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포 선셋, Before Sunset , 2004 Flims









"신이 있다면, 너와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이의 공간에 있는거야." 비엔나의 밤, 스물세 살의 셀린은 제시에게 이렇게 말한다. 현실적인 여자와 로맨티스트 남자가 우연히 만나 서로의 감정을 담담하고 솔직하게 하루의 비엔나에 새겨놓았던 1995년 영화, <비포 선라이즈>. 6개월 뒤에 다시 만나자던 둘이 과연 정말 만났는지에 대한 해답은 6개월 뒤가 아닌, 이후 9년 뒤의 파리에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비포 선라이즈>를 보고나서 느꼈던 그 따듯한 감정과 아름다운 남녀의 모습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그 뒷이야기를 – 그들이 과연 만났을까가 궁금하더라도 보기 싫었던, 아니 보지 않으려 애썼다. 스물 셋이었던 남녀가 서른이 넘은 나이에 다시 재회하는 <비포 선셋>을, 차라리 나도 그들과 비슷한 나이대가 되면 그때서야 보겠노라고 결심하기도 했었다. 사실은 그들이 못 만났음에 실망이나 배신감을 느꼈다기보다는, 나는 제시와 셀린의 그 하룻밤은 딱 거기에서 헤어졌기에 둘이 다시 못 만났다하더라도 영원성을 획득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비포 선라이즈>의 이야기를 아름답게 하는 것은 바로 그 제한된 시간과 공간에 새겨놓은, 영화 마지막에 카메라가 아쉬운 듯 한번 더 훑는 그 장소들만으로도 제시와 셀린이 다신 못 만나도 괜찮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훗날 다른 후일담을 전해온다면 그 영원함을 해치게 될 것이라고 지레 겁을 먹었다. 그러나 리차드 링클레이터 감독은 이미 각자의 삶과 사랑과 길을 걸어가고 있는 제시와 셀린을 서른이 넘어 다시 만나게 하면서도 9년 전의 그날의 기억을 이어가는 마법을 부렸다.







<비포 선라이즈>에서 보았던 둘의 쑥스럽게 교환되는 시선, 감정의 억지스러운 응축과 무리한 사용없이 만든 멜로는, <비포 선셋>에 와서 이제 그때의 그 둘을 기억하는 관객들에게 아련한 향수가 된다. 이번에 그들이 함께 할 장소들은 <비포 선라이즈>때와는 정 반대로 영화 오프닝 시퀀스에 미리 등장한다. 이제는 더 이상 젊은 두 남녀의 치기어리고 현학적이고, 꿈꾸는 듯한 시적인 대화를 듣진 못하더라도,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의 얼굴에 언뜻언뜻 보이는 세월과 나이의 흔적만큼이나 새롭게 더해진 둘의 현재진행형의 이야기는 9년 전의 추억에 대한 쓸쓸한 그리움으로서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 다시 만나 좀 더 현실적이 된 두 남녀의 기억의 반추이다. 공항으로 가야하는 시간을 초조하게 재는 제시의 모습은 9년 전 비엔나에서의 그가 더 이상 아니지만, 외려 결혼생활에 대한 한탄을 유람선위에서 늘어놓는 에단 호크의 모습은 피식 웃게 만든다. 이 영화는 바로 이런 소소한 웃음들을 짓게 만든다. 조소가 아닌, 반가움의 실없는 웃음. 그래, 눈가에 주름이 그렇게 잡혀도 너희들은 여전히 그렇구나 – 하는 웃음. 우리가 그날 섹스를 했던가 안했던가를 논의(?!)하고, 현실적이었던 셀린이 이제는 그녀의 말대로 열정적으로 행동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과 가끔씩 옛날 그대로 터져나오는 짜증내는 모습들. 서른 살이 넘은 이 둘의 몸짓과 말에는 9년 전보다 좀 더 과장되고 허식이 들어가 있지만 우리가 그 모습에 씁쓸해야할 당위성이 <비포 선셋>엔 없다. 결국 이 영화는 과거의 사랑을 다시 만난 제시가 그녀의 노래와 춤을, 그리고 그 가사 속에 아련하게 속해있던 자신의 이름을 발견하게 되는 영화니까.







