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리 슈슈의 모든 것, リリィ シュシュのすべて, All About Lily Chou Chou, 2001 Flims












10대 사춘기 청소년들의 방황을 그린 영화들은 보통 유치하다는 편견을 갖기 쉽다. 소위 인터넷 유행어가 된 중2병이라는 병명은 그런 사춘기적 자의식과 행동들 때문에 이름 붙여진 신조어일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에 등장하는 소년 소녀들은 이제 불과 14살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어른들이 보기에, 이미 한참전에 그런 시절을 지나온 사람들이 보기에도 전혀 유치하지 않을만큼 자뭇 심각하고 진지하다. 이와이 슌지 감독의 전작 <스왈로우 테일 버터플라이>에서도 음악을 담당했던 고바야시 타케시는 이 영화에서도 가상의 가수 '릴리 슈슈'의 음악을 대신 작곡하고, 시골 마을의 아름다운 풍경들, 몸에 맞지않는 불편한 교복을 입은 듯한 10대 소년 소녀들의 학교생활 모습들은 한편의 예술영화를 보고 있는듯한 느낌을 준다. 중간중간에 끊임없이 삽입되는 인터넷 상의(릴리 슈슈의 팬카페상의) 메시지들이나 채팅 내용들은 아날로그적 영상 가득한 이 영화에 디지털적 감성도 불어넣는다. 영화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이다.










나는 영화를 보다 멀미해본 경험이 있다. 귀 속의 반고리관에 무리가 가는 환경에서 영화를 봐서가 아니라, 영화의 영상들, 분위기와 내러티브가 내게 어지러움과 구토감을 주었던 경우이다. 바로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을 처음 봤을때, 나는 이런 신기한 경험을 했다. 그리고는 두번 다시 보지않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용기를 내어 두번째 봤을땐 어지럽진 않았지만 영화가 주는 막연한 무거움과 슬픔, 그리고 쓸쓸함에 침잠되어버리고 말았다. 세번째 봤을때서야 비로소 영화속 10대들, 캐릭터들의 슬픔이 내게 전해져왔다. 이와이 슌지를 떠올리면 아무래도 <러브 레터>의 잔상이 큰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한때 일본 멜로 영화 신드롬을 몰고오기도 했던 그 영화는 <4월 이야기>, <하나와 앨리스>, <하프웨이> 로 이어지는 이와이 슌지표 풋풋한 러브스토리 라인의 상징과도 같았다. 하지만 <언두>로 그의 영화를 처음 접하고 <스왈로우 테일 버터플라이>를 인상깊게 본 내겐 <릴리 슈슈의 모든 것> 또한 응당 자연스러웠다. 이 영화에는 10대들의 방황, 이지메, 폭력, 강간, 원조교제, 자살 들이 적나라하게 담겨있다. 하지만 무턱대고 시각적 불편함을 유발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는 아닌 것은 그 안의 주인공들, 14살 소년 소녀들은 모두 외롭고 슬픈 고독한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주인공 하스미 유이치(이치하라 하야토)는 다소 소심하고 평범한 중학생 소년이다. 반면 그의 친구 호시노 슈스케(오시나리 슈고)는 유복한 집안에서 따듯한 사랑을 받으며 자란 모범생이었다. 호시노에 대한 유이치의 첫 감정은 동경에 가까웠을 것이다. 호시노의 집에 초대받아 갔던 날, 그는 호시노로부터 릴리슈슈의 음악을 전해 듣는다. 반면 호시노에게 역시 초등학교때의 첫사랑 쿠노 요코(이토 아유미)에게서 였다. 검도부 활동도 같이하며 친해진 유이치와 호시노는 여름방학, 친구들과 돈을 훔쳐 오키나와로 여행을 간다. 하지만 여행은 그들의 모든것을 바꾸어놓았다. 죽음을 직간접으로 체험했으며 돈에 무감각해졌다. 집안 사정이 급격히 안좋아진 호시노는 그떄부터 변해가기 시작했고 그의 변화는 유이치에게 제일 먼저 파장을 끼쳤다. 

