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전쟁, War Of The Worlds, 2005 Flims










H.G 웰즈의 원작 소설을 읽지 않았다하더라도, 1938년 오손 웰즈가 벌인 미국 역사에 길이 남을 '화성침공' 해프닝에 대한 이야기를 모른채 이 영화를 보더라도 이 영화는 보기도 전에 그 이야기의 짐작을 오해하게 만들 소지가 다분하다. 불타는 지구 혹은 어떤 행성을 프레임으로 다코타 패닝을 안고있는 톰 크루즈. 그리고 이 둘의 놀라 휘둥그레진 두 눈과 썩 좋지 않아보이는 안색은 포스터에 그 어떤 수식어가 덧붙여져 있든간에 우주전쟁이라는 타이틀 덕에 거대한 스케일의 어떤 SF영화를 떠올리게 만들기 쉽다. 게다가 외계인에 대한 믿음을 간직하고 있는, 알 수 없는 미지에 관한 영화에 만큼은 장인의 수식어를 붙여도 될만한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라니. 원제가 세계 전쟁으로 읽히든, 우주 전쟁으로 읽히든지간에, 이 영화를 보기전부터 우리는 외계인의 침공이나 그에 대항하는 터미네이터 식의 액션이나 톰 크루즈의 영웅활극을 볼 수 있지않을까 기대하기 마련이다. 나 역시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보러갔을때 그러한 상상의 나래를 잔뜩 품고 들어갔으나, 결과적으로 이 영화는 내가 기대하던 그런 영화와는 우주적인 스케일로 거리가 멀었다. 간단히 말하여, 이 영화는 사실 SF 영화가 아니라 공포 영화다.










사실 <우주 전쟁>은 war 라는 단어를 쓰기 무색할 정도로 일방적인 학살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군대가 등장하지만 외계인에 대한 인간의 저항은 무의미하고 기껏해야 마지막에 한마리를 격추시키는 것이 전부다. 외계인이 번개를 타고 내려와 땅속에 묻어두었던 그들의 침략 기계 - 트라이포드 - 를 꺼내어 인간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하고, 마치 매트릭스에서 본 것과 같이 인간을 그들의 양분으로 사용하는 등, 이 전쟁을 과연 전쟁이라 부를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외계인들의 지구 침공을 다룬 영화, 혹은 그와 비슷한 거대 스케일을 구사하는 재난 영화들은 <인디펜던스 데이>부터 최근의 <배틀쉽>에 이르기까지 늘 헐리우드의 좋은 소재가 되어왔다. 하지만 <인디펜던스 데이>, <월드 인베이전> 혹은 다른 적대적인 외계인이 나오는 거의 모든 영화들에서의 주인공들과 레이(톰 크루즈)는 다르다. 대부분의 재난 영화나 외계인과 싸워야하는 영화에서의 주인공들과 주변 인물들은 하나 같이 군인이거나 과학자거나 혹은 대통령(혹은 그에 못지않은 정부 고위 관료들)이었다. 그러나 레이는 아무런 능력도 없는 항만 노동자이고, 그저 딸 레이첼(다코타 패닝)과 아들 로비(저스틴 채트윈)를 지키고 보스턴으로 데리고 가는 것이 그의 지상과제로 주어졌을뿐, 그에겐 지구를 구해야겠다는 사명도, 오길비(팀 로빈스)처럼 쳐들어온 외계인에 대한 반격을 해보겠다는 생각도 전혀 없다. 이 점이 이 '외계인이 나오는' 영화의 시점이 여타 다른 재난 영화들과 차이를 두는 가장 큰 점이다. 이 영화에서 범 지구적인 외계인의 침공 장면은 그저 잠깐 지나간 짧은 뉴스 화면 영상을 제외하면 피난민들의 대사에서 추측할 수 있는 것이 전부다. 제목의 거대한 스케일을 배신하듯, 스필버그는 카메라를 지구 전체로 돌리지 않는다. 카메라는 오직 레이가 있는 뉴저지와 그가 가는 피난길 위에서만 함께한다. 그래서 거대한 외계인들의 기계들을 인간의 시점으로 올려다보는 시선만 존재할뿐, 먼 산위에서 외계인의 다가옴을 조망하는 숏은 없다. 스케일이 주는 스펙타클함을 포기하고 스필버그가 철저히 쫒기는 인간의 시선을 고집하면서 얻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공포다.












