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리티 리포트, Minority Report, 2002 Flims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의 톰 크루즈는, 인간을 넘어 기계마저 사랑으로 품고자했던 <A.I.>의 할리 조엘 오스먼트와는 크게 다르다. 그는 기계(시스템)은 물론이고 같은 인간마저 믿을 수 없게끔 되어버린 남자다. 너무나 미래적인 묘사 때문에, 우리는 종종 이 영화의 시간적 배경이 2054년이라는 것을 잊을 뻔 한다. 과연 불과 40여년 뒤의 미래에, 마치 <제5원소>에서 보았던 느낌의 저런 자동차들이 수직도로를 공중으로 날아다니고 경찰들이 모빌슈트를 입고 날아다닐 것인가. 하지만 첫 오프닝 시퀀스에서 보여주는 불륜을 저지른 아내를 살해할 범죄예정자의 집(과 근처에 말을 타고 다니는 경찰과 신문을 배달하는 아이)이나, 이후 존(톰 크루즈)이 안구수술을 받고 숨어있는 낡은 아파트 내부의 수직 단면 롱테이크씬은 오히려 2054년이라기보다 지금 2010년대보다도 더 과거의, 흡사 80~90년대의 모습 같다. 영화를 보다보면 미래지향적인 장면들은 블루와 메탈 빛이 주를 이루는 SF영화스럽지만, 존이 쫓겨 다니는 아파트들, 뒷골목들, 전부인의 집이나 상사의 집에서의 장면들은 어둡고 음습한 느와르 필름의 냄새가 난다. 미래사회를 그리는 영화들이,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하기 바빠 미래사회의 어두운 면, 미래에도 여전히 존재할 빈부차이를 잊어버릴 때, 스티븐 스필버그는 오히려 그 차이를 놓치지 않는다. 왜냐하면 영화의 제목은 <마이너리티 리포트>, ‘마이너’들의 목소리를 들어봐야하기 때문이다. 영화에선 예언되지 않고 삭제된 또 다른 대안의 미래가 ‘마이너리티’를 상징하지만 영화에서 말하는 소수의 목소리는 바로 그 삭제된 예언의 가능성을 빌어 은유된다.







난 이 영화가 의심받고 억울한 누명을 풀기위해 주인공 본인이 속해있던 조직으로부터 달아나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 애쓰는 전형적인 <도망자>스타일의 영화를 따르고 있지만, 딱딱한 SF와 느와르의 향을 섞은 영화이기도 하다고 느낀다. <A.I.>나 <블레이드>와의 차이점은 오히려 이런 점이 아니었을지. 가끔 이 영화가 2002년에 개봉했기 때문에 2001년 911테러와 연관 지어 생각해보고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물론 불가능한 시도는 아니지만 사실 전제가 틀렸기 때문에 그렇게 보는 것은 무리가 있지 않을까 싶다. 왜냐하면 이 영화의 첫 기획, 즉 스필버그가 필립 K.딕의 소설을 보고, 아주 오래전부터 이런 영화를 만들기를 희망해온 것은 911테러 그 이전이기 때문이다. (911테러 이후 스필버그의 영화라는 것은 <터미널>부터, 그리고 <우주전쟁>으로 이어지게끔 보는게 온당하다고 생각한다) 영화에는 사회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극명한 컬러로 대조시키는데, 전자는 대단히 밝고, 희고, 모던한 지극히 미래적인 모습이지만 후자는 2050년대라는 것이 무색할만큼 낙후되고 지저분한 풍경이다. 이것은 동시에 메이저리티와 마이너리티를 시각적으로 분리시킨다.







