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트 클럽, Fight Club, 1999 Flims










인터넷무비 데이터베이스, IMDb에는 Top250라는 흥미로운 메뉴가 하나 있다. 백만개 이상의 풍부한 정보가 유저들에 의해 추합되어 쌓아올려진 이 IMDb에서 그간 유저들이 매겨놓은 평점들을 종합하여 시대를 막론한 영화 평점 순위를 매겨놓은 차트이다. 2012년 9월 현재, 같은 9.2점이지만 더 많은 사람들의 투표수로 1위를 고수하고 있는 영화는 <쇼생크 탈출>이다. 이외 대부시리즈가 2,3위. <펄프 픽션>이 4위, 개봉당시 9.0이 훌쩍 넘어 화제가 되었던 크리스토퍼 놀런의 <다크나이트>는 현재 8위에 랭크되어 있다. 8.8점이라는 아주 높은 평점을 갖고 있는 영화들은 <다크나이트>를 포함하여 다섯편으로 8위부터 12위까지를 차지하고 있는데, 그 나머지를 살펴보면 <반지의 제왕 : 왕의 귀환>, <스타워즈 : 제국의 역습>같은 대작과, 어느 정신병원 안에서 벌어지는 음모를 빗대어 현대 권력의 생리를 풍자한 <뻐꾸기 둥지위로 날아간 새>가 있다. 위에 언급한 4개의 작품을 모두 보았던 나로선 내가 보지못한 나머지 한 작품, 그러면서도 앞서 언급한 영화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8.8이라는 높은 평점을 가지고 있는 영화 (참고로 <인셉션>, <스타워즈>, <매트릭스> 마저 이들의 뒤를 이어 13~20위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가 궁금해지는건 어쩔수 없는 수순이었다. 데이빗 핀처의 99년도 영화 <파이트 클럽>이 바로 그 나머지 한 작품이다. (http://www.imdb.com/chart/top)


<소셜 네트워크>로 2010 아카데미 감독상의 유력한 후보였지만, <킹스 스피치>이변의 희생양으로 내게 기억되고 있던 데이빗 핀처의 이 영화는 에드워드 노튼과 브래드 피트, 그리고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여배우인 헬레나 본햄 카터가 모두 매력적으로 등장한다. 특히 브래드 피트가 연기한 타일러 더든은 그 독특함으로 영화사에 기념비적 캐릭터를 이 영화로 남기기도 했다. 감독 데이빗 핀처와 브래드 피트의 조합은 <파이트 클럽>이 처음도 아니고 마지막도 아니다. 서른의 나이에 <에일리언 3>를 맡아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데뷔한 그는 그의 두번째 작품인 1995년의 <세븐>에서 브래드 피트와 처음으로 호흡을 맞춘다. 이 영화는 그 둘 모두에게 행운이었다. <가을의 전설>,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등으로 발돋움을 준비하던 브래드 피트에게는 그가 이제 조연 배우가 아닌 당당한 주연 배우로서의 이미지를 굳히게 해주었고 데이빗 핀처는 이 두번째 작품만에 세계적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99년 둘의 재회가 바로 이 영화 <파이트 클럽>이었다. 이후 각자의 길을 걷는듯 했던 이 둘이 9년만에 다시 뭉친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가 영/미 아카데미에 다수 노미네이트 되며 반가운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데이빗 핀처와 브래드 피트는 이 영화로 함께 감독상과 남우주연상 후보에 나란히 올랐지만 아쉽게 둘 다 수상하진 못했다)


