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The Berlin File, 2012 Flims





영화 <베를린>이 남북한의 해외로케이션 첩보액션영화라는 소식을 들었을때, 아울러 캐스팅 속에서 배우 한석규의 이름을 보았을때 필연적으로 떠오른 것은 <쉬리>일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남한도 북한도 아닌 제3국, 제3의 도시에서 벗어나지 않는 전개라면 중립지역에서 주먹과 피를 섞는 액션(류승완 감독이니까)과 첩보라는 소재가 주는 긴박하고 빠른 화면전환, 여러 캐릭터의 시점을 교차로 보여주는 쫒고 쫒기는 장면들로 가득한 영화가 예상되었다. 거기에 남북한 이념대립이라는 익숙하고도 피할 수 없는 주제. <베를린>은 영화를 보기전부터 내 예상범위를 빠져나가지 못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베를린>은 그런 내 예상을 절반만 허락해주었다.

진부하지만 그만큼 확실한 표현을 빌려 쓰자면,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를' 영화였다. 그만큼 재미있느냐, 그건 개인차가 있겠지만. 확실한건 이 영화는 빠르고, 정신없고, 숨돌릴 틈을 주지 않았다. 캐릭터가 많아서 중반까지 주의깊게 정리하며 보아도 자칫 돌아가는 '판'을 놓치기 쉬울수도 있다는게 아쉽지만, 영화는 '고작' 그런걸 생각하고 있을 틈도 허락하지 않는 것 같다. 초반 몇분만으로 베를린이라는 제3도시에 놓인 남북한 양쪽의 입장과 상황을 정리해서 비교, 보여주는 솜씨가 좋았다. 질질끌지말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는 무언의 선언같기도 했다.

내가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남북 양측이 모두 나오는 국내영화중 남한보다 북한측 캐릭터를 중심으로 그려진 영화가 몇개나 더 있었느냐는 것이다. 거기다 더 놀라운 점은 남북이념대립이나 알력이나 애국, 국가를 위하는 그런 작전, 싸움에 초점이 맞춰져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비록 영화의 초중반은 서로 유리한 위치에 서고 각자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양측 조직간의 싸움이 펼쳐지지만. 남한과 북한이라는, 분단 국가의 대립이라는 설정은 분단도시'였던' 베를린을 무대로 삼을뿐, 어느 측의 승리로 돌아가느냐는 그닥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영화가 주목하는건 국가(다른 의미로 소속된 조직)로부터 배신당하고 버려진 옛 영웅의 가치의 혼란과 몸부림이다. 가치의 혼란을 표현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동원된 것은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아내에 대한 사랑의 저울질이다. 하정우가 연기한 표종성은 이렇게 변화한다. 남측 대표(?)인 한석규가 연기한 정진수도 사실 표종성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이 점이 <베를린>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다. 영화는 남북한 첩보액션영화인 척을 했지만, 남북한 무력충돌이 메인 액션이 아니다. 그래서 문득 그 둘의 소속이 굳이 남북한이 아니었어도 충분히 흥미로운 시나리오가 되었을 것만 같았다. 아 물론, 남북한이라는 설정보다 우리에게 더 흥미로운 설정도 없었겠지만 말이다.

한석규라는 배우가 내 편견과는 다르게 의외로 깨알개그에 잘 어울리는지 처음 알았다. 전지현은 이 거친 액션 영화에서 상대적으로 무게감은 적었지만 영화의 히로인으로서 절대 비중이 적다고 할 순 없었다. 북한 사투리를 놓치지않고 듣는것에 대한 적응이 쉽지 않았지만 연기력 논란은 <도둑들>에 이어 이번에도 더 많이 일축시킬 수 있지않을까. 류승범은 처음부터 기대했던 얼굴을 하고 등장하여 마지막까지 기대했던 모습을 보여주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류승완 감독은 류승범이라는 배우를 어디에 어떻게 쓸지 잘 아는 감독이다. 하정우는 <베를린>이라는 영화의 전부라고 하긴 어렵지만 영화가 말하고자하는 전부는 그의 표정, 행동, 몸짓, 감정안에 있다. 개인적인 생각으론, 배우 하정우가 출연한 역대 영화들중 가장 처절하고 강한 모습이었지 않았을까.

류승완 감독의 전작들을 모두 챙겨보진 않아서, 그리고 액션영화를 그리 즐겨보질 않아서, <베를린>에서의 액션 연출을 전작들과 비교해볼 자격이 없긴하지만 확실한건 나만큼 보는 눈이 없는 사람이 보기에도 최소 어설퍼서 웃기지는 않다는 점이다. 조금 더 지나쳤으면 나에겐 잔인하다는 느낌까지 들었을 것 같았다.

이제 이 영화는 개봉 첫 주말을 맞는다. 얼만큼 흥행을 탈지, 입소문을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국내영화계의 흥행공식에서 아직은 순항하고 있는 편이라고 봐도 좋을것 같다.


