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덤 오브 헤븐, Kingdom of Heaven, 2005 Flims











※ 감독판director's cut 기준입니다.





압도적인 열세였음에도 불구하고 살라딘의 대군으로부터 치열하게 예루살렘 수성을 이끈 발리안(올랜드 블룸)이 마침내 모두의 안전을 보장받는 협상을 받아낸 후, 살라딘 등 뒤에 묻는다.
"예루살렘은 어떤곳이죠? What is Jerusalem worth?".
돌아선 살라딘은 무심하게 대답한다.
"아무것도 아니야. Nothing.".
그의 대답에 발리안이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고 느껴지는 찰나, 몇걸음 더 걸어가던 살라딘이 다시 돌아서더니 미소지으며 덧붙인다.
"모든 것이기도 하지! Everything!"
영화의 제목은 <킹덤 오브 헤븐>. 즉 천상의 왕국이지만 감독 리들리 스콧이 말하고싶었던 성지 예루살렘은 아무것도 아니면서 동시에 모든것이기도 한, 숱한 이들이 피를 뿌려야했던 바로 그 곳이다.










주인공 발리안은 아들과 아내를 잃고, 동생으로부터 배신당하고, 태어난 곳에 묻히고 싶었던 소박한 희망마저 불가능해진. 신을 원망하고 저주하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춘 남자다. 삶의 벼랑에 몰린 느낌이 그의 표정과 입을 더욱 굳어지게 하던 그때, 동쪽으로 가던 한 기사가 이번엔 내가 너의 아버지라면서 나타난다. 그래서 발리안의 출발은 자신의 과거와의 단절, 트라우마에 대한 해방으로 시작한다. 과거를 잊고 새출발하기 위함이라기보단, 동쪽으로, 성지 예루살렘에서 답을 얻고자 아버지라는 그 기사들을 따라나선다. 동생을 죽이고, 대장간을 불태우는 것으로 그는 자신이 돌아갈 곳을 세상에 없게끔 만든다. 발리안은 그렇게, 자신의 아버지이자 이벨린의 영주인 고프리(리암 니슨)을 따라 예루살렘으로 향한다.








십자군. 수백년에 걸쳐 일어난 이 다수의 출전을, 나는 인류사에서 종교가 발명한 가장 맹목적이고 동시에 비효율적인 발명품이 아니었나고 묻고싶다. 그 어느때보다 확고한 명분과 이유를 가진 군대. 인간의 영토를 위해 싸우는 군대가 아닌, 자신들이 믿는 신의 영역을, 또 다른 신의 소유로부터 탈환하려는 너무나 확실하고도 타당한 이유를 가진 이 군대는, 동시에 명분에 자신들의 모든 것을 걸고 있던 군대다. 왕에 대한 충성심이나, 자국의 번영을 위함이 아니라 종교에 근거를 둔 집단은, 그 이유만큼은 확고해보이지만 역설적으로 그 이유가 부정당하거나 흔들리면 뿌리부터 무너질 수 있는 나약한 군대이기도 하다. 문둥병에 걸려 오늘내일 하는, 그러나 한때 십자군의 전쟁영웅이었던 예루살렘의 왕 볼드윈(에드워드 노튼)은 십자군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존재 이유인 이교도 척결과 성지탈환을 깜빡 잊게만들지도 모를 잠재적 위험이자 불만의 대상이다. 서로 다른 두 종교의 공통된 성지, 예루살렘의 통치자인 볼드윈의 정책은 공존과 이해다.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성지를 동시에 품고 있는 예루살렘은 단지 그 이유만으로 피를 흘릴 수 밖에 없는 땅이 되었지만, 십자군을 거느린 볼드윈은 이슬람교에게도 역시 똑같은 관용으로서 성지의 소유보다는 백성과 세상의 평화를 우선시에 둔다. 불필요한 피는 흘리기 원치않는 이는 십자군의 대표 볼드윈뿐만이 아니다. 이슬람 세계를 통일하고 대군은 다루는 이슬람군의 영웅인 살라딘 역시, 볼드윈과 생각을 같이한다. 이 양쪽 종교의 대표자와 지도자 둘은 모두 관용이라는 기본적인 심리를 갖고있다. 그리고 발리안에게 영주의 자리를 물려주고 죽는 아버지 조프리 역시, 종교보다는 왕과 백성을 먼저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볼드윈 역시 처음만난 발리안에게 백성의 힘이 되어달라고 부탁 한다. 종교보다 우선시 되어야 할 것은 당연하게도 인간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지도자들의 생각이 그렇다고해서 수하의 모든 이들의 생각도 같을 순 없다. 볼드윈에게 충성스러운 티베리아스(제레미 아이언스)는 이슬람교도와의 평화가 지속되길 바라지만, 이슬람교도들과 함께 성지를 공유하는 것은 기드와 레이놀드 등의 급진적 십자군들에게는 이해는 커녕 참을 수 없는 모욕적인 일로 느껴졌을 것이다. 이슬람교도들을 공공연하게 공격하고 학살하던 레이놀드는 결국 볼드윈을 분노케하고, 그의 영지 캐락을 공격해온 살라딘의 대군이 전쟁을 시작하려는 찰나, 발리안의 용기 덕에 볼드윈은 극적으로 살라딘의 대군을 돌아가게하는데 성공한다. 이 영화가 결코 기독교 옹호적인 그림으로 그려져있지 않음은 살라딘의 캐릭터를 보면 쉽게 답이 나온다. 이슬람군의 지휘자이자 전쟁영웅으로 등장하는 살라딘은 물론 예루살렘과 기독교도들에겐 공포의 대상이지만 종교의 차이를 떠난 그의 됨됨이는 탐욕스럽고 부정적인 일부 기독교도들의 모습보다 훨씬 사려깊은 모습이다. 살라딘은 자신들의 적에겐 분명 무자비한 전사이지만, 나름의 철학을 갖고 있고, 그자 역시 볼드윈과 마찬가지로 성전을 위한 싸움일 뿐, 상대를 증오하기위한 싸움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자이다. 그는 기독교도들이 미워서 군대를 부리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루살렘이라는 성지의 탈환. 그뿐이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 하나. 결국 예루살렘을 탈환한 살라딘이 사원을 들어서다 바닥에 새겨진 십자가 문양을 보고 밟지않으려 빙 돌아들어간다.