* 반전 있는 영화입니다. 이하 포스팅은 그 반전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전개를 가지고 있으므로 영화를 앞으로 보실 생각이 있으시다면 여기까지만 읽으시길 권합니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에드워드 노튼)의 나레이션으로 진행된다. 그는 자동차 리콜 검사관으로서 미국 전역의 자신들 회사의 차량 사고 현장으로 가야하는 고된 회사생활을 하고 있다. 불면증을 앓는 그는 이곳저곳 다양한 병명을 가진 환자들의 모임에 거짓행세로 참여하며 위안을 얻는다. 지독한 외로움에 그는 타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그런 모임에 빠져들지만 곧 말라(헬레나 본햄 카터)라는 여자 역시 자신과 똑같이 거짓으로 그런 행동을 한다는 사실에 그만의 도피처는 흔들린다. 이런 그의 유일한 취미이자 스트레스 해방구는 이케아 가구를 사모으는 것. 소비를 함으로서 돈을 버는데 수반되는 스트레스를 잊는 아이러니한 삶을 사는 이 시대의 평범한 직장인이다. 비행기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과의 인사치례, 인연조차 일회용이라고 치부하는 그에게 처음으로 일회용이 아닌 인연이 나타난다. 비누제조업자로 자신을 소개한 타일러 더든(브래드 피트)는 한눈에 봐도 주인공인 그보다 자유분방하고 얽매임이 없어보인다. 그리하여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자신의 집이 폭파되어 한순간에 집과 자신의 소중한 이케아 가구들을 날려버린 주인공은 전화번호를 가지고 있는 말라보다 타일러에게 전화를 하게되고 그렇게하여 그는 일회용 인연인줄알았던 타일러와 다시 만난다.


술집을 나서며 자신의 집으로 가기전에 때려달라는 타일러. 왠 미친놈이 아닌가 하며 주먹을 날린 주인공은 그 짧은 주먹다짐 속에서 일탈과 해방과 자유로움을 느낀다. 그렇게 그와 타일러의 정기적인 격투는 계속되고 급기야 사람들이 너도나도 끼기 시작하며 주인공이 느꼈던 그 쾌감을 나누고 영업이 끝난 그 술집의 지하실은 '파이트 클럽'의 아지트가 되어 밤마다 남자들의 싸움이 벌어진다. 하지만 이들의 주먹질은 서로에게 미움과 악의를 느끼는 싸움이 아닌 마치 스포츠처럼 보인다. 한쪽이 패배를 시인하면 즉시 끝내고 서로를 끌어안고 고마워하는 나름의 룰도 있다. 하지만 타일러의 이 '클럽'은 낮엔 평범한 사람들이었던 자들이 싸움으로 모든 정신적 억압을 풀고 해소하는 모임에서 서서히 변질되기 시작한다. 이들은 주인공의 의지와는 달리, 타일러를 교주처럼 따르며 반사회적 행동도 서슴치않고 타일러의 기행과 그들 클럽 구성원들의 폭력성은 이제 클럽 내부가 아닌 사회 전체로 뿜어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렇게 브레이크가 풀린 타일러를 막기위해 애쓰던 주인공은 그제서야 충격적인 반전과 마주한다. 바로 자기 자신이 타일러 더든이었다는 것.













영화가 모두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면서 주의깊게 보다보면 뭔가 이상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캐스팅 리스트를 보면 타일러 더든 - 브래드 피트의 이름위에 당연히 올라있을 에드워드 노튼의 역할이 "Narrator"로 등장한다. 그 크레딧을 보기전까지 이 영화에서 에드워드 노튼의 극중 이름이 단 한번도 공개되지 않았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는 관객이 몇명이나 될까 문득 궁금해졌다. 일단 나부터 에드워드 노튼의 극중 이름이 있었던것 같은데 왜 나레이터라고 표기했을까?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으니까. 돌이켜보면 영화초반 에드워드 노튼이 여러 모임을 전전하며 사용하는 이름들은 모두 모임마다 바꿔 사용하는 가명이다. 그리고 타일러의 집안에서 그가 조직을 만들어도 그들은 에드워드의 존재감을 충분히 의식하지만 한번도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오직 '타일러 더든'만 불리는 것이다. 그러니 영화 말미에 나왔던 반전을 보고도 끝까지 에드워드 노튼의 이름이 '그러고보니' 앞서 등장한적이 없었구나 ! - 싶은 것이다. 에드워드 노튼의 '주인공'은 이 영화에선 이름조차 없지만 타일러가 곧 그임을 알게되고 그의 본심이자 혹은 또 다른 모습 임을 알게될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무려 무명이다.














