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테이젼, Contagion, 2011 Flims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이 헐리우드 슈퍼스타들을 또 한번 소집했을 때, 내겐 거의 본능적으로 해야만 했던 두 가지 행동들이 있었다. 첫번째는 <오션스 시리즈>를 떠올리는 것. 두번째는 그 슈퍼스타들의 명단에서 조지 클루니의 이름을 찾아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두 가지 행동 모두 허탕이었다. 영화 <컨테이젼>은 슈퍼스타들을 모으긴 했지만 그 안에서도 주연과 주연이 갈렸던 <오션스 시리즈>와 근본적으로 달랐고, 소더버그의 오랜 파트너이자 동업자인 조지 클루니의 이름도 그 안에 없었던 것이다.


작년에 <소셜 네트워크> 리뷰를 썼을 때 이미 써먹었던 기분이 들지만 이 영화를 쓰면서도 한번 더 반복해야겠다. 바로 국내포스터와 원본포스터의 비교다. 국내 버전 포스터에는 영화 타이틀과 함께 “아무것도 만지지 마라”라는 경고성 카피라이트가 쓰여 있다. 질병재난영화라는 약간의 사전 정보만 있어도 그 한 문장이 담은 의미가 명료하게 다가오는건 당연지사. 하지만 문제는 이 영화가 사실 질병재난영화가 아니라는 점에 있다. 북미버전 포스터에는 그 문장 대신 이렇게 적혀있다. Nothing Spreads Like Fear. 영화 포스터의 카피라이트들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Disease가 아니라 Fear에 방점이 찍혀있는 이 문장은 이 영화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친절한 가이드가 되어준다. 바로 질병과 세기말적 재앙이 아닌, 공포와 혼란에 보다 더 초점이 맞춰져있는 영화라는 점을 말이다.







어쩌면 출연한 배우들 중에서 가장 몸값이 비싼 편에 속했을 기네스 펠트로가 영화 시작 9분(10분도 아니고, 단 9분이다!)만에 죽었을 때, 짓궂은 소더버그는 관객들이 당연히 영화 끝까지 얼굴을 비추리라 예상했던 주연급 여배우를 허무하게 아웃시킴으로서 이 질병과 공포가 만인 앞에 공평하고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음을 영화 시작과 동시에 강하게 어필하고 싶어했던게 아닐까하는 생각마저 든다. (96년 영화 <스크림>에서 모두가 주인공일줄 알았던 드류 베리모어가 시작하자마자 죽는것과 같은 효과일지도 모른다) 슈퍼스타들을 불러 모은 이 영화에서 이야기 전체를 끌고 가는 ‘주인공’은 없다. 각자 맡은 캐릭터들이 다양한 인물 군상들을 보여주며 ‘같은 상황’하에서 여러 인간들의 모습을 보고 느끼고 비교하게끔 만든다. 그래서 이 영화 <컨테이젼>은 캐릭터들이 다 함께 맞닥뜨린,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퍼져가는 범지구적 전염병이라는 공통된 상황을 바라봐야할 것이 아니라, 같은 상황 하에 놓여있지만 행동과 처신이 제각각인 등장인물들을 통해 바라봐야하는 영화가 된다.


