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을린 사랑, Incendies, 2010 Flims









레바논 출신으로 캐나다에 거주하던 작가의 3시간 40분짜리 연극을 보고 한눈에 반한 캐나다 출신의 감독 드니 빌뇌브는 판권을 사들여 이를 두시간여의 영화로 바꾸었다. 벨기에 출신의 여주인공을 캐스팅 해, 촬영은 캐나다와 요르단을 배경으로 하였고, 이야기는 레바논 내전과 현대의 캐나다를 넘나든다. 이 글로벌한 영화는 2010 선댄스영화제, 토론토영화제, 밴쿠버영화제, 베니스영화제, 바르샤바 영화제등 세계 각지의 영화제에서 선보이며 결국 2011년 미국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에 노미네이트 되기도 한다. (비록 수상은 스웨덴 영화 <인 어 배터 월드>에게 내주고 말았지만) 원제는 앙상디 Incendies. 프랑스어로 화재 등 넓게 퍼진 광채를 의미하는 이 제목은 국내에 <그을린 사랑>으로 2011년 소개되었다.








영화를 거칠게 요약하면 이렇다. 어머니, 나왈 마르완(루브나 아자발)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겪은 쌍둥이 남매, 잔느(멜리사 디소르미스-폴린)와 시몬(맥심 고데테)은 어머니의 직장이기도 했던 공증사무소에서 다소 황당한 말을 접한다. 어머니의 유언장을 열어보니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잔느에게는 자신들의 아버지, 시몬에게는 존재를 알지 못하던 형을 찾으라는 일종의 미션이었던 것이다. 받아들이기 힘든 시몬은 어머니의 장례와 무슨 관계냐고 도리어 공증인이자 변호사인 쟝 레벨(레미 지라르드)에게 화를 내지만 어머니의 유언의 모두 듣고 이를 남매에게 전할 의무가 있던 변호사는 완고하다. 어머니 나왈은 자식들이 자신의 뜻대로 아버지와 형을 찾는 일을 완수하기전까진 장례를 치루지 말라고 당부했던 것이다. 그들에 주어진 것은 어머니의 젊었을적 낡은 사진 한장. 이를 단서 삼아 먼저 잔느가 그들이 모르고있던 아버지라는 존재를 찾아 중동으로 간다.


이 영화는 과거의 젊었을적 어머니 나왈의 시점과, 현재 잔느와 시몬 쌍둥이 남매가 어머니의 수수께끼 같은 유언을 받아들고 자신들이 모르고있던 어머니의 지나온 삶의 발자취를 되집는 여정을 번갈아가면서 비춘다. 그 교차는 어떠한 조짐도 없이 중간중간 등장하는 부제를 빼고는 시간의 초월을 파악하는데 빠른 눈치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이런 편집은 대단히 교묘하고 성공적이라 영화의 마지막으로 갈수록 그 긴장감과 충격을 극대화시킨다. 영화는 결국 쌍둥이 남매가 자신의 어머니, 자신들의 뿌리를 찾아가는 과정과 그 결과로 맞딱드린 진실을 말한다.


캐나다와 요르단에서 촬영되었고, 과거 나왈의 이야기는 레바논 내전을 모티브로 삼고있지만 실제 영화속 지명들은 모두 허구라고 한다. 다만 나왈이 겪는 그녀의 행보는 레바논 내전과 20세기 레바논의 역사를 알고보면 훨씬 자연스럽게 이해가 된다. (나는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영화를 보느라 따라가기 다소 숨가빴다.)



* 영화를 아직 못보신 분들이라면 여기까지만 읽으시길 권합니다. 영화는 반전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하 글에는 그 내용이 언급됩니다. 본 영화는 결말을 미리 안다면 재미나 여운이 크게 반감될 수 있을 영화입니다.












