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인 블랙, Men In Black, 1997 Flims




외계에 대한 신화는 유독 미국에 많은 것 같지만, 이 영화를 굳이 로스웰 사건 등과 엮어가면서까지 '외계인의 존재와 그에 대한 숱한 음모론'에 대한 풍자로 볼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제가 보기엔 이 영화가 가리키는 대상은 지구 밖의 미지의 존재가 아니라 '우리 지구내의 사회적 약자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외계인으로부터 지구를 지킨다는 설정이 비록 맞지만, 오히려 영화 속의 대다수 외계인들이 인간의 눈치를 보며 살아간다는 것은 영화 <디스트릭트9>과 오히려 더 닮아있습니다.

베리 소넨필드 감독, 그리고 윌 스미스와 토미 리 존스 주연. 저는 이 1997년 영화 <맨 인 블랙>을 보는 한 가지 방법으로서, 외계인으로부터 지구를 구하는 두 남자의 콤비 오락 영화로서가 아닌, 약간 삐딱한 시선을 제시하려고 합니다. 바로 미국의 강력한 국가보안법에 대한 풍자로서 말이죠. 지구에 숨어 살고 있는 외계인들을 감시하고 통제하고, 유사시 무력행위도 불사하는 국가 조직 맨인블랙, 즉 M.I.B들이 관리하고 감시하는 외계인들은 그 대부분이 맨해튼에 살고 있으며 지구에 잘 순응하고 일반 소시민들처럼 무력합니다. 신체적 물리적 조건이 인간보다 강하고, 따라서 다소 위험해 보이긴 하지만, 이들은 신기하게도 지구의, 인간 사회의 기존 체계에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고 오히려 부당한 점도 잘 참고 따르며 ‘인간인’척을 하며 살아갑니다. 사실 이 코미디 영화가 주는 신선함이 바로 이것이었죠. 옆집 이웃이 알고 보니 외계인일지도 모른다는 설정, 즉 티 나게 우주로부터 날아오는 그들이 아닌, 시치미 뚝 떼고 인간으로 위장한 채 살고 있는 외계인들이라는 발상은 전적으로 베리 소넨필드 감독의 기발함에 그 공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그들에게 맨인블랙이라는 조직은 대단히 고압적이고 권위적입니다. 특히 토미 리 존스가 연기한 에이전트 K가 그렇죠. 맨인블랙의 베테랑 요원 K는 행동이 거칠고 특히 지구 속 외계인들에게 폭력적이고 약자에게 강한 모습을 보이는 진정한 이 영화의 악당일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윌 스미스가 연기한 J는 맨인블랙 같은 어둠의 장막 뒤편이 아니라, 직접 몸으로 현장에서 뛰던 경찰이었고, 이런 그가 맨인블랙에 들어가면서 가치관의 혼란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물론 몰랐던 사실에 대한 혼란과 충격이 더 크겠지만, 거침없는 K의 행동에 반발이나 혹은 반항심이 드는 건 J입니다. 통제지역을 이탈한 외계인을 잡으러 출동했다가 출산한 외계인의 신생아를 받아든 에피소드가 보여주듯, 이 영화 속 외계인들은 두려운 존재라기보다 오히려 지구 안에 함께 살지만 ‘외계인’ 취급을 받는 계층, 즉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을 말하려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K가 정보를 얻기 위해 찾아가는 외계인들은 인간처럼 살고 있지만 K의 방문을 반가워하지 않죠. 영화 마지막 K가 J에게 뒷일을 부탁하고 은퇴하는 대사에서 약간 자기반성적 메시지가 들리는 것이 단순히, 일 때문에 잃은 사랑 때문이 전부는 아닐 것입니다. 사랑조차 포기하게 만든 맨인블랙이라는 자신의 일에 환멸을 느낀 것이 아닐까요.

국가의 비밀집단, 기관에 대한 루머들은 외계인만큼이나 오래된 도시전설이자, 유명한 음모론이죠. 악역을 맡은 바퀴벌레 외계인은, 물론 기존체제를 위협하고 국가의 비밀 – 그러니까 공주의 숨겨둔 우주선을 폭로하려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국가 기관인 맨인블랙은 이를 막아야하죠. 막지 못하면 지구가 위험하다는 게 그들의 표면적 이유이지만 임무를 수행하면서도 꼭 염두 해두어야 할 것은 비밀유지입니다. 이 영화는 그 유명한 기억제거장치를 꺼내며 ‘비밀’이라는 키워드로 맨인블랙을 한번 더 무장시킵니다. ‘비밀’은 음모론이 가장 좋아하는 미끼이자, 그 자체로 모든 음모론의 출발지이기도 하죠. 비밀유지를 최우선으로 하는 집단이 터널 천장을 자동차로 가로질러 달리고, 도심에서 총격전을 펼치지만 늘 기억제거장치 한방으로, 목격자들을 보고도 보지 못한 대중들로 만들어 버립니다.

