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비행, Fly Away Home, 1996 Flims









무엇이든 처음은 잊기 어려운 법이다. 그리고 반대로, 잊기 어렵기에 우리는 첫발자국을 가능한 좋게 내딛으려고한다. 인생에서 처음 본 영화라는 타이틀에 대한 선택권은 비록 그 당시 12살이었던 내게 없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지금까지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 영화로 골라졌다. 프리랜서로서 영화에 대한 글도 기고하시던 이모가 어린 조카였던 내 손을 잡고, 어느 영화관을(63빌딩 아이맥스 영화관이었다고 막연하게 기억하고 있었는데, 확실치 않다) 데리고 가주셨던것이 내 인생에서 첫 영화관, 그리고 영화와의 첫만남이었다. 영화관을 처음 들어섰을때의 그 느낌을 나는 나도 놀랄 정도로 아직까지 간직하고있다. 어둡고 컴컴한 공간, 깊숙히 폭 파묻힌 느낌의 포근한 영화관 의자, 영화가 막 시작되려하는 그 암전의 순간과 태어나서 처음 듣는 영화관에서의 쿵쾅거리던 사운드. 16년이 지난 지금까지 나는 아직도 영화 상영관에 들어설때마다 그때 그날의 느낌을 조금씩 반복하고 재경험한다. 영화관에 들어가 상영전 광고를 보면서 푹신한 의자에 파묻혀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앉아 있노라면, 커다랗고 어두컴컴한 이 공간이 세상으로부터 나를 적어도 두시간여동안은 보호해준다는 느낌을 지금까지도 받는다. 철없다해도 별 수 없다. 더 나이를 먹는다 하여도, 나는 세상으로부터 도망칠 공간으로서 언제나 영화관을 최후의 보루로 남겨둘 생각이니까.  







96년에 제작되어 97년초에 국내 개봉했던 영화 <아름다운 비행>은 내게 첫사랑 같은 그런 영화다. 97년 이후에도 가족영화의 전형으로서 국내에서도 여러번 TV방영등을 통해 반복 소개되었던것 같다. 주인공 소녀 에이미(안나 파킨)은 교통사고로 엄마를 잃고, 떨어져살던 아빠 토마스(제프 다니엘스)와 함께 살기 시작한다. 하지만 발명과 비행에만 관심이 있는 괴짜 아빠와, 엄마를 잃은 소녀의 방황은 좀처럼 가까워질 구석이 보이질않는다. 엄마가 없는 가정이지만 아빠의 주변인물들, 새엄마 노릇을 하려는 수잔(테이너 딜러니)나 역시 어딘가 괴상한 삼촌(테리 키니)까지 에이미를 더욱 방안에 숨어있게 만든다. 가장의 역할을 제대로 못해 딸과 아내와 떨어져야했던 토마스와, 이 마음을 열지 못하고 학교다니는데에도 어려움을 겪는 소녀 에이미의 간극은 에이미가 집 근처 늪에서 거위알을 주워오면서 새로운 활로를 튼다.


