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도 행운이, La chispa de la vida, 2011 Flims








어제 28일 화요일, 제6회 시네마디지털서울 영화제 CINDI의 폐막식에 마지막 하나 남은 좌석을 예매한 덕에 운좋게 현장에 있을 수 있었던 나는 태풍속으로 어딜 나가냐는 부모님의 말을 뒤로한채 압구정으로 향했다. 압구정CGV에서 일주일여간 진행된 영화제의 폐막식은 오후 7시부터 시작, 한시간여의 시상식과 폐막선언이 있었다. 영화제의 모든 영화는 커녕 아주 극히 일부분만 만나보았던 내가 심사평을 남기기란 언감생심이기 때문에 이 포스팅에서 상을 받은 작품들, 그리고 아쉽게 탈락한 작품들에 대한 언급은 할 수가 없다. 그런 유쾌한 분위기의, 서로 축하를 나누고 격려하고 다짐하는 분위기의 축제같은 폐막식에 좀 더 융화되지 못하고 열렬히 박수를 치지 못한게 아쉬울 뿐이다.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열리는 국내 영화제니만큼 내년에도 기회가 있다면 그때야말로 가능한 많은 영화들을 만나보고 폐막식 심사에 대한 짧은 생각을 남길 수 있게되길 바라는 수밖에. 저녁을 압구정 CGV에 붙어있는 맥도날드에서 해결하는 도중, 폐막식에 참석할 것으로 보이는 내 옆 테이블에 앉았던 한 남자의 말이 상을 받는 감독들의 표정과 겹쳐 떠올랐다. "영화제는 감독들의, 감독들을 위한 진짜 축제죠." 영화제 폐막 선언이 끝난 후, CINDI영화제의 폐막작이 올랐다. 폐막식 때 비어있던 객석들도 폐막작 시작즈음엔 거의 가득 찼다. 폐막작은 알렉스 드 라 이글레시아 감독의 <우연히도 행운이> 였다.








- 이하 영화 엔딩에 대한 스포일러 있습니다.




나는, 올해 초 영국 channel4 의 3부작 드라마, <블랙미러 Black Mirror>의 모든 에피소드를 인상깊게 본적이 있다. 그 중 특히 첫번째 에피소드였던 <The National Anthem>은 수간이라는 제재를 사용했다는 것부터 그 내용과 마지막까지 모두 충격적이었다. (http://pequod.egloos.com/2836840) 영국 수상이라는 한 공인, 그리고 그 공인이 처한 상황을 전 영국, 아니 전 세계가 그 개인적 비극에 대한 동정은 안중에도 없는채 관음적 본능으로 그 중계를 소위 '즐긴다'. 미디어의 폭력성과 타인의 불행에 대한 비인간적인 관음적 세태를 적나라하게 비판한 이 드라마의 잔상은 너무나 강렬했다.



알렉스 드 라 이글레시아 감독의 <우연히도 행운이>는 이 시종일관 미간에 주름을 잡은채 보게만드는 심각한 <블랙미러> 에피소드 1의 블랙코미디 버전이라고 조심스레 말할 수 있을것이다. 하지만 코미디라하여 그 주제가 갖는 무게가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드라마 <블랙미러>에서 미디어의 희생양이 되는 영국 수상은 그 사회적 위치와 공인이라는 이유로 전세계적 관심을 끌어모으지만 <우연히도 행운이>에서의 희생양 로베르토(호세 모타)는 정반대의 위치에 있다. 한때 잘나가던 광고회사 간부였지만 현재는 자식들의 학비도 대지 못하는 실직한 가장. 게다가 아름다운 아내 루이자(셀마 헤이엑)의 응원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처지에 하염없이 비관하는 그는 세상의 관심을 받을래야 받을 수도 없는 무기력하고 초라한 남자다. 평소 매일 뉴스에 모습을 비추던 영국 수상과 달리 이런 로베르토의 모습은 그가 사고를 당했을때 게걸스럽게 몰려드는 카메라들을 더욱더 탐욕적으로 만든다. 한 남자의 간절함을 외면하던 모든 사회의 권력들, 파워들은 그가 불행을 겪고나서야말로 주목하기 시작한다. 그의 입사를 거절했던 친구는 회사의 이미지를 위해 머리에 철근이 박힌 그를 즉석에서 재고용 하여 입막음 하려하고, 또 다른 대리인인 광고주는 그의 머리가 철근에서 빠져나오기전에 최대한의 광고효과를 내려고 긴급회의를 연다. 그를 가장 가까이에서 돌봐주던 경비원 역시 카메라 인터뷰에 얼굴이나 한번 더 내비치려 하고, 또 다른 경비원은 그를 근접 촬영한 영상을 방송국에 조금이라도 더 비싼 값에 팔아넘기려한다. 박물관 고고학자는 로베르토의 생사보다 유적지의 안전이 더 우선순위이고, 시장은 책임회피에 급급하다. 아무도 로베르토의 생사에는 관심이 없다. 아니, 관심은 있지만 걱정은 하지않는다. 그들에게는 머리에 철근이 박혀있는 남자의 상황이 흥미로울 뿐이지 그의 생명에 관심이 있는건 오직 아내 루이자뿐이다. 