+

한석규가 초반에 한식당에서 하는 대사인 "우린 좌회전도 안해~"가 무슨뜻인지 모른채 영화관을 나오다가 뒤늦게 알았다.

전지현이 아파트 외벽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있다가 발코니로 겨우겨우 점프하는 장면에서, 그 정도 발코니는 손쉽게 건너뛰던 <도둑들>에서의 그녀가 오버랩되는 바람에 웃음이 나와버렸다. 웃을 장면이 전혀 아니었는데...









덧글

  • SilverRuin 2013/02/01 15:52 # 답글

    저만 도둑들을 겹쳐 떠올린 게 아니었군요 ㅎㅎ
  • 레비 2013/02/04 16:23 #

    ㅎㅎ 같은 생각을 하셨군요 ! 정말 왜 하필 그 타이밍에 생각났는지..ㅎㅎ 그때 아슬아슬하게 넘고선 안도하는 전지현의 대사가 기억에 남았는데 이번엔 비슷한 발코니에서 잔뜩 겁에질린 얼굴로 ㅎㅎ
  • FlakGear 2013/02/01 18:29 # 답글

    전지현분은 정말 완벽하게 라이징하는군요 (...)
  • 레비 2013/02/04 16:24 #

    <엽기적인 그녀>이후 왈가닥의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이후 CF에서도, 다른 영화에서도 그랬는데 <도둑들>에서 호평받은 이후로 확실히 폭이 넓어지는것 같아서 좋네요 :)
  • 얄루 2013/02/01 19:25 # 답글

    저도 인터넷으로 예매했어요ㅎㅎ 뭔가 기대를 하지 않을 수 없지만, 또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겠죠ㅠ
  • 레비 2013/02/04 16:24 #

    음 제 동생같은 경우는 하정우, 류승범 팬이라 너무 기대를 하고봐서 그런지 생각보단 별루라는 반응이더라고요 ㅎㅎ 재밌게 보고오시길 ! :)
  • 남선북마 2013/02/03 01:27 # 답글

    쉬리이후 베를린이 나오기까지 그사이를 잇는 영화가 딱히 없다는게 신기하네요.. 의형제 정도?
  • 레비 2013/02/04 16:25 #

    전 이상하게 영화보면서 <공동경비구역 JSA>가 생각나더라고요. 남북한 소속 군인들의 우정? 게다가 양국에서 서로 모두 버려진 상황.. 딱히 비슷한 스토리는 아니지만 몇몇 비슷한 구도가 있는것같아서요. 하지만 포스팅엔 쓰지 않았습니다 ㅎㅎ
  • 리미 2013/02/04 16:48 # 답글

    류승범이 싸우th 코리아1!!! 이러는데 빵터졌어요 ㅋㅋㅋ 베란다 씬에서 도둑들 예니콜 ㅋㅋㅋㅋ
    저도 전지현 팬이라 앞으로 더 자주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
  • 레비 2013/02/04 16:52 #

    영화초반엔 하정우 때문에 감탄했었는데, 중반부터 류승범이 연기를 역대급으로 잘 한것 같아서 류승범이 나오는 씬마다 감탄했었네요 ㅎㅎ 어쩜 저리 어울리는지 ㅋㅋ 원래 능청스럼+능구렁이 같은 캐릭터에 어울렸는데 마지막 갈대밭 격투씬에선 터미네이터같기도 ㅎㅎ 하정우나 전지현의 북한말은 조금 안들리는 면도 있었는데 류승범은 북한말까지 잘 어울리더라고요 ㅋㅋㅋ 저도 그 대사에서 웃었어요 ㅎㅎ
  • amelie 2013/02/04 17:12 # 삭제 답글

    저도 재미있게 봤어요 전 액션이나 연기보다는 스토리에 대해서 만족이 떨어졌었는데.. 북한측 캐릭터를 집중적으로 다루었다는 점은 정말 특이한 것 같아요 ㅎㅎ 전 그래서 한석규 스토리가 더 나왔으면 어땠을까 생각했었어요 잘 읽었어요

    류승범은 정말 모든 역할을 류승범화하는 것 같아요 ㅎㅎ
  • 레비 2013/02/04 17:55 #

    아 맞아요. 남북한 양측이 모두 나오는데 남한 캐릭터보다 북한 캐릭터에 비중을 둔 영화는 정말 거의 처음이 아닐까 싶어요. 그점이 또 흥미롭고 좋았구요 :) 한석규는 국가로부터 '버려진' 설정만으로도 하정우와 '동질감'을 유발한게 전부라 그의 이야기도 확실히 아쉬웠어요 ㅋ

    류승범은 정말 ㅋㅋㅋㅋ 어찌 그렇게 어울리는 역을 잘 찾았고 또 그리 잘 소화하는지 ㅋㅋ 다들 그러시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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