외계인이 인간을 학살하는 장면이 공포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우리는 이제 그런 장면들에 이미 너무나도 익숙해질 정도로 많이 노출되었다. 그가 추구하는 공포는 나이트 샤말란이 영화 <싸인>에서 보여주었던 그런 방식의 공포다. 보이지 않고, 우리가 모르는 무지한 미지의 어떤 것에 대한 막연한 공포. 지하실로 숨어들어간 레이와 레이첼은 영화 <싸인>에서 멜 깁슨과 그의 가족들이 외계인이 밖에 나돌아다니는 지하실에 갇혔을때와 거의 같은 상황과 직면한다.

이 영화는 헐리우드를 대표하는 '유니버셜'에서 흥행 신화를 썼고, 지금은 '드림웍스'사의 수장이기도한 스필버그의 필름 답지않게 헐리우드 식 재난 영화에서 많이 빗나가 있다고 혹평을 받았다. 하지만 곰곰히 되짚어보면 이 영화에는 스필버그의 그간 행보가 고스란히 오마쥬되어 있다. 레이가 외계인의 촉수를 도끼로 자르느라 잠시 잃어버린 레이첼을 찾으러 지하실에서 올라왔을때, 그 핏줄을 닮은 줄기들에 뒤덮힌 장면은 흡사 팀 버튼의 영화에서 본듯한 초현실적인 꿈의 세계처럼 묘사되어있지만, 작은 레이첼에게 위협적으로 다가오는 거대 외계 기계의 밝은 조명과 그 내려다봄은 스필버그의 오래된 전작, <미지와의 조우>의 한 장면과 닮았다. 하지만 <E.T>에서 그가 그리던 우호적 외계인은 더이상 그곳에 없다. 또한 지하실에서 눈을 가진 외계인의 촉수가 레이와 레이첼, 그리고 오길비를 위협하는 그 장면은 영화 <쥬라기 공원>에서 어린 두 소년, 소녀 남매가 식당주방에서 두 마리의 공룡 랩터를 피해 숨죽이고 움직이는 그 긴장된 장면과 매우 흡사하다. 적대적인 미지의 생명체와 숨어야하는 주인공들의 시점을 함께, 또는 번갈아가며 계속 카메라를 돌리는 촬영 역시 많이 닮아있다. 허드슨강을 건너려다가 뒤집힌 여객선으로부터 달아나는 물 속에서의 씬은 그의 전작 <죠스>를 연상시키고 (실제로 이 장면 촬영 당시, 스필버그는 <죠스>의 '그 유명한 음악'을 틀어놓았다고 한다),  '학살자'들로부터 모든 것을 빼앗긴 넋나간 표정으로 그러나 본능적으로 어느 한 방향으로의 피난 행렬을 계속하는 사람들의 무거운 발걸음에서 우리는 <쉰들러 리스트>의 어느 장면을 떠올릴수도 있다.













또 다른 이미지의 공포를 관객들에게 직접적으로 심어주는 유효한 요소는 바로 레이첼 역의 다코타 패닝의 비명과 표정이다. 다코타 패닝은 이 영화를 보는 또 다른 눈이기도 하다. 영화속 많은 공포스러운 장면은 그 소녀의 눈으로 바라보며 시작된다. 따라서 레이의 눈을 통해 피난길을 따라가는 것 같지만 사실 철없어 보이는 어린 딸의 눈에 우리 관객들의 눈도 맞춰져있다. 햇빛에 반짝이는 강물을 따라 떠내려오는 소리없는 시체들, 외계인에 의해 육체가 사라져버린 주인을 잃어버린 옷가지들이 숲속의 아름다운 달빛아래 눈처럼 흩날려 내려오는 장면 등, 이 영화의 공포를 조성하는 장면들은 다 이런 소리없는 '장면'들이다. 폐쇄공포증에 소리지르지만 진짜 공포스러운 순간에 그 아이는 비명을 잊어버리고 관객들이 느끼는 '위기'는 극에 달한다. 레이는 레이첼을 지키는 아버지의 소임을 다하지만 관객들은 레이첼의 입장에서 영화를 보게된다. 가장 결정적으로, 정신이상자인 오길비를 죽이기로 결심한 레이가 레이첼의 눈을 가리고 노래를 시킬때 우리들의 눈도 가려진다. 10살배기 딸은 눈을 가리고 귀를 막지만, 아빠가 무엇을 할지 아주 잘 알고있다. 소리가 멎고 스스로 안대를 푼 딸은 방금 살인을 저지른 아빠의 품안으로 제발로 들어가 위로하듯 두 손을 포갠다. 레이가 선택의 순간에 아들 로비보다 레이첼을 선택한 것은, 그리고 로비가 자신의 품을 벗어나 카메라에서 사라지자마자 나타난 오길비 역시 로비와 유사한 맞서 싸우려는 성향의 남자라는 것은 어쩌면 이 영화가 아들과 딸을 보호하는 아버지가 아니라 사실은 애초부터 부녀의 피난기를 쓰고 있던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만든다. 아들 로비가 군인들과 함께 능선을 넘어가는걸 막지 못했던 레이는 결국 지하실에서 그 오길비를 죽이니까.