영화에는 억압과 표출이라는 두가지가 주효한 키워드로 사용된다. 영화 초반부, 타일러를 만나기전 주인공의 행보는 여러 모임들을 전전하는 것으로 관객들에게 공개된다. 주인공의 직업은 자동차 회사의 리콜 심사관이다. 그는 사고로 전소한 차량을 보면서 차안에 타고 있던 운전자나 가족이 얼마나 고통스럽게 죽었는지, 그들의 사연보단 오직 자신의 공식, 대사로도 등장하는 리콜 여부를 가르는 공식이 더 중요할 뿐이다. 그는 직장상사에게 스트레스를 받고, 그 해소법의 유일한 대안으로 고작 가구를 사모으는 것이다. 그는 모든 것으로부터 억압되어 있는 남자다. 타일러의 입에서 직접 집을 폭파했다는 것을 들었을때 그는 모든것을 버리고 해방되라는 외침도 함께 듣는다. 사실 생각해보면 파이트 클럽이라는 것에 주인공이 매료되고 매력을 느끼는 것도, 그리고 서서히 타일러를 닮아갈때도 그는 모임에서 고해성사같은 것을 매주 하지않아도 이젠 충분히 억압으로부터 벗어났다고 믿게된다. 애지중지하던 집이 폭발로 날아간 것은 이런 물질로부터의 구속을 끊어버린 극명한 예이다. 타일러의 집(사실은 주인공이 빌렸던 집)은 주인공이 살던 깔끔한 집과 정반대로 지저분하고 누추하지만 그는 거의 불만도 느끼지 못한다. 주인공이 억압되어 있는 것은 또 있다. 바로 성적 욕구이다. 그는 말라를 여러 모임에서 만나지만 호감보다는 되려 불편함과 경계를 느낀다. 하지만 그의 명상속에서 자신을 나약한 존재로 표현하는 펭귄이 어느순간 그녀로 대신 나오기 시작하면서 그는 자신의 마음을 똑바로 인정하고 바라보지 못한다. 그래서 타일러의 집에서 그녀의 전화가 왔을때, 그는 귀찮은듯 수화기를 버려두었지만 그의 또다른 자아이자 본심인 타일러는 대신 그 수화기를 들고 그녀를 데리고 와 주인공과 같은 집안에서 섹스를 한다. 주인공은 말라가 섹스를 한 사람이 자신이 아니라 타일러였다고 생각한다. 타일러가 주인공보다 우세하다고 말하는 모든 능력, 싸움, 매력 등에는 성적 능력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주인공은 영화초반 고환암 환자들, 즉 사회적으로 거세당한 남자들의 모임에서 거짓 눈물을 흘려보며 해방감과 쾌감을 느껴보지 않았던가. 마지막에서야 겨우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마음을 인정하고 깨닫게 되는 것은 그가 타일러를 죽임으로서 이제 온건히 타일러의 인격 역시 자기 자신으로 흡수 되었음을, 아니 이젠 순순히 말할 수 있게 된 것을 의미하지 않을까. 영화 초반, 그가 정기적으로 가던 환자들 모임에서 클로이라는 여자의 말은 이를 돌려 말해준다. 죽을 날이 얼마 남지않은 그녀의 말은 처음에는 의례적이고 일상적이지만(보통 사회가 우리에게 기대하는 모습) 말의 말미에 갈수록 섹스하고 싶다며 상식적으로 그런 자리에서 하기 힘든 성적욕망의 표출을 하다가 진행자로부터 저지당한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에게 기도와 명상을 권장하는 그런 모임에서조차 결국 한꺼풀 벗겨보면 전혀 그렇지않은, 우리는 모두 죽음을 앞두고도 그런 억압을 당하고 있다는걸 보여주는 장면이다.


