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오브 파이, Life of Pi, 2012 Flims









나는 이 영화가 정말 종교적 코드를 가지고는 있지만, 종교와 믿음과 이성의 이야기를 하기위해 두시간여를 달려온 영화인지 마지막에 와서야 혼란에 빠졌다. 그전까진 당연히 아무렇지않게, 신의 존재와 개인의 믿음에 대해 순조롭게 말하는 영화라고 생각하며 보았다. 3개의 종교를 한몸으로 믿던 소년이 표류하기 시작하자 세상의 모든 것이 소거된채 보트만이 남는다. 보트를 파이의 내면공간이라고 상정하고, 리차드 파커를 파이 그 본인이라고 친다면, 서로 먹히고 먹히다가 파커에게 정리된 3마리의 동물들은 종교(혹은 신)일 수도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신을 다 잡아먹어버린 본인의 불신과 본능(호랑이의 짐승적 공격성)때문에 내면공간(보트)에서 떨어져나간(혹은 달아나버린) 주체(파이)가 다시 자신의 보트를 되찾으러 들어오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크리슈나 신의 입안에 우주를 축약해 놓을 수 있었다면, 망망대해에서 그 작은 보트위에다가도 축약해 놓을 수 있었을터였다. 결국 자신의 '이성(자신의 본능대로 공격하는 호랑이)'을 제압하기위해, 그리고 보트로 다시 들어오기위한 자아(파이)의 발버둥처럼 보려고 했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파이의 입에서 또 다른 제2의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할 때 나는 내 생각들이 어쩌면 영화의 궁극적 목표를 비껴간 것처럼 들렸다. 신과 종교의 융합과 공존, 이것은 태평양에 동동 떠있는 작은 보트위에 집약해놓은 <킹덤 오브 헤븐>이었나? 정말로?


영화 후반부, '신을 믿게 만들 이야기'와 '사람을 믿게 만들 이야기'의 갑작스러운 대결이 펼쳐진다. 하지만 이안 감독은 '신을 믿게 만들 이야기'의 편을 들어준다. 한두개의 종교로도 부족해 3개의 종교를 믿어버린 소년이 폭풍속에서 신을 찾아외치는 이 이야기가 오히려 신을 믿게 만들 것이라는 것. 왜냐하면 호랑이와 함께 태평양을 표류하는 스토리는 신을 믿지 않고서야 믿기 어려운 허황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따위 이야기를 누가 어찌 믿을 수 있는가. 하지만 우리는 영화가 끝나갈 때, 그것을 믿어도 좋다고 생각해버린다. 파이가 들려준 또 다른 버전의 이야기 - 동물 대신 사람들이 등장하는 그 이야기 - 가 차라리 더 설득력 있어보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호랑이와 함께한 이야기가 더 환상적이라는 이유로 소설가를 따라 '사람을 믿게 만들 이야기'로부터 고개를 돌리고 '신을 믿게 만들 이야기'를 택하고 만다. 그리하여 대상이 신이든, 자연이든, 호랑이의 눈에 있다는 영혼인지 뭔지든간에, 그것이 당연히 틀렸다고 치부해버리는 세상의 모든 선입견과 이성으로부터 우리의 감성과 믿음을 보호해주고 싶어한다.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가 갖는 진정한 힘은 바로 이 점이 아닐까.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우리에게 두시간씩이나 보여주고서 능청스럽게도 우리로 하여금 그걸 믿고 싶게 만들어 버리는 것.








덧글

  • 덕소청년 2013/01/23 10:04 # 답글

    라이프 오브 파이만큼 의견이 다양한 영화도 드물 듯 싶네요~
    동물 3마리를 종교 3개와 연관시켜 생각해 보는것도 새롭습니다. 잘봤어요~
  • 레비 2013/01/24 01:25 #

    감사합니다 :) 정말 수많은, 다양한 생각들이 범람하고 있어서 다 읽어보지도 못했을뿐만아니라, 각양각색의 생각들에 놀라기도하고 어려워하기도하고 그러네요 ㅎㅎ
  • 2013/06/02 10:2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6/02 14:20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3/06/03 10:25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3/06/04 09:46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이 이글루를 링크한 사람 (화이트)

375

통계 위젯 (화이트)

1719
126
917993

웹폰트 (나눔고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