영화에서 가장 입체적인 캐릭터는 단연 호시노이다. 물론 그의 모범생적 행실과 선서를 하고 입학했다는 주위의 시선들은 그를 주위가 기대하는 모습으로 억압해두기 충분했다. 하지만 오키나와 여행에서 그는 두번씩이나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돌아오고 정작 다른 여행객의 죽음을 가까이에서 목도하는 것으로 삶과 죽음의 그 얇팍한 경계를 간접 체험한다. 남은 돈을 바다에 흩뿌리는 그의 행동은 가세가 기울던 호시노의 흔들리던 심리와 맞물려 다음학기, 돌변한 그의 모습을 품는 암시가 된다. 유이치의 가장 가까운 친구에서 순식간의 주변인들에게 그야말로 악의 중심이 되어버린 호시노의 변화는 영화를 보는 사람마저 당황케만들 정도다. 10대의 방황과 급변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캐릭터는 바로 호시노다. 








반면 호시노의 변화에 비해 유이치는 여전히 무력하다. 츠다(아오이 유우)가 호시노에게 약점을 잡히고 원조교제로 돈을 벌어오지만 그런 츠다에게 연민을 느끼는건 유이치가 할 수있는 일의 한계일 뿐이다. 고작해야 같은 반의 츠다를 좋아하는 남자와 츠다가 잘 되어 그녀가 호시노로부터 벗어나길 바래주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츠다는 호시노로부터 통제받고 구속당한 자기만큼 같은 처지의 유이치에게 되려 측은과 동질감을 느껴 계속 유이치의 곁에 있으려한다. 둘 다 호시노로부터 벗어날 생각은 하지 못하지만 그런 같은 처지라는 심리가 둘을 오히려 가깝게 붙여놓는다. 여기서 릴리슈슈의 음악은 또 한번 유이치를 거쳐 츠다에게 전해진다. 유이치의 마지막 변화는 기어코 츠다가 자살을 하고 난뒤, 어쩌면 그때부터 꿈틀댔던것일지도 모른다.

영화에 직접적으로 설명되는 것은 아니지만, '릴리 슈슈'라는 이 가상의 여가수의 이름은 작곡가 클로드 드뷔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리고 영화속 쿠노가 매일 학교 피아노실에서 연주하는 곡은 드뷔시의 아라베스크다. 또한 릴리슈슈라는 가수 역시 드뷔시의 영향을 받은 음악을 한다는 설정을 갖고 있다. 드뷔시의 전 부인의 또 다른 이름이었던 릴리 텍시르와 드뷔시가 릴리를 버리고 새로운 여자 사이에서 낳은 딸의 애칭, 슈슈. 이와이 슌지는 릴리 슈슈의 이름을 이 둘에서 따온 것이라고 나는 거의 확신하고 있다. 왜냐하면 영화속 릴리슈슈의 음악중에는 '아라베스크'라는 곡이 있다. 그리고 릴리슈슈의 음악은 영화가 전개되면서(시간적 순서에 따라) 쿠노에게서 호시노로, 호시노에서 유이치로, 그리고 유이치에게서 츠다에게로 전파된다. 이 영화의 이 네명의 주인공들은 모두 릴리 슈슈의 음악을 서로에게서 소개받고 좋아하게 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강간당하고 주종관계에 놓이더라도 이들은 각자 릴리 슈슈의 음악을 듣는다.







영화 후반, 호시노의 빗나감은 쿠노에게까지 이른다. 첫사랑이자 단짝이었던 그녀에게 그는 집단 강간과 그 장면을 캠코더로 찍는 등 츠다에게 했던것 처럼 쿠노에게도 자행한다. 유이치는 여전히 무력하고 쿠노를 구해줄 사람은 없었지만 학급에서 피아노를 치던 쿠노는 호시노의 요구대로 행동하는것 대신 다음날 삭발을 한채 학교에 온다. 쿠노는 그렇게 츠다와 달리 호시노에게 저항한다. 그리고 쿠노는 릴리 슈슈의 아라베스크를 듣는 대신 드뷔시의 아라베스크를 여전히 계속 연주한다. 호시노에게 원조교제를 강요당하고 그의 뜻대로 움직이게된 츠다와 유이치와 달리 강한 정신력의 쿠노는 릴리 슈슈의 음악으로부터 벗어나 원곡인 드뷔시를 계속 연주하는 것이다. 릴리 슈슈의 음악은 이렇게 '원곡' 드뷔시가 아닌, 10대들이 광적으로 빠져드는 '파생' 즉, 빗나감과 unoriginal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실제 드뷔시 인생의 가장 큰 오점으로 남은 스캔들의 여자 이름 엠마가 아닌, 전처와 그의 새로운 딸의 이름을 붙여놓은게 아닐런지. 드뷔시 같지만 드뷔시가 아닌 음악으로서 말이다. 눈앞의 것이 모두 진짜라고 믿지만 돌이켜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던 10대 시절 방황들이 그렇듯이.







