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트리스, Restless , 2011 Flims












지난 5월이었나 4월이었나, 한달동안 세번의 장례식을 갔던 달이 있었다. 친구들과 먼 친척의 조사가 세번이나 한달안에 겹쳐서 벌어진 일이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의 죽음에 대한 경험은 사실 내가 기억도 없던 어린 시절 큰아버지의 죽음이 전부였다. 집안의 큰 어른이신 친외가 조부모 네분 모두 건강하신 덕분에 장례식은 여전히 내게 너무나 생소한 자리이기도 하다. 죽음은 당사자나 남겨진 사람들에게나 비극적이고 슬픈 일임에 별다른 이견이 없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죽음 앞에서 우리는 마냥 슬퍼하고있는 것이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가장 올바른 대처일까.

첫사랑과 심하게 다투고 이별한 후, 소식없던 그녀가 자살했다는 것을 일년여뒤 우연히 들었을때, 우습게도 내가 가장 먼저 취한 행동은 내가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해내려고 애쓴것이었다. 죽은 자에게 묻혀놓은 나의 기억이 (이미 죽은 자에게는 부질없는 짓이지만) 어떻게 남아있을지, 그리고 또 여전히 살아갈 나에게는 어떤 의미로 남아있을지를 의심스러워하고 걱정했던것 같다. 죽음이 갖는 진정한 두려움은, 그 사람을 '두번 다시' 만나거나 이야기 나눌수 없게끔 완전히 분리함에 있다. 죽음은 당사자에게 있어선 한 생의 끝이지만, 여러 인간관계의 관점에서 보면 이별의 가장 피할 수 없는 최종적 단계가 아닐까. 그래서 죽음을 인식하고 대응하는 자세는 곧 이별을 준비하는 단계이기도 하다.











조니 뎁, 앤 해서웨이, 헬레나 본햄 카터 등등 쟁쟁한 조연들 속에서 주인공 앨리스를 맡았던 팀 버튼 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미와 와시코브스카. 그리고 2010년 타계한 영화감독이자 배우 데니스 호퍼의 아들, 헨리 호퍼. 이 둘의 스무살 풋풋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장면들이 <굿 윌 헌팅>, <엘리펀트>와 같이 청소년기의 삶에 대한 고찰에 능한 거스 반 산트 감독의 카메라에 담겼다.