레바논 내전은 대략 1970년대부터, 아니 멀게는 5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의 긴 싸움이었다. 내전이라고 하지만 시리아와 이스라엘까지 개입된,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를 중동의 뜨거운 감자로 만들었던 이 비운의 근대사는 종교와 인종이 얽힌 복합적 분쟁이었다. 레바논은 서쪽으로는 지중해와 맞닿아있는 중동의 국가로 남쪽은 이스라엘, 동쪽은 시리아와 닿아있다. 게다가 레바논은 1943년 독립이전까지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역사를 가지고 있고, 그래서 영화에선 레바논에서도 프랑스어가 어느 정도 사용된다. (주인공들이 살던 캐나다의 퀘벡 지역 역시 마찬가지로 프랑스어를 쓴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프랑스 땅은 한번도 등장하지않지만 대부분 대사가 프랑스어이다.) 2차 대전당시 요르단에서 추방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쫒아내고, 이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레바논의 남쪽으로 모여들었다. 레바논은 터키와 가까운 북쪽은 이슬람교도들, 이스라엘과 가까운 남쪽은 기독교도들이 자연스럽게 많았는데,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모여든 남부의 난민 캠프는 레바논 아랍인들과 늘 충돌이 있었다. 거기에 1970년대 레바논의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이스라엘 정부가 겨냥하여 압박을 가하고 시리아가 팔레스타인 난민을 구하는 이유로 군대를 개입시킨다. 그리하여 레바논 땅은 시리아와 이스라엘의 전쟁터가 되고 베이루트는 동서분리까지 겪는다. 15만명 이상이 죽었고 팔레스타인 난민구역인 가자지구는 아직까지도 국제적 분쟁지역으로 남아있다.


앞서 언급했듯 레바논은 프랑스 식민지였던 과거를 가진데다, 종교도 이슬람과 기독교도가 섞여있다. 언어 역시 오늘날까지도 영어와 프랑스어, 아랍어가 공용으로 사용된다. 대통령은 기독교, 총리는 이슬람 수니파, 의장은 이슬람 시아파에서 선출하는 방법으로 여러 종교가 모여사는 국가로서의 융통성을 부렸지만 현재는 이슬람교도들이 인구의 50%를 넘어가며 대통력직에 대해 늘 불만과 분쟁이 발생하는 나라가 현재의 레바논이다. 이렇게 종교, 민족, 언어가 한데 섞인 불안정하고 언제 폭발할지 모를 그런 국가적 정세속에서 어머니, 나왈 마르완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녀의 삶은 어떻게 잔느와 시몬이 평생 어머니의 삶을 모르고 살아왔는가 싶을 정도로 드라마틱하고 비극적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종교나 인종의 이유로) 눈앞에서 명예살인 당하고 자신 역시 죽음의 위기속에서 가까스로 살아남는다. 그 사람과의 사랑의 결과물로 아이가 태어나지만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떠나보내게된다. 시몬이 찾아야하는, 그 쌍둥이가 모르고있던 바로 그 형이다. 이후 그녀는 대학과 언론등에 눈과 귀를 틔우며 성장하지만 눈앞에 닥쳐온 내전에 잃어버린 그 아이를 찾아야겠다고 결심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이슬람교도들을 잔인하게 학살하는 기독교도들을 목격하게되고 종교에 대한 회의를 느껴 결국 암살 임무까지 서슴없이 수행한다. 이후 기독교도들에 의해 감옥에 오랜 세월을 갇힌 그녀는 캐나다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결국 그녀는 잔느와 시몬, 쌍둥이 남매의 어머니로서, 공증사무실에서 일하는 여인이 되어 살아갔던 것이다.


잔느와 시몬이 따라가는 나왈의 발자취는 자신들의 어머니가 어떤 생을 살아왔는가에 대한 추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신들의 시작과 뿌리를 찾는 과정이기도 하다. 잔느는 나왈이 비극적인 삶을 살아왔음을 알아가고 결국 자신들의 아버지가, 나왈을 수용소에서 강간한 간수 아부 타렉이었음을 알아낸다. 수용소에서 태어난 자신들이 간호사의 품에 키워지다 다시 나왈에게 돌아왔다는 진실까지 잔느는 스스로 나왈의 길을 따라가며 도달했다. 이제 자신의 차례가 된 시몬은 중동까지 따라온 변호사 쟝의 도움을 얻어 그 또 다른 형의 이름이 니하드였다는 것을 알게되고 그가 몸담았던 반군의 옛 간부들을 만나보며 마침내 아부 타렉과 니하드의 접점을 발견한다.





