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만 바라보는 남자, 오늘만 살고있는 남자 : <매트릭스>, <메멘토> Flims








그 당시엔 남매가 아니라 형제였던 래리와 앤디 워쇼스키의 99년 영화 <매트릭스>와 이후 두 편을 더한 ‘매트릭스 3부작’은 어쩌면 영화 사상 가장 분분한 해석을 끊임없이 양산해 낸 영화로 손꼽힐 수 있을 것이다. 역대 SF영화들 속의 뻔한 클리셰들의 집합이라는 힐난도 있었지만, 이 영화의 매력은 새로운 세계관을 창조해낸 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방대한 양의 철학적, 신화적 메시지들을 최대한 매끄럽고 어색한 구석 없이 블록버스터라는 화폭에 적절히 채워 넣었다는 것에 있다. 그래서 이 시리즈는, 탑노트엔 시종일관 화려한 액션과 볼거리를 제공하는 오락 영화가 보이고, 미들노트엔 독특한 촬영 기법과 액션씬들과 결합한 놀라운 CG장면들, 그들이 구축한 매트릭스라는 세계에 놀라게 되며, 베이스노트엔 수많은 과거의 SF적 세계관 뿐만 아니라 재패니메이션, 서양 신화와 동양 철학이 버무려진 수많은 상징과 은유들이 찾아오는, 향이 풍부한 블록버스터가 되었다. 영화사를 바꿀만한 대작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있을지언정, 시리즈가 끝난지 10년이 더 지난 지금까지도 이 영화가 던져놓은 화두와 파장은 끊임없이 재생산된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영화 <매트릭스>의 매력은 이미 어디선가 들어봤을 법하지만 막상 정말로 본적은 없던 영화였다는 데에 있었다. 영화의 난해한 세계관은 이후 두 편의 후속작만으로도 할 이야기가 더 남아있었는지, 애니메이션으로, 그리고 게임 등으로 재생산되었다. 특히 여러 명의 감독들이 10분씩 독립적인 작품을 찍어 모아놓은 <애니 매트릭스>는 이 영화의 배경을 이해하는데 직관적인 도움이 된다. 결국 영화 <매트릭스>와 네오는 이 기나긴 서사와 역사의 극히 일부분이었다. 기계에 세상을 넘겨준 몰락한 인간들이 결국 기계의 동력원이 되었고, 인간들은 동력원이 되는 동안 길고 긴 가상의 꿈을 꾸는데 그것이 바로 우리가 ‘현실’이라고 믿는 이 세계라는 것. 이것은 SF팬들과 디스토피아 추종자들에겐 정말 엄청나게 매력적인 소재가 아닐 수 없었다. 예상대로 이후 굉장한 팬덤(fandom)을 거느리게 되는, 매트릭스 트릴로지의 탄생 배경이다.








영화 속 네오는 말 그대로 예수의 모습이다. 키아누 리브스가 연기한 그는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와 지금껏 그래온 SF영화들의 이미지들에 동서양의 철학들을 정말로 그럴듯하게 섞어놓은 워쇼스키 형제의 필름에 출현한 한명의 메시아였다. 1999년, 이 영화의 첫 북미개봉일인 3월 31일은 하필 부활절 주간이었고, 영화 속 종교적 암시는 숱하게 많다. 주인공 이름 네오neo의 애너그럼(anagram)이 one이 되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그는 영화 속에서 사람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지만 정작 본인은 반신반의하는 전형적인 히어로 탄생의 절차를 밟았다. 그리하여 그 유명한 모션으로 총알을 피하더니 급기야 “No.” 라는 한마디로 날아오는 총알들을 멈춰 세우며 매트릭스 세계의 통제를 비로소 뛰어넘는다. 이후 두 편의 후속작은 진정 ‘신’으로 각성한 네오의 액션 활극이다.