영화는 애써 두 종교의 화해와 공존을 위해 어색한 손을 맞잡게 하진 않는다. 다만 지적하고 있는 것은 믿음과 신앙의 다름으로 인해 생겨나는 증오와 분노의 방향이다. 종교는 지금도 그렇지만, 인류사를 통틀어 실익을 따지는 국가간 알력못지않은 분쟁과 다툼의 빌미였다. 게다가 '맹신'에 기반을 둔 동기부여는 어쩌면 '충성심'에 기반을 둔 그것보다 훨씬 더 큰 명목이 되어, 피흘리는 것을 더욱 당연스럽게 만들만큼 오히려 더 위험한 일이다. 볼드윈이 죽고, 아들과 아내 시빌라(에바 그린)덕에 실권을 잡은 기드는 원하던대로 이슬람에 대한 성전을 시작하지만 기다렸다는 듯한 살라딘의 군대에게 전멸당한다. 결국 무모한 선제공격을 한 것은 기독교도들이었고, 살라딘이 예루살렘을 향해 다가오면서 예루살렘 수비를 맡은 발리안과 그의 부대는 결연하게 맞선다. 하지만 이미 영화 시작부터 신에 대한 답을 구하기위해 예루살렘까지 오고도 답을 얻지 못했던, 발리안에겐 이 수성전守城戰은 더이상 성전聖戰이 아니었다. 그가 지키고자하는 것은 예루살렘이라는 기독교도의 성지가 아니라 예루살렘 안의 백성들이다. 살라딘이 원하는 것도 기독교도들에 대한 학살이 아니라 단지 예루살렘 안에 있는 이슬람교의 사원이다. 그렇게 자신의 의지를 악착같은 방어전으로서 살라딘에게 어필한 발리안은 마침내 협상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예루살렘 전투씬이 영화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또한 그 엄청난 스케일의 전투씬은 확실히 압도적이지만, 영화가 말하고자하는 바는 사실 전투 이전에 모두 나왔다. 불필요한 피를 흘리는 것을 어리석게 생각할 줄 알아야하고, 종교와 신앙의 정도가 결코 사람을 우선시하는 것을 앞지를순 없다는 것. 부정한 성직자들과 일부 광신적 십자군들을 내세워 감독 리들리 스콧은 이 긴 상영시간의 영화를 통해 이를 말하고자 한다. 발리안이 보여주는 압도적인 리더십은 영화 후반, 한명의 영웅이 많은 이들을 구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예루살렘의 백성들을 구하는 것은 기도가 아니라 한명의 깨어있는 리더라는 점에서, 일견 영웅주의가 언뜻 보이는 듯하지만 사실 발리안은 존재부터가 종교적 믿음보다는 사람이 우선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경험하고 실행할 수 있는 독특한 캐릭터라는 점에서 이 영화의 메세지 그 자체가 될 수 있다. 볼드윈의 뒤를 이어 예루살렘의 왕이 된 기드가 레이놀드를 앞세워 살라딘의 누이를 살해하는 등 본격적으로 이슬람 세력을 자극하지만 무모하게 출정한 그들은 살라딘에게 대패한다. 그리고 기독교 세력의 패배를 확인한 발리안과 티베리아스의 마지막 대화에서 둘의 차이가 드러난다. 두명 모두 예루살렘의 평화를 원했던 리더였지만, 티베리아스는 예루살렘의 현 상황에 환멸을 느끼고 키프로스로 돌아간다. 하지만, 같이 가자는 그의 권유를 거절한 발리안이 살라딘에 맞서 싸우겠다고 결심한 것은 기독교 성지의 수호로서가 아니라 인본주의의 수호에 궁극적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지켜야 하고 소중히 해야할 것은 성지도 신앙도 아닌, 그 땅 위에 진짜 살고 있는 우리들 자신이라는 것.