나는 나 스스로 폭력성과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아왔다. 27년 가량 살면서 누구의 얼굴을 주먹으로 가격해본적이 단 한번도 없다는 것은, 즉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학창시절에 남자아이들이 흔히 하는 싸움 한번조차 못해봤다는건 뭔가 이상한 콤플렉스가 되었다. 싸움을 못하고 나약하다는 것은 둘째치고, 누구에게나 내제되어 있을 폭력성에 대한 호기심은 한번쯤 들기 마련이다. 물론 폭력은 싸움이나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가장 빠른 수단이고 이는 육체적, 정신적 상해로 이어지기 쉽기에 우리는 보통 폭력을 지양하려 한다. 게다가 이 영화속의 '폭력'은 처음엔 스포츠에 가까운 모습이었다는 것도 잊어선 안된다. 그러나 한가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몸을 움직이는 행위, 주먹을 휘두르는 행위가 아드레날린을 불러일으키고 그것이 적잖은 쾌감을 선사할 수 있다는 점이다. 타인을 짓누르고 굴복시키는데에서 얻는 쾌감이 아니라 순수히 주먹을 휘두르는 그 순간에 말이다. 그래서 파이트 클럽에서의 주인공은 많이 얻어맞기도 하지만 그만큼 하루가 다르게 정신적으로 해방되고 육체적으로도 건장해진다. 타일러와 주인공은 싸워보고 싶은 역사적 인물들을 서로 말하기 하며 링컨과 간디를 언급한다. 싸움으로 유명한 인물들이 아닌, 두 비폭력과 평화주의의 상징같은 인물들을 고르므로서 얌전한 평화의 상징들과 싸워보고 싶다는 욕구를 단적으로 표현한다. 운동으로 얻는 쾌감에 헬스나 운동에 중독된 사람들도 현실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영화 파이트 클럽은 현대 사회와 물질들로부터 구속된 남자들에게 종교처럼 빠르게 퍼져나가고 그들의 탈출욕구를 더 강하게 기폭시킨다. 게다가 영화 중반까지만해도 우리는 클럽 구성원들을 모아놓고 하는 타일러 더든의 일장 연설, 즉 '우리 세대'가 역사의 고아라는, 정신적 공황을 겪고 있다는 말에 깜빡 동조하게 된다.














하지만 영화는 이런 구속과 억압을 무제한으로 풀어 헤쳐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캐릭터 타일러 더든은 어떠한가. 그는 분명 싸우는 행위로 주인공에게 자유와 해방을 선사했다. 그덕에 주인공은 분명 바뀌어갔다. 그러나 어느새부터 반사회적 그들의 행동은 주인공의 마음에 들지않고 타일러와 의견충돌이 벌어지면서 타일러는 그의 무의식적 한계선을 추월해나가기 시작한다. 타일러 더든은 순수한 자유주의자일지도 모른다. 그가 주장하는 자유란 '행동을 자유롭게 하는 것' 에 그치지 않는다. 모든 물질적인 것마저 초월하고 버린다. 그는 직접 주인공의 집을 폭발시켜 날려버림으로서 그를 구속하는 이케아 가구들을 부셔버린다. 덕분에 주인공은 그것들을 미련없이 '포기'하게 된다. 무언가 집착한다면 그 집착의 대상을 파괴하는 것은 좋은 포기의 계기가 됨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타일러 더든의 자유론은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이 아니다. 그는 타인의 자유를 해하는 것조차 마다하지 않는다. 그의 조직은 점점 테러조직에 가까워지고 반사회적이고 반체제적이 되어간다. '파이트 클럽'의 시작이 낮의 억압으로부터 밤에 해방되는 클럽이었다면 이런 변질은 자연스러운 단계일 수도 있지만 영화는 이쯤에서 주인공을 시켜 저지하려한다. 