남쪽으로 날아간 부모 거위 대신 자신이 알을 돌봐 부화시킨 에이미를, 16마리의 거위들은 어미새처럼 따른다. 함께 먹고 자고 뛰면서 에이미는 마더 구스(mother goose)가 된다. 그러나 야생거위는 집에서 키울 수 없고, 집에서 키우려면 날지 못하게 날개를 잘라야된다며 호시탐탐 에이미의 거위들을 노리는 경관이 그들의 집을 위험하게 맴돌면서 에이미와 토마스는 거위들의 잃어버린 날개짓을 다시 가르켜 남쪽 철새지로 돌려보내고자 한다. 하지만 거위들은 이미 에이미 없이는 어디도 움직이지않고, 토마스의 글라이더를 이용해 에이미는 거위들이 토마스를 따르게 하기보다 자신이 직접 비행하여 거위들을 데리고 남쪽으로 날아갈 계획을 제안한다. 이렇게 두 부녀의 간극은 거위를 무사히 남쪽으로 돌려보내겠다는 일념으로 좁혀지고, 어머니를 잃은 소녀의 결손가정은 유사가족들, 즉 수잔과 삼촌, 그리고 토마스와 함께 비행을 하던 베리(홀터 그레이엄)가 메꾼다. 이렇게 삐걱거리는 가족이 하나가 되는 과정이 이 영화가 전반부에 배치하고 있는 구도다. 그리고 마침내 비행. 어미새를 따르듯 에이미의 글라이더 날개에 맞추어 일렬로 비행하는 거위들의 모습과 풍경들이 아름답게 영화 후반부를 채우고있다. 비행을 하며 겪는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은 보는 우리들의 감동을 증폭시킨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지만 사실 황당무계한 느낌을 완전히 지우기는 힘들고, 게다가 전반부에서 보여주는 가족들의 팀워크화와 후반부를 채우는 비행과정과 엔딩씬은 아동용 만화영화처럼 뻔한 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휴먼드라마가 유치하게 보이지않는 건 과도하지않은 감정의 오버페이스나 불필요한 장면들에서 무게를 줄였고, 정말 '비행에 필요한' 요소들만을 취해 영화가 날아오르게 했다는 점이다. 비행에 영화의 많은 부분을 할애하기보단, 비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다소 철없고 제멋대로이고 소리만 지를줄아는 에이미와 딸에게 다가가는 법을 제대로 모르는 아빠 토마스간의 불편한 시간들에 더 투자를 하거나, 함께 비행을 연습하고 몇몇 장애요소들을 함께 극복해가는 과정들을 짜임새있게 배치하고 전개시켰다. 영화 후반의 비행장면들은 정말 이 영화를 69회 아카데미 촬영상에 노미네이트 시킬 정도로 아름답지만 이 영화가 진짜 말하고자 하는 장면들은 이처럼 전반부에 있지않는가 싶다.


에이미 역의 안나 파킨은 이 영화보다 앞선 93년 영화 <피아노>에서 불과 11살의 나이로 94년 아카데미 여우 조연상을 받았던 경력이 있다. 이는 74년 이후 최연소 경쟁부문 수상기록이자, 역대 두번째 어린 나이의 수상자였다. (이 영화 <피아노>에서 안나 파킨이 맡았던 플로라의 어머니 역을 맡았던 홀리 헌터도 함께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피아노>에서의 모습이 확연히 진했지만 <아름다운 비행>에서의 모습도 안나 파킨은 마치 연기를 하고있지도않은 듯한 모습으로 너무나 자연스럽게 주인공 에이미를 보여주었다.


감독 캐럴 발라드의 자연예찬 성향은 그의 필모그래프를 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1979년 <검은 종마 The Black Stallion>는 조난당한 소년과 말이 가까워져 후에 경마대회에 출전하는 이야기. 1983년 <울지않는 늑대 Never Cry Wolf>는 북극에서 늑대를 조사하던 박사가 결국 늑대의 생태에 감응받아 온천개발업자들을 저지하는 이야기. 96년 이 <아름다운 비행>을 거쳐, 2005년 <듀마>에서는 급기야 아프리카에서 치타와 한 소녀의 교감에 대해 말한다. 이 <듀마>는 많은 면에서 <아름다운 비행>과 닮아있는데, 어릴때 인간과 함께한 동물의 야생성을 되찾아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이토록 감독 캐럴 발라드는 사람 사는 모습보다는 자연을 카메라에 담아 그 위에서 인간과 자연의 교감을 추구한다.