20세기 영화 <매트릭스>와 달리 21세기 영화인 <메멘토>는 크리스토퍼 놀란이라는 감독의 등장을 세계에 알렸다. SF 액션 블록버스터가 아닌, 스릴러의 형식으로 다가온 이 영화 <메멘토>는 시간을 처음부터 끝까지 거꾸로 되감는다는 기발한 전개와, 샤말란 급 반전으로 화제를 뿌렸다. 가이 피어스가 열연한 주인공 레너드는 집에 침입하여 아내를 해친 강도들 때문에 단기 기억 상실증에 걸린 채 복수의 일념으로 가득 차 헤매고 있는 남자다. 타인들에 의해 일깨워지고 주입된 네오의 대의가 레너드에겐 없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우고 있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아내를 죽인 범인에 대한 복수의 감정과 자신의 단기 기억 상실증과 싸우기 위한 몸부림이다. 범인의 이니셜인 ‘존 G’라는 단서를 가지고, 시시각각 잃어가는 기억을 유지하기 위해 그는 폴라로이드 카메라와 문신을 영구적 기억장치로서 활용한다. 일반적인 보통의 서사구조에서 시간을 거꾸로 흐르게 하는 것은 원인과 결과의 구조에서 이미 결과를 먼저 보여주는 꼴이 되지만, 단기 기억 상실증이라는 레너드의 이야기에선 오히려 이 분절된 시간들이 과거, 불과 몇 분전 행동과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관객들이 추리하는 ‘원인’을 나중에 보여줘도 충분히 예측치 못한 장면들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이다.








<메멘토>의 레너드의 눈에 보이는 세상은 사실 그 자체지만 그에겐 판단 능력이 없다. 그가 보는 세상은 진실이 맞지만 자신의 부족한 기억 덕에 그것이 진실이고 거짓임을 판단할 능력을 잃은 것은 자기 자신이다. 반면 <매트릭스>의 네오는 판단하고, 의심하고, 믿음을 가질 수 있는 능력은 있지만 보고 있는 현실이 진실이 아니었다. 이 두 남자는 소위 눈 뜬 장님에 다름 아니다. 한명은 진실을 봐도 판단하질 못하고, 또 한명은 판단은 할 수 있지만 진실을 볼 수 없었다. 물론 두 영화의 시나리오는 판이하게 다르고, 그에 따라 이 두 남자의 결말도 갈린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이 두 남자가 결국 어떻게 되는가를 말하고 싶은 게 아니다.


1년 간격으로 세상에 공개된 이 두 영화는 아이러니하게도 모두 형제들의 영화이다. 워쇼스키 형제는 앞서 이야기했으니 넘어가겠다.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의 동생 조나단 놀란의 각본 ‘Memento Mori’로 만들어진 영화가 <메멘토>이기 때문이다. 두 영화에는 재미있는 공통점이 또 있다. 바로 <매트릭스>의 히로인, 트리니티 역의 캐리 앤 모스가 <메멘토>의 나탈리로, 그리고 <매트릭스>에서 모두를 배신하고 위기에 빠뜨리는 사이퍼 역의 조 판토리아노가 <메멘토>에선 반대로 레너드를 도우려 애쓰는 테디 역으로 출연한다. 네오와 레너드, 두 주인공의 곁에서 도와주는 역할과 위험에 빠뜨리는 역할이 각각 영화에서 서로 자리를 맞바꾼 이 두 남녀 조연들의 배치는 흥미롭다.









세 편의 매트릭스 트릴로지를 관통하는 것은 장자의 호접몽도 아니고, 아시모프가 지적한 디스토피아적 미래사회에 대한 경고도 아니다. <매트릭스> 시리즈는 ‘선택’에 대한 영화들이다. 키아누 리브스는 세 편에서 모두 선택을 강요받는다. 99년 첫 작품에서는 진실과 마주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선택, 그리고 두 번째 리로디드에선 사랑과 대의 사이에서의 선택, 세 번째 레볼루션에서는 자기 자신과 세계 구원 사이에서 자신을 산화시키는 정도의 초월적 선택을 한다. 이 모든 선택지의 답안이 사실 너무 뻔하고 상투적이라는 지적이 있었을지라도 매트릭스의 조연들, 모피어스, 오라클, 아키텍처, 페르세포네, 심지어 스미스 요원까지 네오에게 매순간 선택을 종용한다. 3편 <매트릭스: 레볼루션>의 후반부 네오와 스미스의 격투씬 마지막에서 스미스의 “Why do you persist?” 라는 질문에 네오는 “Because I choose to.” 라고 답한다. (그리고 이것은 이 매트릭스 시리즈 중 키아누 리브스에게 할당된 거의 마지막 대사이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영화는 1편, <매트릭스>에서의 네오다. 2, 3편에서의 네오는 이미 자신의 역할과 해야 할 일에 대한 의심이 많이 사라진, 전사와 구원자로서의 모습이지만 1편에서의 네오는 아직 자신이 진정 구원자인가(‘그’인가)에 대한 의심이 가득한 ‘미스터 앤더슨’(스미스 요원은 매트릭스 3부작 전체에서 -단 한번을 제외하고- '네오'라 부르지 않고 'Mr.앤더슨'이라고 부른다. 당연한 일이지만, 나는 이 점이 꽤 인상적이었다.)이다. 1편은 그런 네오의 각성이 지상과제가 된다. 그래서 모피어스와 트리니티 등은 그를 각성시키기 위해 ‘보여주는’ 방법을 택한다. 매일 ‘보고 살아왔던’ 세상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 매트릭스라는 것은 눈을 뜨고도 볼 수 없었던, 믿을 수 없었던 ‘사실’이다. 이것을 네오는 조력자들을 만나 그들의 도움으로 새로이 ‘본다’.