허나 영화는 마지막 그 대폭발을 막지 않는다. 이것을 타일러의 승리이자 막지못한 주인공의 패배라고 볼 수 있을것인가. 주인공은 폭발의 그 순간을 놀라움보단 말라의 손을 꼭 잡고 타일러가 권했듯이 함께 폭발씬을 '감상'하며 영화를 끝낸다. 그의 내면이 바라마지않던, 자신이 몸담고 있던 회사를 비롯한 현 사회의 상징적 붕괴이자 테러를 그는 그토록 필사적으로 저지하려는 듯 했지만 결국 그 모습은 '당연히 그래야 할 것 같다는' 관성에 의해서였다. 그가 타일러를 죽이고 비로소 타일러가 아닌 온건한 주인공 하나로 서있을 수 있게 되었을 때, 그것을 막아야겠다는 생각은 타일러의 생각을 이젠 스스로 할 수 있게된 주인공에 의해 지워졌다고 생각한다. 늘 사회적 약자이자 무기력했던 그는 타일러의 등장 - 원래 숨겨져있던 자아의 분리를 등장으로 볼 수 있다면 - 덕에 내면에 숨겨있던 자신의 본심이 무엇이었는지 응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내겐 조금 놀랍긴 했지만,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 폭파씬은 가로막히지않는다.












억압된 인간들과 그들의 사회적 표출이 영화의 한 축을 이루는 것은 분명하지만 주인공과 타일러의 인격분리는 영화 <파이트 클럽>에서 가장 의미있는 설정일 것이다. 주인공이 타일러로부터 진실을 듣는 호텔방에서의 회상장면은 마치 브루스 윌리스가 <식스센스>에서 얻어맞은 그 반전 직후의 회상씬 못지않게 충격적이다. 그때 잠깐 나오는, 타일러와 자신이 처음 싸우던 장면은 그래서 인상적이다. 술집에서 나온 구경꾼들이 처음 주인공을 보았을때, 그는 자신의 기대와 달리 주먹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격하고 있었다. 영화 <파이트 클럽>은, 억압과 해방의 코드를 가지고 있지만 그 모든것을 이루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결국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영화의 후반부 도달하면 이 무명의 주인공이 '타일러 더든'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된다. 그제서야 이 영화의 시작 장면으로 다시 돌아온 우리들은 이 영화가 어떤 대사로 시작했는지를 떠올릴 수 있어야한다. 총구가 입에 물린 에드워드 노튼의 그 나레이션은 "사람들은 늘 내게 타일러 더든을 아냐고 묻는다. (People are always asking me if I know Tyler Durden)" 였다. 이후 나레이션은 이어서 주인공이 처한 상황을 설명하고 말라의 이름으로 넘어가 버리기 때문에, 타일러 더든이 누군지도 모른채 접하는 이 첫장면의 대사는 금새 잊혀지기 쉽다. 하지만 영화의 맨 마지막으로 와서야, 우리는 이 대사가 얼마나 의미심장한지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주인공에게 '파이트 클럽'의 창립자인 타일러 더든에 대한 호기심 어린 그 질문은 바로 주인공에겐 '너 자신을 아느냐'는 질문이 되기 때문이다. 타일러 더든은 주인공이 만들어내고 창조한 욕망과 욕구의 대리인이자 실행자였다. 영화 말미엔 거의 이중인격자의 사투를 보는 듯하지만 그는 자신이 만들어낸 욕망의 폭주를 막으려 애썼다. 타일러 더든은 주인공에게 자유와 해방감을 선사했지만 지킬박사의 내면에서 튀어나온 하이드는 결국 지킬박사를 집어삼키지 않았던지. 그래서 하이드를 통제하려는 지킬박사의 투쟁은 자기 자신을 아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가 진실을 맞딱드린 그 장면에서, 주인공은 타일러의 뒤를 쫓다가 어느 식당의 바에서 자신을 알아보는 한 맴버에게 바로 그 질문을 하지않던가. 내가 누구지? 










