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He's Just Not That Into You, 2009 Flims









미국 인기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의 스토리 작가들 중 유일한 남성이었던 그렉 버렌트의 연애지침서,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가 '화성남, 금성녀' 만큼이나 뭇여성들의 인기를 끌었던 이유 중 하나는 무조건 '어떻게 하라'는 식이 아니라, 기존의 가지고 있는 오해를 바로 잡아가는데부터 시작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이것은 <섹스 앤 더 시티>와 어쩌면 대척점에 있는 책이다. 여성의 남성에 대한 판타지를 자극하고 부각한 드라마에 비해, 이 책은 오히려 그런 환상을 깨부수고 독자들, 특히 여성 독자들을 가능한 현실로 끌어내린다. 하지만 다짜고짜 돌직구만 날리는 책도 아니다. 나는 2007년에 당시 연인의 추천으로 이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남자인 내가 읽어도 배울만한 점이 많았다. 이를테면, 여자들이 남자들은 쉽게 상상하기 힘들거나 아무 생각없이 하는 행동에도 환상이나 오해를 가질 수도 있겠다는 점. 기본적인 공감을 바탕으로, 무의미한 감정의 소모전을 끝내고 솔직해지고 좀 더 자신을 위한 사랑을 할 것을 책은 권하고 있다.








영화보다는 드라마에, 특히 로맨틱 코미디에 강점을 보였던 켄 콰피스에게 연출을 맡기고 헐리우드 슈퍼스타들을 끌어모은 영화의 첫인상은 매력적일 수 밖에 없었다. 거기에 베스트셀러로 이미 검증받은 원작은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각본으로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조건을 다 갖추었다. 다양한 커플이 나와 저마다의 사랑이야기를 하고 그것이 마치 옴니버스식으로 연출되며, 등장 인물들간의 스치고 스치는 인간관계도는 영화를 더 현실적으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원작의 형식을 예우하듯이 중간중간에 삽입된 인터뷰 장면들은 책의 챕터처럼 색다른 감칠맛을 낸다. 하지만 의문이었던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가 왜 실망스러운지다. 영화를 다 보고도 이게 왜 실망스러운지 찾기 힘든 영화는 참 오랫만이었다. 검증된 원작, 딱 맞는 감독, 눈부신 호화 출연진, 충분히 로맨틱 코미디스러운 연출. 실망하기조차 힘든 이 잘 차려진 식탁이 어딘가 어색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이 영화라는 한계에 발이 묶였다는 점이다. 헐리우드식 해피엔딩의 기조를 따르는 전형적 전개. 그리고 원작의 도발적이고 통쾌한 뉘앙스를 코믹한 전개나 극중 갈등, 그 이상으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점이 가장 아쉬웠다. 인기 원작 소설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었을때 항상 직면하는 문제가 이 영화에서도 여실없이 드러난다. 즉, 그것을 어디까지 따르고 또 어디서부터 각색할 것인가의 선을 긋는 것 말이다. 아니면 원작의 명성에 기대보려고 했던 것인지, 영화는 책을 따르는 척하면서 결국 하고많은 평범한 로맨틱 코미디 중 하나가 되고 말았다. 차라리 영화가 아니라 드라마로 한 시즌 정도로 나누어 제작되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도 해본다.






영화에 대한 아쉬움은 이만 쓰고싶다. 욕하고 끝낼 영화면 애초에 글을 쓰지도 말자는 것이 내가 이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세운 유일한 규칙이니까. 영화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는 원작의 그늘속에서 높은 기대치를 가지고 본다면 이런저런 아쉬움들이 많지만, 영화 그 자체만으로 보기 시작하면 사실 전혀 아쉬울 것 없는 영화다. 일단 한 영화에서 다양한 사랑의 전람회를 볼 수 있다는 점은 요즘 같이 판에 박힌 로맨틱 코미디물들 사이에서 흔치않은 즐거움을 준다. 그 중에는 공감가는 사연도 분명히 있고, 이런 영화에서 '공감'이라는 요소는 가장 중요한 존재이유 중 하나다. 한 영화에서 다 함께 보기도 힘들 배우들을 한꺼번에 보는 것도 분명 큰 메리트이다. 제니퍼 애니스톤과 벤 애플렉. 브래들리 쿠퍼, 드류 베리모어, 스칼렛 요한슨, 제니퍼 코넬리. 하지만 정작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들이자 사연으로 등장한 배우들은 제니퍼 굿 윈과 저스틴 롱이 연기한 지지와 알렉스의 이야기였다. 소개팅한 남자의 애프터신청을 애타게 기다리는 귀여운 지지(제니퍼 굿 윈)와 그런 그녀에게 쿨하고 냉정한 연애관을 전파하지만 결국 자신의 연애에는 솔직하지 못한 남자 알렉스(저스틴 롱)의 이야기는 이 영화의 주된 스토리 중 하나다. 유부남 벤(브래들리 쿠퍼)와 매력적인 젊은 여자인 안나(스칼렛 요한슨)의 불륜에 가까운 교감은 차라리 좀 더 도발적이지 못한것이 안타까운 스토리. 하지만 그 전개만큼은 이런 로맨틱 코미디에서 빠지면 아쉬웠을 만큼 연상의 매력남에게 느끼는 여성들의 감정을 싣지 않았는지. 유부남이라는 굴레가 둘 사이를 다가가지도 멀어지게하지도 못하는 아이러니함이 잘 묻어있다. 덕분에 'dry hump'라는 단어를 내게 알려준 스칼렛 요한슨. 벤의 아내 제나인(제니퍼 코넬리)이 벤에게 권태라는 단어를 점점 더 심어줄 수록 그는 안나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이 삼각관계는 변해감이 느껴지는 남편을 둔 여자와 자신보다 더 소중한 누군가가 있음을 아는 남자를 사랑하게된 여자 모두의 시선을 아우른다. 





