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설이다, I Am Legend , 2007 Flims







2007년에 개봉된 이 영화 <나는 전설이다>의 영화 속 배경은 2012년이었다.


이 영화를 보고난 한 친구는 “보고나면 개를 키우고 싶어지는 영화”라고 했다. 당시엔 실소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참 이 영화를 잘 압축한 표현이다. 영화 <나는 전설이다>의 감독은 2005년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영화 <콘스탄틴>의 감독이기도한 프란시스 로렌스다. 얼핏 뻔해보이는 소재를 예상치 못한 색다른 전개와 독특한 결과물로 만들어 내놓았던 <콘스탄틴>의 차기작으로 그는 리처드 매디슨의 고전 호러소설을 가져왔다. 리처드 매디슨의 이 소설은 이미 과거 두 번이나 영화화 되어 소위 ‘좀비 영화’의 효시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프란시스 로렌스는 영화화 전적이 있는 이 소설을 또 다시 영화화하는데에 있어서 정공법을 택하지 않은 것 같다. 그는 자신의 스타일대로 리메이크해 보이길 원했다는 느낌이다. 결과적으로 끊임없는 논란의 도마에 영화가 올라가야했지만 말이다.


이 영화는 이미 고전 소설이라는 원작이 있는데다가, 감독판과 극장판의 결말마저 다르기에 영화 <나는 전설이다>는 개봉 이후 꾸준히 완성도에 있어 논란거리를 떠안아야 했다. 그리고 그 논란의 중심에는 ‘결말’이 있다. 결말이 다른 버전을 가진 영화들은 제법 있지만 이 영화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원작의 결말과 감독판의 결말이 주는 뉘앙스는 곧 제목인 ‘나는 전설이다’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으나, 극장판의 결말은 같은 제목 아래 있는 영화의 본래 의도를 틀어버렸다는 비난을 피하지 못했던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감독판의 결말 역시 원작과 다르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를 조금 변호해주고 싶다. 결말의 몇 장면으로 인해 영화 전체가 바뀌었다고 느껴진다면 거기까지 달려온 영화의 다른 부분들을 외면한 것이 아닌가 싶다. 스포일러를 당하고 싶지 않은 분께선 여기까지만 읽으시길 권한다.







영화를 거칠게 전후반으로 나눈다면 전반은 네빌 소령(윌 스미스)의 압도적인 고독과 홀로 남은 ‘최후의’ 인간이라는 컨셉으로 축약할 수 있다. 이것은 여느 SF영화의 한 장면, 그리고 좀비 영화에서의 장면들과 크게 다를 바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몇몇 장면들은 상투적이지 않고, 보다 더 인상적인 부분들마저 있다. 영화의 시작부터 네빌은 키우던 개 한 마리와 함께 텅 빈 뉴욕 타임스퀘어를 스포츠카로 가로지르며 원시의 인간이 그랬듯 ‘사냥’을 벌인다. 텅 빈 도심에 잡초들이 자라 서서히 자연으로 돌아가는 인간문명의 모습에 잠시 한눈을 팔다보니 곧 이 영화의 초반부, 네빌의 혼자 살아가는 모습을 담은 시퀀스들에 나는 압도당했다. 영화는 네빌의 혼자만의 삶을 올드한 SF소설처럼 그려낸다. 전반부는 네빌이 느끼는 고독감이 영화를 지배한다. 가장 압권은 그가 매일 출근하듯 향하는 음반가게에 미리 배치해둔 마네킹들에게 이름까지 불러가며 말을 걸고 대화를 하는 장면들. 그가 가장 가까이에 두고 있는 생명체는 키우는 개 한 마리가 전부인 상황에서 그는 단순히 외롭고 고독해서 그런 행동들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성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한 자기 나름의 처방을 내린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이미 날짜가 훌쩍 지난 – 인류 사회가 멀쩡하던 시절의 - 과거의 뉴스를 다시 돌려보고 마치 사회가 여전히 거기 있는 듯 한 분위기를 내기 위해 홀로 애쓴다. 골프도 치고, 쇼핑도 하고, 사냥을 하며 음식을 구한다. 물론 여기엔 매일 정오, 진짜 다른 생존자를 찾기 위한 라디오 방송도 포함된다. 그가 뉴욕에 홀로 남아 지키고 있는 이유는 중간중간 교차편집 된 회상들이 대신 답해준다. (네빌의 회상 속에서 헬리콥터를 타고가다 아내와 함께 안타깝게 죽는 네빌의 딸로 연기 한 여자아이는 실제 윌 스미스의 딸인 윌로우 스미스이다)