영화속 가상의 가수, 릴리슈슈의 존재는 이들 모두의 공통 분모이다. 모두는 같은 음악을 듣고 같은 마음의 치유를 받고자하지만 현실의 그들은 너무나도 달랐다. 누군가는 강자가 되어 남에게 상처주고 지배하려하고 누군가는 약자가 되어 굴복하고 고통받는다. 릴리슈슈의 인터넷 속 팬클럽 '릴리피리아'는 그런 그들의 가상의 안식처였다. 친구를 잃고, 괴롭힘당하고, 사랑하는 여자가 당하는 모습을 손놓고 지켜볼 수 밖에 없어도 유이치가 참을 수 있었던 이유는 릴리피리아의 운영자인 닉네임 '피리아'가 그였기 때문이었다. 릴리슈슈의 음악으로 현실의 자신을 치유하던 유이치는 그 속에서 '아오네코(푸른 고양이)'라는 사람에게서 정신적 의지와 위로를 받게 된다. 하지만 릴리슈슈의 콘서트장에서 만난 아오네코가 호시노였다는 것을 알게 된 유이치의 '모든 것'은 무너지게된다. 릴리슈슈의 세계와 음악이 뒤틀릴대로 뒤틀린 현실로부터의 어떤 도피, 혹은 마음의 마지막 안식처였던 유이치에게, 정신적 교감을 나누던 아오네코가 실제로 만나보니 바로 호시노였다는 것은 그간 모든것을 참아온 그에게 마지막 넘치고만 물 한방울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유이치는 호시노를 칼로 찌른다.









물론 지나치게 극단적인 모습들을 마치 모든 10대들의 성장통처럼 표현해 놓은것은 다소 지나치다는 평도 있다. 이와이 슌지 감독은 이 영화에 대단한 애정을 숨김없이 드러냈지만 오히려 그만큼 절제되고 잔잔한 러브스토리로 이미지를 굳힌 감독의 억제된 감성이 과잉 함유된 영화가 되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영화가 그저 어른들이 보기엔 눈살찌푸려질 중2병 영화, 같은 10대들이 보기에도 극단적인 영화만이 될 수 없는 이유는 그런 모습들이 외면하기엔 너무 처참하고 외롭기 때문이다. 나는 10대시절 소위 말하는 왕따를 당해본적도, 해본적도 없지만 목도한적은 있었다. 나한테 일어난 일이 아니야,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야라고 생각하고 한발 물러서더라도 그것이 마음속 어딘가에 불편함을 주었던 것은 그것이 그 당시 나와 같은 공간에 있고 같은 생각을 하는 같은 세대들의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그 행위들이 나와는 관계 없어보이더라도 그런 모습들으로부터 완전히 고개를 돌릴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다. 충분히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고, 바다 건너 먼 다른 세계의 일처럼 보일수도 있다. 하지만 꼭 10대 시절로 회상해 들어가보지 않더라도, 우리는 힘든 현실로부터 도피해 음악이나 가상의 세계에서 위로를 갈망했던 적이 있고, 누구나 그 방황의 시기에 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급변하는 자신의 마음에 당황했던 적이 있다. 츠다처럼 현실로부터 도망치고 싶기도 했고, 쿠노처럼 정면으로 맞서보려고도 했던 시기. 우리는 그 무렵, 누군가의 호시노였을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유이치이었을 수도 있다. 영화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은 사실 릴리 슈슈의 것이 아니라 그 소년, 소녀들의 모든 것이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 영화는 시선을 피하고 싶지만 끝내 고개까지는 돌리지 못하게 하는 마력이 있다. 우리 모두 그런 시기를 겪었던 적이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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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muhwa0 2012/08/21 23:16 # 답글

    예전에 본 영화를 잘 정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전 게시물에서 릴리슈슈가 나와 더 좋네요.
  • 레비 2012/08/22 23:11 #

    감사합니다 :) 이 영화는 언젠간 써야겠다 맘먹고있었을뿐인데 마침 전날 밤 드뷔시 이야기를 하면서 다시 떠오르길래 붙여 포스팅하려고 했어요 ㅎㅎ
  • petal ♧ 2012/08/22 09:31 # 답글