하지만 에이미와 거위의 이야기를 제인 구달과 침팬지 같은 이야기와 같은 선상에 둘 순 없다. 자연보호의 메세지가 강하긴 하지만 나는 이 영화의 본질은 가족애에 있다고 믿는다. 사회성을 잃은 소녀와 야생성을 잃은 거위들은 서로가 서로의 도움을 받아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는다. 철새인 거위가 철새지인 남쪽 호수로 돌아가는 것은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감을 의미하며 이는 거기까지 거위들을 데리고 온 에이미에게도 마찬가지로 작용한다. 아버지 토마스의 품에 비로소 안기는 것. 원제 <Fly Away Home>이 말해주듯, home으로 날아가는 것은 비단 거위들 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도착 마지막 1시간여를 남기고 사고로 인해 동행하던 아버지와도 떨어져 혼자 비행하는 에이미의 모습은, 아버지 토마스와 비행을 통해 가까워진 것 이상으로 스스로 혼자 날아올라야하는, 거위들이 앞으로 그래야할 모습과 같다. 거위를 남쪽 호수에 데려다 준 행위는 곧, 가정에서 있어야할 자리로 돌아온 에이미와 마지막 순간 동일시 된다.


나는 생애 첫 영화로 이런 영화를 만날 수 있게되어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어느 위치에서든지 처음을 돌이켜보았을때 이 영화는 항상 그 자리에서 날 흐뭇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끝으로 에이미의 마지막 솔로비행 장면에서 아주 인상적으로 흘러나오는 이 영화의 OST중 한곡, 마리 채핀 카펜터 Mary Chapin Carpenter 가 부른  "10,000 miles"을 링크한다.












+

이 귀여운 에이미는 커서... HBO의 드라마 <트루 블러드>에서 뱀파이어 남친을 만난다.





그리고 에이미의 아버지 토마스 역이었던 제프 다니엘스는, 우연하게도 역시 같은 HBO의 2012년 드라마 <뉴스룸>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주인공 뉴스 앵커 윌 맥코보이가 되었다. 그는 현재 1월 13일에 열릴 제70회 골든글로브 어워드 TV 드라마 부문에서 남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 되어있다.








덧글

  • 파비 2013/01/06 09:07 # 답글

    맥코보이가 토마스였군요! 뉴스룸 보면서 뭔가 낯익다는 생각은 했는데 이 영화에 나왔을 거라고는 생각 못했어요...
  • 레비 2013/01/06 21:29 #

    히- 맞아요 ㅋㅋ 제가 미드는 정말 손에 꼽을만큼 적게보는데 뉴스룸이 재미있게 본 미드중 하나였거든요. 저도 나중에 알았는데 놀라웠어요 ㅋㅋ <덤 앤 더머>의 그 코미디언이 지금은 저런 중후한 역할이라니..ㅋㅋ
  • 자주빛 하늘 2013/01/07 12:28 # 답글

    올려주신 링크만 봐도 감동적이네요. ㅎㅎ
    마음 따뜻해지는 작품이라 저도 좋아했는데...
  • 레비 2013/01/07 15:18 #

    훈훈한 영화죠 :) 참 뻔한 전개의 가족드라마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언제봐도 참 따듯해지는 영화예요 :)
  • mh 2013/01/08 00:42 # 답글

    동영상만 봤는데도 눈물이 뚝뚝 .. ㅎㅎ
  • 레비 2013/01/08 05:14 #

    민하님도 오래된 영화취향이 저와 비슷하신것 같아요 :) 이 영화도 아시는군요 !
  • mh 2013/01/09 16:05 #

    저는 레비님 소개로 이번에 처음 알게된영화에요. ㅎㅎ 본 적은 없는데.. 다만 동영상만 봤을 뿐인데도 감동적이네요:)
  • 레비 2013/01/09 23:33 #

    헤 그러셨군요 ㅎㅎ 유튜브에서 찾은것이긴한데, 영상만봐도 마치 뮤직비디오처럼 영화 내용이 잘 압축되있지요 ^_^
    영화도 기회되시면 꼭 보시길 바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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