하지만 <메멘토>의 레너드에겐 아쉽게 모피어스 같은 조력자가 없다. <매트릭스>의 네오가 진실이라고 믿었지만 사실은 가짜였던 그 공간이 아니라, 레너드가 보고 생활하는 그 공간과 모든 것은 진짜다. 그러나 세상이 가짜인데 그 안의 네오는 진짜로 각성해야했던 <매트릭스>와는 반대로, <메멘토>에서는 세상은 진짜인데 레너드가 가짜이다. 물론 레너드에게도 테디라는 조력자, 혹은 나탈리라는 조력자가 있었다. 그러나 테디와 나탈리는 레너드를 중심에 두고 양옆으로 갈라서 있는, 가뜩이나 판단할 능력이 없는 이 남자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 두 주변인이다. 그래서 <메멘토>는 <매트릭스>와 달리 출구가 없다. 애초에 처음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영화는 맨 첫 장면이 마지막이 될 수밖에 없지만 우리는 이 영화를 다 보고나서, 그 첫 장면으로 다시 돌아온다한들, 그것으로 이 이야기가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 “Now, where was I ?” 라는 대사로 황급히 끝내버리는 듯한 이 영화의 마지막 씬은 한 프레임이라도 더 넣어 편집했더라면 아쉬울뻔 했다.









인지, 혹은 인식하는 행위는 오랫동안 철학, 과학, 의학 그리고 심리학 등 다방면의 학문에서 다뤄오던 주제다. 단순히 ‘보다’의 차원을 넘어 보고 그 대상을 ‘알아보는’것은 지식의 축적, 추론 능력, 결론 도출 등으로 확장하기 위한 선결조건이다. 데카르트는 “생각하기에 고로 나는 존재 한다”고 했다. 이것은 <매트릭스>와 <메멘토> 두 영화가 각각 증명과 반증하고 있는 테마이기도 하다. <매트릭스>에서 모피어스와 그의 동료들은 진실을 알려주려고 하지만 네오는 처음엔 믿지 않는다. 이것은 응당 당연한 행동이다. 그는 이전까지 한 번도 매트릭스의 세계를 벗어나 본 적이 없다. 벗어나 본 적이 없는 해커 미스터 앤더슨에게, 스미스 요원의 위협으로부터 달아나라는 모피어스의 전갈은 그편이 오히려 더 허황된 소리였을 것이다. 그리하여 건물 벽을 타던 앤더슨은 결국 체념한 채 스미스 요원들에게 잡혀간다. 그에게 부족한 위기의식은 매트릭스의 세계관을 인식은커녕 믿을 수조차 없던 ‘무지’로부터 온 것이다. 중학생이던 시절 나는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 모피어스가 네오에게 ‘파란 약’과 ‘빨간 약’을 내미는 그 장면에서 - 모피어스가 들으면 화낼 일이지만 – 파란 약이 훨씬 더 보장되고 안전한 길이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굳이’ 진실을 택한 그 저항군들이 (그리고 2,3편에 등장하는 시온의 인간들 모두) 모두 빨간 약을 그렇게 쉽게 선택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매트릭스> 중반에 사이퍼가 스미스 요원과 거래를 하며 스테이크를 먹으며하는 대사가 대단히 공감 되었다. 이 스테이크가 거짓이라는 걸 알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스테이크 맛을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니잖는가. 모피어스는 마치 2199년, 기계의 동력원이 되어 있는 인간들이 ‘진실’을 모르기 때문에 불행하고, 1999년에서 살고 있다고 믿는 매트릭스 속 인간들을 현실로 자유를 주려는 사명감에 불타고 있는데, 애초에 빨간 약을 먹지 않은 사람들은 그것이 가상이라 할지라도 매트릭스에서 벗어나 본적이 없기에 가상이라는 자각이 없다. 그들에겐 그들 나름의 ‘현실’이 매트릭스에 있고, 단 한 번도 깨어나 본적 없는 사람들을 불행하다고 단정 지을 권리가 모피어스에게 과연 있을까. 물론 모피어스를 비롯한 저항 세력과 같이 ‘한번이라도’ 진실을 본 자들이라면 매트릭스의 세계와 진실사이에서 충분히 갈등하고 선택이 갈릴 수 있을 것이다. 영화에선 루이스 캐롤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대한 은유가 포함되어 있는데, 이처럼 졸지에 앨리스가 된 네오, 아니 앤더슨에겐 모피어스가 말하는 세상이 오히려 거짓으로 다가올 수도 있었다. 영화 속 2199년이 가상세계가 아니라는 증거도 딱히 없다. 그러나 영화에는 이런 부분을 덮어놓고 거의 무조건적으로 모피어스의 말이 진실이라고 몰아가기에, 나는 그래선 안 된다는걸 알면서도 거부감을 억누를 수 없었다. 당신은 정말 그렇게 ‘함부로’ 빨간 약을 삼킬 수 있는가? 눈을 뜬다는 진실에 대한 호기심과 확신도 부족한 약간의 사명이, (심지어 평생을 살아온 자아를 전부 백지상태로 만들고 새로운 자신을 그때부터 만나야하는데도 불구하고) 기존에 당신이 알던 모든 세계를 부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가. 그 이후의 삶이, 다시는 돌아갈 수도 없고 요원들에게 쫒기는 레지스탕스적 삶이라는걸 미리 알고도 말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래서 나는 파란 약에 대한 선택지가 전혀 비중있게 다루어지지 못한 점에서 영화 <매트릭스>에 불만을 가지기도 했었다.


