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액츄얼리, Love Actually, 2003 Flims









크리스마스가 과연 얼마 남지 않은 모양이다. 지난주엔 저녁 강남대로에서 올해 첫번째 캐롤을 그 사람 많던 거리에서 들을 수 있었다. 새해의 1주일 전, 그 연말 겨울의 성탄절은 유난히도 사랑의 테마와 결부되는 날이기도 하다. 영화 속 많은 사랑이야기들이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삼는 것은 그 날이 가져다주는 이미지와 분위기가 이미 우리들의 뇌리에 사랑과 잘 어울리는 날이라는 인식으로 새겨져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내겐 매년 11월말쯤 봐줘야 될 영화가 있다. 크리스마스 5주전부터 이브날까지의, 다양한 남녀들의 다양한 러브스토리의 종합선물세트 같은 이 영화는 그 오피셜 포스터부터 벌써 선물 꾸러미 디자인을 하고 있다. 로맨틱 코미디의 장인 리차드 커티스와 그의 제작군단 워킹 타이틀사의 2003년도 영화 <러브 액츄얼리>는 '각본가' 리차드 커티스의 성공적인 감독 데뷔작이기도 하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 <노팅 힐>등 영국식 로맨틱 코미디를 만들어온 워킹 타이틀사의 이 옴니버스는 마치 그들이 이전, 그리고 이후에 보여줄 스토리들의 총체적 카탈로그를 보여주는 듯하다. 이름만으로도 쟁쟁한 영국 배우들의 초호화 캐스팅으로 자칫 산만해질 우려가 있던 옴니버스 식 영화의 한계를 리차드 커티스의 각본이 잘 조율해냈고, 이들이 연기한 캐릭터들은 서로  다른 분위기와 내용을 보여야했던 각자의 이야기에서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의 모습들을 보여주었다.








휴 그랜트, 콜린 퍼스, 리암 니슨, 로라 린니, 키이라 나이틀리, 빌 나이, 앨런 릭맨, 엠마 톰슨, 토마스 생스터. 거기에 바라만 봐도 웃음이 나오는 카메오의 로완 앳킨슨까지. 영국이 자랑하는 배우들을 한데 모아놓은 이 영화는 (당연하게도) 과거 그들의 출연작이나 구축된 이미지가 캐스팅에 반영이 되었는지, 각각 맡은 역할에서 너무나 잘 어울렸다. 감정을 솔직하게 잘 표현 못하는 무뚝뚝한 이미지의 콜린 퍼스는 이 영화에서도 언어의 장벽을 넘어 포르투갈 여자와 사랑에 빠진 우직한 제이미를 연기했고, 나이에 비해 사랑에 서투르고 어설픈 철없는 소년 같은 이미지였던 휴 그랜트는 역시나 이 영화에서도 영국 수상 데이빗 역을 맡아 비슷한 캐릭터를 보여준다. 아내와 사별하고 당돌한 어린 아들(토마스 생스터)과 마음을 열기위해 노력하는 자상한 중년의 아버지 역의 리암 니슨은 또 어떠한가. 분명 행복한 가정을 갖고 있지만 그 가정의 평화를 위해 외도를 참는 아내와 실수를 저지른 남편으로서 중년의 부부 역할을, 엠마 톰슨과 앨런 릭맨은 완숙하고 노련한 연기로 이 영화에서 가장 뛰어난 시너지를 내보인다. 이 외에도 영화는 영국 TV드라마의 인기스타들도 함께 자리해두었다. 영국 수상관저에서 일하는 나탈리 역의 마틴 맥커채온이나 앤드류 링컨, 크리스 마첼 등이 그런 경우라 하지만, 아무래도 영화보단 접하기 힘들었던 ‘영드’의 스타들은 내겐 익숙하지 않았다.







