽음 앞에 놓인 남자에게 해고통지를 하는 기업의 모습은 역겹기까지 하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기업, 국가, 조직에 속해있음으로서 그런 연결 고리들로부터 보호받고 도움받을 수 있다는 기대를 하며 산다. 하지만 영화 <베리드>는 90여분의 시간동안 단 하나의 관속에 한 명의 배우만을 밀어넣고도 개인과 세상의 연결고리를 하나씩 툭툭 끊어간다. 그래서 결국 폴이 갇혀있던 비좁은 관은, 영화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은 그 작은 공간은, 그대로 이 사회의 지하에 침잠하는 우리 개인에게 할당된 터무니없이 비좁은 영역이자, 권리이자, 우리의 값어치가 된다. 씁쓸하지만 동시에 굉장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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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크, Locke, 2013 | JoInSeong Journal 2014-09-29 01:52:59 #

    ... r 28, 2014 by JoInSeong 영화 &lt;로크&gt;는 일종의 밀실 스릴러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를 설명하기 수월한 방법은 &lt;폰부스&gt;, &lt;베리드&gt;, 그리고 &lt;127시간&gt;등의 유사한 영화들을 데려오는 길이다. 그런데 &lt;로크&gt;가 상술한 영화들에 비해, 상황은 같지만 더 독특한 차별 ... more

덧글

  • 2013/04/01 17:12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4/03 14:43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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