실시간으로 죽어가는 남자에 대한 생방송 중계는 현대 미디어가 원하는 최고의 먹잇감이 된다. 환자의 안위는 관심도 없이 몰려드는 카메라들과 그를 향해 달려드는 기자들은 징그러울 정도다. 머리에 철근이 박혀 누워있는 로베르토에게 계약서를 들이밀며 음료 광고를 권하는 자나 그가 살아있고, 또 죽으면 어떤 가치가 있는지를 다급하게 계산하고 제안하는 광고주들은 역겹기까지하다. 세상이 흥미를 느끼는 것은 로베르토의 무사생환이 아니라 한 남자가 머리에 철근이 박힌채 누워있다는 그런 이례적인 현상 자체이다. <블랙 미러> 리뷰에서도 언급했듯이, 이제 우리는 관음증의 시대에 살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일상적인 사건, 평화로운 일상은 더이상 흥밋거리가 되지 못한다. 세상은 타인의 불행에 열광적으로 반응한다. 자살을 하고, 사람을 죽이고, 혹은 어떤 테러활동들이 그대로 담긴 영상은 그것이 실제적으론 비극적인 일이라는 것을 잘 알지만 그 영상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퍼져나가는지 우리는 익히 알고있다. 보기싫은 장면이라고 해서 정말 보지않을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 나에게 닥친 일만 아니라면, 타인의 불행은 얼마든지 흥미로운 구경거리가 된다. 기자들은 시청률을 위해 로베르토의 인터뷰를 따내려고 안달하고 있고 그런 그들에게 로베르토는 그저 바닥에 누워있는 특종거리에 불과하다. 그래서 로베르토의 긴 밤이 끝나고 아침이 되었을때, 그의 죽음을 접하고 슬퍼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되려 놀라울 정도다. <블랙 미러>에서 그토록 수상의 행보에 흥미로워하며 TV앞에 몰려들던 사람들이 막상 정말 그 장면을 접했을때, 인상을 쓰며 고개를 돌려버리는 장면과 흡사하다. 비인간적인 흥미를, 인간적인 연민이 드디어 억누르는 순간은 그제서야 찾아온다. 자신들의 좋은 먹잇감이었던 한 남자가 비로소 죽고나서야 세상은 자신들의 무슨짓을 했던가 하는 반성의 시간을 갖는다. 끝까지 뉘우치지 못하는 캐릭터들도 있긴하지만.