그는 백신을 개발하기 위한 사명을 갖고 홀로 뉴욕에 남았다. 날짜를 알 수 없는, 네빌의 냉장고 문에 붙여있는 타임지 겉표지에는 다른 이도 아닌 네빌 본인이 장식하고 있다. 이는 네빌이 ‘원작 소설 속 주인공’과 달리 한때 세상의 기대, 인류의 희망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는 지금도 그 중책으로부터 달아나지 못하고 있음을 슬쩍 보여준다. 그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목적과 의지의 근원이 단순히 생존과 연명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백신 개발에 있다는 점이다. 백신을 개발하는 것이, 외로움과 고독과 싸울 수 있던 지상과제였던 그의 모습은 외롭고 투철한 전사의 모습. 말 그대로 최후의 인간이자 마지막 전사 같은 모습이다. 이쯤되면 자연스레 제목이 말하는 ‘전설’은 바로 네빌의 그런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영화가 계속될수록 조금 이상하다. 마치 지구에 남은 인간은 네빌 하나뿐인 느낌이 든다. 그래도 그는 백신을 개발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좀비들을 (영화에선 좀비라는 단어로 지칭하지 않지만) 다시 인류로 되돌릴 수 있다는 희망만이 그가 겪는 고독을 버티게 해주는 힘이자 사명이자 동력이 된다. 이것은 뉴욕 한복판에 떨어진 로빈슨 크루소, 윌 스미스의 <캐스트 어웨이>다. 그렇기에 안나(앨리스 브라가)와 이든(찰리 타헨)의 등장은 네빌에게, 그토록 바래왔지만 동시에 받아들일 수 없는 역설적인 일이었다. 대단한 아이러니. 또 다른 생존자를 찾아 매일 라디오 주파수에 메시지를 흘려보내고 마네킹과 대화를 시도해가면서까지 외로움을 달래지만, 정말 눈앞에 자신 이외의 인간이 또 있다는 사실은 아무리 바래왔던 일이라도 그가 그간 유지하고 버텨온 세계가 파괴당하고 무너지는 일이었다. 다른 인간과 한 공간에 있다는 자체에 적응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운 그에게 베이컨 요리가 눈에 들어올리 없었다.


나는 이 영화에서 중요한 키워드는 ‘사회성’이라고 생각한다. 혼자 남은 인간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외로움과 고독일 수도 있지만, 애초에 두명 이상의 인간이 존재해야 그 속에서 ‘관계’가 가능하고 그 이상의 ‘사회’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네빌에게 사회성은 혼자서는 도저히 이루기 힘든 영역이다. 하지만 우습게도, 그는 실험에 쓸 여자 좀비 한명을 생포한 뒤, 그녀를 구하러 햇볕 아래로 뛰어나오기까지 한 남자 좀비를 보고 - 과거에 인간이었지만 오래된 변종(좀비)생활로 ‘사회성을 잃었다 -고 평가한다. 하지만 이 대사는 영화의 결말과 맞물려, 그가 그토록 사회성을 잃어버렸다고 분석한 좀비들의 모습이 곧 눈치채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이기도 했다. 자신이외의 생존자가 있다는 사실을 믿으려조차 않던 그가 이해되지 않는건 아니다. 그래서 그는 생존자 캠프로 떠나지 않겠다고 한다.







자 이제 클라이막스. 좀비들이 마침내 네빌의 안식처에 당도한다. 그러나 이제 막 백신이 완성되었다. 자신의 염원이자 존재 이유가 결실을 맺은 그 순간, 궁지에 몰린 네빌은 자신이 사회성을 잃었다고 판단한 좀비들이 전혀 그렇지 않았음에 주목하느냐 마느냐에 결말이 갈린다. 극장판의 네빌은 완성된 백신을 안나와 에단에게 맡기고 장렬히 좀비들과 함께 희생한다. 여기엔 좀비가 중요하지 않다. 이 엔딩에서 좀비들은 그저 네빌과 안나를 향해 돌진하는 괴물들처럼 그려져있다. 그리하여 백신을 생존자들에게 전달 할 수 있게된 네빌은 그야말로 ‘후대 인간들의 전설’이 됨을 암시한다. 하지만 감독판의 네빌은 그 좀비들이 원하는 실험체인 여자 좀비를, 백신을 포기하는 대신 원래대로 되돌려 준다. 그 대신 목숨을 건진 네빌과 안나 등은 사회성도 없다고 믿은 그들이 결코 그렇지 않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원작 소설은 또 다르다. 극장판의 네빌처럼 좀비들에게 죽지만 그는 다른 의미의, 다시 말해 좀비들이 곧 새 인류가 되는 세상에서 ‘그들의 전설’이 된다. 하지만 소설 이야기는 여기서 하지 않겠다. 결국 제목의 ‘전설’에 대한 해석은 결말에 의해 달라지는 것이다.