이 영화에서 종교적 믿음으로 상징되는, 소수의 의견(마이너리티 리포트)를 묵살할 수 있는 다수의 의견은 religion이라기보단 belief에 기반을 두고 있다. 존이 소속되어 있는 프리크라임내에서 세 명의 예지자는 사원(temple)이라고 부르는 곳에 위치하고, 사회에서 그 예지자에 대한 인식은 거의 신과 같다. 아가사 크리스티, 아서 코난 도일, 대쉴 해미트. 이 세명의 추리소설 작가들의 이름을 딴 영화 속 예지자들의 이름은 아가사, 아서, 대쉴이다. 하지만 실상은 시스템에 의해 희생된 도구이자 하나의 톱니바퀴. 따라서 세 명의 예지자는 실제로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그보다 더 미화된 대외적인 상징적 존재로서의 역할도 겸하고 있다. 이는 아가사와 같은 예지자를 실제로 마주친 사람들의 반응이나, 프리크라임에 견학온 아이들에게 예지자들을 신격화하거나 우상처럼 믿게끔하는 홍보는 겉보기엔 완벽해보이는 시스템 뒷면의 어두운 부분을 숨긴다. 범죄예방시스템의 전국적 확대를 위해 시스템의 부정적인 면을 숨기고 신격화하는 것. 그것은 그것을 향한 사회와 대중의 믿음은 정말 종교라기보다는 맹목적 신념, 즉 신적 구원이 아닌, 국가에 대한 무비판적 수용과 복종이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구성하는 가장 큰 축바퀴 중 하나는 ‘보다’와 ‘시각’에 대한 메타포다. 영화에선 눈에 대한 상징이 끝없이 등장하는데, 눈을 클로즈업 하는 씬들은 물론이고, 시민들의 사생활을 거부할 틈도 없이 침해하는 지하철 자동 망막 스캔이나 용의자들의 신원확인을 위한 경찰들의 스파이더 기계들의 망막 스캔 등. 존이 신분을 숨기기 위해 자신의 눈알을 소지품처럼 이용하고 타인의 눈을 수술받는 행동. 예언자 아가사가 “보라”고 채근하는 의미심장한 대사들.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구현된 미래사회의 통제는 모두 눈으로부터 시작해서 눈에서 끝난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님 나라에서는 애꾸가 왕"이라는 스페인 속담. 존 덕분에 교도소에 수감되어 "눈을 떴다"고 말하는 안구시술 의사나, 당신 덕에 눈을 떴으니 나도 당신의 눈을 뜨게 해주겠다며 해주는 수술. 사람의 아이덴티티를 눈에 함축하고, 눈을 통제하는 것은 곧 ‘진실을 보는 능력’을 통제하는 것과 같다. 진실을 보지 못하게 해두었으니 삭제된 대안의 미래, 즉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메이저’들에 의해 가려지게 되고, ‘메이저’였다가 ‘마이너’로 추락한 주인공 존은 눈을 ‘뜨고’ 이를 봐야하는 지상과제를 떠안게 되는 것이 이 영화의 모티브다.





'보다'의 메타포는 사실 영화 첫 시퀀스, 프리크라임의 기능과 시스템을 관객들에게 이해시키는 에피소드를 통해서도 충분히 감지할 수 있다. 하워드라는 남자의 가정은 평범해보이지만 프리크라임 팀은 그가 몇분뒤 살인을 저지를 것이라는것을 감지하고 있다. 그는 신문을 주우러 나갔다가 자기 집 근처를 서성이는 남자를 눈여겨 보고 의심하지만 아내는, 어차피 안경을 안쓰면 장님아니냐고 일축한다. 그의 아들은 아침 식탁에서 사진속 인물의 눈을 가위로 도려내고 있는 중이다. 출근하는 척하며 자신의 집을 예의주시하던 하워드라는 남자에겐 여전히 안경은 없지만, 곧 그 수상한 남자가 아내와 불륜을 저지르는 중이라는 것을 눈치채고 따라 집으로 돌아들어간다. 그는 안경이 없어도 다 볼 수 있지만 차분하게 안경을 쓸 때까지, 아내와 불륜남이 바로 옆 침대에서 섹스를 시작하는 와중에도 가위를 휘두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것은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사회 모습이기도 하다. 사실 누구나 볼 수 있지만 안경이 없으면 '보지 못하는 자'로서 사는 것. 그리고 안경을 쓰고 제대로 '볼 수 있게' 될 때 인간은 본인의 욕구와 충동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 순간 프리크라임팀(혹은 시스템)이 1초의 오차도 없이 개입하고 남자의 사생활과 본능은 '범죄예방'이라는 차원하에 구속되며 (영화 중후반에서야 볼 수 있지만) 그는 '눈이 가려진채' 수감되는 것이다.  






