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사무라이, The Last Samurai, 2003 Flims








적이나 혹은 자신의 상황과 대치, 대비되는 대상 집단에 심적 동화를 일으켜 최종적으로 주인공을 변화시키고 감회시키는 영화를 모아보자면 어떤 일정한 공식을 발견할 수 있다. 영화에서 처음 시작하는 주인공의 출발 지점과 마지막 지점이 상반된다는 점. 처음엔 흔들림 없던 주인공의 신념과 믿음이, 이에 균열을 가져오는 어떤 사건이나 계기를 통해 오해나 몰이해를 깨닫고 반대진영에 마음을 빼앗겨버리는 것이다. 이런 영화에 필요한 것은 영화 시작부터 구성된 명확한 대치와 대립의 깊은 갈등 구도이고, 여기에 강한 집단의 일부였던 주인공이 약한 집단에 마음을 흔들린다는 설정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본래 진영을 배신하고 (배신이라는 상황은 원래 속해있던 집단이 악하게 그려짐으로서 무마된다) ‘약자’의 편에 서게 된 주인공은 그들을 ‘이끌면서’ 혹은 힘을 보태며 한때 자신이 몸담았던 진영과 대립하는 것이다. 이 모든 공식을 성실히 따르고 있는 영화들에는 대표적으로 제임스 카메룬 감독의 <아바타>가 있다. 디즈니의 ‘포카혼타스’ 이야기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그런지 일반적으로 힘의 차이가 월등한 다른 두 종족이나 인종간의 싸움에 이런 설정이 많이 이용되었다.




포로가 되거나, 연구나 정찰을 하다가 그러하든지간에 상대방과 더 자주 부딪히고 가까이 다가갈 조건이 되었던 주인공이 오히려 그 상대에게 동화되어버리는 심리를 ‘스톡홀름/리마 신드롬’과 결부지어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1971년 미국 뉴웨이브 작가 로저 젤라즈니의 단편소설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에서 근원을 찾고 싶다. (나는 이 소설이 영화 <아바타>의 중요한 모티브가 되었다고 믿는다. 너무나 일치하는 점이 많다.) 자신이 무지했던 미지의 존재나 세력에 대해 재발견과 재인식의 계기를 거쳐 적의가 서서히 호의로 바뀌고 결국 칼을 거꾸로 겨누게 되는 이런 이야기는 앞서 언급했듯이 하나의 장르로 묶을 수는 없지만 오래 재생산되던 영화소재일 것이다. 에드워드 즈윅 감독의 2003년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도 그런 영화들의 목록에서 절대 뺄 수 없을 영화다.

91년 케빈 코스트너가 감독과 주연을 맡았던 영화 <늑대와 춤을>을 기억하는 분들이라면 앞서 <아바타>를 예로 들었을 때보다 더 이해가 빠를지도 모른다. <늑대와 춤을>의 주인공 존 덴버(케빈 코스트너) 중위는 12년 뒤, <라스트 사무라이>에서 네이든 알그렌(톰 크루즈) 대위로 다시 돌아왔다. 톰 크루즈의 덥수룩한 턱수염은 그때 케빈 코스트너의 수염을 연상시키고, 아이러니하게도 네이든 알그렌 대위는 미국 서부개척시대에서 인디언 원주민 학살에 대한 트라우마를 안고 있는 군인이다. (<늑대와 춤을>에서의 주된 충돌 중 하나는 개척시대 미군 기마병들과 인디언 원주민 사이의 전투이다) 




94년 <가을의 전설>, <셰익스피어 인 러브>, <아이 앰 샘>을 거쳐 2010년 로맨틱 코미디 <러브 & 드럭스>까지의 제작에 이름을 올렸던 에드워드 즈윅이지만, 그가 98년 <비상계엄>과 2006년 <블러드 다이아몬드>의 감독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그는 소시민적 저항과 위압적이고 강력한 불의에 맞서는 그림들을 그릴줄 아는 감독이라는 것. 그런 그가 미국 영토 내 인디언들을 넘어, 동방의 섬나라 일본이 서구에 개방하던 그 시기에 오래된 전통의 사무라이에게 초점을 맞춘 점은 헐리우드 영화치곤 신선한 발상이었지만 다행히 감독을 잘 만난 영화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서구 문물 개방을 위해 턱시도를 입고 천황을 현혹하는 대신들과, 사무라이들이 자신들의 지도자 카츠모토(와타나베 켄)의 지휘 하에 전통과 오래된 신념을 고집하고 서구열강에 저항하고 있던 일본은 그대로 갈등의 무대가 된다.

알그렌 대위는 대對인디언 전쟁 영웅이었지만, 상관의 명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자행된 학살에 대한 죄책감을 안고, 명분을 잃은 전쟁 후 미국 사회내에서도 설 곳과 갈 곳을 잃은 남자다. 평화는 전쟁영웅을 필요치 않듯이, 그런 그가 전란의 장소를 찾아 지구 반대편 일본까지 건너오게 된 것은 사연이야 슬프지만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반면 카츠모토는 전쟁을 즐기던 전쟁 영웅은 아니지만, 천황의 스승이자 국가의 중요 대신이기도 했을 만큼 알그렌과는 달리 진정으로 자국 일본의 미래를 걱정하는, 시대의 변화와 흐름에 발맞추는 것보다 기존의 것을 지키기를 택한 다른 모습의 영웅이다. 이 두 남자의 숙명적 조우가 이 글 맨 첫 문단에서 언급했던 공식들과 만나, 그 감동을 배로 만든다.






