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락천사, 墮落天使: Fallen Angels, 1995 Flims








김선아의 화장품 CF로 유명했던 그 멘트, '낯선 여자에게서 그의 향기를 느꼈다'는 바로 이 <타락천사>중 한 장면의 유명한 패러디이다. 이가흔과 막문위가 지하도를 걸어가다 스쳐지나가며 이가흔이 찾고있던 남자, 여명의 향수 냄새를, 그때 여명과 어울리던 막문위로부터 감지하고 두 여자가 본능적으로 돌아서 쳐다보는 바로 그 장면이다. (사실 이 외에도 국내 CF계에 패러디된 이 영화의 장면들은 몇개 더 있다. 망사 스타킹을 신고 혼자 침대에서 자위하는 이가흔의 섹시한 장면이라든가.) 왕가위 감독의 90년대 작품들 중 <중겸삼림>과 <해피투게더>의 사이에 있는 작품. 영화 <타락천사>는 "중경삼림 2"로 읽히기 쉽다. 애초부터 <중경삼림>의 세번째 이야기로 구상되었던 시나리오를 따로 떼어내어 독립적인 작품으로 일년뒤 내놓은 만큼 <중경삼림>에 플롯이 의지하는 구석도 없지 않으며 또한 그렇기때문에 <중경삼림>에 비해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비평도 많이 듣는다.







두명의 남자와 두명의 여자의 얽힘이 교차적으로 일어나지만 전후반부로 나뉘어 각각 커플의 다른 이야기가 등장하는 <중경삼림>과 달리 <타락천사>는 이 두 쌍이 아슬아슬 스칠듯말듯 서로의 세계를 교차한다. 게다가 <중경삼림>에서 경찰 233이었던 금성무는 이 영화에선 수감번호 233이었던 하지무(금성무)로 출연하고, 그와 그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여관 이름은 '중경 여관'이다. 이런식으로 <타락천사>에는 <중경삼림>에 대한 은유와 메들리가 이어진다. 그래서 나는 만약 당신이 <타락천사>를 볼 생각이 있다면 꼭 <중경삼림>을 먼저 보았길 바란다. 그래야 금성무의 '유통기한 지난 파인애플 통조림 이야기'에 웃을 수 있을테니까.









감독의 표현대로 코카콜라 같이 상큼했던 <중경삼림>과 달리, <타락천사>의 영상에는 좀 더 붉은 색의 조합이 많고 그만큼 왕가위의 촬영감독, 크리스토퍼 도일의 카메라는 '왕가위 스타일'을 유감없이 발휘해놓았다. 그래서 <타락천사>는 시각적 미장센면에서 <중경삼림>보다 더 인상적인 영화로 남는다. 어안렌즈의 사용은 주인공들의 쓸쓸한 표정들을 더욱 부각시켜놓았고 여전히 왕가위의 핸드헬드 기법은 당시 중국 반환을 눈앞에 둔 어지러운 홍콩 공기의 심리를 대변하고 있다. 영화에는 각자의 사연을 담은 남자와 여자들이 있고, 당장 옆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과 싸움과 수다로부터 고개를 돌리고 외면하는 캐릭터들이 있으며, 이런 인물들의 심리는 모두 홍콩의 당대 상황에 맞물려있다.








<중경삼림>에서의 과거에 사로잡힌 두 남자 경찰에 비해, <타락천사>에서의 킬러 황지민(여명)과 하지무(금성무)라는 두 남자는 과거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 이 둘에겐 과거라고 말할 만한 것이 없으며 지민에게는 만남은 커녕 대화조차 않더너 파트너이자 동업자(이가흔)이 있고, 하지무에겐 실연당해 아픈 가슴을 자신에게 의지하던 챨리(양채니)가 있다. 지민은 자신을 몰래 흠모하던 파트너의 마음을 몰랐던 죄로 그녀의 함정에 빠지고 말고, 반대로 너무나 순박하게 사랑을 믿었던 하지무는 진정한 마음을 열지않는 챨리로부터 버림받는다. 하지무와 챨리의 마지막씬은 <중경삼림>에서의 양조위와 왕비의 마지막씬에 대한 패러디이기도 하다. 사랑보다는 주로 기억에 대해 말하곤했던 시네아스트 왕가위의 <타락천사>는 그렇기 때문에 내겐 신선한 영화였다. 늘 과거를 못잊는 캐릭터들 일색이었던 그의 영화에서 오직 현재만을 살고, 미래를 기대하는 이런 두 남자는 색다른 모습이었다. 








영화는 서로 만날일이 없던 각 남녀중 각각 한명씩을 마지막 씬에서 처음으로 함께 앉혀놓는다. 황지민의 파트너 이가흔은 하지무의 등에 안겨 오토바이를 타고 새벽의 도로를 질주하며 마지막 나래이션으로 영화를 마무리한다. 나는 이 장면이 참 잔인하다고 느꼈다. 소유할 수 없어서 파트너였던 황지민을 죽인 여자가, 처음으로 사랑에 눈을 뜨지만 그 사랑으로부터 곧 잊혀진 쓸쓸한 남자의 등에 기대어 하는 말이 "이 길이 길지않으며 곧 내려야 한다는 것도 알지만, 지금 이순간 만큼은 따듯하다" 라니. 결국 각자 짝사랑을 하다 그들을 떠나보낸 두 사람이 알 수 없는 이끌림에 잠시 의지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다소 허무주의로 향하던 그의 영화색과 크게 이질감이 느껴지진 않지만 나름 해피엔딩이었던 <중경삼림>과는 달리 쓸쓸하고 허전한 <타락천사>의 결말은 더 오래도록 잔상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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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12/10/16 12:5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10/17 15:16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2/11/22 21:01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회고록 2012/10/18 10:19 # 답글

    간만에 보는 타락천사네요 ㅠㅠ 정말 비디오테잎도 구입해서 한 20번은 본거 같은데.. 제가 젤 좋아했던 영화중 하나입니다 ㅠㅠ ㄱㅅ
  • 레비 2012/10/20 15:55 #

    좋아하시는 영화군요 :) 저는 저 당시 너무 어려서 제때보진 못했지만 다시 봐도 참 괜찮은 요소들이 많은 영화에요.
  • 2012/10/22 12:20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10/23 03:26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아루아루 2014/07/30 08:41 # 답글

    최근에 타락천사를 다시 보게되서, 여주인공이 일하러 가서 야식으로 물만두 먹는 장면이 저는 너무 좋아요. 그 표정이랑. 그래서 밤에 영화 보다말고 홈플러스가서 물만두 사서 먹으면서 봤는데...
  • 레비 2014/08/02 23:50 #

    예전에도 몇번 이야기한것같지만 아루아루님은 이 영화를 특히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ㅎㅎ 전 야식인지는 잘 생각이 안나지만... 마지막 씬에서 만두 먹는 장면이 떠오르네요 :) 표정도 그렇구요 ㅎㅎ 영화에 너무 감각적이고 좋은 장면들이 많지만 전 마지막 오토바이씬이 제일 좋은것 같아요 :) 영화보다 말고 물만두 사서 드시며 보셨다니 ㅋㅋ!! 진짜 영화를 즐기시는 모습인것 같아서 부럽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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