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첼 결혼하다, Rachel Getting Married, 2008 Flims









연말. 이곳저곳 잦은 모임을 나가다보면 확실히 요즘 극장가 영화이야기에 <레미제라블>이 빠지기 어려운 것 같다. 보통, 너 그거 봤니? 난 얼마 전에 봤는데.. 같은 류의 문답으로 시작하는 이런 대화들은 곧이어 각자 나름의 감상평으로 발전하고, 좋았다 혹은 별로였다-의 호불호는 다양하게 언급되지만 이 영화만큼 다시 하나의 결론으로 모이게 되는 사례는 참 오랫만이었다. 그것은 영화 <레미제라블>에 대한 사석에서의 대화들이 꼭 어느 타이밍에 와선, "앤 해서웨이의 연기는 좋았다"로 귀결되는 점이다. 과연 그 정도였나? 싶기도 하다가 그래 역시 그랬지- 하며 나도 고개를 끄덕이다보면 앤 해서웨이를 다시 봤다, 얼굴만 이쁜줄 알았다는 식의 말들도 들린다. 그럴 때마다 내가 살짝 추천해주는 영화가 있다. 사실 앤 해서웨이는 원래 그 정도 하는 배우였다는 말을 꼭 덧붙이면서.


<프린세스 다이어리>시리즈로 얼굴을 비추기 시작하다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로 급상승하고, 팀 버튼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선 이미지를 한껏 살린 하얀 여왕 역을 거쳐, 2010년 <러브 앤 드럭스>까지 와서는 결국 로맨틱 코미디가 잘 어울리는 배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나는 그녀의 연기력은 오히려 주목받지 못했던 영화들. 예를 들면 <하복>에서의 날라리 고등학생, (B급 영화로 치부되어버린) <패신저스>에서의 그녀나, <비커밍 제인>에서의 제인 오스틴역 등에서 더 빛을 발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중, 이 영화 <레이첼 결혼하다>에서의 앤 해서웨이는 그녀의 필모그래피에서 단연 백미다.






달달한 로맨스나 로맨틱 코미디를 연상시키는 영화 제목에 속으면 낭패다. 오히려 나는 이 영화가 스릴러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물론 결혼을 소재로, 결혼을 앞둔 레이첼이라는 여성과 그녀의 가족들이 며칠사이 성대하고 행복한 결혼식을 준비하는 것이 영화의 전체적인 플롯이자 담담한 시나리오다. 영화는 거의 대부분이 그 레이첼의 집에서 이루어진다. 하나 더 속지 말아야할 것이 있다. 레이첼이 이 결혼하는 주인공이지만 앤 해서웨이는 주인공도 아니고 레이첼도 아니라는 것. 그리고 영화는 100% 핸드헬드 카메라로 찍고, 후에 녹음 삽입된 음악이 아닌 100% 극중 현장의 라이브로만 음악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아주 독특한 영화다.


감독 조나단 드미의 이름은 생소할 수 있지만, 영화 <양들의 침묵>을 낯설어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그는 코폴라, 스콜세지가 신예소리를 듣던 70년대부터 영화제작에 몸담았고 8,90년대를 거쳐 서스펜스 스릴러 장르에서 자신의 영역을 구축해왔다. 그런 그가 결혼식을 앞둔 작은 한 가족의 이야기를 받아들고 영화화했으니 영화 전반적으로 흐르는 긴장감과 보이지 않는 불안은 이것이 더이상 아름다움으로 가득 찬 멜로드라마가 아니라는 뜻이다. 레이첼(로즈마리 드윗)은 결혼을 앞두고 잔뜩 설레고 들뜬 예비신부이다. 그녀의 예비신랑 시드니(턴디 에드빔피)는 자상하고 따듯한 나무랄데 없는 남편이 되어줄 것 같고, 비록 갈라서서 따로 살지만 아버지 폴(빌 어윈)과 어머니 애비(데브라 윙거) 모두 큰 딸의 결혼을 물심양면으로 돕고 사랑 가득한 시선을 보내주며, 새엄마 캐롤(애나 데버 스미스)도 이 이혼가정에 균열은커녕 레이첼의 결혼을 성심껏 돕고 폴의 곁을 지켜준다. 게다가 그녀의 결혼을 축하하기위해 레이첼의 집에 모인 친구들, 신랑 시드니의 일가 사람들, 하객들은 모두 유쾌하고 그녀에게 기쁨만을 선사해줄 준비가 되어있는데다가, 그녀의 평생친구 엠마(애니사 조지)까지 곁에서 신부들러리의 역할을 충실히 해주고 있으니, 레이첼에겐 결혼식까지의 남은 이 며칠이 그저 행복만으로 가득 차 있어보였다. 하지만 언니의 결혼식을 맞이해 재활원에서 잠깐 나온 마약 중독자인 여동생 킴(앤 해서웨이) 집에 돌아오면서 영화는 시작한다. 그렇다. 레이첼이 결혼하는 이야기이지만, 이것은 어느 집안에서나 있을 수 있는, 한 엇나간 가족 구성원의 시선으로 시작하는 영화다.







