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베가스를 떠나며, Leaving Las Vegas , 1995 Flims











있는 그대로를 사랑한다는 말. 그것은 우리가 사랑을 하면서 한번쯤은 의미도 모른채 내뱉을 만큼 자주 쓰이는 구문 중 하나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내가 사랑에 빠진 상대는 그야말로 사랑스럽기 그지없어서 사실 얼핏보면 나는 있는 그대로 연인을 사랑하는 것처럼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 사람 자체를 사랑하는 것보다 어려운 것은 많지 않을 정도로 누군가를 순수하게 온건히 사랑하기란 쉽지 않다. 나는 과거의 한 연인에게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들었지만 그 말의 무게를 미처 알지도 못한채 가벼이 약속하고말았던 적이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녀에게 있는 내게 마음에 들지않는 것들, 행동들, 버릇들을 나는 싫어했고 또 적잖게 언급함으로서 그녀가 '내 마음에 좀 더 드는' 사람이 되어주길 '바랬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그녀가 언젠가 또 말한적이 있었다. 있는 그대로 사랑하진 못하는구나라고. 그 순간조차도 나는 멍청히 그 의미를 알지 못했고 내가 그녀를 여전히 있는그대로 사랑하는줄 알았다. 나는 그녀의 단점들까지 사랑했던것이 아님을 알게된것은 헤어지고도 한참이 지나서였다. 그래서 이제 나는 섣불리 사람을 있는 그대로 좋아한다는 것이 얼마나 가벼이 할 말이 아니며 또한 그럴 자신조차 남아있을지 확신이 없어졌다. 상대방의 단점까지도 사랑한다는 것, 그것만큼 이상적인 것이 또 어딨을까. 흔한 연인간의 다툼도 불필요해질 것이고, 차이를 다름으로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그 사랑은 얼마든지 서로 달라도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흔히 처음 사랑에 빠지면 그 사랑에 눈이 멀어 상대의 단점까지도 사랑할 수 있을것처럼 느끼고 실제로 그렇게 할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서서히 연인에 대한 불평, 불만이 마음속에 조금씩 쌓아지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그것을 단지 '참을 수 있고 차차 적응해나갈 뿐'이다. 사람을 온건히 그 자체로 좋아하는 것은 불가능하진 않아도 분명 그토록 어려운 일일 것이다.









아내와 자식을 떠나보낸채 직장도 잃고 남은 것은 몸뚱이와 목숨뿐인 알콜중독자와 하루하루 밤거리를 전전하며 몸을 팔아 돈을 버는 창녀의 사랑은 어쩌면 더 잃을 것이 없기에 가능했던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서로 내일을 장담하기 힘든 바닥의 바닥까지 내려온 두 사람은 오히려 그런 조건속에서 서로 가진것이 없기에 있는 그대로를 사랑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영화는 이런 암담한 두 캐릭터를 만나게 함으로서, 서로 배려할 여유조차 없어보이는, 단점을 '못본척'하기에 필사적인 이 두 연인을 데려와 여유롭고 행복한 사랑이 아닌 절박하고 위태한 사랑의 모습 안에서 오히려 가장 순수한 감정을 드러내고 부각시켜준다. 벼랑끝에서 위태한 사랑을 즐기는 두 남녀도 아니고, 시한부적 사랑에 불타오르는 정열적인 사랑의 모습도 아닌채 둘은 상황에 어울리지않게 그 순간 순간만이라도 행복함을 얻고자하는 소박한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이들의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의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기 위해 어떠한 요구나 강요를 하지 않는 점이다. 서로 단점을 지적하려면 끝도 없을 이들은 오히려 그런 부정적 감정소모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상대의 밝은면만을 보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애쓰는 모습이 오히려 이 영화를 더욱 애잔하게 만들고 마치 눈가리고 아웅식의 사랑처럼 보이더라도 둘의 처절한 노력은 이 만남을 더 아름답게 만든다. 마이크 피기스의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는 짧고 아쉽지만 순간 불타오른 시한부 사랑을 말하는 흔하디 흔한 영화들 중 하나같지만, 그 내면에서는 사람이 상대방의 모든것을 사랑한다는 것이란 어떤것일지 생각해보게 만든다.