하지만 이 영화를 단순히 공포 영화로만 볼 수 없게 만드는 것은 영화 <우주 전쟁>이 품고있는 많은 메타포들 때문이다. 스필버그의 2005년 연출작인 이 <우주 전쟁> 이전, 2004년 그의 작품은 <터미널>이었다. 톰 행크스 주연의 이 <터미널>을, 프랑스 드골 공항에서 있었던 실화를 굳이 케네디 공항으로 가져와 타 약소국들에 대한 미국의 무지와 고지식함을 비꼬았다고 읽을 수 있다면, 이 <우주 전쟁>은 반대로 자신들이 무지한 바로 그 미국 밖 세력에 의한 무차별적 공격과 침공의 경고라고 읽힐 수 있을 것이다. 소설의 원작자 하버트 조지 웰즈는 당시 제국주의가 만연하던 영국에서 이 소설을 쓰며 제1차 세계대전의 임박을 경계했다고 하니, 스필버그가 웰즈의 생각을 빌려와 이 텍스트를 영화화 한 것에 대한 합당한 이유로서 아귀가 들어맞는다. 그렇다면 무엇에 대한 경고인가. 2001년, 미국은 911 테러를 당하고 이후 '테러리즘'은 미국이 치뤄야할 기나긴 전쟁의 대상이 되었다. 아무런 대비도 되어있지않았던 미국 본토, 그것도 저 하늘로부터가 아니라, 자신들이 딛고 서있던 '발밑'에서부터 침공을 시작한 외계인의 모습은 전면전의 전쟁이 아닌, 불시에 당한 911때와 같은 테러리즘을 연상시킨다. 이 영화 촬영 당시 불과 10살이었던 다코타 패닝이 맡았던 어린 딸 레이첼은 레이가 로비와 자신을 차에 태우고 달아나기 시작하는 첫번째 씬에서 차 뒤편의 첫번째 폭발음을 듣고 뒷좌석에 엎드려 소리친다. "Is it the terrorists?". 10살짜리 아이가 폭발음을 듣고 제일 먼저 떠올리는 것이 테러리스트라니. 아들 로비는 한술 더 뜬다. "What is it? Is it terrorists?" 레이가 "These came from some place else." 라고 대답하자 로비가 재차 묻는다. "What do you mean, like, Europe?"










