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르, Amour, 2012 Flims





* 스포일러를 가능한 안 쓰겠다며 썼는데, 읽는 분에 따라선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아오.. 젠장."

아침 11시 광화문 씨네큐브 1관 입장을 기다리며 포스터를 구경하고 있던 나는, 두시간여 뒤, 내가 객석 의자에 파묻혀 이렇게 중얼거릴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아주 적은 수의 상영관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관객들에게 어필하고, 또 입소문을 타고 있는 영화 <아무르>는 사실 나의 1월 계획에 없었던 영화였다. SNS를 통해 퍼지고있는 입소문에 대해선, 황금종려상과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명성에 의해 다소 과대평가되고 미화된 면이 없지않은가 싶은 의심이 있었고, 노부부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어느정도 예상이 될 뿐더러 50대 이상의 관객분들이 주요한 관객층을 형성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타의에 의해 예정에도 없던 일정으로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영화 <아무르>를 접하고 나온 나의 심정은, 가장 처음 분노였다가, 곧 부정으로 바뀌었다가, 이후 반성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지금은, 영화 리뷰를 빙자한 나의 감정 변화를 여기에 남겨놓고 싶다.


정성일 감독님은 책에 영화평론가가 되는 세 가지 '무시'를 유머러스하게 이렇게 제시했다. 박스오피스 결과를 무시하고, 칸영화제 수상 결과를 무시하고, 동료들의 별점을 무시하라. 기대 이상의 관객들이 보았고, 좋은 호평들을 남기고, 무엇보다 칸영화제 수상경력이 있는 이 영화는 그래서 무시할 거리가 많았다. 솔직하게 말해서 약간의 오기도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뭔데 그리 대단하길래. 내가 이 영화를 다 보고 나와서 누군가의 이 영화에 대한 칭찬일색에 그거 좀 과대평가된 감이 있지않느냐고 한마디 꼬집을 수 있게 되길 은근히 기대했던 흑심도 있었다. 조르주 할아버지와 안느 할머니. 유별나게 가깝고 다정하지도, 그렇다고 거리가 멀어보이지도 않는 이 노부부에게 어느날 별안간 찾아온 불행. 그리고 카메라는 내내 집에서 한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조르주 할아버지의 간병과 수발, 그리고 안느 할머니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가능한 잃지 않으려 애쓰는 몸부림으로 영화의 남은 부분들을 채워놓았다. 점프샷과 거친 컷이 자주 사용되어 영화는 시간을 훌쩍훌쩍 건너뛰지만 그 속도를 쫒아가는 것이 버거울 정도는 아니다. 게다가 이 영화의 카메라는 발이 느리다. 카메라는 인물을 ‘따라가기’보단 ‘뒤에 남겨진’ 시선이 잦다. 즉 움직인 인물을 따라가기보다, 남겨진 인물과 함께 기다린다. 삽입된 음악이 없고, 두 부부의 엔틱한 집안의 인테리어는 분명 어지럽진 않지만, 노부부의 위태위태한 거동과 맞물려 어딘지 모르게 불안하다.


다소 지루하고 뻔 할 수도 있지만, 중후반까지 이어지는 이 헌신적인 노부부의 노력과 서로에 대한 배려에 감동을 받지 않기란 사실 어렵다. 하지만 반복되는 훈훈함에 무뎌진 우리의 감성이 "에게, 겨우 이거였어?" 라는 건방진 심사를 슬며시 고개들려할 때면, 영화는 진짜 리얼리티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내가 스스로 반성하고 싶은 부분은 여기서 부터다. 영화를 보면서, "아 저 할머니 정말 고집있고 답답하시네"라든지, 딸(이자벨 위페르)이 요구하는 '진지한 대화'가 내가 생각하는 안락사가 아닐까 싶기도 하면서 슬슬, 영화가 아닌 현실이라면 저 할아버지도 저렇게까지 마더 테레사처럼 희생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꿈틀댄다. “그래, 영화니까!”하는 변명에 의지해 서서히 경계를 풀고 거의 다 왔다 싶을 때 즈음 이 영화는 '그런 식'의 작별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가드도 미처 올리지 못한 상태에서 한방 얻어맞은 나로서는 그 순간, 그 장면에서 "아오... 젠장." 하며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현실이라면 역시 그렇겠지만 그래도 '영화니까'라며 기대하고 있던 장면들이 순식간에 무너지자, 우습게도 조금전까지 그런 장면을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던 관객인 주제에 나는 스스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충돌했던 것이다. 내가 믿는 것이 정말 영화에서 현실이 되었을 때 "암 그럼 그래야지" 싶었다가, "아 이래선 안되는데" 로 돌변하는 이 가볍고 얄팍한 변심은 상투적인 결말을 기대하지 않았으면서도 정작 내 기대대로 영화가 움직여주었을 때 어딘가 배신당한 기분을 가져왔다.