영화는 마지막씬에서, 다음 십자군과 사자왕 리차드를 살짝 보여주는 것으로, 이 지리멸렬한 싸움이 현재진행형임을 암시한다. 그리고 마지막 스크립트로 수천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오지 않고있는 예루살렘의 평화를 위로한다. 리차드왕이 발리안에게 길을 물으며, 예루살렘을 지킨 영웅이냐고 물었을때 자신은 대장장이일뿐라고 답한다. 십자군 역사에서 살라딘과 리차드는 각 양쪽을 대표하던 영웅이지만, 그런 리차드조차 영화 마지막에 그저 잠깐 얼굴을 비추며 또 다시 새로운 싸움이 예루살렘에서 계속된다는 것을 알릴뿐, 영화가 조명하고 있는 것은 대장장이로 출발해 다시 대장장이로 돌아온 한명의 인간, 발리안이다. 그에게 이 긴 싸움은 영웅이라는 칭호도, 명예도, 권력도 주지 않은채 다만 자살한 아내를 묻었던 그 땅으로 신에 대한 스스로의 답을 구해 돌아온 과정이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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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재상천하 2013/01/24 08:50 # 답글

    이 곳 블로그는 정말 제대로 된 '영화평론 블로그' 입니다.
    글도 논리전개가 맞고 자신의 생각과 견해, 철학 등을 영화에 잘 투영시키셨습니다.
    단순히 '좋았다','재미없었다','주절주절' 등등 자기 수다에 영화라는 요소만 풀어놓은 일반 블로그하고 다른 점이 아주 좋습니다^^ 아마추어라고 하시지만 전문성을 표방하시고 있으셔요.
    팟캐스트라는 방송프로그램으로 영화에 대한 방송을 하는 것도 흥미롭고요.
    제대로 된 영화평론을 추구하는 사람으로써 앞으로 이 블로그를 구독해서 자주 봐야겠습니다.
    수고하세요^^/ 화이팅
  • 레비 2013/01/24 12:04 #

    허헛! 이런 과찬이시라니 감사합니다 :)
    저야말로 그냥 자기수다를 주절주절 풀어 쓴 졸필이라고 생각했는데 부끄럽네요 ㅎㅎ;
    그저 제가 한번 봤던 영화는 꼭 기록해두고 모아두고 싶어서 시작한 블로그인데 이렇게 좋게 읽어주시는 분을 만날때마다 기쁩니다 :) 재상천하님의 영화평도 기대할게요 ! 영화밸리는 가능한 거의 다 읽어보고 있으니 벌써 몇번 글로서 먼저 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
  • 레어 2013/01/24 09:18 # 답글

    킹덤 오브 해븐 (감톡판)은 정말 명작이죠
    살라흐 앗딘의 저 명대사는 이영화의 모든것을 대변해주는 그런 대사죠
  • 레비 2013/01/24 12:05 #

    사실 극장에서 보질 못해서 어느 부분이 잘리고 바뀌었는지는 잘 모릅니다 ㅎ
    4시간여에 달하는 감독판이지만, 그만큼 명장면 명대사들도 많은 것 같아요. 감독의 제작의도도 확실하고..
    그중에서도 저 처음에 썼던 살라딘과 발리안의 대화가 저 역시 가장 좋았습니다. 몇번을 저 장면만 돌려보기도 했어요 :)
  • 죽까 2013/02/27 00:54 # 삭제 답글

    꿀꿀한날 울적한 마음을 달래기위해 본 대장편의 전쟁영화를 찾다가 킹덤 오브 헤븐을 접하고, 많은 것을 느끼고, 감탄 받았습니다. 저 역시, 마지막장면중 살라딘이 십자가를 밟지않고, 탁자위에 옳바르게 올려놓는 장면을보고 대단한 선율의 감동을 받았습니다.

    킹덤 오브 헤븐의 영화의 모르고 스처지나간 부분이 있나해서, 지나가면서 이 곳을 보게됬는데, 너무 잘 평론하셔서 한번 더 놀랐네요. 자주 구독하고 가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레비 2013/02/27 01:59 #

    앗 감사합니다 :) 쓴지 꽤 지난 글인데 포탈검색에 이 포스팅이 검색되나봅니다 ㅎㅎ
    앞으로도 제가 평생 본 모든 영화들을 모두 글로 남길때까지 계속 영화 리뷰를 쓸 생각입니다 !
    자주 들러주세요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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