이 영화를 읽는 다른 시선은 또 있다. 마지막 가족의 재회 씬에서 그 멀고 험난했던 길을 아들과 딸을 보호하며 애써 달려왔으나 아내 옆에 영화 초반부와 다름없이 땀 한방울 안흘리고 서있는 새 남자 때문에 온 가족이 포옹하는 훈훈한 감동은 거의 없었다고 느꼈거나, 레이가 더이상 다가가지 못하고 서있던 곳과 아내의 가족이 서있던 문앞의 거리가 유난히 멀어 보였다거나, 아니면 아내가 기다리고 있던 최종 목적지인 '보스턴'이 톰 크루즈가 출발한, 공격당해 통째로 폐허가 된 '뉴저지'에 비해 너무나도 멀쩡해보여 이상함을 느꼈다면, 이 영화를 사회적 계급간 계층의 화해할 수 없는, 융합할 수 없는 간극의 문제, 혹은 가족적 문제를 시사하는 영화로 볼 수도 있다. 스필버그의 영화적 코드는 언제나 그랬듯이 휴머니즘이었고, 그는 가족드라마를 만드는데 능숙했기 때문에 이런 어색한 가족의 결말은 대단히 의외스럽다. 물론 외계인들이 뉴저지부터 보스턴까지 미처 도달하지 못한채 명을 다했다고 보는게 영화 전개상 자연스러운 설명이지만, 그렇다면 영화 초반 레이와 그의 반항하는 아들 로비와의 집 뒷마당에서의 캐치볼 장면에서 뉴욕 양키스 모자를 쓰고있는 레이가 아들이 쓰고나온 보스턴 레드삭스 모자를 보고 불만섞인 아쉬움의 대사는 왜 삽입되어 있는 걸까. 미국내에서 뉴저지와 보스턴이라는 두 도시가 갖는 역사적, 배경적 은유를 모르는 관객이라도 사실 상관없다. 레이는 이혼당한, 그리고 뉴저지에서 일하는 항만 노동자로서 아들과 딸을 새로운 가정에 빼앗긴 무능력한 남자이며, 그가 사는 동네의 수준은 레이와 그들의 다닥다닥 붙어있는 옆집들, 배경을 봐도 알 수 있다. 심지어 이런 와중에 두 자식들을 맡게된 경위도 아내가 새 남자와 여행을 가는 동안 잠시 맡아두기 위해서였으며, 전화도 안되고 보스턴으로 아무 연락도 불가능한 레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두 자식을 다시 '원래의' 엄마 품이자 한때 자신의 아내였던 여자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전부다. 하지만 그래서 그토록 이 영화의 엔딩은 씁쓸하다. 그가 무사히 아이들을 엄마 품에 안겨놓아도, 그는 여전히 이혼남이자 그 아이들의 법적 아빠가 아니며, 이후에도 그들과 함께 보스턴에 살 수 없다. 심지어 아이들을 데리고 마침내 도착한 레이앞에서 아내와 그녀의 가족은 문 앞에 마중나오는 것이 그들이 한 일의 고작 전부였다는, 이 어색함을 너머 어이없기까지한 마지막 씬은, 그 곳까지 도달하고도 자식들의 안전 외에는 아무것도 보상받지 못한 레이의 마지막 표정이 마냥 행복해 보이지만은 않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사람들은 이 영화의 결말을 허무해했다. 이것은 이미 헐리우드 재난 블록버스터에 익숙해진, 결국 톰 크루즈에게 뭔가 한방을 기대한 우리들 탓일 공산이 크다. 처음부터 스필버그는, 아니 하버트 조지 웰즈는 인간들의 힘으로 이 외계인을 물리치게 할 생각이 없었다. 이 영화는 전쟁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지만 사실 영화 내내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기나긴 피난길이다. 비록 많은 은유들을 심어놓았다 해도, 누가 뭐래도 이 영화는 자식들을 지키기위한 한 남자의 고군분투기이다. 주인공 레이에겐 영웅적인 기질이나 사명이 없다. 그에겐 그저 딸과 아들이 전부다. 외계인에 맞서 싸우는 톰 크루즈의 모습을 기대했더라면 실망하게 될 영화가 맞고 또 어떤 변명을 해도 그 실망을 막을 방법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큰 재미들 중 하나는 바로 이런 '기대했던 바 대로' 흘러가지 않는 전개, 그리고 전혀 의외의 장면들과 그곳에 의외의 것들이 숨겨져있었다는 것을 발견하는 재미 아닐까. 나는 늘 영화란 감독과 관객들의 수수께끼라는 생각으로 본다. 기대를 빗나가게 만들어 우리를 허무하게 했다고해서 감독이 펼쳐놓은 수수께끼까지 전부 뭉뚱그려 비난할만하는 것은 옳지않다. 'alien' 이라는 단어가 단 한번도 대사에 사용되지 않는 외계인 영화, <우주 전쟁>은 어쩌면 외계인 재난 영화라는 장르적 유혹 자체가 하나의 속임수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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