짧은 단발머리에 줄곧 담배를 물고 있는(앤 해서웨이는 이 영화를 찍으며 줄곧 흡연을 해야 하는 점에서 어려움을 느꼈다고 한다) 킴은 아늑하고 반가워야할 집으로 돌아가는 길부터 뭔가 탐탁치않다. 언니의 결혼식을 축하해주고 자매간의 재회의 포옹도 첫만남 한정. 킴에게 가정은 더 이상 따듯한 공간이 아니고 그녀는 이 집안의 딸이자 결혼식 당사자의 여동생임에도 불구하고 이 많은 사람들 속에서 겉돌기 시작한다는 것을 느낀다. 레이첼보다 자신을 어린애처럼 대하고 지나친 관심을 쏟는 아버지 폴, 망나니 동생으로부터 자신의 행복한 결혼식을 방어하려고 날을 세우는 언니 레이첼. 사람들의 웃음소리에 킴은 어울려 들어가지 못한다. 이런 와중에 재미있게도, 그녀를 걱정해주고 제일 마음을 열게 해주는 것은 정작 예비 신랑 시드니의 초대된 친구이자 킴과 같은 재활원 출신의 키에런(마더 지켈)이다. 결국 행복한 사람들 속에서 그들과 같은 척을 하고 억지웃음을 짓는 것보다, 자신과 같은 처지가 되어봤던 사람과 알 수 없는 공감대가 더 빠르다는 점이 아닐는지. 얼마전 <레미제라블>을 보기 전까지 나는 이 영화만큼 앤의 연기가 뛰어난 적을 본 적이 없었다. 실제로 앤 해서웨이는 이 영화로 09년 81회 아카데미에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다. 그러나 하필 메릴 스트립(<다우트>), 케이트 윈슬렛(<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안젤리나 졸리(<체인질링>)와 겨루어야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 영화 <레이첼 결혼하다>가 킴의 미운오리새끼 이야기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영화는 중반으로 갈수록 킴에게 관객들이 느끼는 동정심이나 연민만큼, 결혼식의 주인공 레이첼의 입장에도 양보를 하기 때문이다. 절친한 친구 엠마에게서 기어코 신부들러리 역할을 받아내고,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도 분위기를 깨기 일쑤며, 심지어 모욕적인 거짓말까지 하고 다녔다는걸 들키기까지한 여동생 킴이, 레이첼에겐 갈수록 그저 자신의 결혼식에서 빠져주었으면 한 존재가 되어간다. 아버지에게 호소하듯 내 결혼식인데 왜 동생만 신경쓰냐는- 불평도 이쯤 되면 이해하지 못할 말이 아니다. 게다가 이 가족들이 안고 있는 비극적인 과거사 역시, 모든 원흉이 킴이 아니었던지. 결정적 장면. 우연히 사위와 장인이 부엌에서 즉석 게임으로 식기세척기에서 서로의 접시 정리 실력을 겨루는 흥겨운 분위기가 형성되고 그 자리의 사람들 모두 즐거워한다. 하지만 하필 킴이 건넨 그 접시와 그 접시의 의미가 그 분위기를 모두 깨버리고 만다. 아주 우연스러운 장면이긴 하지만, 이것은 모두가 즐거워하는 웃음 속에서도 이 가족 구성원들, 적어도 킴과 레이첼과 아버지만은 이런 행복함 속에서도 지울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걸 잊지 못하게 만든다. 킴도 미칠 노릇이다. 일부러 그랬던건 아닌데, 자신의 지난날의 과오가 현재의 그들, 언니의 결혼식에도 이토록 잠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 과오가 무엇이고, 이후 킴이 어디까지 울분을 토해내는지는 영화를 보실 분들을 위해 후략.