사실 이 영화의 감독이 거스 반 산트라는 것을 알았을때부터, 죽음을 다루는 영화라는 최소한의 정보만 가지고 있던, 나의 이 영화 <레스트리스>에 대한 예상는 완전히 빗나갈 것이 어쩌면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 거스 반 산트는 두 얼굴의 감독이다. 그는 초기작 91년 <아이다호>에서 리버 피닉스와 키아누 리브스 - 내가 영화 사상 역대 최고로 손꼽는 (그리고 두번 다시 재현될 수 없게된) - 듀오를 데려와 젊은 두 청년의 방향 잃은 방황을 그렸다. 그러더니 별안 히치콕의 <싸이코>를 98년 리메이크해서 혹평을 받는다. (골든 라즈베리는 그 해 최악의 감독상을 <고질라>와 <아마겟돈>을 제치고 그에게 수여했다)  그리고 03년, <엘리펀트>로 16분간의 총기난사 악몽으로 그는 다시 젊은 이들의 대책없는 폭력과 혼란이라는 주제로 되돌아가는 듯했다. 10대의 방황에 대한 테마는 07년 <파라노이드 파크>까지 이어진다. 이렇게 청소년기에 대한 냉정한 고찰에 차가운 시선을 가진 무뚝뚝한 거스 반 산트의 이미지가 내 머릿속에 자리하고 있지만 또 다른 그의 얼굴은, 바로 <굿 윌 헌팅>, <파인딩 포레스터>를 만든 거스 반 산트다. 천재적 능력의 청년 혹은 소년이 인생의 멘토, 스승을 만나 재능에 눈을 뜨는 감동적인 스토리를 그린 이 두 닮은꼴 영화는 그가 추구하는 방향과 다른, 새로운 얼굴처럼 보였지만 또한 그에게 정작 명성을 안긴 작품들임에 부정할 수도 없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이 두얼굴의 감독 거스 반 산트의 영화<레스트리스>를 보기전 나는 일종의 내기를 걸어야했다. 10대들로 보이는 두 어린 남녀배우가 포스터에서부터 자리한 이 영화에서 거스 반 산트는 늘 그래왔던 모습일까 아니면 새로운 것을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주인공 에녹(헨리 호퍼)은 죽음과 가까이에 사는 소년이다. 그에게 죽음이 당도해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주변에 늘 죽음이 있었고 그는 죽음의 주변을 맴돈다. 에녹은 모르는 사람의 장례식, 추모식에 몰래 참석하고, 부모의 죽음과 동시에 본인의 죽음을 잠시나마 경험하였으며, 무엇보다 일본인 카미카제 유령 히로시(카세 료)가 보이며 그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부모의 죽음 이후, 학교에서의 퇴학, 함께 사는 이모와의 갈등등 살아있는 삶은 분노와 무기력으로 차있던 이 죽음과 친숙한 소년은 죽음을 두려움의 대상이라기보다 호기심의 대상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과연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 마저 친숙해질 수 있을까. 장례식에서 만나 가까워진 애나벨(미와 와시코브스카)이 처음 죽음을 예고했을때, 에녹은 덤덤했다. 그는 병으로 죽어가는 애나벨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고, 애나벨 역시 에녹이라면 자신의 남은 시간을 그답게 보내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연인의 죽음앞에서 아무리 죽음에 익숙한 사람이라도 그것은 견디기 힘든 일이리라. 애나벨이 죽음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에녹은 그녀를 담담하게 떠나보내기 힘들다는 것을 알아간다. 

다윈을 존경하고 좋아하는 소녀 애나벨은 에녹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벌레라며, 미국산 송장벌레를 소개해준다. 먼 거리의 시체 냄새를 맡아 죽은 짐승 앞에서 수컷과 암컷이 만나 짝짓기를 하고 그 시체 위에 알을 낳아 새끼들을 위한 양분을 마련하는 벌레다. 심지어 자신들의 알을 보호하고 길러내는 이 벌레들의 순환은 다른 동물의 죽음 위에 세워진다. 마치 남의 장례식을 기웃거리던 에녹과 애나벨이 우연히 만난 것과 비슷한 이야기이다. 에녹은 죽음에 익숙하고 애나벨은 죽음을 두려워않지만 시간이 갈수록 애나벨의 이런 침착함이 오히려 에녹을 불안케한다. 하지만 애나벨은 매일 아침 살아있음에 행복을 느끼는 물새처럼 자신도 에녹을 만나 매일 아침 행복을 얻었다고 한다. 그러나 참을수 없을 지경에 이른 에녹은 마침내 자신을 두고 떠난 부모에게 느꼈던 감정을 애나벨에게 표출하고만다.







시한부 생을 살고 있는 여자와 그녀의 연인의 이별준비는 다소 진부한 소재라고 생각하기 쉽다. 게다가 죽음과 마주하기에 딱 보기에도 너무 어린 두 배우. 그러나 20대라기보다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청소년기의 10대에 더 가까이에 서있는 두 남녀의 모습이라지만 사별을 향해 달려가는 이 둘의 행보에 눈물은 거의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눈물없는 둘의 이별준비가 오히려 가슴을 더욱 자극한다. 깊은 밤에 혼자보는걸 추천받았기에 나는 이 영화를 새벽 3시쯤에 보았다. 과도하게 사용되지않는 잔잔한 음악들과, 따듯한 빛의 영상들이 전체적으로 차분한 영화를 잘 받쳐주고 있다. 카메라는 노을이나 석양의 따듯한 빛을 자주 잡는 모습이다.