실없는 입꼬리 웃음과 기운빠지게 쳐진 눈꼬리의 니콜라스 케이지는 어쩌면 그 당대 '알콜 중독자가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 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 유명한 코폴라 가문의 성을 버리고 만화캐릭터를 따서 '케이지'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그의 광팬이었던 나는 지금은 이렇게 B급 영화들속으로 숨어버린 그를 추억하며 이 영화를 본다. <8mm>, <비상근무>, <시티 오브 엔젤>, <패밀리 맨> 등을 보고 나는 그를 알파치노, 더스틴 호프만 못지않는 메소드 배우라고 생각하지만 요즘의 헐리우드는 메소드 배우들에게 설자리를 점점 주지않는 듯해서 더 아쉽다. 지금의 니콜라스 케이지는 그 무렵을 전후로 오히려 <더 록>, <식스티 세컨즈>, <페이스 오프>, <콘 에어> 에서부터 다져진 '액션 배우'의 이미지가 더 강하다. 그렇게 블록버스터 액션배우라는 (내가 보기엔) 어울리지않는 수식어를 달면서부터 그의 필모그래피가 꼬이기 시작했다고 생각하면 억측일까. <고스트 라이더>를 기점으로 자꾸 본인의 연기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영화와 캐스팅에 뛰어드는 것같아서 참 아쉽다. 그의 영화 고르는 눈을 의심하게 된 것,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들 리스트에 그의 이름을 빼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부터다. 이런 과거의 '케서방' 팬인 내게 이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는 누가 뭐래도 다작배우인 그의 인생의 최고의 영화가 아닌가 싶다. 이 영화는 96년, 미국 아카데미 남우주연상과 골든 글로브 남우주연상을 비롯한 그 해 거의 모든 미국내 영화제의 남우주연상을 그에게 선사했다. 










영화 작가였던 벤(니콜라스 케이지)은 그의 알콜중독증세로 인해 영화사에서도 실직하고 가족들도 잃은채 라스베가스에서 인생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퇴직금을 챙기고 모든 재산을 정리한채 그는 유언장 대신 술병을 들고 환락의 도시에서 죽기직전까지 마시다 죽기를 원한다. 말 그대로 그는 더이상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는 상태이다. 그의 알콜중독을 뭐라할 사람도, 마시지못하게 할 사람도 그에겐 필요없었다. 라스베가스 밤거리에서 매춘업을 하던 세라(엘리자베스 슈)는 포주에게 돈을 받으며 사는 자신의 처지를 가엽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오히려 프로에 가까웠다. 몸을 팔고 돈을 받는것이 지극히 자연스럽던 그녀에게, 댓가는 지불하여 밤을 함께 보내되 섹스보다 그저 '같이 있어달라'는 벤의 제안은 오히려 그녀의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벤의 공허한 마음은 성욕 때문이 아니라 지독한 외로움에 기인했던 것이다. 결국 포주로부터 자유로워진 세라와 죽을날만을 기다리며 하루하루 돈을 쓰며 보내던 벤은 함께 하기로한다. 벤은 세라에게서 사랑을 느끼고 세라 역시 자신을 창녀가 아닌 연인으로 생각해주는 벤에게 매력을 느낀다. 하지만 이 둘 사이에는 중요한 룰이 놓인다. 바로 서로에 대한 간섭을 하지 않을 것. 세라는 벤에게 술을 그만 마시라는 말을 해서는 안되고, 벤 역시 매춘업을 밤마다 계속할 세라에게 불만을 표해서도 안된다. 언뜻 이 둘의 이런 사랑은 성공하는듯 보인다. 전형적인 알콜중독자의 증상을 보이며 함께있던 벤이 망가지고 무너질때마다, 세라의 표정에서 술을 그만마시라는 대사가 나올만한 그 찰라에 그녀는 눈동자에 눈물을 그렁그렁 맺히는 것으로 대신하고 말을 삼킨다. 술에 취해 쓰러져있는 그를 챙길때도, 좋은 분위기의 데이트에서 그의 금단현상에 모든것을 망칠때에도 그녀는 그를 눈물 가득 고인 눈으로 바라보기만 할 뿐, 그녀의 입은 절대 그를 나무라지않는다. 반대로 세라가 속옷을 챙겨입고 밤에 집을 나설때마다 벤 역시 그런 그녀를 시선으로 쫒을뿐, 한번도 가지말라는 말을 하지 못한다. 