허문영 영화평론가님의 글. 영화 <추격자>와 <괴물>에서, 우리들은 미진과 은서가 무사히 구출되기를 윤리적으로 바라지만 사실 정작 우리들이 영화관에 보러가는 대상은 연쇄살인범과 괴물이었다는 뉘앙스의 글들을 읽은 적이 있다. (하나의 글에 이 문장이 그대로 담겨있던 것은 아니고, 다른 시기에 썼던 다른 글들에서 각각 추려내자면 그렇다) 나는 <아무르>를 보고, 그 감정의 동요의 근원을 찾지 못해 당황했다. 리얼리티가 주는 날 것 그대로의 감동이기 때문에? 가공되지 않은 듯 한 사실성이 오히려 이들의 마지막을 더 고귀하게 만든다고 선선히 인정하기엔, 예측 가능한 전개만을 은연중에 기대하던 나의 습관, 관성이 부끄러웠다. 영화가 현실성이 없으면 이 영화는 왜 이렇게 허무맹랑하냐며 불평하지만, 정작 이토록 현실적이면 이질감을 느끼는 모순이 부끄러웠다. 어디선가 읽었는데, 기계공학이 아무리 발달하여 사람에 가까운 기계에 근접해도 그 기계가 지나치게 사람을 닮으면 오히려 인간은 소름끼쳐하고 거부감을 느낄 것이라는 글이었다. 나는 단순하게도, 영화도 이와 같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영화 속 노부부의 삶이 아무리 현실성 있어도, 일상에선 쉽게 보기 힘든 그들의 헌신과 사랑에 감명 받지만, 정작 그들의 모습이 이상으로부터 떨어져 우리와 같은 자리로 내려오면 오히려 그 영화스럽지 않음에 불편해 할 수도 있다는 욕심과 억지. 영화관에서 영화를 기대하는 것이지 인간극장을 보러간 것이 아니니까. 그렇지만 이 영화 <아무르>는 나의 이런 안일한 생각을 비웃듯 가볍게 뛰어넘어, 어디가 감동적인지 콕 집어 말하기 힘들기 때문에 더욱 감동적일 수 있는 영화가 되어주었다.


사실 영화의 시작, 화려하고 인상적인 극장객석 씬에서부터 눈치챘어야 했다.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한사람 한사람들을 관찰했지만 나는 그 객석 안에서 주인공 부부를 찾지 못했다. 헛기침까지 리얼한 그 몇 초간의 장면들은 스크린을 사이에 둔 ‘우리 관객들’과 데칼코마니를 이룬다. 이는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가 지금 여기 앉아있는 우리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음을 미리 예고하는게 아닐까. 그래서 조르주 할아버지에게 영화의 마지막까지 초인적인 헌신과 인내와 사랑을 기대했던 내게, “그렇다면 너는 그렇게 할 수 있겠어?” 이라고 영화가 되묻고 있는 것 같았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가져갈 수 있었던 아름다움이나 존엄성을 영화가 제거한 것은 오히려 ‘영화스러운’ 마지막으로 인해 지금까지 보여줬던 조르주 할아버지의 헌신적 노력이 역설적으로 빛바래버릴 수도 있었던 것을 염려했던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반대로 생각해서, 두 부부가 아름다운 이별을 맞이하지 않았기에 그들의 노력이 역설적으로 숭고함을 얻게 된 것이 아닐까. 요즘 세간에서 이 영화를 평하고 있는 점-삶과 죽음에 대한 진지한 성찰, 또는 현실적이라 더욱 먹먹하게 다가오는 노부부의 사랑 등-을 영화를 통해 얻기 전에, 일단 나부터 이 영화 <아무르>를 제대로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있었다는 점을 반성해본다.









+
반성하고도 정신을 못 차린 채, 개인적인 욕심을 덧붙이자면, 마지막에 “당신 오늘 유난히 예쁘다고 말을 했던가.” 라는 대사가 다시 나왔으면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분명 그럴 수 있는 장면도 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덧글

  • 아루아루 2013/01/08 08:57 # 답글

    전 연말에 신의 소녀들 보러 갔다가 아무르의 인기에 놀랐어요
    관객층도 그랬구요
    근데 저도 그만큼 공감할 수 있을까 싶어서 망설여진 영화쯤 되는 듯....
  • 레비 2013/01/08 17:04 #

    오 재밌게 보셨나요? <신의 소녀들>.. 씨네큐브에선 (제가 사는 동네에선 좀 멀어서 부담되지만;) 정말 매번 괜찮은 영화들을 많이 해주는 것 같아요. <아무르>말고도 현재 지금 상영작들에 다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아 사실 저도 오늘 조조시간에 봤는데, 할아버지 할머니 분들이 단체로 잔뜩 오셔서 놀랐어요. 제가 여지껏 살면서 영화관에서 그렇게 많은 할아버지 할머니분들과 함께 영화를 본 경험은 처음이었어요. ㅎㅎ 전 주위에 워낙 호평 칭찬이길래 호기심도 있긴했는데.. 모두가 보편적으로 공감할만한 영화는 솔직히 아니라고 생각해요.
  • ㅁㅁㅁㅁ 2013/01/08 09:24 # 삭제 답글

    저도 영화 처음에 분명 하네케 영화인데 너무 편안하게 흘러가서 좀 놀랐다가 역시나 했음ㅋㅋㅋ

    저같은 경우엔 완전 반대의 케이스긴 하네요 ㅋㅋ
  • 레비 2013/01/08 09:32 #

    허허허.. 저는 그 조르주 할아버지의 복도 꿈 씬에서 깜짝 ㅠㅠ;;

    미하엘 하네케 감독의 영화를 많이 보진않고 소문으로만 잔뜩 들어서그런지 전 예상치 못했어요 ㅋ
  • 밤비뫄뫄 2013/01/08 10:43 # 답글

    저...50대는 아직 할아버지 할머니가 아니십니다..;;;;;
    요새는 70대는 되어야 할아버지 세대죠...
  • 레비 2013/01/08 17:04 #

    아 ㅋㅋ 제가 어디에 50대분들을 그렇게 썼나 한참 본문을 다시 읽었더니 아루아루님한테 답글로 그렇게 썼군요 ^^;; 포스팅에 50대 이상관객들이 많다는걸 써둔것때문에 저도모르게 그렇게썼네요 ㅠㅠ 수정했습니다 ㅋㅋ 아 50대면.. 그럴리가 없죠 ㅎㅎ;
  • 2013/01/08 18:40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1/09 10:27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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