에녹은 부모의 묘비를 부수면서 마지막 이별할 틈도 주지않고 떠나버린 부모를 원망한다. 부모의 죽음은 에녹에게 단순히 부모를 잃었다는 것 이상으로 삶에 악영향을 끼쳐놓았다. 하지만 살아있는 에녹에게 죽은자에 대한 예의를 주먹으로 가르치려한 히로시와의 다툼 등이 에녹을 더욱 성숙시키고 애나멜과의 이별을 준비시킨다. 따라서 감독이 밝혔듯이 이것을 가족의 죽음으로부터 상처받고 분노에 찬 소년이, 이번에는 가족 외의 사랑하는 사람을 또 다시 죽음으로 잃으면서 배우는 성장무비로 볼 수도 있다.







가깝게 지내는 동생 한명은 (그러고보니 예전에 '비겁한 남자' 포스팅에서 썼던 여자의 마음을 몰라보던 그 동생이다) 자신의 삶의 가치가 무엇으로 결정될까- 하는 화제를 가진 대화 자리에서, 자신이 죽은 뒤 자신의 장례식에서 사람들이 하는 말이나 평가라고 생각한다하였다. 나는 비웃었다. 죽은 다음 너에 대한 평가가 좋든 나쁘든 간에 저 세상에까지 네게 전달해줄 사람이 없지 않느냐면서 말이다. 본인이 결과를 알 수 없다면 스스로 삶의 가치를 판단하는 수단은 되지 못한다고 나는 반론했지만, 그 동생은 자신이 완전히 이 세상을 뜨고나서야말로 제대로된 평을 들을 수 있는 때가 아니냐면서 웃어넘겼다. 물론 이 영화<레스트리스>는 살아있을 때의 삶과 죽은 뒤의 그 평가를 말하는 영화는 아니다. 다만 이 영화를 보고 그 동생의 말이 생각난 까닭은, 애나벨이 자신의 장례식에서 에녹이 어떤 말을 하든지 관심이 있든 없든 죽음과 이별을 준비하는 어린 두 남녀의 마음가짐이 눈물짜는 신파극 대신 동화같이 깨끗하게 그려져있다는 점이다. 애나벨과 에녹은 그녀의 죽음 이후를 생각하기보단 당장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를 생각하고 실천한다.

감독 거스 반 산트는 마지막 씬, 에녹이 에나벨에게 보내는 마지막 인사를 우리들의 몫으로 남겨두었다. 그 대신 히로시가 가슴에 품고있던, 사랑했던 여인에게 끝내 전달되지 못한 그 편지의 내용을 알려주었다. 에녹의 마이크에 귀를 귀울인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듯, 그는 애나벨과의 추억을 혼자 회상하는 것으로 영화를 끝내지만 우리는 그의 입에서 나올 기억들이 눈물보단 행복으로 차있을거라고 확신할 수 있다. 다시는 만나지 못할 누군가를 추억함에 있어서 눈물보다 행복이 더 많다는 것이야말로 진정 세상을 뜬 이에게 선사할 수 있는 최고의 추모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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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12/09/04 17:10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09/06 15:34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2/09/04 17:40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09/06 15:36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복잡미묘 2012/09/05 09:14 # 답글

    이 영화 꼭 한번 봐야겠군요!
  • 레비 2012/09/06 15:36 #

    꼭 추천합니다 :) !! ㅎㅎ 생각해볼만한 것들이 많아요 :)
  • 언제나몽 2012/09/06 09:18 # 답글

    봐야겠네요ㅋ
  • 레비 2012/09/06 15:38 #

    ㅎㅎ 작년 개봉작인데 영화관에서 못본게 아쉽네요. ㅠ
  • FlakGear 2012/09/06 09:58 # 답글

    영화는 보지 않았지만 정말 읽어본 것중에 최고로 감성적인 찬사인것 였던 것 같아요.
  • 레비 2012/09/06 15:39 #

    앗 ㅎㅎ 그런가요? ㅎㅎ 새벽에 이런 잔잔한 영화를 보고나니 좋더라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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