물론 이 둘의 이런 이상적인 모습은 오래가지 못한다. 벤은 그녀에게 상처를 주고, 그녀 역시 마침내 병원을 가보라는 말을 그에게 꺼내고야 만다. 그렇게 둘은 멀어지고 결국 벤의 마지막을 가까스로 세라가 지켜주는 것으로 영화는 끝이난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순간들은 바로 이 둘이 함께했던 장면들이다. 사랑은 간섭을 원치않지만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은 불가피하다. 그리고 그 영향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것은 상대에게 간섭이 되고만다. 벤과 세라가 서로에게 하고 싶은말을 끝끝내 삼키는 모습들은 내게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그와 동시에 과거 한 여자가 불평불만을 잔소리하던 내게 했던, 있는 그대로 자신을 사랑해줄순 없겠냐는 말의 의미를 뒤늦게서야 알 수 있었다. 물론 말을 하지 않고, 꾹꾹 참으며 밝은면만을 받아들이는 연애가 서로 교감이 많은 연애보다 더 오래갈수는 있을지 몰라도 그것이 더 바람직하다고는 전혀 생각치않는다. 나는 사랑하는 연인들간의 싸움은 피할 수 없다고 보는 사람이다. 하지만 정말 허구한날 싸울 수 밖에 없는 사람이라면 그 전에 연인이 될 필요가 없었지않았을까 라는 생각에 미치게 되고, 그렇게된다면 그 연애는 사실상 끝난거나 다름없다고 본다. 그래서 적어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둘 사이의 싸움은 근본적 사랑의 감정조차 흔들리게 할순 없는 한도내에서의 다툼이다. 그 한도를 넘을 바에야 진작에 헤어졌을 사이니까. 이렇게 연인간의 상호간섭은 피할 수 없지만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의 벤과 세라는 아예 그것을 배제하려 했었다. 그리고 일순간이나마 내게 간섭을 최대한 배제한 사랑이 보여줄 수 있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존 오브라이언의 자전적 소설을 원작 텍스트로 삼고 제작된 영화지만 정작 그는 영화 개봉전 자살했다고 한다. 이와 같이 이 영화는 태생적 우울함을 띄고 있다. 라스베가스의 화려한 네온사인과 카지노, 바, 허름한 모텔들이 배경이 되는 이 영화의 색채는 전반적으로 어둡고 짙다. 게다가 이 영화의 분위기에 큰 몫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감미롭운 재즈 음악들이다. 그중에는 가수 스팅Sting의 세곡도 포함되어있다. 밝은 빛보다 어둠을 더 많이 잡은 카메라는 벤과 세라의 가끔씩 보이는 행복한 씬들을 더욱 부각시킨다.


영화를 보고나서 무언가 깨달음을 얻는다면 그 영화를 보고 즐겼던 시간 그 이상의 것을 보답받은 기분이 든다. 이 영화를 보고나서 나는 왜 좀 더 일찍 보지 못했을까를 아쉬워해야했다. 그간 연애하면서 내게 맞지않는다고 생각한 것을 거리낌없이 내뱉고 말꺼내는 내가 신중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기만해서도 오래가지 못했겠지만 그런 단점들 또한 내가 사랑하는 여자의 일부라는 것을 왜 인식하지 못했던지. 영화의 중간중간 세라의 인터뷰와 같은 독백이 등장하는데, 특히나 그녀의 마지막 대사는 심금을 울린다. 이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가 생각하게해준 누군가를 그 사람 자체로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는 이후의 내 연애관에도 많은 변화를 주었다. 여전히 누군가의 전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은 쉽지않은 일이지만 내겐 꼭 해보고 싶은, 간절히 원해볼만한 사랑의 한 모습이 되었으니까.


















덧글

  • 자주빛 하늘 2012/08/16 23:16 # 답글

    사랑하는 사이이기에 싸울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다만 말씀하셨듯이 그 범주가 중요하다는 것만 잊지 않는다면...
    어떤 연인들은 싸우고 나서의 마지막 대화가 항상
    "... 우리 이걸로 멀어진거 아니지?"
    "... 응."
    "더 가까워진거지?"
    "응..."
    으로 이루어진다는 걸 보면서 참으로 부러웠더랬죠. ㅎㅎ
  • 레비 2012/08/17 14:22 #

    연애하면서 아예 한번도 싸우지 않는 것도 이상적이지만은 않은것같아요 ㅎ
    싸움이후 더 가까워지는게 좋긴한데.. 사람과 사람사이의 일이니 또 다툼에 감정이 소모되는건 어쩔수없나봐요 ㅎ
  • 2012/08/19 13:1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08/19 22:48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이 이글루를 링크한 사람 (화이트)

375

통계 위젯 (화이트)

1130
126
918045

웹폰트 (나눔고딕)