헐리우드식 로맨틱 코미디에 반해, 영국식 로맨틱 코미디가 주는 매력은 그들이 어딘가에 진짜로 있을 법한 우리 이웃집 사람들의 이야기 같다는 것이다. 아 물론 그렇다고 해서 헐리우드식 영화들은 뭔가 특별한 사람들만의 이야기 같다는 건 아니다. 그러나 보통 10대들의 충동적이고 반항적이고 열정적인 러브스토리나 혹은 30대의 것이라 하더라도 조금 작위적인 느낌에 비해, 영국식 코미디는 굳이 그것을 해피엔딩으로 끝내지 않아도 좋다는 식의, 완벽함과는 거리가 먼 인물들이 주를 이룬다. 그들의 러브스토리에 등장하는 ‘어른’들은 대체적으로 어설프고 무뚝뚝하며 잘 표현할 줄 모르는, 사랑에 미숙한 2, 30대 남녀들이다. 그래서 나는 무조건 해피엔딩으로 끝내겠다, 사랑은 다 이루어진다-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 이들 필름의 강점이라고 본다. 물론 워킹 타이틀사가 곧 영국식 로맨틱 코미디로 수식되는 선입견은 조심해야한다. 그들에겐 코엔 형제의 <바톤 핑크>부터, 스티븐 달드리의 <빌리 엘리어트>도 있다. 그러나 리차드 커티스와 휴 그랜트를 빼놓고 그들의 영화를 논하기란 확실히 어렵다. 그들이 구축해놓은 영국식 로맨틱 코미디는 젊음과 열정에 주목하지만은 않는다. 오히려 늙은 록 가수와 그의 뚱뚱한 매니저의 크리스마스 이브 1위 컴백, 자신보다 예쁘고 어린 여자와의 남편의 외도를 알고도 혼자 눈물을 훔치는, 그러고도 어린 자녀들을 향해 활짝 돌아서서 웃는 중년의 아내, 오랫동안 짝사랑해온 남자보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병원에 있는 오빠와 함께하는 가족애 등도 이들이 함께 주목하는 Love와 감동의 키워드이다.







그러나 역시 사랑이야기를 빼놓을 순 없고, 이에 <러브 액츄얼리>에서 단연 돋보이는 인물은 휴 그랜트의 캐릭터, 데이빗이다. 이들은 마침내 영국 수상까지 자신들의 러브스토리 범주에 넣었다. 미혼의 영국 수상과 그 위치의 중압감. 그러나 휴 그랜트는 <어 바웃어 보이>에서 보여줬듯이 여전히 천진난만하고 어린아이 같은 어른의 모습이다. 비서 나탈리를 차버린 남자친구를 암살해주겠다며 허세부리는 모습이나 그녀를 찾아 달동네 집집마다 도는 모습, 혼자 춤을 추다 비서에게 들켰을 때의 능청스러움은 이 중년의 영국 배우가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에서 어떤 연기로 관객들이 사랑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지를 보여준다. 토니 블레어가 정말 2003년 무렵에도 ‘조지 부시의 푸들’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는지는 가물가물하지만, 미국에 협조적이기만한 그의 정책 노선들은 대영제국의 자존심에 치명타였을 것이고 이는 꾸준한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진 것이 사실이다. 영화가 개봉했던 2003년을 포함하는, 97년부터 07년까지 영국 총리였던 토니 블레어. 극중 미국대통령을 대동한 채 말하는, 데이빗의 위트 넘치는 연설은 영국인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었을 것이다.(주1) (개인적으로는 헐리우드에 던지는 - 토니 블레어가 취임 당시부터 주창했던 - '쿨 브리타니아 식' 선전포고로 보길 좋아한다.) 감독 리차드 커티스는 휴 그랜트의 캐릭터에 정치적 우화나 메시지를 집어넣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과연 관객들, 특히 영국인들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게다가 하필 노동당 출신의 토니 블레어에 반해, 마가렛 대처의 조카로서 유머코드를 집어넣은 데이빗은 보수당 출신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데이빗과 나탈리의 이야기는 다른 영화에서 몇번이라도 본 듯, 다소 뻔한 느낌도 없진않지만 이 영화에는 무조건 다 이루어지는 사랑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로라 린니는 오랫동안 짝사랑했던 직장동료와의 사랑이 이루어지는 그 꿈같은 순간에도 걸려오는 오빠의 전화를 거부하지 못한다. 결국 그녀는 눈물을 머금고 크리스마스 이브를 그녀 오빠의 정신병원에서 함께 보낸다. 한편 학교 퀸카를 짝사랑하는 10대 꼬마의 순진무구한 사랑이 있고, 아내와 사별한 남자의 새로운 시작도 있다. 혹은 포르노비디오의 대역 모델로, 이미 서로의 헐벗은 모습을 모두 보고도 천천히 서로를 알아가며 순수하게 시작하려는 한 쌍도 있다(국내 개봉이 아닌 무삭제판 한정). 결혼식과 장례식이 이어서 비춰지고, 친구의 새 신부를 향한 말 못할 짝사랑이 있고,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는 용기도 있다. 중년부부의 외도와 불륜에, 노가수와 매니저의 세월을 함께한 우정까지. 영화는 말 그대로 Love is all around를 모토로 삼는다. 이렇게 이들이 말하는 Love는 꼭 남녀 연인들의 사랑에 국한되지 않는다.