알그렌이 불운하게도 사무라이들의 포로가 된 것이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었지만, 그가 할복으로 대표되는 사무라이의 이해할 수 없는 정신들을 포로생활을 통해 이해를 넘어 감회되고 배움을 얻으면서 그들의 일부가 되는 과정은 제법 설득력 있게 그려져 있다. 아울러 자신이 그토록 증오하는 상관과 오직 돈과 실리에 움직이는 일본 정부의 고용에 환멸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그는 서서히 카츠모토와 그의 사무라이들에 매력을 느낀다. 그리고 이 점은 후반으로 갈수록 그가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던 인디언 학살의 트라우마에 대한 스스로의 사죄, 뉘우침, 죄 값의 대리적 표출로도 대신된다. 결국 카츠모토와 알그렌의 동질감은 전우애를 넘어 우정에까지 다다른다.




개방의 혼란을 겪는 일본 정부와 시대상을 차용하면서 영화속 사무라이들은 철도 등의 서구문물에 저항하는 전통과 오래된 것들이 쌓아올린 정신을 대표하고 있지만, 영화는 서구인들이 가진 일종의 오리엔탈 판타지를 반영한 듯 보인다. 물론 정신적이고 영적인 면을 강조하기 위함이긴 하지만, 지나치게 비상식적인 신념으로 사무라이들을 묘사하고 있고(아 물론 같은 동양권 국가에 태어난 내가 보기에도 지나친 면이 없지는 않지만..) 남편과 아버지를 죽인 자를 집안의 손님으로 모시는, 이해하기 쉽지 않는 어떤 고결한 영적 존재들로 비치게 만든 건 같은 아시아인으로서 보기엔 실소가 나오는 부분이긴 하다. 물론 서구인들 눈에 보인 일본, 그것도 과거 일본의 모습은 서부 인디언들 사회보다 충분히 더 신비롭긴 했을 것이다.





영화는 결말의 예상범위를 무리하게 뛰어넘려는 시도조차 하지않은 채, 우리 모두가 짐작 가능한 결말을 취하지만 우리는 이를 알고도 감동받는다. 아니 사실 이 영화의 마지막은 감동받을 수밖에 없게 연출되어있다. 마지막 20분의 전투 씬의 전율은, 다른 영화들에게서 수십 번도 봤을법한 뻔한 결말이지만 과장되지 않은 액션과 슬로우 모션의 절제 속에서 영화의 대미를 찍는다. 나는 이 영화를 두세번은 보았지만 볼 때마다 와타나베 켄과 톰 크루즈가 말 머리를 나란히 하고 달리는 장면에서 전율을 느끼고 마지막 경례씬에선 꼭 눈물이 난다. 그것도 펑펑. 너무나 많은 클리셰들의 집합으로 만들어진 영화라고 폄하 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구조의 영화들이 매번 시대마다 감동을 주는 이유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겠다-는 영화가 가진 몇 가지 절대목적 중 하나로 도달할 수 있는 경로를 영화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는 마지막에 일본이라는 한 국가의 운명을 사람의 운명에 빗대며, 그렇게 끝날 수밖에 없었던 결말을 보듬어보려는 듯 하지만 그것은 사실 아무래도 상관없다. 찾고 있던 근본적인 마음의 평화를, 알그렌 대위는 카츠모토와 그의 사무라이들과 함께 치룬 값비싼 경험을 통해 배웠다는 것이 오히려 이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의 더 중요한 결말이 아닐까.











덧글

  • 구필삼도 2013/01/13 05:46 # 답글

    아아 라스트 사물놀이..한때 제 최고의 영화였던 적이 있는 영화죠...지금이야 다른 영화로 대체되긴했는데, 그 대체의 기반이 아바타 논란이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아바타 논란을 통해 라스트 사물놀이 이전과 이후의 비슷한 포맷을 지닌 영화들을 알게 되어서 그런지, 포맷이 비슷해도 질이 좋으면 상관하지 않겠다는 생각과는 달리, 어느 정도 저항감이 느껴지더이다. 그나저나 잘 분석하신 글인 것 같습니다. 주인공의 입장변화는 교묘하게 관객마저도 끌어들이는 감이 있죠
  • 레비 2013/01/13 20:32 #

    같은 포맷을 가진 영화들이 그래도 계속 재생산된다는건 그런 공식들이 그래도 먹혀든다는 확신이 있어서겠죠. 저 역시 '다 알고봐도' 재미있고 감동받는 영화였습니다.
  • 구필삼도 2013/01/13 20:34 #

    ㅎㅎㅎ그렇죠 진부하다는 것, 상투적이라는 것....그건 어떻게 보면 진부하고 상투적으로 변할 때까지 사람들을 매혹시켰다는 것과 같은 의미일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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