비엔나라는 도시가 둘의 로맨틱한 분위기에 일조해주었던 <비포 선라이즈>에 비해, <비포 선셋>의 파리는 오히려, 그리고 의외로 카메라의 밖에 있다. 어지간한 롱 테이크를 소화해야했던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의 ‘여전히’ 걸으며 대화하는 이 커플의 모습의 배경으로 파리는 큰 존재감이 없었다. 게다가 하룻밤 동안 발길 닫는대로 걸을 수 있던 비엔나에서와는 달리, 제시가 공항으로 가야하는 그 한시간, 그것이 주어진 시간의 전부인 이들의 재회이자 영화의 플레잉타임에 파리의 명소들은 그저 그림 좋은 배경이 될 뿐, 감독은 오히려 <비포 선라이즈> 때보다 더 주인공들에게 초점을 맞추는 모양새다. 줄리 델피의 아이디어로 시나리오의 많은 부분이 쓰여졌다던 그들의 두 번째 이야기에서 여전히 그들은 전편과 같이 자연스러움을 보이려하지만 과거보다 많이 뻣뻣해지고 상대방의 시선을 의식한다. 그렇지만 여전히 셀린의 시선을 피해 그녀의 얼굴을 흘끔흘끔 쳐다보는 제시의 눈빛, 제시의 결혼생활과 그의 솔직한 고백을 듣고 너무 많이 시간이 지났음에 툭툭 짜증을 내기도하는 셀린의 모습에서 우리는 과거의 그들을 오버랩할 수 있다.








옛 사랑과의 재회는 언제나 참 요란한 감정을 안겨 준다. 현실의 눈앞에 갑자기 걸어 나온 사람은 기억 속에서 원할 때마다 꺼내볼 수 있던 추억과는 많이 다르다. 그것은 더 이상 미화시켜 간직하고 있을 수 없는, 경우에 따라선 환상을 해칠 수도 있고 그 아름답게 열려있던 결말을 반강제적으로 닫아 버릴 수도 있는 일이다. 내가 <비포 선셋>을 보기전부터 걱정부터 했던 것은 그러한 이유에서다. 하지만 <비포 선라이즈>의 이야기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리차드 링클레이터 감독은 추억에 대부분 의존하는 후속작이 아닌 그들의 독립적인 두 번째 이야기를 그려냈다. 그는 기억을 담담하게 복기해보면서도 9년의 건너온 시간이 주는 변화의 흔적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우리에게 제공했다. 또 다시 10여년을 지나온 이들의 세 번째 이야기<비포 미드나잇>을, 이번에는 걱정보다 기대로 가득 찬 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덧글

  • 아루아루 2012/12/07 18:35 # 답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여자를 꼽으라면, 줄리 델피.
    기대되는군요.
  • 레비 2012/12/11 14:06 #

    줄리 델피 좋아하시는군요 ! :D 참 매력적이죠. <비포 선라이즈>때의 모습을 더 좋아하지만 <비포 선셋>에서도 여전한 것 같아요. 차기작에선 또 어떤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되네요 :)
  • 꿈꾸는리틀락 2012/12/07 18:37 # 답글

    고딩때 비포선라이즈를 보고 대학가서 비포선셋을 봤죠. 또 나온다니 반갑네요. 주인공들이 어케 변했으려나...
  • 레비 2012/12/11 14:06 #

    두 영화사이에 9년이라는 시간이 있었기에 외적으로 많이 변했다고 느꼈었어요. 이젠 10년하고도 더 지나 그 세번째 영화가 나온다니 또 그 나름 기대가 됩니다 ㅎㅎ
  • zito 2012/12/08 00:18 # 답글

    아... 비포 미드나잇이라니... 저도 기대해봅니다. 비포선셋보다 비포선라이즈를 굉장히 재밌게 봤었는데, 아마 지금보다 더 풋풋했던 21살의 감성이 한몫하지 않았나 싶어요....ㅎㅎ
    그때 처음보고 정말 설렜었는데... 다시금 마음이 설레오네요!
  • 레비 2012/12/11 14:54 #

    저도 더 어릴때 <비포선라이즈>를 봐서 그런지 그편이 더 마음에 들었어요 :) 하지만 지금 다시 <비포 선셋>을 보면 어쩌면 이게 더 마음에 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마 2013년에 개봉예정이라고하니 우리나라도 내년엔 볼 수 있겠죠 ! ㅋ
  • 2012/12/09 00:5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12/11 15:22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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