영화 <리플리>의 3인방, 주드 로, 맷 데이먼, 기네스 펠트로를 포함하여 <매트릭스>의 영원한 모피어스, 로렌스 피시번. 그리고 마리온 꼬띠아르와 케이트 윈슬렛까지 동원한 소더버그의 수완의 근원이 어떤 것인지는 몰라도, 이렇게 다양한 캐릭터들이 제각각 단편적 이야기들을 보여주어야 하는 영화에서 이정도 배우들을 끌어 모은 것은 관객입장에선 고마워해야할 지경이다. 영화의 전체적 설정은 일관적이고 충실히 기승전결을 따른다. 시카고에서 첫 사망자가 발생한 정체불명의 전염병이 직접 접촉뿐만 아니라, 매개체를 통한 접촉(환자가 만졌던 물건(매개체)를 통해 또 다른 사람에게 옮겨가는 것)으로도 빠르게 퍼져나간다. 세계보건기구에서는 대만, 홍콩을 근원지로 추정하고, 미국질병관리국은 확산을 막기 위해 애쓰지만 속수무책이다. 질병은 그 빠른 감염속도를 무기로 런던을 포함하여 전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게다가 높은 치사율은 사망자수를 급속도로 늘려나간다. 미국질병관리국은 시카고라는 거대한 발병근원지를 도시째로 격리시키는 강경책을 두고, 사회는 종말적 혼란에 빠진다. 하지만 결국 백신은 완성되고, 세계는 다시금 구원받는다는 것이 이 영화의 거시적 줄거리의 전부다. 여기에 뭔가 빠진 것 같다면 그 허전함은 정확한 것이다. 영화 <컨테이젼>에서는 기존의 재난영화들이 유난히 공을 들이는 설정들 - 이를테면 질병의 정체나 원인에 대한 그럴싸한 설명이나 백신(혹은 해결)과정에서 겪는 극적 난관과 극복의 시나리오가 빠져있거나 대부분 생략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영화가 갖는 관심사는 질병 그 자체가 아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부터 각 캐릭터를 한명씩 따라가며 이 영화 <컨테이젼>을 이야기 할 것이다.






정체를 알 수 없지만 대단히 위협적인 이 전염병이 가져다 준 것은, 직접적인 죽음보다도 죽음에 대한 공포와 그 공포로 인한 혼란이 더 크다. 시카고라는 도시는 그 혼란의 주무대가 된다. 홍콩에 출장을 다녀온 아내 베스 엠호프(기네스 펠트로)가 이 전염병의 첫 번째 희생자가 되고 이어 어린 아들이 손 쓸 틈도 없이 그 두 번째 희생자가 되었지만 정작 자신은 면역을 가지고 있기에 아내와 아들이 없는 시카고에서 홀로 살아남은 토마스 엠호프(맷 데이먼)는 다른 도시에 있다가 달려온 딸과 함께 시카고에 머무는 남자다. 그는 면역이 있음을 질병관리국으로부터 확인받았지만, 하나 남은 딸은 질병으로부터 지키려고 신경이 곤두서있다. 어이없게 아내와 아들을 잃은 이 남자의 슬픔은 어린 딸이라도 지키겠다는 보호본능으로 치환된다. 그래서 마을 이웃이자 딸의 남자친구의 접근마저 철저히 경계하고, 총을 들고 집에 틀어박혀 외부로부터의 접촉을 피한다. 이후 딸과 함께 차단된 시카고를 떠나는데 실패한 그는 질서와 법이 무너진 시카고 안에서도 초지일관 질병으로부터 자신과 딸을 지켜낼 뿐만 아니라 그 약탈과 방화의 현장에서 늘 한발자국 떨어져있는 모습을 보인다. 여기에 아주 상징적인 장면이 하나 있다. 일일배급물자가 떨어지자 한 분노한 남자가 배급을 받은 여성의 구호품을 빼앗으려한다. 하지만 토마스는 (상황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응당 그래야하는 것처럼 달려 나가 그 남자를 저지하고 여성을 구해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물자 트럭을 탈취하려 몰려갈 때 토마스는 혼자 뒤에 남아 “트럭에는 이미 아무것도 없잖소!”라고 소리친다. 질병으로부터 면역 판정을 받은 이 남자, 토마스 엠호프는 곧 다시 말해서 ‘공포’로부터 면역된 남자이기도 하다. 공포로부터의 면역은 또 다르게 말해, 이 혼란과 무질서로부터의 면역을 뜻한다. 그래서 그는 혼돈에 휩쓸리지 않고 끝까지 객관적인 위치와 시선과 자세를 잃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된다. 맷 데이먼이 연기한 토마스 엠호프는 전염병처럼 퍼져나가는 공포와 무질서 속에서도 인간성을 잃지 않는 사람을 뜻한다.