겨울에 잘 어울리는 이 영화의 분위기에는 영화에 삽입된 음악들도 한 몫 하고 있다. 엘비스와 비틀즈 올드팝, 조니 미첼, 산타나, 더 콜링, 머라이어 캐리의 캐롤 등. 그리고 실제로 00년대 초반 영국의 인기 4인조 남성 그룹이었던 블루도 언급된다. (줄리엣(키이라 나이틀리)의 결혼식에 깜짝 축가로 All you need is love 가 연주될 때, 하객 자리에서 불쑥 일어나 트럼본을 부는 사람 중엔 이 영화의 감독 리차드 커티스가 숨어 있다.) 너무 많은 캐릭터와 다양한 이야기들이 전개되기에 이들을 끝내는 마무리가 다소 급작스럽기도 하고, 사람에 따라서는 감동을 강요한다는 비평도 있지만, 감동을 강요하는 느낌은 영화가 가진 코믹한 요소들 덕에 많이 희석되는 기분이다. 그래서 감동도 있지만 여기에 재미와 위트가 있기에 마냥 잔잔하게 흐르는 멜로 영화로만 즐기지 않아도 좋다.









영화의 시작과 끝에 공항이라는 장소를 설정한 것은 처음엔 다소 의외였지만 이내 곧 수긍할 수 있었다. 떠남과 재회의 상징적 공간으로서의 공항은 그 어떤 장소보다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 애정의 표현이 잦은 곳일 것이다. 영화는 ‘사랑은 어디든지 있다’를 말하고 있고, 그 사랑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요인은 이별과 만남일 것이다. <러브 액츄얼리>는 사랑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 찾아올지 모르는 감정이라는 점에 중점을 둔다. 이들의 사랑이 희극적이고 조금은 동화 같은 면도 없진 않지만 다양한 여러 사랑의 얼굴들을 보여주면서 이것이 우리네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음을 말한다. 앞서 말했듯이 이 영화는 크리스마스 5주전부터 당일 이브까지의 일들을 그리고 있다. 그래서 아직 크리스마스를 어디서 누구와 보낼지 계획이 없을 때 이런 영화를 보면, 나는 또 허황된 공상의 나래를 펼치곤 한다. 그런데 아무렴 어떠랴. 영화 팬으로서, 영화적 순간들을 언제나 현실에서 기대하며 살기에, 나는 아직도 이렇게 사랑 영화를 보며 실실 웃는다고 어디 가서 둘러댈 수도 있으니 말이다.





주1)
토니 블레어는 2005년, 이렇게 응수했다. "I know there's a bit of us that would like me to do a Hugh Grant in <Love Actually> and tell America where to get off. But the difference between a good film and real life is that in real life there's the next day, the next year, the next lifetime to contemplate the ruinous consequences of easy applause."














덧글

  • 2012/11/28 21:4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11/30 00:53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2/11/28 22:0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11/30 00:54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2/11/29 16:3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11/30 01:00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루얼 2012/11/30 09:43 # 답글

    <나홀로 집에>의 뒤를 잇는, 대표적인 크리스마스 영화군요 :)
    레비님께서 짚어주신 영국식 로맨틱 코미디의 특징도 공감이 가요.
  • 레비 2012/11/30 14:32 #

    크리스마스 하면 바로 떠오르는 몇안되는 영화중 하나죠! :)
    미국식 로맨틱 코미디는 약간 유치하고 더 개방적이고 섹슈얼한 쪽에 치중된 감이 없지않은데, 영국식 로맨틱 코미디는 또 다른 모습이라 재미있어요 :)
  • 2012/12/01 19:58 # 답글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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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12/03 00:20 #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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