그러나 미디어에 대한 비평만으로 이 영화에 대한 감상을 끝내버리기엔, 내가 이 영화 말미에 옆사람 몰래 영화관에서 흘렸던 눈물이 아깝다. 이것은 하나의 멋진 블랙코미디이지만 또 한편으로 감동적인 드라마가 아닐 수 없다. 어이 없는 상황에서, 웃어선 안될것같은 상황에서도 관객의 폭소를 자아내고, 그래서 실없이 짓는 미소가 젊은날의 알파치노를 떠올리게 만드는 로베르토는 터무니없이 비관적인 캐릭터이지만 죽음에 다가가면서 오히려 점점 안정적이 되고 평온을 찾는 모습이다. 머리에 철근이 박힌 상태에서도 로베르토는 광고주를 찾는 어이없는 모습을 보이지만 후반 가족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아내가 그를 위로하기 위해 만든 거짓 인터뷰앞에서 그는 자신의 생사보다 가족들을 소개하기에 바쁘다. 그가 그토록 치열하게 돈을 갈구하는 모습이 생각해보면 자신을 위한것이라기보다 오직 가족들을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나는 그를 비난할수가 없었다. 얼핏보면 로베르토는 너무나 미련해보이고, 루이자에 대해 너무나 무책임한 남편으로 보이지만 로베르토 역시 가족을 끝까지 생각하던 한 가장이었던 것이다. 그는 눈물을 쥐어짜내듯이 아들과 딸들에게 유언하는 모습은 보이지않으며, 오히려 장난스럽게 자녀들과 말을 나누고 끝까지 자신은 괜찮다며 가족들을 달랜다. 한편 남편을 위해 거짓 인터뷰까지 부탁하는 루이자의 헌신은 눈물겹다. 아내로서, 여자로서의 슬픔을 이해해주고 카메라를 내리게만든 한 여기자를 찾아가 남편의 마지막 모습이 담길지도 모를 가짜 인터뷰를 부탁하는 그녀의 간청은 애절하다. 하비에르 바르뎀을 닮은 의사에게 루이자는 남편이 얼마나 더 살수있는지 진실을 말해달라고 소리친다. 남편을 안심시키면서도, 그 유적지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 중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이 혼자 싸우던 루이자는 의사에게만큼은 진실을 듣고 싶어한다. 그 장면에서 아주 인상적인 대사가 기억에 오래 남는데, 루이자는 남편이 이렇게 된 이유에 대해 자신의 막연한 긍정과 낙관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다 잘될거야라는 기대섞인 말이 오히려 구직에 실패한 남편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고 사고를 당하게 만들었다는 자책은, 루이자의 캐릭터가 얼마나 깊은지를 느끼게해주며 동시에 그녀를 더욱 슬프게 만든다.



아내 루이자 캐릭터를 처음 봤을때 나는 얼핏 페넬로페 크루즈를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영화 <밴디다스>에서 페넬로페와 함께 멋진 콤비를 이루던 셀마 헤이엑이었다. <프리다>에서 주인공 프리다 칼로를 연기했고, 내가 좋아했던 베리 소넨필드 감독의 코미디 서부극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의 히로인이기도 했던 셀마 헤이엑의 연기는 루이자라는 캐릭터를, 한 가정의 따듯한 어머니이자, 불운한 남자의 지혜로운 아내, 그리고 탐욕적이고 광기의 카메라들에 둘러쌓인채 홀로 외로이 맞서는 한 강인한 여성으로 너무나 아름답게 끌어올려놓았다. 남편을 끝까지 지지하고 포기하지 않으며 그의 편으로 남고자하는 이 사랑스럽고 연약해보이는 여자가 무력해지고 나약해질까봐 관객들은 영화가 진행될수록, 판단력을 잃어가는 로베르토를 응원하기보단 루이자를 응원할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리하여 그들의 길고 긴 밤이 끝나고 새벽해가 떠오를 무렵, 남편과 신혼여행을 함께 했던 그 장소에서 남편을 잃은 한 여자는 그 장소에 있던 그 누구보다도 강해져있다.



<우연히도 행운이>는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을 떠올리게 하는 역설적 제목이다. 로베르토는 자신이 당한 사고를, 자신과 가족의 불행한 상황을 반전시킬수 있는 좋은 돈벌이이자 기회로 생각한다. 자신이 당장 몇시간 내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눈앞이 아니다. 알렉스 이글레시아 감독의 영화를 찾아보니 국내 개봉작도 일부 있었다. 하지만 2011년 작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 <우연히도 행운이>는 이번이 첫 국내상영인것 같았다. 90분짜리 필름이지만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를만큼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영화제에서가 아니라 후일 국내 정식개봉하게된다면 꼭 다시 영화관에서 만나고 싶은 영화다.








- YouTube에서 찾은 영화 트레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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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쓰고다서 다시 읽어보니 셀마 헤이엑 역의 아내 루이자 캐릭터에 대한 예찬으로 가버린것 같은데, 실제로 영화를 보면 적어도 나같은 남자 관객들은 루이자 캐릭터에 반할 수 밖에 없지 싶다고 변명해본다. 영화속 알콩달콩한 20대 연인들의 모습에는 무감각해지는대신, 서로 믿고 의지하는 중년 부부의 모습을 보고 더 가슴떨리는 나이가 되었는지, 저렇게 현명하고 내면깊은 여자와 함께한 로베르토의 생은 절대 실패한 남자가 아니라 오히려 부러운 남자가 아닐런지. 









덧글

  • 2012/08/29 22:3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08/30 00:11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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