이든을 재우고 안나와의 대화에서, 네빌은 실존했던 전설적인 레게 뮤지션 밥 말리의 앨범을 꺼내보이며, 그를 몰라보는 안나에게 그의 삶을 요약해준다. 그 장면에서 윌스미스가 건네준 그 앨범은 나 역시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밥 말리의 앨범이기에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 앨범명은 다름아닌 <Legend>이다. 인종차별을 음악으로 치유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이상주의자라고 밥 말리를 소개하는 네빌은 그가 총에 맞고도 며칠 뒤 세상을 위해 노래하는 것을 쉬지 않았다고 설명하며 눈시울을 붉힌다. 밥 말리의 그런 인생은 세상 사람들이 전부 사라졌어도 백신을 만들기 위해 쉬지 않는 이상주의자 네빌, 본인과 겹쳐진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에 총탄에도 굴복하지 않고 꿋꿋히 걸어가 결국 '레전드'라는 명반을 남긴 밥 말리. 제목의 ‘레전드’에 대한 엇갈릴 수 있는 해석을 의식이라도 하듯 의도적으로 삽입해둔 장치가 아니었을까.










+









덧글

  • 서주 2013/01/08 14:18 # 답글

    전 감독판 결말로만 봤었어요. 사실 취향(?)대로라면 극장판 결말이 더 좋았을텐데 이것도 좋더라구요. '사회성이 있는' 그들이었음을 깨닫던 네빌의 표정이 잊히질 않습니다.ㅎㅎ 소설은 읽어보지 않았는데 원작의 결말도 궁금하네요.. (도서관 연체기간이 끝나야 빌리지ㅠㅠㅋㅋ)

    저도 전반의, 진정한 의미의 '독거남' 생존기 시퀀스가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말씀하신 장면들.. (전)도심 한복판서 사냥을 하고, 흘러간 뉴스를 보고, 음반 가게에 가서 마네킹들에게 수작을 걸고, 캔을 따고, 해질녘을 정확히 예감하고 집이 곧 방공호(..)가 되는... 네빌의 고독은 아름다웠습니다ㅜㅜ 개도 아름다웠습니다ㅜㅜ
    오늘 밤엔 저도 레전드를 들어야겠어요. :)


  • 레비 2013/01/09 10:37 #

    소설은 (좀비물 자체가 제 취향이 아니라 그런건지) 좀 지루했어요. 영화보다 소설에서 말하는 전설의 의미가 엔딩이 좀 더 묵직하게 다가오는건 맞는것 같아요. ㅎㅎ 하지만 전 원작과 비교당하는 영화를 보면 늘 영화편을 들어왔기때문에 ! (뭐든 영화로 재탄생한 이상 원작을 답습해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니까요)

    감독판 결말만 보셨군요. 전 극장판을 먼저보고, 나중에 찾아서 감독판을 봤어요. 그런데 사실 제가 이 영화에서 좋아하는 부분은 후반부가 아니라 전반부인지라 ㅎㅎ 크게 상관은 없어했지만요. 고독과 잃어버려가는 사회성 이런 것들이 잘 드러난 영화인데 후반에 생존자들이 나타나면서 급격(!)히 결말로 치닫는 기분이 들었어요. (송지효씨를 닮은 앨리스 브라가는 좋아하지만요*-_-*)

    허허허.. 독거남이라고 하시니까 서주님의 독거가 이렇게 좋다 시리즈 다음화(?!)를 기다린지 꽤 오래되었다는 생각이 퍼뜩 드네요.. ㅋㅋ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이 이글루를 링크한 사람 (화이트)

375

통계 위젯 (화이트)

1230
126
918046

웹폰트 (나눔고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