<메멘토>의 레너드는 바로 그 파란 약을 삼킨 남자다. 그에게는 모피어스 대신 테디가 파란약과 빨간약을 들이밀었다. 영화의 맨 끝, 너는 복수를 완료했다는 테디의 말을 부정하고 다시 새로운 존 G를 찾는 길을 시작한다. 레너드는 진실의 코앞까지 와서, 파란 약을 먹으면 잠에서 깨고 네가 ‘현실’이라고 믿는 곳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모피어스의 말을 실행에 옮긴다. 레너드의 현실, 즉 레너드의 ‘매트릭스’는 “아내를 살해한 존.G가 여전히 살아있고, 그를 죽여야만 하는 세계‘이다. 그는 그렇게 눈을 질끈 감는다. 잘 생각해보면 그는 오직 자기만족을 위해 이런 게임을 계속 설정하고 해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너도 존.G가 될 수 있다며 ”그의 거짓말을 믿지 말라 Don’t believe his lies“라고 사진에 써넣는 레너드의 모습은 그의 행위가 자신을 아무리 만족시켜도 결코 충족시키지 못한 채 공전(空轉)해야 하는 딜레마를 안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오히려 그의 마지막 대사는 일종의 모순이자 자기합리화처럼 들린다. 진실 된 기억을 스스로 억누르고 있는 레너드가 ”기억을 못하더라도 그게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라면서 ”눈을 감아도 밖의 세상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믿어야한다“고 스스로를 위안한다. 이것은 생각할 수 있는 지평을 확장한 덕에 스스로의 행동과 자기 자신의 존재에 새로운 책임을 부과하게 된 네오와 반대방향으로 가는 길이다. 네오는 선택권을 쥐고 끊임없이 고민하지만, 레너드는 자신이 눈을 감고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세상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믿으며 자신의 기억을 ’해석‘의 범주를 넘어 ’왜곡‘한다. 보지 못하는 세상에 대한 무책임한 자기 과신은 그 지점에서 발생한다.