토마스 엠호프가 혼란의 현장, 질병과의 최전선에 놓인 일반 소시민의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케이트 윈슬렛이 연기한 에린 미어스 박사는 이런 혼란을 통제하고 제어해야하는 ‘사회적 위치와 책임’을 가진 자리에서의 이상적인 모습을 우리에게 권한다. 미국 질병관리국에서 미국보다 한발 늦게 전염이 시작된 런던으로 파견된 그녀는 질병의 확산을 막아야한다는 과제와 책임을 안고 있지만 늘 문제가 되는 것은 상황의 심각성을 모르는 관료들과 꽉 막힌 체제다. 자신의 상관이자, 지원자이자, 자신을 그곳으로 보낸 치버 박사에게 의지할 법도 하지만 그녀는 그녀 혼자의 힘으로 해결해보려고 애쓴다. 그녀의 이 외로운 고군분투는 결국 그녀조차 도리어 질병의 희생자가 되며 쓸쓸하게 막을 내리고 그녀는 자신이 이루고자했던 질병확산의 억제(혹은 공포와 혼란의 억제)를 이루지못하고 눈을 감는다. 그녀가 죽고 나서야 런던의 사람들은 그녀의 말과 행동의 중요성을, 그것이 어떤 무게를 갖고 있었는지를 깨닫지만 이미 늦었다. 케이트 윈슬렛이 연기한 에린 미어스는 현실의 부조리와 난관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않으며 자신의 신념을 희생으로서 지킨 순교자와 같다.


목숨의 위협도 불사하고 한 몸 바치려는 인물은 에린말고도 또 있다. 질병의 백신을 개발하려다 감염된 아버지의 뒤를 이어, 혹은 뒤를 따라 백신을 개발해내려는 앨리 박사(제니퍼 엘)이다. 그녀가 백신을 개발하는 과정은 영화에서 상대적으로 거의 모두 생략되어있고 그 과정은 사실 중요하지도 않게 지나간다. 박쥐와 돼지로부터 발현된 바이러스라는 것을 밝혀내는 대사는 영화의 엔딩과 맞물릴 뿐, 사실 그녀가 백신을 개발해내고야 말았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녀가 마지막 임상실험을 위해 자신의 허벅지에 바이러스를 직접 주입하는 것이 주효하다. 자신의 실험결과와 백신에 대한 확신이 있기에 그녀는 인류를 구하기 위한 과업의 최종적 결과물을 얻기 위해 자기희생은 의연하게 감수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결과는 해피엔딩이지만 그녀의 모습은 앞서 언급한 에린의 모습과도 상통한다.