닐(벤 애플렉)과 베스(제니퍼 애니스톤)의 이야기는 이보다 더 현실적이다. 이 연애와 결혼에 대한 시각의 차이는 미국뿐만 아니라 그대로 우리 사회에 대입해도 크게 무리가 없어보인다. 닐의 결혼에 대한 부정적 신념에 설득당한 베스는 그와의 7년차 동거가 행복하지만 어딘가 불만족스럽다. 자신의 동생들마저 결혼을 하고, 또 남의 결혼식은 축하하지만 정작 자신의 결혼은 극구 거부하는 닐을 점차 이해하기 어려워진다. 연인이 있지만 나이와 사회적 시선을 신경쓰지 않을 수가 없는 여성의 입장을 베스가 대변한다. 그녀가 부리는 닐에 대한 짜증과 추궁과 불만은 그래서 충분히 이해가 된다. 오히려 닐의 미적지근한 태도는 타당성이 부족하게 들릴 정도.






로맨틱 코미디는 그것이 보는이로 하여금 공감을 획득할 때 더욱 힘을 얻는다. 애초에 남성을 타자화한 이 영화의 여성 주인공들은 각자 연애에 각기 다른 문제를 가지고 있지만 누군가는 해답을 찾고 또 누군가는 찾지 못한다. 처음부터 여성에게만 답을 요구하는 것부터가 연애란 것에 있어서 모순이지만 영화는 남성들보다는 여성 캐릭터들에게 변화를 채근하며, 그 해답을 여성들이 외부보단 자기 자신안에서 찾기를 부탁한다. 이 점은 영화가 원작을 따르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부분이기도 하다. 공감이라는 키워드로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을, 영화는 뒤따른다. 영화 속 남성들은 대부분 수동적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정작 수동적에서 능동적으로 변화하는 것은 여성들 쪽이다. 이 영화에서 남자들이 갖고 있는 문제들과 속마음은 중요하지도 않고 자세하게 알려주지도 않는다. 오히려 이 영화는 어떤 연애 문제를 겪고 있는 여자가 같은 동성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털어놓는 수다나 하소연에 대한 공감이나 예시들이다. 영화를 보고나서 당신이 어떻게 행동하기를 바라기보단 마음에 드는 변화를 가져보길 기대하는, 소심해서 아쉽지만 또 그래서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그런 영화다.


























덧글

  • 재상천하 2013/02/14 14:03 # 답글

    여자를 화자로 삼은 영화.
    르네 젤위거의 주연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가 가장 대표적이지 않나 싶네요.
    이 영화에서 르네 젤위거는 통통하고 못생긴 여자로 나오죠. 그럼에도 매력적인 부분이 있죠. 그냥 끌리는 매력이라고 할까요?
    이러한 영화들은 솔직히 남자들이 보기에는 조금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많죠. 이상하게도 여자들은 공감을 많이 하더라구요.

    여자를 화자로 만들었다보니, 아마 글을 쓰신 분도 남자여서 이해가 안 가니, 조금은 영화가 실망스러웠지 않나 싶습니다. 뭐, 저도 이런 영화들 보니까 남자라서 그런지 이해는 가지만 공감까지는 안 되더라구요.

    저는 지금도 제일 신기한 게, 남자들 끼리는 점심을 먹으면서 그 외 식사를 제외한 잡다한 이야기들을 하잖아요?
    여자들끼리는 점심을 먹으면서도 커피는 무엇을 마시며 어디 카페를 갈지를 의논하고 커피를 마시고 있으면, 커피 마신 후 저녁은 뭐 먹을지 고민하며 얘기하고, 저녁을 먹고 있으면 저녁 먹고 난 후 술은 무엇을 마실건지, 칵테일을 마실건지 키위막걸리를 마실건지 등등등.

    남자와 여자의 차이. 이게 연애의 재미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케이블 TV의 <롤러코스터>도 대국민적인 인기를 끌었잖아요. 남녀의 차이를 코믹하면서도 맛깔스럽게 잘 표현하니까요.

    영화가 실망스러운 이유는 말씀하셨던 것처럼 수십만글자의 책 내용을 2시간이라는 짧은 시간에 풀어내려다 보니 요약집같은 분위기여서 그렇다고도 생각합니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라는 책을 보고 있는데 이 책과 소개된 책을 비교대조 해봐야겠네요.
  • 레비 2013/02/15 10:57 #

    오 맞아요. <브리짓 존스의 일기>도 확실히 그렇죠. 모티브 자체가 <오만과 편견>이라서 그렇겠지만요 ㅎ 여성 관객들의 몰입을 더 빠르게하고 공감을 얻어내기 쉬운 영화들이니 만큼 남자인 저 역시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있었을지도 모르겠어요 ㅎㅎ

    남자와 여자가 다르기 때문에, 연애가 재미있을 수 있는 것이겠죠 ㅎㅎ 그런점에서 이 영화가 차라리 남녀 모두의 시선을 가져보려하지 않고 한쪽을 과감히 포기하려했다는 점은 굳이 단점이라고 보기도 어렵겠네요. 책은 더 많은 내용을 담고 있는데 영화는 확실히 추리고 추려내다보니 몇가지 에피소드들의 모음같이 가벼워져서 실망했다는 말씀도 맞는것 같아요 :)

    여성이 주인공이 될 뿐만 아니라 여성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영화들도 좀 더 봐야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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