앞서, <매트릭스>의 사이퍼의 선택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해서 네오의 선택은 섣불렀다는 주장하고 싶진 않다. 데카르트의 말대로 - 존재하기 위해 생각하는, 다시 말해서 생각을 함으로서 구조안의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기 시작한 개인은 주체적이고 자기 자신에 대한 책임을 획득하게 된다. 그것이 매트릭스로부터 벗어나 자기 자신에 대한 통제권을 돌려받는 첫걸음인 셈이다. 모피어스가 네오에게 그렇게 보여주고 싶었던 까닭은 스스로의 통제권을 그가 비로소 구사할 수 있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반면에 <메멘토>의 레너드는 자신이 자신의 세상을 왜곡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는 부족한 기억을 핑계 삼아 눈을 감을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의 행동에 따라붙는 책임감으로부터 역설적으로 자유로워진다. 가짜 세상 속의 진짜 네오와, 진짜 세상 안의 가짜 레너드, 두 남자 각자의 투쟁으로부터 이미 10여년이 지났지만, 문득 이 두 영화 속에 ‘자기 인식’에 대한 담론이 공통적으로 포함되어 있지 않은가 - 하는 생각이 들어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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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FlakGear 2012/11/26 14:28 # 답글

    워쇼스키 남매와 크리스토퍼 놀란 분이 이 글을 보면 자랑스러워 하겠군요 :)
    정말 대단한 해석이었어요;;
  • 레비 2012/11/28 15:41 #

    허헛; 과찬입니다. 감사해요 :)
  • 2012/11/26 16:06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11/28 16:07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서주 2012/11/26 16:23 # 답글

    한 명은 진실을 봐도 판단하지 못하고, 또 다른 한 명은 판단할 수 있지만 진실을 보지 못하고..
    레비님이 이 두 편을 어떻게 보셨을까, 이으셨을까 궁금했는데 무릎을 탁 쳤습니다.ㅎㅎ

    내가 알던 모든 세계를 부정하고 요원들에게 쫓기는 레지스탕스적 삶이 기다릴 거란 걸 알면서도 선택한 빨간약, 공감해요. 그리고 파란약을 선택하기까지의, 선택한 후의 스케치가 부족하게 느껴져서 아쉬웠다는 점도.
    '자기인식'에 대한 담론, 잘 읽었어요. 언제나 유익한 레비님의 글ㅎㅎ

    그나저나 벌써 10여년인가요.. 진짜 흠칫했네요.ㅜㅠ 저도 10대 때 보고 20대 초반에 다시 전 편을 봤는데 한동안 '시온'의 메타포에 빠져 거기서부터 파고들었던 기억도 나요ㅎㅎ
    영화에 묻다 6화, 기다리겠습니다. :)

    참, 보내주신 음악들도 여전히 잘 듣고 있어요. 하루에 3번은 반복듣기ㅎㅎ물리질 않네요!!


  • 레비 2012/11/28 16:38 #

    감사합니다 ㅎㅎ 그런데 사실 뭐 .. 글에 새로운 것은 없어요 ㅠ 이미 닳고 닳을만큼 많이 해석되고 분석된 영화 둘이라 그냥 요렇게 이어볼 수도 있지않을까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어 쓰기 시작한거 뿐이죠 ㅎㅎ

    매트릭스를 중고등학생때쯤 비디오 빌려서 봤던거 같아요. 그런데 그땐 너무 어려웠죠 ㅠ 이해도 잘 안되고 그저 액션장면만 넋놓고 봤더랬죠 ㅋ

    음악들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이네요 :) ㅎㅎ
  • 2012/11/26 16:36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11/28 18:09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닥슈나이더 2012/11/28 08:19 # 답글

    99년과 2000년에 각각 저에게 가장 큰 충격을 준 두 영화군요..^^;;
  • 레비 2012/11/28 18:10 #

    ㅎㅎ 그때 전 중학생이라 나중에 20대가 되어서야 다시 본 두 영화네요 ㅠ ㅋㅋ
  • 닥슈나이더 2012/11/29 07:24 #

    저랑 한 10살 차이 나시는 군요...^^;;

    저때가 제가 24, 25 이었으니..ㅠㅠ;;
  • 2012/12/01 20:2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12/03 00:32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Irene 2012/12/07 22:17 # 답글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네요.
    블로그 링크합니다.
  • 레비 2012/12/11 14:14 #

    링크 감사합니다 :) 아이린 혹은 이레네님 :D
    보통은 영화리뷰 블로그입니다 ㅎㅎ 자주 방문해주세요 ^-^
  • pioneer92 2012/12/14 02:41 # 삭제 답글

    실로 아름다운 글입니다. 감명 받았어요!!
  • 레비 2012/12/18 01:25 #

    하핫; 과찬이십니다 :)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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