토마스 엠호프와 에린 미어스가 가장 이상적인 모습으로 그려졌다면, 에린의 상사이자 미국 질병관리국의 핵심인물 치버 박사(로렌스 피시번)는 조금 더 현실에 타협한 사람이다. 그에겐 에린보다 더 높은 지위와 위치가 있으며 동시에 그녀와 같은 책임감과 윤리도 가지고 있지만, 현실이 발목을 잡는다. 병에 걸린 에린을 귀국시켜야하는 비행기 한 대를, 상부(국가)의 명령으로 같은 병에 걸린 하원위원을 살리는데 써야할 때, 사태의 심각함을 전혀 모르고 이 병을 무기화할 수 있는지를 물어오는 군인 간부들을 상대할 때, 자신의 아내가 살고 있는 시카고를 격리 고립시키는 작전을 듣고도 절대 발설하지 말라는 명령을 들었을 때, 음모론을 제기하며 자신을 공개적으로 공격해오는 블로거 앨런(주드 로)과 방송에서 논쟁을 벌일 때. 이 치버 박사는 수직적 관계에서 위와 아래의 사이, 중간적 위치에 놓인 모든 이들의 딜레마를 상징한다.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적당히 비밀을 지켜야하는 상부와, 인간적으로 윤리적으로 상대해야하는(같은 건물에서 일하는 청소부의 가족들에게는 비밀로 하려고 했던) 사회적 하부의 구조 사이에서, 공과 사의 구분과 같은 갈등은 인간성과 비인간성 사이의 선택을 종용한다. 치버 박사는 결국 아내에게 이를 미리 알려 인간적인 면을 택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상부의 명을 어긴 것이 되고 그는 모든 것이 종결되고도 청문회에 서야하는 입장에 처한다. 그러나 로렌스 피시번이 연기한 치버 박사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백신을 청소부의 어린 아들에게 양보하면서, 머리보다는 가슴이 시키는 대로 행동한 보다 현실적인 인간상을 보여준다. 공포와 혼란이 지배하는 상황에서도 비인간적인 명령보다는 인간적인 선택에 손을 들어주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 소속인 리어노러 박사(마리온 꼬띠아르)에게는 미국 질병관리국과 달리 이 질병의 근원지를 찾아내야하는 임무가 주어진다. 최초 사망자인 베스 엠호프의 동선을 따라 대만과 홍콩일대로 날아간 그녀는 현지 인력의 도움을 받아가며 질병을 역추적하지만 마지막 순간, 미국의 백신 배급이 자신들에게는 늦어질 것을 걱정한 현지인들에 의해 백신과 교환할 인질로 납치당한다. 결국 질병의 근본적 추적에는 실패하지만 백신이 개발될 때까지 현지 마을에 갇혀 지내야했던 그녀는 아버지가 가져온 백신과 교환되어 풀려나지만 그 백신이 가짜라는 것을 아버지에게 들었을 때, 그녀는 자신을 가두고 납치했던 그 마을과 그 마을의 어린 아이들을 걱정하며 황급히 공항을 달려나간다. 치버 박사와 마찬가지로, 그녀 역시 자신에게 몹쓸 짓을 했지만 결국 다 같은 사람임을 알고 그런 사람을 우선시하는 모습을 보인다. 마리온 꼬띠아르의 이 리어노러 박사는 넘치는 인류애로, 말 그대로 원수마저 사랑하는 캐릭터이다.