덧글

  • 서주 2012/09/17 10:47 # 답글

    음.. 흥미롭게 읽었어요. 워낙 오래 전에 봤던 영화라.. 스무살도 채 되기 전이었던 듯;(그 나이에 왜 빨간 딱지를 본 거야!;;) 가물가물했는데 글 읽으면서 생생하게 영상화되는 느낌. 특히 아름다운 미장센만은 유독 기억에 남아요.
    나를 '해방'시키는 방법을 몰랐던 시절, 파이트클럽은 분명 어떤 카타르시스를 줬던 것 같아요. 실은 갸가 갸다;란 결말에 이르러선 도리어 충격이 덜했었어요. 지리한 일상의 인물이 어느 매력적이고도 자신과는 대척점에 서 있는 상대에게 빨려들어가는 이야기가 지금은 꽤 많아졌지만 그때만 해도 그런 과정 자체가 서스펜스였던 것 같아요.ㅎㅎ 언급하신 내래이터가 AA 등을 전전하는 설정도 굉장히 좋았어요. 그런 환자들의 모임에서 내 이야기를 주절;거리고 타인의 고통을 듣는 그 시간이.. 제겐 너무나 비루하고 견딜 수 없게 쓸쓸했어요. 주인공의 심리 상태가 직접적인 대사 없이도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느낌..
    타일러와 내래이터가 싸우고 싶은 상대로 링컨과 간디를 언급했단 건 읽고서야 알았는데 정말 의미심장하네요.ㅎㅎ 설명에 고개 또 끄덕끄덕. 근데 간디는 정말 너무하잖아............. 내 반의 반밖에 안되는 양반을ㅜㅜㅎㅎㅎ
  • 레비 2012/09/19 00:23 #

    평소 쓰던것보다 조금 두서없이 길게 쓴것 같은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저는 사실 땀내나는 '스포츠 영화' 인줄 알고봤지요 (... =_=) 남동생이 추천해줘서 보게됬는데 정말 아무런 정보도 안주고 보게하는 바람에 뒷골목 패싸움 영화인줄알았답니다..ㅎ 결과적으로 훨씬 만족스러웠지만요 ㅎㅎ 저는 결말에서도 충격이 꽤 컷어요 :) 전혀 예상치도 못했거든요. 사실 지금도 약간 긴가민가합니다. 완전히 동일인인가, 이중인격인가, 환상인가.... 영화에선 설명이 조금 부족하거든요. 하지만 그런 설명을 요구할만한 영화도 아닌것같구요 ^^;

    링컨과 간디 언급은 제겐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ㅎㅎ 뭐 남북전쟁의 그 링컨이긴 하지만 그렇게본다면 어쩌면 '마르고 비리비리해보이는' 위인들로만 골랐다고 해석해도 될것같아요 ㅎㅎ
  • 누누슴 2012/09/18 14:13 # 삭제 답글

    아니 이런 우연이 최근에 생각나서 다시 보게 됫는데
    전 헬레나본햄카터가 나온지 모르고 봤어요 예전엔 . 그땐 브래드피트와 에드워드 노튼이 워낙 강렬해서 ㅠ
    리뷰 잘 읽었습니다 ^^
  • 레비 2012/09/19 00:23 #

    헬레나 본햄 카터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여배우들 가운데 하나에요 ! :) 물론 브래드 피트의 캐릭터가 너무 강렬했죠 ㅎㅎㅎ 오랫만입니다 :)
  • M 2012/11/18 19:55 # 삭제 답글

    멋진 글 감사합니다!
  • 레비 2012/11/20 13:43 #

    감사합니다 :)
  • 2014/02/12 09:11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4/02/13 15:41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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