“당연하다고 믿고 있던 맹목적 믿음을 의심하고, 진실을 보라.” 이것은 일견 선택에 대한 영화로 보일 수도 있지만, <매트릭스> 등에서 우리가 보았던 히어로 혹은 주인공들이 가지는 선택에 대한 고뇌보다는, 사실 진실에 눈뜨는 깨우침에 더 무게가 실린 영화다. 선택에 주목하는 영화치고는 정답과 오답이 이미 정해져있고 톰 크루즈가 결정하는 것은 두 개의 선택지라기보다는 볼 것인가, 눈을 감을 것인가- 혹은 정해진 길을 따를 것인가, 그 믿음의 길을 벗어나 개척할 것인가 – 였다. 그래서 콜린 파렐이 영화 초반 존재감에 비해 중후반 그렇게 허무하게 영화를 이탈해도 위화감이 없었던 것이다. 콜린 파렐의 캐릭터는 처음부터 톰 크루즈에게 있어서 분명 위협적인 존재이긴 했으나, 진정으로 극복하거나 맞서 싸워야할 최종 보스, ‘스미스 요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존이 극복해야 했던 대상은 외부 세력이라기보다, 사실은 자신이 그토록 맹신하고 신봉했던 시스템, 즉 아들을 잃은 자기를 지탱하고 견딜 수 있게 해주던 근본이자 자기 자신이었던 것이다.





영화는 동시에, 소수의 목소리를 묵살하는 다수와 그들의 시스템에 대한 묵시록적 경고도 함께 담는다.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그리는 전형적인 영화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바이기도 하지만, 주인공 존이 그 시스템의 최선봉에 서있었다는 설정은 보다 그 경고를 더욱 절실하게 만든다. 영화초반, 프리크라임 부서의 존은 사건을 예언 받고 직접 출동하기 전에 ‘실제로 일어나지도 않은 사건’을 예언자들이 미리 본 영상들을 조합하여 증인 둘 앞에서 재현해보인 뒤 해결하러 출동하곤 한다. 그럴때마다 투명한 스크린에 영상들을 짜깁기하는 톰 크루즈의 모션은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흡사하다. 이 의도적인 모션에선 정말 때맞춰 교향곡이 흘러나오는데, 잘 들어보면 이 귀에 익은 음악이 사실 슈베르트의 교향곡 8번, ‘미완성 교향곡’이라는걸 알 수 있다. 완벽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존에게 이 범죄예방 시스템은 오케스트라 속 많은 악기들이 장대하고 섬세하고 치밀하게 연주해 놓은 한편의 교향곡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애초에 이 교향곡은 대안된 미래,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미리 삭제되어있는 ‘미완성’이었다. ‘미완성 교향곡’은 곡 자체만 들으면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사실 전체는 완성되지 못한 교향곡, 즉 범죄예방시스템의 모순을 그대로 비유한다. 개인의 미래가 바뀔 수 없다고, 시스템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믿는 주인공 존이었지만, 사실 예언자들의 능력은 완벽하더라도 그것을 해석하고, 출동하고, 행동해야하는 프리크라임 팀의 사람들은 분명 실수나 오류를 저지를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시스템은 완벽해보여도 사람은 실수할 수 있다는 허점은, 우리가 다수이기 때문에 소수보다 늘 옳다고 믿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환기시킨다. 


+

톰 크루즈가 수배령을 피해 지하철에 몸을 싣었을 때, 맞은편 좌석에 앉은 신문을 보던 남자가 신문에 표시된 그의 수배령을 보고 그와 눈을 마주치는 장면이 있다. 이 남자는 영화 감독 카메론 크로우다. 그리고 이 남자의 옆자리에서 이어폰을 낀채 두리번 거리는 금발의 여자는 바로 카메론 디아즈다. 이 두명의 까메오는 <마이너리티 리포트>보다 바로 1년 앞서 개봉했던 영화 <바닐라 스카이>에서 톰 크루즈와 함께, 감독과 출연을 함께 했었다. 그리고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역시 그 영화 <바닐라 스카이>에 까메오로 출연했었다.















덧글

  • FlakGear 2013/01/19 11:06 # 답글

    이렇게 정리가 깔끔하게... 좋은 리뷰를 보고가네요. 그런 이유가 있었다니... 나름 뜻깊은 명작 SF였군요
  • 레비 2013/01/19 22:25 #

    칭찬 감사합니다 ^-^ 조금은 단편적으로만 쓰질 않았나하고.. 다 쓰고나서 조금 걱정했는데 다행이네요 :)
  • 2013/01/19 17:20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1/19 22:26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Genday 2013/03/12 00:25 # 삭제 답글

    정말 잘봤습니다.~!!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EBS 지식e에나온 내용이 뜻깊네요..... 마이너리티 리포트..
  • 레비 2013/03/12 19:31 #

    감사합니다 :) 지식e가 뭔진 아는데 마이너리티 리포트도 나왔는지는 몰랐네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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