이렇게 영화속 캐릭터들을 살펴보고 나면 이 영화가 말하는 메시지가 확연히 분명해진다. 질병은 물론 악이고, 이들을 모두 곤경에 빠뜨리는 대상이지만 그 상황 하에서 어떻게 행동해야할지를 소더버그 감독은 너무나 교훈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모두 너무 교과서적이라 좀 어색하기까지 하다. 이쯤에서 주드 로가 등장한다. 블로그(혹은 인터넷상)에 글을 쓰고, 그 글을 팔아 돈을 벌던 프리랜서 앨런(주드 로)은 블로그의 방문자수가 곧 자신의 지지 세력이자 재산이자 파워다. 그런 앨런에게 가십거리, 특종, 음모론은 아주 중요한 먹이거리이다. 유튜브를 통해 홍콩에서의 초기 발병부터 주목하기 시작하던 그는 개나리라는 치료약이 있지만 정부에서 다른 목적으로 이를 부정하고, 백신개발도 은폐하고 있다며 음모론을 퍼뜨린다. 자신의 몸에 직접 실험을 하고 스스로 치료하는 쇼를 블로그에 벌여가면서까지 사람들의 관심에 사활을 건다. 자신에 대한 대중들의 지지는 곧 자신의 존재 이유이고, 그것이 있어야 자신의 목소리가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에게 이 질병, 혹은 이 공포와 혼란은 더욱 기회이다. 그는 이것을 십분 활용한다. 심지어 그는 자신에게 현혹된 대중이 마련해준 대가로 자신을 체포한 정부로부터 보석금을 내고 풀려나오기까지 한다. 이제는 완전한 백신이 세상을 치료하고 있는 그 시간에, 국가는 앨런이 어떤 행동으로 선동을 했는지 죄목을 조목조목 들이대지만 그는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고 오히려 혼란한 시기에 대중이 자신에게 벌어준 돈으로 보석금을 내고 다시 사회 속으로 스며드는 것이다. 주드 로가 연기한 앨런은 영화 속에서 공포와 혼란을 가중시키고 대중을 눈멀게 하는 선동자로서 존재하고, 또한 상황에 따라 그런 선동에 쉽게 휘둘리는 대중의 우매함을 은유한다. 그는 공포가 있을 때 그것을 오히려 가속화하는 우리 사회 속의 암적 존재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왜 국가의 부정적인 면은 등장하지 않느냐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앨런이 제시한 음모론은 최종적으로 틀린 것으로 영화가 묘사하기 때문이다. 물론 시카고를 마음대로 통제하거나 하원의원의 목숨을 우선시하는 등, 정부 권력의 부정적인 면도 영화속에 있지만 그것을 자세히 묘사하지는 않는다. 이는 아마도 영화가 보다 더 일반 시민들, 바로 우리들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 아닐까. 보통 이쯤하면 나올법한 국가의 거대 음모 같은 것은 이 영화에 없거나 상대적으로 작게 표현되고 지나간다. 등장하는 캐릭터 면면들이 국가 요직보다는 대중에 더 가깝게 위치하는 건 영화가 공포와 혼란의 상황을 우리들의 시각에서 보고, 느끼기를 원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종종 이 영화를 - 질병재난영화가 아니지만, 그것을 보다 더 현실적으로 그려냈기 때문에 그 공포와 혼란의 상황이 직접적으로 와 닿고 느끼게끔 해준다고 평하는 글들을 보았다. 롤랜드 에머리히 식이 아닌, 스티븐 소더버그 식의 영화는 상황의 묘사보다, 그것의 적나라한 리얼리티로 다양한 인물군상들의 모습을 더 와 닿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물론 인공조미료 맛이 나는 재난영화들 보다 훨씬 담담하고 현실성 있었던 점에는 나도 동의한다. 하지만 솔직히 캐릭터마저 리얼리티하지는 않았다. 리얼한 캐릭터로서 우리들의 모습을 반추해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이 영화는 직접적으로 드러내놓고 교훈적인 캐릭터들을 배치해, 질병이 야기한 공포와 혼란과 정 반대진영에 서있게끔 했다. 그래서 공포가 휩쓸고 지나가는 그 속에서도 우리는 이 영화 속 인물들을 보고 그들의 행동들로부터 희망을 볼 수 밖에 없다. 재난이 지나간 이후 맷 데이먼의 귀여운 어린 딸과 그녀의 남자친구가 춤으로서 풋풋한 사랑을 시작해나갈 때, 마리온 꼬띠아르가 자신을 납치하고 가두었던 홍콩 빈민촌의 아이들에게 가짜 백신이 전해졌다는 것을 듣고 오히려 아버지를 뒤로한 채 공항을 달려나갈 때, 케이트 윈슬렛이 죽음이 엄습하는 와중에도 옆의 환자가 추위에 떨자 자신의 점퍼를 건네주려 애쓸 때. 우리는 공포와 혼란이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도 희망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더버그는 재난영화를 만들지 않았다. 이것은 절망적인 가상적 상황을 설정하고 그 속에서도 꺼지지 않을 인간성과 인류애를 심어놓은 희망적 보고서 같은 영화, <컨테이젼>이다. 아참, 그리고 손은 꼭 닦고 다니자.
















덧글

  • あさぎり 2013/01/15 17:40 # 답글

    손은 꼭 씻고, 몸이 으슬으슬하면 병원에.

    그리고 약장수 말은 조심조심.
  • 레비 2013/01/16 11:33 #

    개나리액이 최고..!
  • 초량 2013/01/16 00:08 # 답글

    저도 굉장히 인상적이게 봤던 영화인데,
    제 감상을 이런 식으로 표현하지는 못할 것 같아요.
    좋은 리뷰 잘 봤습니다.
    저와 같이 보신 분은 이걸 보고서 학력 인플레가 심한 영화라고 평하셨었어요 ㅎㅎ
  • 레비 2013/01/16 11:34 #

    칭찬 감사합니다 ^_^
    학력인플레 ㅋㅋㅋㅋ 맞아요 등장인물들이 죄다 최소 박사.. ㅎㅎ
    예상하고 갔던 질병재난영화가 아니라서, 더욱 좋았던 영화였어요 :)
  • 굿 2014/07/24 01:51 # 삭제 답글

    리뷰 좋네요 잘봤습니다 ^^
  • 레비 2014/07/24 14:43 #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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