국가보안법은 대선을 앞두고 있는 현 우리나라 내에서도, 그리고 과거에도 늘 이슈와 쟁점과 찬반의 첨예한 대립에 서있던 화두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이는 미국도 더하면 더했지 덜해보이진 않네요. 이 영화는 2001년 911테러 발생 수년전에 이미 개봉했지만, 911이후 부시 행정부가 강력하게 밀어붙일 수 있게 된, 국가보안에 관련된 미국의 소위 ‘애국자법’은 911테러 자체를 음모론으로 만들었을 지경입니다. 이는 국가 기관이 국민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의 증대와, 더욱 그들의 권력에 힘을 실어주는 계기가 되었음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맨인블랙이라는 존재가 ‘대중’들이 모르는 외계인들을, 소위 평화유지라는 명목 하에 통제하고 있는 영화 속 미국이 과연 코미디 영화의 소재일 뿐일까요. CIA나 FBI 등의 공권력 남용은 미국사회에서도 오랫동안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되어 왔습니다. 영화 <맨 인 블랙>에서의 맨인블랙 요원들은 목격한 사람들의 기억을 편리하게도 다 지워버리죠. K와 J는 외계인의, 소위 컬트문화에 빠진 자들에게서도 정보를 얻고, 그들의 도움을 받지만 도움 제공자들은 보안과 비밀이라는 이유로 기억을 말소합니다. 린다 피오렌티노가 연기한 여주인공의 기억도 마지막엔 지워버리려다 결국 J의 반대로 그들의 일원으로 회유하는 걸로 마무리하죠.

베리 소넨필드는 우디 앨런의 영화를 좋아하던, 심약하고 소심한 소년이었다고 합니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때>, <미져리> 등 다양한 영화의 촬영감독을 거쳐오던 그는 91년 <아담스 패밀리>로 성공적인 감독 데뷔를 합니다. 이 영화에서 그는 소넨필드 식 블랙코미디 스타일을 유감없이 뽐내며 이는 <아담스 패밀리 2>에까지 이어집니다. 그리고 97년, 스필버그의 제안으로 시작된 이 영화 <맨인블랙>으로 그는 자신의 명성에 한 획을 긋습니다 스필버그는 ‘어린이적 상상과 호기심’을 주제로 즐겨 영화를 만드는 데에 있어서 자타가 공인하는 인물이죠. 그런 그에게 <맨인블랙>의 스토리는 거부하기 힘들었을 겁니다. 처음 J역의 윌 스미스는 크리스 오도넬에게 배정되었다고 합니다. 처음부터 설정은 K와 J가 모두 백인남성이었다고 해요. 하지만 소넨필드는 처음부터 윌 스미스를 원했고, 제작사에서 추천한 배우들을 모두 완곡히 거절한 뒤에서야 자신의 의사대로 윌을 캐스팅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소넨필드의 성격을 따라가기라도 하듯, 그의 영화들은 메시지를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영화 <맨인블랙>은 과연 그저 코믹하고 즐길 거리만 있는 오락 영화일까요. 저는 마지막 시퀀스, 윌 스미스의 마지막 대사 이후 한없이 작아지는 지구, 이어 태양계와 은하로 카메라가 빠져나가는 장면이 절대 뜬금없는 엔딩이 아니라고 봐요. 마지막 씬 기억나시나요? 영화가 달려온 분위기와 장면들에 비해 이질감을 불러일으키는 CG를 사용하면서까지, 영화는 거대한 외계 존재의 구슬치기 장면으로 다소 황당하게 끝을 맺습니다. 방대하고 무한에 가까운 은하들이 불과 하나의 구슬에 담겨있으며 이것들을 모아 담죠. 그 구슬들은 영화 속에서 주요한 아이템이었던 고양이 목걸이에 달려있던, 그 은하계가 담긴 구슬과 비슷한 모양입니다. 이것은 그래봐야 한없이 작고 부질없는 세계에서 아웅다웅하지 말자는 소넨필드식 소심한 비꼬기의 부드러운 절충안이 아니었을까요. 지구를 침략해오는 외계인들이 아닌, 지구 안에 살고 있는 외계인들이 등장하는 베리 소넨필드의 영화 <맨 인 블랙>이었습니다.



* 팟캐스트 <영화에 묻다> 시즌2 9화 中






덧글

  • 2012/12/09 01:16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12/11 15:31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3/06/30 13:4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6/30 17:49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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