핸드헬드 기법의 촬영은 보는 이를 미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아니, 표현이 과했다. 어딘가 불안하게 만든다는게 좀 더 적절할 것이다. 물론 이는 현실성이라는 측면에서도 아주 유용하며, 이 영화가 영화 속에서 사용된 100% 라이브 음악들과 더해져 한편의 홈비디오 같은 필름이 되는데 공을 세웠음을 부정할 순 없다. 한 가정안에서 일어나는 며칠사이의 일이 홈비디오처럼 촬영되어 더욱더 ‘우리네 가족 안에서도 일어날 수 있을법한 일‘이 되었다. 하지만 핸드헬드가 가져다주는 불안감, 영화 <클로버 필드>나 <R.E.C> 같은 분위기를 조장하는 카메라의 흔들림과 얼굴들의 클로즈업들은 결혼식이라는 소재를 가져오고도 이 집안에 흐르는 불안한 기류를 섬세하게 포착하는데 탁월하다. 물론 통속적인 결말로 끝났다고 영화의 엔딩을 지탄할 순 있다. 그러나 마지막 날 아침까지 레이첼과 킴의 포옹이 결코 완전한 화해를 의미했는지. 레이첼은 결국 꿈에 그리던 행복한 결혼식을 치뤘고, 킴은 더 이상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고 해서 이후 이들이 행복한 가정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킴은 영화 시작에서 보았던대로, 언니의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다시 재활원으로 돌아가야하는 몸이고, 이혼한 생모는 결혼식 축하 이후 가야할 곳으로 떠나갔으며, 아버지는 여전히 킴의 편을 들지도 모른다. 나는 이들의 화해가 완전한 의미의 해피엔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지않고서야 엔딩크레딧과 함께 보이는 레이첼의 뒷모습이, 영화 내내 영화의 배경음악을 담당했던 악단이 연주하는 파티의 마지막 여운을 멀리서 지켜보다 다가가며 끝나는 그 롱테이크씬이 왜 그토록 쓸쓸하고 외로워보였을까.







가족의 한 말썽꾸러기와, 이들이 공유하는 아픈 과거와, 결국 최종적 화해와 통합이라는 코드는 영화에서 비단 킴의 가족들에게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시야를 조금 넓혀보면, 백인인 레이첼이 결혼하는 신랑 시드니와 그의 일가친척들은 모두 전형적인 흑인 집안이다. 신부의 집에 모여 며칠간 결혼식 전야를 즐기는 이들 사이의 대화에서는 초대, 화합, 함께, 등의 키워드가 자주 들린다. 게다가 하객들중에는 동양계로 보이는 남녀도 섞여있고, 레이첼 결혼식 피로연 파티는 완전한 서구식이라기보단 인도/아프리카 식의 전통과 문화가 배어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말썽꾸러기 킴은 정작 레이첼 집안의 사람이자, 레이첼과 가장 가까워야할 여동생이지만, 결국 이들의 화해무드가 조성되는 그 결혼식을 행복하게 꾸미는 요소들 이런 다민족, 다문화에서 왔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의 미국 개봉일인 2008년 10월 3일 이후 정확히 한달 뒤, 11월 4일에 미국은 첫 흑인대통령을 당선시킨다. 그래서 이 영화의 또 다른 제목은 <Dancing with Shiva>가 아니었던지. 시바Shiva는 힌두교에 등장하는 춤과 음악의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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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봉봉이 2012/12/31 22:44 # 답글

    프렌즈 레이첼인줄 알았네염ㅋㅋㅋ
  • 레비 2013/01/01 07:18 #

    맞아요.. 우리에겐 그 레이첼이 있죠 ㅋㅋㅋ 제니퍼 애니스톤과 그녀의 친구들이 그립네요 :) ㅎㅎㅎ
  • JyuRing 2013/01/01 00:47 # 답글

    저도 이거 재미있게 봤어요. 전 언니 입장이라서 그런지 레이첼에게 감정이입이 오히려 되더라능... 서운해하는 것도 이해가 쏙쏙!!가고..허허허. 내용을 말해버리면 스포가 되니까 설명은 어렵지만 암튼 정말 어느 가족에게나 있을법한 일인 것 같아요. 저랑 제 여동생도 그렇고 ^^
  • 레비 2013/01/01 07:20 #