대학에서 수학과 조교였던 잔느가 수학, 특히 1+1=1이라는 '비상식'과 마주해야하는 것은 그 비정상적인 과거의 아픔과 미움을 똑바로 바라보아야하는 것만큼 쉽지않은 일이다. 아니, 사실 누구에겐들 쉬운일일까. 자신의 아버지가 곧 배다른 형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어머니가 낳은 또 다른 아들이 훗날 어머니를 범하여 자신들이 태어났다는 것을 말이다. 영화를 보던 나조차도 시몬의 대사가 무슨 뜻인지 몰라서 잔느처럼 눈 동그랗게 뜨고 화면을 보다가 잔느랑 거의 같은 타이밍에 "허억-" 하고 놀랐다. 어머니와 아들의 근친으로 태어난 자신들의 과거가 가진 인륜적인 충격보다도, 그런 비극을 겪어야했던, 그리고 그 비극에 대한 진실을 뒤늦게 알아버리고 그 충격으로 앓다가 세상을 뜬 어머니의 마음을 그제서야 잔느와 시몬은 감히 이해조차하려 시도 할 수 있었을까. 그저 조용히 눈물 흘리는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전쟁이 주는 참상과 비극이 있지만 이것은 전쟁 이야기라기보단 한 가족의 드라마이다. 아울러 그 가족이라는 축소판에 은유해 과거의 증오와 아픔과 미움이 현재의 사랑과 행복으로 이어질지 모를 현대 우리 인간관계의 아이러니한 딜레마와 갈등에 어떤 흐릿한 답안을 제시하는 것 같다. 영화의 반전이 너무나 충격적이라 자칫 이 영화를 반전을 위한, 관객들을 놀래키기 위해서 달려온 지나치게 극적이고 연극적인 필름이라고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이 영화가 주는 메세지는 단순히 아버지와 형이 같다는 결말이 아니라, 나왈의 비장한 결심에 있지않을까. 본인도 의도치 못한 타이밍에 그녀가 평생 알고자했던 모든 비밀이 맞아떨어진 순간, 그녀는 충격에 쓰러지기전에 이 사실을 잔느와 시몬에게 알게끔 할지 아니면 이대로 혼자 묻어놓고 세상을 뜰지 고민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녀 자신이 죽은 뒤 공증인의 도움을 받아 자식들에게 유산처럼 이 거짓말같은 과거사를 남긴다. 이것은 자식들에게 상처와 충격이 될 수 있을지라도 그녀는 묻어두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마지막 아부 타렉, 아니 니하드에게 보내는 나왈의 두 통의 편지는 증오와 사랑을 모두 담아 쉽사리 이해하기도 힘들 숭고한 힘으로 그 미움의 고리를 끊어내고자 한다. 나왈의 그런 초월적인 자세는 모성이라는 수식을 뛰어넘어 범인류적인 자애와 관용마저 느껴진다. 아울러 잔느와 시몬에게 남겨진 그들의 과거 역시 증오로 잉태되었으나 사랑으로 태어났음을 나왈은 유언처럼 남기며 함께 살아가라는 그 한마디를 자신의 살아온 생애를 통해 말해준다. 이 깊은 울림은 영화의 반전이 안겨 준 여운이 채 가시기도전에 그것을 훌쩍 넘어 엄습해 다가온다. 독특하고 놀랍고 잘만들어져서, 결국 내게 특별해진 영화다.









덧글

  • 날다람 2012/10/30 23:31 # 답글

    올 여름 명동예술극장에서 원작인 연극이 올려졌었죠. 교수님께서 강추하셨는데 놓치고 말았어요... 영화라도 꼭 봐야겠네요. (스포는 영화보기 전에 궁금해서 봐버렸어요. 청개구리ㅜ)
  • 레비 2012/11/04 18:08 #

    앗 연극은 못봤었는데 여름에 이미 벌써 했었군요 ㅠ 아쉽습니다 ㅎㅎ
    반전을 모르고 보셨더라면 더 깜짝 놀라셨을텐데요 :D ㅎㅎㅎ
  • 2012/10/31 09:0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11/04 18:08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2/11/02 01:3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11/04 18:09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123142 2015/02/28 01:09 # 삭제 답글

    제목은 무슨의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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