    전 처음 이 영화를 보고 말씀하셨던것같은 멀미, 를 느꼈어요. 게다가 영화의 음악이 꽤나 오랫동안 머리속을 떠나질 않았고. 멀미감은 계속됐고. 그렇게 영화를 봉인했는데, 그래도 음악은 계속 계속 생각이 나니까 겁먹은채로도(왠지는 몰라도) 자꾸 찾아듣게되더라고요.
    영화를 이쯤에서는, 이제 다시 보아도 될것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 레비 2012/08/22 23:12 #

    저도 이 영화 첨보고 그런 멀미를 했답니다 ㅠ 영화 음악은 참 좋죠 ㅎㅎ 하지만 저도 어지러워서 한동안 이 영화를 다시 볼 생각을 못했어요. 나중엔 호기심에서라도 두번, 세번 보게되었지만요 ㅎㅎ

    아직 한번만보시고 음악만 듣는 중이시라면, 이번 기회에 한번 재도전해보세요 :D
  • 2012/08/22 23:1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08/22 23:22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피스 2012/09/14 10:30 # 삭제 답글

    정리된 글 잘 읽었어요, 고맙습니다!
    중학생 때부터 봐야지 봐야지 했는데 드디어 어젯밤에 처음 보게 됐어요
    근데 너무 어려워서 잘 이해 못했는데 많은 부분이 이해됐답니다 ^.^(유이치가 필리아라는 것!)
    뭐랄까......... 일그러진 청춘, 이란 생각이 드네요. 어딘가에 있을 법 하면서도 영화 속 이야기 같기도 하고... 한 번 더 제대로 보고싶네요!
    전 특히 오키나와 여행이 제일 인상깊었어요. 핸드캠으로 보여주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걸까요?
  • 레비 2012/09/16 18:45 #

    사실 저도 한번봐서는 많은 부분 놓치고 헷갈렸던 그런 영화였습니다 ^^; 여러번을 보고나서야 겨우겨우 조금 알수 있었을 정도예요 ㅎㅎ 게다가 약간은 우리나라보다는 일본 청소년들에게 더 공감갈 상황들이라 몰입이 쉽지도 않았고요 ㅠ

    특이하게도 오키나와 여행에서만 이 영화는 핸디캠으로 찍었어요. 아니 적어도 현장감에 아주 유리한 핸디캠 기법을 사용했는데, 하필 그 여행에서만 그렇게 함으로서 영화 전체적으로 봐도 그 부분의 화면만 유독 튀게되고 마치 '다른 영화'처럼 기억되죠 ㅎㅎ 제 생각으로는 그 '툭 튀어나온 듯한' 여행 부분이 영화내에서 전후반을 가를수 있을만큼 큰 변화들이 그 여행을 전후로 일어나고 모든 상황들이 전환되는 계기이기 때문에 영화가 하던대로 찍지않고 그렇게 찍었던게 아닌가 싶네요 :) 강조의 의미로 쓰였을수도 있고, 그들이 늘 있던 장소가 아닌 '여행지'라는 일탈과 같은 의미로 영화에 삽입된 외전처럼 부각시키고 싶었을지도 모르겠어요 :D
  • 류지 2012/11/29 02:13 # 삭제 답글

    스탕달 증후군...
    솔찬히 글을 잘 쓰시네요^^
    잘 읽고 갑니다.
  • 레비 2012/11/30 01:02 #

    칭찬 감사합니다 ^_^ 스탕달 증후군이라니.. 과찬이세요 ! ㅎ
  • :) 2013/07/07 04:09 # 삭제 답글

    정말 좋은 포스팅이에요!
    특히 중간 부분의 unoriginal 부분이 인상깊어요
    드뷔시의 아내와 딸 이름이 릴리와 슈슈인지는 몰랐던 시실에요. 릴리슈슈가 엇나감으로 작용한다는 게 정말 맘에 들어요 :-)))
    본 지 몇년이 지났는데도 참 좋은 영화..
    잘 보고 갑니다!
  • 레비 2013/07/07 20:54 #

    감사합니다 :) 작년 이맘때 쓴 글인데 덧글이 달렸대서 놀랐네요 ㅎㅎ
    앞선 포스팅 읽어보시면 '릴리 슈슈'라는 이름에 얽힌 부연설명을 보실수 있으실거에요 ㅎㅎ 아라베스크는 아니지만 clair de lune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곡입니다 :) (http://pequod.egloos.com/2886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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