    언니 입장으로도 충분히 공감할수 있는 영화라서 더 마음에 들었어요 :) 그냥 킴에게 좀 더 몰입해서 그녀의 입장만 대변했더라면 조금은 진부하고 통속적인 드라마가 될뻔했어요. 그래서 저도 레이첼이 영화 초반부와 달리 갈수록 입장도 확실히 보여주고, 대립하는 구도가 영화를 더 입체적으로 살린것 같아요 ㅎㅎ 어느 가족에게나 일어날수 있는일, 혹은 어느 가족에게 한명쯤 있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이 이 영화에 현실감을 더 부여하는 것 같아요 ㅎㅎ
  • 2013/01/01 14:2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1/03 21:44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3/01/01 16:02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1/03 22:05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리미 2013/01/28 20:54 # 답글

    오 이영화는 정말 앤해서웨이의 연기력이 돋보였던.. 영화 취향이 좋으시네요~ 잘보고가요>.<
  • 레비 2013/01/30 11:24 #

    이 영화가 꽤 유명했던 영화는 아니었는데, 이걸 보셨다니 반갑네요 !
    리미님이 영화보신걸 포스팅하시는거보면 저와 영화 취향 비슷한 점이 많은 것 같아서 좋아요 :)
  • 이루 2013/06/20 05:45 # 답글

    저는 레미제라블 보다 이 영화에서 앤 해서웨이의 연기가 더 좋았어요.ㅎㅎ
    이 배우가 이런 연기를 할 수 있는 배우구나, 다시 한 번 느꼈던 영화이기도 하고요.
    영화관에서 보면서 많이 울었는데, 킴에 대한 가족들의 태도나 이유도 물론 충분히 알고 이해할 수 있었지만 동시에 킴에게도 공감할 수 있었어요. 온 사방으로부터 극한까지 내몰리는 기분, 주변의 태도를 고스란히 느끼면서도 모른척해야하는 심정, 그러다 그 감정의 끝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쥐어짜듯 나를 변호하는 말을 내뱉을 수 밖에 없는 절망과 가장 용서가 안되는 나 자신... 이러면 안된다고 어쩔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를 믿어주지 않는 가족에의 서운함 등등의 갖가지 감정들이 울컥 차올라서 눈물이 나더라구요. 친구는 저보고 너무 심각하게 보는게 아니냐는 말을 하기도 했지만 ㅎㅎ;
    핸드헬드 기법으로 촬영되어 더 감정이입이 됐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보는 내내 정말 바다건너 저 모퉁이한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보는 기분이었거든요 ㅎㅎ
  • 레비 2013/06/21 15:57 #

    저도 <레미제라블>과 비교될만한 해서웨이의 연기는 이 영화였다고 생각해요 :) <레미제라블>로 '마침내' 수상을 해서 그런지 더 부각된 감이 있지만, 앤 해서웨이의 연기 능력과 폭에 대한 평가를 진작에 확장시켜준 영화였어요.

    영화가 참 좋은 것이, 보통 구박받는 비련의 주인공에 동정심을 주어 가족들이 매정해보일 수도 있는데, 이 영화는 그렇지 않았다는 점이에요. 가족들의 이유도 충분히 공감이 가는 것이, 그때문에 좀처럼 가까워질 수 없는 가족과 킴의 거리감을 비극적이고 안타깝게 마무리 지을수 있었던 이유가 되었어요. 킴에게 공감하시면서 이 영화를 보셨다면 정말 눈물이 충분히 나올만 한 영화셨겠어요.. 전 맏이라그런지 킴같은 동생이 있는 킴의 언니에게 좀 더 공감하면서 이해하며 보았거든요. ㅎㅎ;;

    감독이 핸드헬드를 사용한것도 강점이죠. 결혼식 홈비디오 아마추어 필름처럼 만들어서 현장감과 사실성을 더 부여해서, 극적이거나 과도한 연출을 자연스럽게 불필요하게 만들었죠. 그래서 보는 우리들도 정말 어느 집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 같은 느낌을 받고, 그만큼 더 빠르게 공감/이해 할 수 있었어요 :)
  • 이루 2013/06/22 02:39 #

    ㅋㅋㅋㅋ저도 맏이인데 왜 언니보다 킴이 더 안쓰러웠을까요(...) 아마 제 동생들은 똑부러지게 잘 하는데 난 왜이럴까 하는 마음이 커서 그랬나봐요(좌절ㅇ/z) 덕분에 이 영화도 다시보고싶어지네요. 지금 보면 또 다른 감상이 들 것 같기도 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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